아침이 아름다운 것은.. 비슬산

 

 2009. 4. 19.(일)

산사랑방 홀로

유가사-960봉-대견사지-대견봉-도통바위-유가사

약 4시간 (04:45 ~ 08:35)

 

 

 

비슬산(琵瑟山)은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닮았다고도 하고

그 옛날 달밤에 선녀들이 내려와 베를 짜고 올랐다고 해서 베틀바위라고도 한다.

신선이 바둑을 뜨며 노는 것을 구경하던 나무꾼이

속세의 세월을 떠나 백발이 되었다고 해서 신선바위라고도 하는 비슬산

 

 

 

정상 아래쪽에 내려가보면

깎아지른 단애 옆으로 널찍한 암반이 있는데 아마 그곳에서 선녀가 베를 짜고

신선이 바둑을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쨋든 비슬산은 그 유래 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은 산임은 분명하다.

가는 날마다 다른 풍경으로 다가와 마음속에 불을 지르니

그 신비스러움에 자주 찾게되는지도 모르겠다.

 

 

 

비슬산 진달래는 4월25일을 전후해서 만개한다.

아직은 일주일정도 남았지만

그저께 비가 왔으니 어쩌면 오늘이 절정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오후에는 장인어른 산소에 다녀와야 하니 일찍 비슬산에 다녀오자고 했는데

꼭지는 머리가 아프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또 무엇에 끌리듯이 혼자 집을 나섰다. 

대구에서 가까운 거리기도 하지만 비슬산은 늘 마음이 가자고 잡아끄는 곳이기도 하다.

 

 

  

유가사에서 1km즘 올라

우측으로 물이 마른 계곡을 가로지르니 어둠이 짙은 산길이 마중나왔다.

조금만 길에서 벗어나면 낙엽이 자지러지듯이 소리를 지른다.

그곳은 등로가 아니라며 낙엽이 일러주는 소리다.

 

지능선에 올라서니 날이 훤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현풍방향으로 계곡을 내려다보니 연초록의 봄이 볼록볼록 솟아오르는 것 같다.

산벚꽃은 중턱 어귀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새 잎이 돋아나는 나무들은 재잘재잘 소리를 지르고

부지런한 진달래는 이미 능선에까지 붉게 피어올랐다.

 

 

  

 

 

곧이어 해가 솟아오르자 하현달이 취한듯 미소를 머금었다.

햇살 머금은 꽃들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요정이

요술봉을 휘두르며 마구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아침이 아름답다는 것은

대간을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만복대의 여명이 그랬고, 할미봉의 가을이 그랬다.

그 다음부터는 웬만하면 일출시간에 맞추어 산행을 시작하곤 했는데

오늘 아침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중에서도 아침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봄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아침에 아름답지 않는 것이 있을까.

  

 

 

 

 

 

 

 

 

 

목재데크위로 쏟아져내리는 투명한 햇살

봄 맞이로 분주한 진달래꽃, 그 요염하고 황홀한 춤..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들바람

꽃동산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산객들..

무엇이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환희의 웃음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기상관측이래 연일 최고라는 이상고온

비슬산의 참꽃축제는 이번주말부터라는데 그때까지도 진달래가 피어있을까..

산정은 이렇게 찬란한 꽃불로 불에 타고 있는데..

과연, 그때까지 저 꽃불이 살아있을까.

 

 

 

 

 

대견사지의 석탑도 오늘은 동살에 환한 웃음을 짓는것 같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아도 슬퍼 보이지 않고, 홀로지만 외러워보이지 않는다.

진달래가 이렇게 예쁜 꽃으로 헌화공양을 올리고 있는데

부처님은 어디 가셨을까..

 

 

 

 

 

 

 

 

 

 

 

 

 

 

  

 

 

헐티재 방향의 능선들..

지난번 해병대부부와 헐티재를 오르면서 진달래꽃이 필때 다시 오자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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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연무속에 산봉우리가 첩첩이 이어진다.

인생의 굴곡과 같다.

인간에게 주어진 인생은 저보다 더 아름답고 황홀할테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살고있는 건 아닌지..

 

 

 

 

 

 

 

 

 

 

 

대견봉에 올랐다.

정상에도 진달래는 만개하였고 여기저기 바위사면에 무리를 지어 쉬고 있는 산꾼들..

어디를 둘러보아도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시계가 좋으면 지리산은 물론, 가야산 덕유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지만

오늘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신 진달래가 그 자리를 메꾸어준다.

팔공산은 보이지 않고  대구시가지만 희미하다. 앞산으로 이어지는 산마루가 너무나 환상적이다.

오늘 같은 날, 앞산까지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 일뿐 하산을 서둘렀다.

 

 

 

 

 

 

 

 

 

 

유가사 입구에 내려서니 전에 없던 돌탑과 시비가 눈길을 끈다.

 

 

琵瑟山 가는 길 
 

비슬산 굽잇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진 길 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萬) 첩첩 두루 적막(寂寞) 비워 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ㅡ 무산(霧山) 오현(五鉉) 선사 ㅡ

 

 

 스스로를 낙승(落僧) '떨어진 중'이라고 표현하는 조금은 괴짜 같은 스님

유가사 입구에 스님의 시비 건립 제의가 왔을 때

‘수행을 본분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시비 건립을 동의할 수 없으니 세우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전언하셨다는데 어쨌든 시비는 세워졌다.


 

 

<무산 오현 선사의 '비슬산 가는 길' 시비>

 

 

'무산 오현(五鉉)스님'

그는 누구인가?

 

지금은 신흥사 백담사 會主로 백담사에 머물고 계시는데

회주 보다는 설악산 산감(山監) '설악산 산지기'로 불리기를 바라는 분이다.

 

법명은 무산(霧山), 호는 설악(雪嶽), 자신을 드러내기를 무지(?) 싫어하는 분으로

여섯 살 때인 1937년 절간에서 소를 키우는 머슴으로 밀양 은선암에 입산했다.

1959년 조계종 승려가 되면서 여러 사찰에서 만행하며 구름같이 바람처럼 시에 젖어 살면서도

자기 詩는 가짜라 버려야 할 詩라고 말하신 분이기도 하다.

 

 

 ㅡ 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