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산행일자:2008. 4. 12일(토)

        *소재지  :대구/경북청도

        *산높이  :비슬산1,084m, 청룡산794m, 앞산660m

        *산행코스:헐티재-비슬산-청룡산-앞산-앞산공원케이블카승강장

        *산행시간:9시42분-18시57분(9시간15분)

        *동행    :대구 임상택, 권재형님/ 서울 범솥말, 조부근, 성봉현님 및 시인마뇽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님이 더욱 즐거웠던 것은 아마도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에서 온다는 것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친구가 찾아오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찾아온 데서야 공자님인들 그리 즐겁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도 “가까운 곳에서 악동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씀은 남기시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다하니 그동안 자주 오지 않아 더욱 반가웠을 것이고 또 오랜 시간 묵혀놓은 뉴스가 무엇인지 퍽이나 궁금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새 소식을 유통시킬만한 것이 이렇다하게 없던 옛날에는 입소문이 최고의 매체였기에 믿을만한 친구로부터 소식을 듣는 것은 바로 반가움이자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뉴스라고 다 복음(good news)이 아닙니다. 좋은 뉴스(good news)도 있고 나쁜 뉴스(bad news)도 있습니다. 좋은 뉴스는 좋은 친구가 전해줍니다. 친구가 전해주는 좋은 뉴스는 이내 유용한 지식과 지혜로 변환되어 축적될 것입니다.  믿을 만한 친구가 오랜 시간 쌓아온 좋은 뉴스를 전하고자 찾아온다는 데 공자님 같은 성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넉 달 만에 대구의 산형들을 만나 헐티재-비슬산-앞산의 청룡지맥 산줄기를 함께 걸었습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요즈음은 넉 달이면 서로의 소식을 궁금해 할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고 대구 정도면 고속전철개통으로 오고가는 시간은 많이 단축됐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거리감은 아직도 여전해 먼 곳으로 칭해도 그리 억지소리는 아닐 것입니다.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라는 말씀을 주신 분도 바로 공자님이십니다.  산을 끔찍이도 아끼는 저희들은 좋은 친구임에 틀림없기에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 가?”라는 공자님 말씀을 “먼 곳으로 친구를 찾아가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바꿔놓는다 해서 크게 꾸중들을 일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 아침6시25분 서울역을 떠나는 대구행 고속전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8시 조금 지나 동대구역에서 하차하자 작년5월 팔공산을 함께 오르내린 임상택님과 권재형님이 저희들을 맞아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이분들 차로 들머리로 이동하는 중 아침식사를 하느라 9시 반이 막 지나 902번 지방도가 지나는 헐티재에 도착했습니다. 육상교통의 총아로 등장한 고속전철 덕분에 서울에서 대구까지 2시간이 채 안 걸릴 만큼 이동시간은 엄청 단축됐는데도 심리적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이번에도 아주 먼 곳으로 산 나들이를 떠날 때처럼 설레여  밤새도록 잠을 설쳤습니다.


 

  아침9시42분 헐티재를 출발했습니다.

경북청도와 대구달성을 가르는 헐티재는 해발고도가 500m가 넘어서인지 아침공기가 제법 찼습니다. 한북정맥을 매개로 만나 대구와 서울을 번갈아 오가며 함께 산행하는 저희들 모두가 각자 웬만큼 산행을 해온지라 잔뜩 찌푸린 하늘과 쌀쌀한 날씨에 괘념치는 않았지만 여기보다 배가 높은 비슬산 정상 부근의 참꽃들이 냉랭한 공기로 만개가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제법 가팔라 50분간 쉬지 않고 오르자 등 뒤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0시32분 삼각점이 세워진 778.1봉에 올랐습니다.

산줄기를 오르내리며 숱하게 보아온 삼각점이 어떤 정보들을 담고 있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성봉현님의 설명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도엽명과 등급, 그리고 연번이 삼각점에 새겨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용천사로 갈리는 안부로 내려서자 빽빽이 들어선 참꽃나무들이 참꽃은 한 송이도 피우지 못하고 회색의 줄기만을 그대로 내보여 철지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워보였습니다. 두 해전에 참꽃 축제가 끝나는 4월19일에 이 산을 올랐는데도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실망을 했었는데 그 때보다 한 주 빠르게 이 산을 오르면서 참꽃이 만개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망각이 빚어낸 욕심이다 생각하자 서운함과 아쉬움이 많이 덜어졌습니다.


 

  11시37분 대삼각점이 서있는 해발1,084m의 비슬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용천사갈림길에서 20분을 더 걸어 소재사로 내려서는 길목에 올라서자 “헐티재3.8Km"의 표지목과 돌탑 몇 개가 보였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 헬기장과 억새밭을 차례로 지난 후 비슬산 정상인 대견봉에 다다랐습니다. 저 아래에서 벚꽃을 활짝 피운 기세등등한 봄도 이 산 정상에서 버티고 있는 겨울을 밀어내기는 역부족인 듯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견봉에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참꽃들이 피건 말건 관계치 않고 그저 비슬산이 좋아서 오른 산객들이 많아서였습니다. 비슬산의 진달래가 개 꽃이 아니고 참꽃이라 불리는 것이 어느 때고 오르면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그런 흔한 꽃이 아니기 때문이라면 겨우 두 번을 오르고서 보지 못했다고 투덜댈 일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비슬산을 출발해 암릉길을 걷다가 오른 쪽으로 내려가 왼쪽 아래 김흥리로 내려서는 안부삼거리에 다다르기까지 1.8Km를 걸었습니다.


 

  12시50분 880봉을 막 넘어 우씨묘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옥포김흥 갈림길에서 5-6분간 걸어 올라선 마치 갓을 올려놓은 것 같은 암봉에서 13분을 내려가 용연사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안부에 이르렀습니다. 삼거리안부에서 낙엽이 길을 덮은 참나무숲길을 올라 삼각점이 서있는 880봉에 다다랐습니다. 880봉에서 조금 내려가 앞서간 일행들과 함께 우씨묘지 앞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우중충했지만 한자리에 모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든 점심은 더 할 수 없는 성찬이었습니다. 밥과 떡, 그리고 빵에다 후식으로 방울토마토와 포도로 배를 채우며 30분 넘게 푹 쉰 후 13시22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청룡산으로 향했습니다.


 

  14시20분 된비알 길을 올라 무명봉에 다다랐습니다.

비슬산 대견봉을 출발해 웬만한 봉우리들은 거의 다 우회를 해 오르내림이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용문사 갈림길 안부에서 무명봉에 올라서는 15분간의 산 오름이 힘들었습니다. 우씨묘지에서 20분 남짓 걸어 헬기장을 지난 후 20분을 채 못 걸어 청룡산6.0Km 전방인 옥포반송으로 길이 갈리는 봉우리사거리에 올랐습니다. 또 다른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며 모델을 자청한 범솥말님의 땅바닥에 놓인 예쁘장한 안내판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갈림길 안부가 꽤 깊다 했는데 오름길도 꽤나 가팔랐습니다. 중력에 반하는 산 오름에 특별히 힘들어하는 것은 과체중 때문인지 뻔히 알면서도 몸무게를 줄이지 못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저를 뒤따르며 후미를 맡은 성봉현님에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길섶 여기저기에 노란 양지꽃(?)이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어 오름 길이 마냥 힘든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참나무토막들이 네모꼴로 가지런히 놓인 무명봉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마비정으로 길이 나뉘는 안부에 닿아 샘물을 떠 마신 후 솔밭 길을 걸어 망부석이 서있는 꽤 넓은 묘지에 다다른 시각이 15시9분이었습니다.


 

  16시9분 해발794m의 청룡산을 올랐습니다.

묘지를 지나 얼마 후 권재형님은 헐티재에 주차해둔 차를 앞산공원의 하산지점으로 옮겨 놓고자 오른 쪽 정대로 먼저 하산했고 남은 다섯 명만 청룡산으로 향했습니다. 이정표가 세워진 정대 갈림길에서 편안한 길을 걷는 동안에는 이번 산행 중 마지막 깔딱 길이라는 청룡산의 산 오름이 별 것 아니다 했는데, 이는 희뿌연 구름에 가린 청룡산 정상이 보이지 않아 잘 못 판단한 것으로 이내 산 오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해발고도를 150m이상 높여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제우스신보다 못하지 않는 청룡의 심술이 이 산에 짙은 구름을 불러 모아 제대로 조망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후다닥 기념사진을 한방 찍고 앞산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에서 20분을 북진해 안개에 둘러싸인 소나무들이 신비롭게 보이는 수직 암봉을 옆으로 지나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능선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17시50분 안부사거리인 달비고개에 다다랐습니다.

능선에서 10분 넘게 걸어 도착한 삼거리에서 10분여 쉰 후 직진해 내려가다가 길이 아닌 것을 알아챈 임상택님을 뒤따라 삼거리로 원위치하는 데 다시 10분이 걸렸습니다. 안개가 옅게 깔린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달비고개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길도 넓고 높낮이가 별로 없어 마냥 편안했습니다. 산성산이 빤히 보이는 달비고개는 청소년수련원과 수밭고개 양쪽으로 길이 분기되는 사거리안부로 여기에서 앞산과 산성산 가는 길이 나뉘는 능선삼거리에 오르는데 12분이 걸렸는데 차를 옮겨놓느라 먼저 하산한 권재형님이 다시 올라와 저희들을 맞으면서 19시에 마지막 케이블카가 떠난다 하여 지척의 산성산을 들르지 못하고 바로 왼쪽으로 꺾어 앞산으로 향했습니다.


 

  19시6분 앞산공원의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얼마고 걷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선 후 나무계단 길을 올라 헬기장에 다다랐습니다. 해발660m의 앞산 정상은 군부대가 점하고 있어 오르지를 못하고 바로 아래에서 오른 쪽으로 우회해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했습니다. 19시에 출발하는 마지막 케이블카에 올라 불빛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는 대구 시내를 조망하면서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대구팀이 마련한 저녁회식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사패산의 귀신으로 불리는 조부근님이 의정부로 돌아가 다음날 산행을 준비해야 했고 저 역시 경주로 옮겨 남산을 오를 뜻이어서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칠맛 나는 소고기생육으로 맛있게 저녁을 들었고 중간에 임채미님이 자리를 같이해 석별의 아쉬움을 덜었습니다.

 

  기대했던 참꽃은 피지 않았지만 22Km에 달하는 청룡지맥의 산줄기 종주를 깔끔하게 마쳤다는 기쁨에 가슴 벅찼습니다.

헐티재-앞산의 전 구간을 사전에 답사해 꼼꼼하게 산행을 준비한 임상택/권재형님과 나중에 저녁자리를 함께한 임채미님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발뒤축에 염증이 생겨 걷기가 불편한 두 발로 끝까지 종주한 범솥말님의 감투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구팀과 더불어 줄곧 선두에 서서 팀을 이끌어준 조부근님과 그리고 걸음이 느린 제가 너무 뒤에 처지지 않도록 산행 내내 후미를 맡아온 성봉현님의 노고에도 감사말씀 올립니다.


 

  제게는 먼 곳에의 동경이 그동안 가보지 못한 산을 오르게 하는 추동력입니다.

먼 곳을 찾아 나선 서울 팀들, 그리고 먼 곳에서 저희들을 반긴 대구 팀들 덕분에 “먼 곳으로 친구를 찾아가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저의 패러디가 참임이 밝혀져 한껏 기뻐하며 이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