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2007.4.7(토).맑음

*산행시간:8시간25분(도상:약23km)

*지형도;1/50,000(영진)


 

서울역(6:00)-동대구(7:46)/600번 버스/택시-상인동청소년수련원(9:15)


 

청소년수련원(9:15)-앞산660.3m(10:20)-청룡산794.1m(11:50-12:25)-880봉(15:15)

-비슬산1083.6m(16:20)-유가사매표소(17:40)


 

매표소(18:40)-서부정류장(20:00)-동대구역(20:25)/(20:46)-서울역(22:32)


 

(비슬산)



 



*후기


 

“20km가 넘는 꾀 먼 거리인데 10시간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요?”

그의 물음에 내가 말하자 반짝이는 눈빛을 보이며 그가 웃었다.

“저는 앞산에서 비슬산까지 8시간이면 주파하지요!”

구릿빛 얼굴. 작지만 탄탄한 요산자 기사는 어깨와 목에 힘을 주었다.


 

“아유~, 저는 연식이 **인지라 늦을까봐 후라씨도 가져 갑니다아~”

이렇게 내가 자신없이 푸념을 하자

600번 버스기사가 ‘하하’ 웃었다.

  

길 옆의 만개한 벚꽃과 개나리가 투명한 아침 햇살 아래 보였다.

4월의 눈부신 햇빛을 뚫고 버스는 아름다운 도시 대구를 달린다.

경북기계공고 앞에 도착하자 기사는 청소년 수련장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청소년 수련장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처음엔 다소 완만하더니 잠시 후 상당히 가팔랐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바라본  옆의 진달래는 새색시의 볼 같다.

여타 기능을 정지시키고 다시 차분히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진달래는 화사하다는 느낌 보다는 왠지 수줍어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이 꽃이 지금 우리나라 방방곡곡 피어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앞산 전위봉에서의 대구시)

 


 (비슬산방향)

 

땀이 많이 나지만 앞산까지 가서 땀수건도 하고

그리고 반팔로 바꿔 입어야 겠다고 생각 하면서 꾸역꾸역 오른다.

주능선에 서자 아래 대구시가 새로운 세상 처럼 보였고,

진달래 너머로 도시가 흰 빛의 입자들로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멀리 첩첩산줄기 맨 끝, 우뚝 선 비슬산의 원근감!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동시에 발가락에는 팍팍 힘이 실린다.

힘든 오름을 지나 주능을 걷자 그동안 배었던 땀이 시원하게 사라진다.


 

“기분 좋아?”

“아.. 꽈아 ㄱ찬 이 느낌! 너무 좋아!”

스스로 흡족한 자답을 하고는 가볍게 앞산을 비켜 삼성산 분기를 지난다.

산줄기를 둥글게 돌아가자 앞산에서 이어온 줄기가 제법 멋졌다.

잠시 걸음을 멈춰 지나온 줄기를 바라보는 것은 즐겁고 흐뭇하지!

그러면서 다시 신명나게 갈 길을 재촉한다.


 

파릇파릇 새싹이 자라나는 주위에는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있다.

그리고 앞에 지나 가는 6인조 여성부대가 보인다.


 

“이거 청룡산 가는 길 맞나요?”

그중 단아한 모습의 여인에게 내가 물었다.

 

“맞아 예!”

이쁜 사투리 한번 들어 보려고 괜히 잘 나 있는 길도 물어본다.

 

햇살이 따끈따끈한데 앞에 아이스케키를 팔고 있어 하나 사 물었다.

‘쪽쪽-’ 빨자 얼마나 세게 얼렸는지 혀가 ‘쫙쫙-’ 달라 붙는다.

앞에 가 던 남자가 동행하던 옆 사람에게 입술 뒤집어 보이며

아이스크림 먹다 살점이 떨어졌단다.

윽! 정말로 떨어진 그의 입술 피부조각이 아이스크림에 붙어 있네.

 

 

고성능의 드라이아이스!

‘아예 입술을 꽁꽁 얼려 버리지 그랬어!’ 

하면서 나 혼자 낄낄 웃다가는 문득 생각했다.

 

초저온의 드라이아이스 속에서 시원하게 한잠 때리고 나오면

심장은 다시 뜨겁고 발가락은 꼼지락거리며 그것도 확실히 슬까?

(청룡산에서본 비슬산)

 


 (삼필봉)


어느새 청룡산.

참으로 조망이 좋은 곳이다.

햇살이 강렬해 조금 내려가니 처마 처럼 멋진 바위 전망대가 있다.

도원동과 건너편의 삼필봉이 시원하게 보인다.


 

‘자, 요 멋진 전망대에서 나의 작은 밥통(?)을 채우자!’

 

“미스터 y, 우리는 8시간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한 거야...”

2000년대 초 산행을 마친 백봉령에서 차분히 말하던 그 말투가 너무 와 닿아

순간 세계가 살며시 닫히는 느낌을 가져다준 그 말.

일상생활에 지친 내 마음이 체험한 자잘한 파도처럼

그 누님을 생각하니 생기발랄한 연애감정이 슬며시 밀려온다.

허리끈을 풀자 볼록해서 지금은 이쁜 내 배를 내밀고 맛있게 먹는다.


 

삼필봉 갈림길에 이르러 지도를 보는데 한 여인이 지나치면서

“이쪽으로 가는 거예요!”

하면서 삼필봉 가는 방향으로 일러주고는 청룡산 방향으로 지나쳐갔다.

‘그게 아니거든!’ 하고

나는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흔들림 없이 방향을 잡았고, 그리고 묵묵히 나아갔다.


 

삼필봉 갈림길을 지나자 능선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적하고 좋았다.

(비슬산 오르기전)


논스톱으로 쭉 빠져 880봉에 닿으니, 건너편에 뭉툭한 비슬산이 보였다.

다시 건너편 봉우리로 나아가 억새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해는 쨍쨍 빛났고 주위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

햇살에 억새가 하얗게 빛났고, 이름 모를 노란 꽃이 고물고물 아지랑이가

피어날듯 양지녘에 옹기종기 피어있었다.

한 가족이 모여 따뜻한 햇살을 받는 모습 같았다.


 

비슬산의 언저리와 용계 계곡으로 부드럽게

지형은 이루어져 있었고 나는 차분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맞닿은 산등성이는 봄 냄새로 충만해 있었다.

공기가 멈춘 듯, 시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 같아

내 마음은 잔잔한 수면처럼 평온했다.

숨을 길게 한번 토해 내고는 비슬산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슬산)
 


(비슬산에서의 낙동강)
 

(이쁜 관기봉)


 
 

(비슬산 정상)


비슬산에 오르니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봄빛에 하얗게 너울거렸다.

바람 없이 고요했고 지나온 앞산 쪽이 아스라이 보였다.

돌아 보는 풍경 속, 보이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사랑이란 것이 외로움 덕분에 유지된다지만 지나온 산줄기들이

다시 그리워져 욕심 없는 망아지 마냥 목적 없이 걷고 싶었다.


 

왼쪽으로 비슬산에서 이어진 멋진 또 하나의 줄기가 보였다.

관기봉(983m)이 아닐까?  신비한 모양의 봉우리가 멋졌고

U자형 종주 코스도 좋아 보였다.


 

왔던 길로 잠시 되돌아 와 유가사로 바로 내려 가기로 했다.

가파른 바윗길을 따라 내려 가니 땀이 살짝 배어 나왔지만 하산길이니

작업을 정리하듯 천천히 편안하게 내려갔다.


 

앞에 양산을 들고 내려가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순간 그 주위가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는 듯 신비로운 느낌.

모든 것을 배척해 버릴 듯 홀로 아름다운 그 자태를 바라 보았다.

 

잠시 양산을 접고 옆으로 비켜선 여인의 모습이

연분홍 진달래 빛으로 수줍은 듯 살짝 번져 있었다.

(유가사에서 본 비슬산)


아래로 내려와 계곡에 들어 발을 담그고 앉았다.

이제 그리 차지 않았다. 버들강아지가 피어난 계곡에는

졸졸 물이 흐르고, 아직도 창창한 햇살.

구름은 창공에 녹아 보랏빛이고, 대기는 아직 희붐하게 밝은데

하늘은 아직 천천히 물들어 가는 봄 바람의 색깔 처럼 푸른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