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과 역사문화 유적


불암산은 서울 근교의 5대 명산에 속한다. 도봉산,북한산,관악산,수락산과 함께 어깨를 겨루는 산이다. 해발 508m로 그중 제일 낮은 산이지만, 화강암이 잘 발달된 암봉이며, 정상 부근은 마치 중의 모자(송락)와 같이 생겨서 주봉을 삿갓봉이라고도 한다.

노원구 공릉동,하계동, 중계동,상계동과 남양주시 별내면에 접한 불암산은 서울시민의 안식처로 주말이면 시민들의 등산행렬이 이어지는 유원지로 자리잡고 있다. 흥국사가 있는 덕릉고개를 분기점으로 수락산과 구분되며, 등산로는 사방에서 잘 안내되어 있어 찾기 쉬운 산이다.많이 이용되는 코스는 당고개 전철역코스와 태릉행 45번 종점코스다. 소요시간 3시간 내외.

노원구의 역사를 보면 신석기시대부터 거주한 흔적이 보이며, 고인돌 등 유물이 발견되었다. 학설에 의하면 이곳이 백제 초기의 도읍지 위례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며, 삼국시대 신라, 고구려, 백제의 경계지역이었고, 고려 이후에 불암산성은 격전지로서 수많은 보루가 생기게 되었다.

이조 1395년부터 양주부로 승격되어 부르게 되었고,1896년 양주군에 편입되어 1914년 노원면과 해등촌면을 합쳐서 양주군 노해면으로 개칭하고 창동리,도봉리,쌍문리,월계리,공덕리,상계리, 중계리, 하계리로 바뀌었다.

태릉 근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과 공산군이 불암산 전투가 벌어졌던 6.25 전쟁의 상흔이 밴 곳이 불암산이다. 1950년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육사 1기생과 입교 20일 밖에 안된 2기생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끝까지 항전, 불암사에 본부를 두고 1970년 7월11일 퇴계원 보급소 공산군 100여명을 습격하여 섬멸한 혁혁한 전공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유격대원이 전사하고, 몇명만 살아 남아 수복후 복교하여 임관되었다.

현재 불암사(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797번지)는 조계종 제25교구인 진접면 봉선사의 말사지만, 조선 세조 때는 장안의 4대 명찰의 하나로 번성했던 절의 하나다. 신라 헌덕왕 16년(828)에 지증국사가 창건, 그후 도선국사가 재창, 무학대사가 삼창했으며 정조 6년 (1782)에 서악스님이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중수하였으며, 철종 이후에 보성,춘봉,혜월스님이 ,그리고 1973년에 태정스님이 당우를 일신하였고,1989년 부처님 진신사리를 태국에서 3과 ,스리랑카에서 4과를 모셔와 봉안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불암산 남쪽에는 봄이 되면 어린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이용되는 태릉, 강릉이 있다. 태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 계비인 문정왕후 윤씨(65세)의 릉이며, 강릉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으며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44세)의 릉이다. 수락산과 함께 역사를 같이 한 불암산 주변은 산세가 좋아서 왕의 이궁이었던 풍양궁(지금의 청남대)과 사냥터로 이용되었으며, 학문을 닦는 서원과 선현들의 풍류지로서 명당자리에 속하는 한수 이북의 땅이었다.

***역사문화에 대한 산소개입니다.


▣ 신재혁 - 노원의의 역사
▣ ???? - 그래 니잘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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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