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한담 56

촌놈이 수락산에 올라갔다가 엉겁결에 불암산까지 간 까닭은? 
  


  

 

 뭔가를 이루고자했던 것을 어렵사리 이뤄냈을 때 느끼는 쾌감은 과연 어떨까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4년 전에 1년간 연수를 받을 때 서울 근교의 명산을 두루 섭렵하였다. 어쩌다보니 수락산과 불암산을 빼먹어 아쉬웠다. 원대복귀한 뒤에 한번 오르려고 맘먹었으나 바삐 살다보니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별 탈 없이 잘 커가던 손자놈이 입원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아내가 돌봐주고 있다. 마침 주말에 행사가 있어 겸사겸사 서울에 올라왔다가 짬을 내서 수락산에 오를 요량으로 출발을 서둘렀으나, 노강서원으로 가는 좁다란 길로 접어드니 벌써 11시가 넘어섰다. 길을 잘못 들어서일까 산꾼들이 보이질 않는다. 마침 내려오는 분이 이 길로 쭉 가면 정상으로 갈 수 있다하니 안심이 된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니 호남집이라는 식당 앞에서 단체 산행객들이 출발을 서두르고 있다. 잘 됐다 일행을 따라가면 되겠구나. 등산화 끈을 고쳐 메고 기다렸다가 맨 뒤에 합류한다. 한 줄로 오르기에 자꾸만 지체되어 패스를 찾기가 어렵지만 초행길인데 별 수 있겠는가 그냥 따라 갈 수밖에, 그렇지만 길을 막고 자주 쉬어가기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치고 나선다. 능선길이라서 헷갈릴 염려도 없고 보드라운 오솔길로 이어져 그리 어렵지 않게 능선에 다다른다.
 

 산꾼들이 몰려가 그 무리에 휩싸여 걸어가지만 아무런 안내표지가 없어 답답하다. 조금 걸어가니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경고판에 홈통바위는 위험하니 우회하라고 써있다. 모처럼 큰맘 먹고 왔는데 에돌기 싫어 암벽을 타고 오르고 싶다.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아 지체돼 한기가 몸속을 파고든다. 멀리서 왔다는 구실로 양해를 얻어 로프를 잡고 가파른 암벽을 기어오른다.
 

 이곳이 정상인줄 알았더니 앞에 있는 암봉이 정상이라고 한다. 우측으로 돌아서 올라가니 드디어 수락산 정상이다. 산꾼들이 자신의 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느라 북적거려 오래 머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린 탓인지 너무 깊게 패인 내리막을 내려선다. 혼자 온 탓일까 아늑한 쉼터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산우들이 부럽기 그지없다.
 

 뜨거운 물과 컵라면 밖에 준비해온 것이 없다. 적당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허기를 달래려고 찾아가다보니 산등성에 매점이 있다. 배낭을 풀기 귀찮아 라면과 커피를 시켜서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젠 내려갈 일만 남은 것 같다. 문득 「한산」게시판에서 불암산 수락산 종주 산행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여기서 불암산을 가려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대답들이 시원치 않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봉우리에서 건너편 불암산을 바라보니 대략 어느 방향으로 가면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가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헷갈린다. 가다보면 길이 나오겠지, 한참 내려오니 푯말이 보인다. 청학리라고 표시된 내리막길로 내려가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올라오는 산우께 여쭤보니 불암산은 상계역 방향으로 접어들어야 했는데 이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촌놈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묻지 않는 대가로 톡톡히 알바를 치르고 나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는데 두 사람이 앞으로 치고 나서면서 불암산까지 종주한다고 한다. 잘됐구나 생각하고 바싹 붙어 따라가는데 어찌나 서두르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가고 싶지만 자꾸만 멀어져간다. 에라, 모르겠다 느긋하게 걸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앞에 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체념하고 걸어가는데 뒤따라온 산꾼이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수락산을 거쳐 불암산까지 종주할 생각이라 했더니 자기도 종주한다고 한다. 이곳은 동네 뒷산같이 등산로가 복잡하니 조심하라면서 안내해 줄 테니 따라오라고 한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운지 일부러 보조를 맞춰준다.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걸으면서 불암산에 오르내리는 길을 상세하게 가르쳐준다. 어느덧 고갯길에 도달한다. 나 때문에 자꾸 지체되므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여기서 쉬었다 갈 테니 먼저 가시라고 작별인사 한마디로 고마움을 대신한다. 고갯마루에서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목을 축인다.
 

 여기서 그만 두고 내려갈까? 그러나 한두 시간 남짓 애쓰면 종주할 수 있다고 했는데 주저 앉아버리기에는 너무 서운한 것 같다. 큰맘 먹고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걸어 불암산에 접어드니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로 이어진다. 3시간 밖에 걷지 않았는데 다리가 뻐근해지면서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여기서 돌아간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러나 자존심을 구기고 싶지 않아 서서히 가팔라지는 오르막을 용을 쓰고 오르니 먼저 갔던 두 분이 길가에 앉아 간식을 들고 있다. 쉬었다가라고 하면서 요깃거리를 건네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초콜릿을 먹으면서 천천히 오른다.
 

 지난주 오랜만에 추월산에 다녀온 여파인지 갈수록 발걸음을 내딛기가 거북스럽지만 이젠 진퇴양난이 아닌가. 올라가는 사람은 없고 드문드문 내려오는 사람밖에 없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조금만 올라가면 된다고 하는데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설상가상으로 비가 내리려나 사방이 침침해져 초조해지는데 온몸에 기운은 빠져나가 죽을 맛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능선에 이르니 오르막이 또 시작돼 맥이 탁 풀린다. 평소 같으면 별 것도 아닌데 에라, 모르겠다. 길가에 덥석 주저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잠시 숨을 고르니 다행스럽게 생기가 돈다. 다시 일어서 발걸음을 옮기니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푯말을 보니 왜이리 반가운지 모르겠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올라서니 멋들어진 암봉이 눈앞을 가로 막는다.
 

 꼭 저곳에 올라가야만 할까?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 싶어 쇠줄을 붙잡고 정상에 다가선다. 때마침 바람이 휘몰아치며 빗방울 굵어져 조급해진 탓인지 태극기가 휘날리는 꼭대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다시 위험한 구간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능선에 접어드니 이젠 고생 끝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다시 봉우리를 넘어 노원고개로 하산하는 것이 정석 종주라고 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싶어 가까운 전철역으로 내려가는 길을 물으니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상계역이 나온다고 한다. 축축해진 돌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서니 시가지와 연결된 콘크리트길엔 낙엽이 나뒹군다. 많은 산행인파로 붐비는 수도권의 명산인데 안내표지가 너무 허술한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순을 코앞에 둔 늘그막에 수락산에 올랐다가 엉겁결에 불암산까지 무모하게 덤벼들어 혼쭐이 난 5시간의 산행이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을 이뤄낸 뒤에 맛본 쾌감 때문인지 고단함이 씻는 듯 사라지고 콧노래가 절로 터져 나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