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게 뭐예요 ?"
"이잉.. 그거 작년 12월 카드 내역서.."
우두망찰 한참을 멍하니 내려보던 곁의 안색이 청짓독 오른놈 마냥 퍼렇게
변하더니 넋 빠진 년 처럼 한참을 기신을 못한다.
"대야성, 샬레, 양지, 홀딱벗고 주점.."
가만히 혼자 뇌까리던 곁의 눈매가 시퍼런 번갯불이 꽂히듯 달아 오르더니
이내 잉걸불 같은 섬광이 번쩍이며 뇌성벽력이 귀청을 때린다.
"아니, 이걸 당신이 다 냈단 말요?

  

똥 훔친 개 꾸짖디끼 사정없이 몰아 세우는 곁의 서슬에 등허리에는 한출첨배의
식은땀이 철대방죽으로 홍수가 났고 화류판에서 잘난체 하던 상판은 소태주에
쓸개즙을 됫박으로 핥은 놈 마냥 용천뱅이 곰보 짝으로 찌그러 지더라.
뱀 잔치에 개구리만 박살 나더라고 연말 흥청만청한 주지육림에 거시기 카드만
아작나 이래저래 떡돌에 치인 두꺼비가 되어 밝은해를 볼 낯이 없게 되더라.
애시당초 일찍허니 자수하여 피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디  정직한 선행이
가문의 위기를 구한 안동 권부자의 행실을 본받아 새해부터는 구습을 고쳐
참한(?) 사람으로 일신을 회복 하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이 화근이였다.
권부자의 선행이 뭔고하니.....

  

때는 강화 도령 원범이 얼떨결에 왕이되어 철종으로 불리던 시절,
삼백(쌀,누에고치,곶감)과 자전거로 유명한 경북 상주에 서선달이란 별볼일
없는 농투성이가 살았겄다.
소탈하고 무던한 성품에 이웃이 행세 명색으로 붙여준 겄이지 소시적 칼 깨나
휘둘러 무과에 합격해 얻은 선달은 아니였다.
예나 제나 사람 좋은 놈치곤 부자로 사는이는 드물어서 서선달도  춘궁기엔
마을 뒷산 송기 채취에 열을 올리고  두루거리 밥상에 고물 하나 없는 말뿐인
송기떡으로 허기를 끄다보니 식구들 모두가 밑이 찢어져 차마 변 보기가
지옥 가기 만큼이나  무서웠고 삼순구식이 당연지사인 흥부네와 호형호제 하더라.

  

남의 땅을 빌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형편이다보니 들판에 아지랑이
사태 일듯 하고 강남 갔던 제비 박씨 물어 흥부 처마에 떨어뜨리는 봄이 되니
볕 잘드는 툇마루에서는 서선달의 한숨 소리가 우뢰 같이 들리더라.
농사는 지으야 하는디 종곡 마련할 돈도 일꾼들의 품삯도 구처 할길이 가뭇
없고 보니 쉬나니  한숨이요, 치나니 탄식이더라.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포 싸전에서 서사로 호구책을 삼고있는 큰아들을 찾아가
트이지 않는 말문으로 어렵게 어렵게 곤궁한 형편을 설파하고 짧은 담뱃대
대통을 아드득 소리가 나게 돌려 막초 한꼭지를 털어 넣고는 엄지 손가락이
자빠라 지도록 꾹꾹 눌러 담으며 무안함을 달래더라.

  

아비의 걱정을 잘 아는 큰아들은 싸전 주인의 춘포장옷을 움켜쥐고는 통사정을
하여 겨우 6개월치의 월급을 가불 받아 서선달에게 주었다.
아들의 피같은 돈 백냥을 봇짐에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는 상주로 돌아선 선달은
귀하디 귀한 돈을 주식으로 허비할 수 없어 풍찬노숙에 과객질로 얻어 먹으며
안동부중으로 드는 고개를 넘는디 그만 돈꿰미를 흘리고 말았다.
이때 마침 반대편에서 고개를 올라오던 가위 신선 풍모의 체수 좋은 양반이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던중 서선달의 흘린돈 백냥을 주웠것다.
요릿집에서 맛있는 요리나 사먹자는 자발없는 하인눔을 일갈하고는 잃어버린
돈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감중련 하고 있더라.

  

한편  주림으로 상성이된 서선달은  돈꿰미 떨어뜨린 겄은 생각도 않고  짐이
심히 가벼워진 것만 다행으로 알고 길을 재촉하다 30리 상거나 가서야 피 같은
돈을 실물한겄을 알고는 그만 삼혼 칠백이 일혼 이백으로 감해져 실성한 눔
마냥,  똥 마려운 년 국거리 썰듯 허둥지둥 왔던 길을 되짚어 오르는데 걸음이
허공에 뜬듯  도대체 요량이 없더라.
흐르는 눈물 콧물은  쑥 두어줌만 무친다면 한사람 요기로는 실할 만큼 범벅이
되었고 때에 절어 기름주머니가 된 중치막은 금방이래두 찢겨질듯 펄럭거려
가히 볼만한 겄이 못되더라.

  

"양반님네  혹시 오시는 길에 돈 꿰미 못보셨는지요?"
사색이 된 서선달의 울먹거리는 물음에,
"아니그래도  내 여기서 주인을 기다린지 오래요."
사례 하겠다는 서선달의 고마움에 당치 않다는 듯 손을 흔들고 고개 아래로
종놈을 다그쳐 노인은 표표히 사라진다.
돌아서는 노인의 등뒤로 서너번이나 큰절을  올리고는 다시 길을 재촉해 어느
강가에 이르니 웬 아이 하나가 실족해  급물살에 떠내려 가고 있는게 아니가.
구경하는 사람은구름처럼 많으나 어느 누구 하나 뛰어들어 구해낼 생각을
않는다.

  

마음 착한 서선달은 부지불각중에,
"누구든 저 아희를 구해주면 백냥을 내겠소"
하니  그때서야 구레나룻이 장한  꼭 산적 같은 눔이 돈에 목숨을 걸고는 첨벙
물속에 뛰어들어 아희의 머리채를 잡고 개헤엄으로 기어 나온다.
아희는 살았으나 딱하게 된 건 선달이였다.
주위 사람들의 훈수로 기력을 차린  아희는 선달에게 사례하며,
"어른께서 사비를  털어 저를 구하 셨다니 저희집으로 가시면 다시 인사를
 차릴까 하나이다"
인사 받자고 구한 건 아니였으나 난감한 판이라 소년을 따라 나서고 말았다.

  

골고루 잘 먹어 들은 콩기름이 번들거리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의 사랑채에 
앉아 있자니 초라한 선달의 행색과는 너무 버성겨 용집 잡힌 냄새나는 버선을
숨기느라 무던히도 애를 쓰며 땀을 삭이는 중에,
급보를 받은 주인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아이고, 저희집 7대 독자를 구해 주셔서 감사...?"
어쩌구 인사를 개어 올리다가  주인도 선달도  정수리에 모닥불을 뒤집어 쓴 듯
깜딱 놀라고 말았으니  노인은 산마루에서 선달의 쩐을  찾아 주었던 사람이였던
겄이였다.

  

노인이,
"전재산을 털어 남의 자식눔을 구하다니 이 은혜를 어찌 갚는다 말이오 ?"
하니 선달이,
"아닙니다.  마님의 정직함이 도련님을 구했나 하나이다.  그때 제가 돈을
 잃었다면 무슨 수로 아드님을 살렸겠읍니까 "
노인과 선달은 서로 하례하며  상대의 인격에 찬탄하는데, 노인은 보름을
큰 잔치를 벌여 선달과 이웃 주민을 크게 먹이고 떠나는 선달에게 천냥으로
후사하니 선달이 아무리 사양해도 요지부동이더라.
그러고는 그해가 가기 전에 다시 상주로 올라와  선달에게 천석지기  땅으로
사례하고는 안동으로 돌아가니 세상 사람들이 이 기이한 인연에 칭찬하지
않은이 없고 상께서도  어여삐 여겨 안동 상주 두 고을에 후한 상을 하사터라.

  

지각없는 객이 이렇듯 권부자의 정직함을 본받아  카드의 본말을 이실직고
했다가  곁의 축객령에 그나마 부지하던 삼청 냉돌방에서도  쫓겨나 유행가
제목처럼  문밖의 당신으로 전락해 당분간은 오줄없는 오줌인편  홀애비
신세가 불문가지더라.

  

신년 들어 객의 또래들이 이제는 불혹을 두어 해나 접은 나이 이고보니
허리 아래가 많이부실해 졌는지 제발 산에 좀 데려 가라는 사모님들의 성화가
장난이 아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동네 논두렁 수준의 산계를 급조해 첫모임을 가졌는데
말이 좋아 모임이지 이눔 한마디 하고 건배, 저눔 한마디 뱉고 또 건배 ..
모두가 한다하는 모주꾼이고 보니 좀체 잔을 사양하는 법이 없어 술자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처음엔 지리산으로 가자고 기염을 토하더니 서너순배 돌아 주기가 오르니
덕유산으로 조금 낮아 지더니 종래는 마이산이  멋지다고 지들끼리 떠들다가
황매산도 명산이래며 꼬리를 내린다.

  

일요일,
객 역시 술에는 장사가 아닌지라  지끈거리는 머리를 겨우 추슬러 놈들에게
참석 여부를 확인하니 간밤의 모임에서 호기롭던 기세는 모다 어디가고
핫바지 무우 방귀 새디끼 줄행랑을 놓았고 그나마 객과 몇번 호흡을 맞춘적이
있는 진주사(진동원,합천군청) 눔만이 겨우 게트림을 물고  바지춤속에 손을
집어 넣고  샅을 서걱서걱  긁으며  기어 나온다.
자루 벌린놈이나 곡식 퍼 넣은 놈이나 뒤가 매렵기야 일반인지라  가까운 산으로
주독 제거 산행을 하자는 데 수이 합의를 본다.

  

동안 객이 한번도 소개 하지 않고 애끼고 애껴 두었던 산,  부암산..
지리산이 잘 익어 등굽이가 갈라 터진 거대한 석류의 껍질이라면 부암,감암,
모산재는 붉게 타오르는 석류알 같은 희귀한 보석들이다.
그중 부암, 감암을 둘러  묵방사로 하산 하기로 하고 대기 마을에 주사눔의
차를 던져 두고는 난테를 휘몰아 이교리로 떠난다.
(대부분 사람들이  길을 잘 몰라 이교리에서 가회면소를 에둘러  대기 마을로
 오는데  대형차가 아닌 승용,승합 이라면 부암산 입구 안내판이 있는 오른편
 농로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을 이용하면 동곡 마을로  내려서고 대기리까지
 불과 1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조감 하시라..)

  

안내판 아래에 난테 묶어두고 천천히 임도 수준의 길을 따른다.
얼마 올라 서지 않아 왼편으로 부암사의 정갈한  자태가 반갑고  절앞 상수리
나무의 웅장한 때깔은  한여름이면  그 덕을 아낌없이 쏟아 내겠다.
절앞으로 곧장 이어지는 길은 소나무와 중중한 바위가 절묘한 오솔길로 참솔이
쏟아내는 피톤치드의 상큼함에 금새 몸은 청량한 솔향이 뚝뚝 묻어든다.
얼마 오르지 않아 쉬어가기 좋은 바위가 나오고 조금 더 오르면 길은 거대한
암릉을 오른편으로 휘돌아 고샅을 슬쩍 밟고는 암봉으로 올라선다.
구부러진 노송의 허리처럼 오른편으로 슬쩍 비껴나는 길은 얼마안가 주능선과
만나 안부로 떨어진다.

  

안부로 내려서면 쭉쭉 뻗은 참솔의 무리가 온산을 가득 채웠고 발밑에는  노란
깔비가 만산편야로 즐비하다.
가끔 키꼴이 껑충한 진달래만이 보일뿐 잡목하나 섞이지 않은 참솔 나라는
이후 급경사를 지나 한동안 이어지다 갑자기  흰 동아줄이 걸린 돌비알을 만나
면서 잡목지대로 바뀐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너무나 동화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은 누구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파노라마로 각인될 겄이다.
오른편의 급경사 절벽을 피한 길은 왼편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다 정상으로 힘겹게
올라선다.

  

조망이 시원히 터지는 정상은 이름없는 산악회라고 새긴 특이한 정상비가
인상적인데 왼편으로 둔철산 정수산  너머의 지리산의 웅자가 단연 돋보이나
오늘은 싸락눈이 날리는 불안한 일기 탓에 지리의 조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애석하기 이를데 없다.
사탕과 감귤로 주독을 다스리며 한참을 쉬었다가 감암산을 바라  길을 나려선다 .
내려서는 길은 비록 쇠난간이 있다고는 하나 빙설기엔 노약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구간으로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 하리라.
안부에 발을 뻗었다가 다시 철난간을 잡고 오르는 길엔 마주뵈는 절벽에  거대한
말벌집이 또아리를 틀고 있어 경외심을 품게한다.

  

갈림길  이정표를 조금 지나 수리봉에  나서면 가슴 터지는 시원함이 폐부를
가르는데 간혹  황매산 편에서 조망을 가늠하는 산꾼들이 부암산으로 착각하는
멋진봉이기도 하다.
수리봉을  떠난 길은 아래로 하염없이 내려서다가 옥녀가 다리를 움크린 듯한
옴팍한 안부에 닿는다.
안부엔 질펀한 샘이 흐르고 주위는 눅눅한 습지로 이뤄져 있어 누군가 유혹
하는 듯한  야한 느낌이 들어 주장군 움켜 잡고 쫓기듯 지나친다.
된비알이라 부르기엔 조금 허술한 오르막을 지나 기분 좋은 능선길을 따르면
또다시 안내판이 선 갈림길이 나서고  온통 분재송으로 단장한 평편한 사면을
지나면 감암산 된비알이 기다린다.

  

감암산 오름길은 특히 마지막  철난간이 설치된 구간을 주의 해야 되는데
빙설시엔 노약자들의 엄격한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끙끙 거리며 철난간을 의지해 간신히 감암산으로  올라서니 정상석 대신
조그만 돌탑과 표지기만이 어지러이 걸려있다.
반가운 김정길님의  표지기도 보여 감회가 새롭다.
한참을 쉬었다가 천황재 갈림길로 발길을 재촉한다.
지척지간 인지라  금새 당도해 누룩덤으로 꺾여져 나려서니 칠성바위와
누룩덤이 정겹과 두예삐가 닭바위라 주장하는 매바위는 금새라도 묵방사로
날아들듯 정정하다.

  

쉬엄쉬엄 걷노라 하였건만 대기 마을에  나려서니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부암산에서  묵방사로 나려서는 길은 두어군데만 조심한다면  진종일 지리의
천왕봉을 끼고도는 호화로운 길로 울창한 소나무 숲과  기암괴석의 향연,
산지사방에 널려 있는 화려한 조망처로 세속에 찌든 심신을 달래기엔 더할나위
없는 안식처가 될겄이다.
참고로 산하의 강골 재넘이님이 얼마 전 다녀 가셔서 멋진 사진을 남겨 주셨는데
뜻 있는 분들은 펼쳐 보시길 바람니다.
난테를 회수해  모산재  식당에 들러니 갑장으로 자처하는 이모의 신년 인사가
부산하고  해는 아직도 중천에  까맣더라.

  

                             2006년 1월 15일.  난테   진맹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