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고개에서 바라본 폭산(문례봉)

 

1. 산행일시 ; 2007. 4. 21. 9:00~20:20
2. 산행구간 ; 용문사주차장-용문봉-폭산(문례봉)-봉미산-보리산-설악면 블루밸리 리조트
(도상거리 약 16.4km)
3. 교통편 ; 갈때는 청량리에서 용문까지 기차, 용문사주차장까지 버스 이용
올때는 블루밸리 리조트에서 설악까지 승용차 얻어타고 청평 팔각정 휴게소까지 택시 이용,
1330번 좌석버스로 귀경.
4. 날씨 ; 맑고 따뜻한 봄날이지만 박무로 조망 나쁨.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1422m)에서 분기, 비로봉(1563m), 계방산(1577m)을 거쳐 힘차게 남서진하는 거대한 산줄기가 있으니 운무산(980m), 오음산

(929m)을 지나 경기도에 이르면 용문산(1157m)을 중심으로 한 걸출한 산군을 일군 다음 유명산, 청계산으로 흘러 두물머리에서 한강에 잠긴다.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는 이 산줄기의 세가 정맥에 준한다 하여 세간에서는 가칭 한강기맥이라 불리우고 있다.

경기도 최고봉들인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이 경기 북부에 치우쳐 있는데 비해 네 번째로 높은 산인 용문산은 중앙에 위치하여 어느 산에 오르든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4년전 여름날, 역시 용문산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봉미산(856m)에 올라 용문산으로 뻗은 장쾌한 산줄기를 바라보았을 때 가슴이 뛰면서 당장이라도 내닫고 싶었지만 후일로 미루었는데 올봄에야 실행할 마음과 여유가 생겼다. 당초 3월말에 산행을 계획하였다가 비와 황사때문에 연기하였는데 나뭇잎이 시야를 가리기 전에, 그리고 겁없는 용문산 뱀들이 원기를 더 회복하기 전에 다녀와야겠다 싶어 서두르게 되었다.

용문산 북쪽에 위치한 폭산(문례봉, 1004m)에서 산줄기가 북으로 갈라지는데 봉미산과 보리산(나산2봉, 621m)을 거친 지맥은 널미재를 건너 장락산

(627m)과 왕터산(410m)을 빚은 다음 홍천강에서 맥을 다하게 되고 실제거리 30여 km의 이 줄기를 사람들은 장락지맥, 혹은 장락산맥이라 부른다. 폭산에 오르려면 비슬고개에서 출발하여 한강기맥길을 따라 싸리재, 싸리봉을 경유하여 갈 수도 있겠으나 이번에는 용문사주차장에서 진동능선을 타고 용문봉(952m)으로 올라 문례재를 거쳐가기로 했다.

청량리에서 6시 40분에 출발한 중앙선 무궁화호 통근열차는 예정대로 8시 6분 용문역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8시 40분발 용문사행 버스를 타니 8시 55분, 용문사주차장에 도착했다. 커피를 마시며 오랫만에 보는 낯익은 풍경을 둘러본 후 상가뒤 묘가 있는 능선시작점에서 9시 8분, 장정에 들어갔다.

기암절벽을 이룬 연릉과 암봉이 소나무와 어우러진 산세가 아름다워 용문산은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이라고 불려왔다. 용문봉이 자리잡은 진동능선이 이런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만큼 험하지 않나 생각된다. 적송이 우거진 초입을 지나면 유격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된비알을 오르면 헬기장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바윗길이 시작되어 문례재까지 계속된다.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우회로보다는 바위를 직등하기로 하고 오르는데 역시 명성대로 까다로운 구간이 많다. 시간이 꽤 흘러 위압적인 암릉이 눈앞을 가로막자 시간을 줄여볼까 하는 꾀가 생겨 좌측으로 보이는 우회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길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경사가 급해지고 아예 없어져버렸다. 후회막급. 되돌아갈 수는 없고 어렵게 능선에 올라서 살펴보니 다름아닌 용문봉을 우회해버렸다! 오늘의 종주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봉우리는 용문봉, 폭산, 봉미산, 보리산인데 첫 봉우리를 본의아니게 빼먹었으니 이런 경우에도 종주로 칠 수 있는건가? 용문봉산행이 네 번째인데 첫 산행 때 밤늦게까지 길을 잃고 고생하더니 징크스가 계속된다.

시간손실을 걱정하며 문례재로 서둘러 향했다. 봉우리를 몇 개 넘어 문례재 가는 갈림길로 들어서니 평원같은 능선길이고 얼레지 꽃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샛노란 제비꽃과 새파란 원추리잎이 이렇게 높은 산에도 생명이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박무로 인하여 전망이 좋지않아 실망이 컸는데 꽃을 보니 발걸음이 자꾸 멈춰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폭산에 도착하니 12시 45분이다. 애초에 산행계획을 세울 때 용문봉까지 두 시간, 폭산까지 한 시간, 봉미산까지 두 시간, 보리산까지 두 시간, 널미재까지 한 시간으로 어림잡아 총 여덟 시간 산행에 쉬는 시간 두 시간 포함해서 열 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례재 지나며 꽃사진 찍다보니 벌써

45분이 초과해버렸다. 거기에다 폭산에서 점심까지 천천히 먹고 일어선 시간이 1시 30분이다!

폭산에서 널미재까지! 내로라하는 산꾼들이 알바하며 골탕먹었던 산길이다. 주어진 시간때문에 한번이라도 알바를 하게 되면 종주를 포기한다고 작정하고 가장 잘 정리된 산진이님의 산행기를 중심으로 준비를 열심히 했다. 폭산에서 봉미산을 바라보며 내려서는 길이 첫 번째 난관이었다. 배치고개상의 철탑을 목표로 급경사를 내려가는데 군데군데 매달린 표지기를 무심코 따른게 잘못이었다. 산음휴양림 방향으로 난 일반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철탑과 점점 멀어지는 것같아 불안해서 다시 올라와 보니 갈림길이 있었다. 즉 폭산에서 내려오다가 첫 번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야하고 다음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야 개념도상의 된봉고개를 지나 송전철탑이 있는 배치고개에 다다를 수 있다. 다행히 잘못을 일찍 발견하여 시간손실은 20분 정도에 그쳤고 이후로는 바짝 긴장한 덕분에 알바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임도가 있는 배치고개에 내려서니 2시 45분. 고도로 500m 정도는 내려왔을 것이다. 이런 페이스라면 보리산까지 가기에는 다소 무리라는 걱정이 앞선다. 준비성이 부족한 천성탓에 가장 먼저 챙겼어야할 랜턴도 가져오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부터 속도를 높여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임도에 옹기종기 피어난 연두색 쑥이 탐스러워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동안 캐어 담는다.

배치고개에서 성현까지는 편안한 진달래 능선길이다. 음악의 흐름처럼 봉미산의 가파른 오름길을 앞두고 잠시 여유를 주는 것이리라. 임도에 차단기가 내려진 성현에 도착하니 3시 35분이다. 봉미산 임도, 구불구불 대단한 길이를 자랑한다. 이제부터 봉미산 영역. 마음이 급해서 쉴 틈도 없이 바로 오른다. 일단 봉미산 정상에 올라 다음 행보를 걱정하리라.

성현에서 올려다 보이는 봉미산 전위봉, 늪산(814m)까지 忍苦의 시간, 무념무상의 시간이 거의 한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굴참나무가 빽빽한 숲속에서 양지꽃이 화사하게 피어 격려를 하는 가운데 현호색과 산괴불주머니도 사이사이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산의 경계선이 바뀔 때마다 보이는 야생화도 달라지니 이들도 나름대로의 영역이 있단 말인가.

4시 55분, 드디어 봉미산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용문산을 되돌아보며 4년전의 벅찬 감격을 다시 느끼고자 했으나 박무로 시야가 가려 답답할 뿐이다. 북동쪽으로는 소리산(480m)이, 북서방향으로는 보리산 연릉이 보여야 하는데 사방이 흐릿해서 구별할 수가 없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다. 보리산까지 갈 것인가? 봉미산에서 동쪽으로 하산하면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이고 서쪽으로 내려가면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인데 양쪽 모두 깊고 깊은 산골이다. 하루에 다니는 버스라야 겨우 세 대 정도이니 어차피 차는 끊겨 얻어타야 할 입장이다. 보리산까지 두 시간만에 간다면 어두워지더라도 일반등산로 따라 내려갈 수 있을테고 서울까지 교통편은 많이 있는 곳이니 여기서 산행을 포기하느니 모험을 해보기로 한다.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보리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닫는다. 이제부터 산길은 북서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5분정도 급경사를 내려가면 거대한 암봉(660m)이 앞을 가로 막는데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면 될 일이다. 5시 25분, 삼산현에 도착하니 마지막 탈출로다. 이제부터 보리산까지 가는 길에는 홍천쪽 갈림길은 있어도 설악쪽으로는 없으니 무조건 보리산까지 가야한다. 점심후 좌측에서 나란히 달리던 태양이 점차 속도를 내어 앞서가기 시작한다. 초반에 꾸물거리느라 잃어버린 시간이 마냥 아쉽다.

삼산현을 지나 오르내림이 있는 편안한 능선길을 부지런히 걷는다. 내리막에서는 두껍게 쌓인 낙엽을 헤치며 내닫는 모습이 캐터필러를 연상시킨다. 몸무게를 조금 줄인다면 경쾌하게 움직일 수 있을텐데 둔함을 느낀다.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표지기가 많이 달린 우측길은 홍천쪽이니 나무로 가로 막아놓은 좌측길로 가야한다.

5시 55분 삼각점이 있는 637봉을 통과하고 봉우리를 하나 더 지나니 안부가 나오고 이제부터는 바위길이다. 보리산 품안으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봉미산에서 보리산까지, 그냥 참 멀다는 느낌뿐이다. 시시각각 어둠이 다가오는 암릉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몇 봉우리를 지나 드디어 나산2봉, 보리산에 도착한다. 7시 10분이다. 다른 산님들이 큰 댓자로 드러누웠다는 평상도 보이지만 주위는 이제 완전히 어두어져 드러누울 기분이 아니다. 보리산에서 널미재까지 남은 길은 11월까지 숙제로 남겨놓고 등산로가 가장 발달해있을 것 같은 서쪽 코스로 하산을 서두른다.

과연 블루밸리 리조트(설악스파랜드)에서 설치한건지 군데군데 하얀 로프가 메어져 있어 어둥속에서도 길을 쉽게 찾아 내려왔다. 하늘엔 달도 별도 보이지 않지만 좌측 멀리 산위에 보이는 리츠칼튼 골프장의 환한 불빛 덕분에 심리적이나마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침내 블루밸리 골프장을 가로질러 길로 내려서니 8시 18분이다. 차가 한 대 내려와 손을 드니 30대 전후의 청년들이 타고 있다. "죄송하지만 태워드릴 자리가 없는데요~" 뒷자리도 꽉 차 있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씀씀이! 설악, 홍천간 84번 지방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불을 보며 내려가는데 또 차가 내려온다. 자리는 있는데 반대방향인 홍천으로 간단다. 그래도 설악면사무소까지 태워줄테니 타라고 한다. 산에 다니면서 자주 경험하는 훈훈한 인심이다. 부산에서 온 청년들인데 행사차 왔다가 숙소인 콘도로 가는 길이란다. 다시 한번 감사!

차에서 내리면서 설악면의 온누리약국을 흘낏 보니 김선배의 낯익은 모습이 보인다. 터미날로 서둘러 가서 물어보니 홍천에서 오는 시외버스는 8시에 지나갔고 청량리행 1330-5번 좌석버스는 8시 30분에 막차가 나갔단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청평 팔각정 휴게소로 향했다. 삼봉이라면 김선배께 청평까지 태워달라고 했을텐데..... 명문인 4대 공립초등학교를 나온 탓으로 감히 그런 결례를 범하지 못했다.


 

용문봉 오르는 초입의 적송지대

 

진달래도 흐드러지고

 

바위길 시작

 

용각골 방향

 

용문봉의 바위절벽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

 

문례재

 

얼레지꽃

얼레지 군락

 

산뜻한 이정목

 

노랑제비꽃


 

폭산 정상

 


폭산에서 본 용문산

 

현호색


 

배치고개에서 본 봉미산

 

진달래 능선길

 

성현과 늪산


 

굴참나무 숲

 

양지꽃


 

산괴불주머니


 

큰개별꽃

 

드디어 봉미산 정상!

 

삼산현 지나 잣나무숲

 

마침내 보리산 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