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미산

 

         *산행일자:2008. 3. 19일(수)

         *소재지  :경기가평 및 양평/강원홍천

         *산높이  :봉미산856m, 보리산628m

         *산행코스:성곡봉미산안내도앞-비취농원-봉미산-보리산-널미재

         *산행시간:9시5분-16시50분(7시간45분)

         *동행    :나홀로

 


 

  잘못 들은 길로 가파른 산을 오르느라 초반에 진을 다 빼어 모처럼 큰맘 먹고 나선 설곡리-봉미산-나산-장락산-왕터산-홍천강변의 긴 산줄기종주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습니다. 설곡리의 봉미산 초입에서 분명 가평군(?)에서 세운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고 오름 길도 엄청 가팔라 제 길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고 기운도 많이 빠졌습니다. 가파른 낙엽 길이 끝났다 했는데 이번에는 암릉 길이 나타나 이 길을 지나느라 몇 번이고 간이 콩알 만해졌습니다. 이 바람에 제 길로 오른 것보다 시간 반은 늦어져 홍천강변까지 가서 하루산행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장락산 바로 아래 널미재에서 산행을 접었습니다. 산행 내내 어느 누가 생사람 잡으려고 길도 아닌 곳으로 이정표를 돌려놨을까 분해하다가 나중에 집에 돌아와 먼저 다녀온 한 분의 산행기를 읽고 나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분의 생각인즉 인근 농원에서 그 위 과수원의 출입을 막고자 이정표를 돌려놓았을 것이라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가평군에서는 하루 빨리 이정표를 바로 잡고 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다시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놓는 일이 없도록 강력하게 행정지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널미재에서 산행을 접고 나자 세상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든 애당초 마음먹은 대로 팍팍 돌아가만 준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엉뚱하게도 의외의 곳에서 복병이 나타나 마구 헝클어놓기가 일쑤인 것이 우리네 세상살이이기에 세상만사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기야 매사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된다면 앞날에 난관이나 갈등이 있을 턱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된다 해서 이 세상이 살맛나는 파라다이스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극적인 반전과 갈등해소를 주제로 하는 소설이나 드라마가 발붙일 곳이 없게 되어 세상사는 재미가 반감될 것이 분명하기에 말입니다. 순경과 역경이 번갈을 때 세상사는 희로애락을 맛볼 수 있듯이 가끔은 알바를 해야 산행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봉미산 산행에서 길을 잘 못 들어 헤맨 것을 가지고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아침9시5분 설곡리의 성곡을 조금 지나 가평군에서 세운 봉미산안내도 앞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을 7시10분에 출발한 버스가 청평에 도착한 것은 8시 조금 넘어서였고 8시 15분에 설악 가는 버스로 바꿔 탔습니다.  설악에서 봉미산 입구까지는 택시로 이동했는데 버스종점인 성곡을 지나자 비포장도로가 나타나 기사분에 미안했습니다. 성곡에서 얼마 안 가 다다른 봉미산 안내도 앞에서 하차하여 산행채비를 했습니다. 성현고개로 올라 봉미산을 오르는 제1코스는 길기도 하고 6년 전 용문사-폭산-봉미산-산음리 코스를 밟을 때 성현고개-봉미산 길을 지났었기에 이번에는 비취농원을 지나 봉미산을 오르는 제2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안내도 앞에서 임도를 따라 4-5분을 진행하다가 직진하는 성현고개 길과 헤어지고 왼쪽 비취농원으로 가는 큰 길로 들어섰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개만 짖어대는 폐가(?)와 곧 이어 창고 같은 푸른 지붕의 일자건물을 지나자 길 한가운데 문을 해놓은 농가가 나타났습니다. 남의 집 문안으로 들어서기가 미안해 오른 쪽 옆의 계곡을 따라 가보고자 했으나 여의치 못해 별 수 없이 열려있는 철문 안으로 들어가 그 집을 통과했습니다만 이 집이 비취농원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집을 지나자마자 큰길을 가로막는 출입금지 경고판과 봉미산 행 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났는데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오른쪽 계곡을 건넜습니다. 큰 길로 직진을 안내하는 출입금지판 뒤에 걸려있는 표지기를 따르지 않고 가평군에서 세웠을 이정표를 더 믿어 오른쪽 산길로 들어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안내도의 제2코스는 이 길에서 직진하여 과수원을 지난 후 오른 쪽으로 꺾어 봉미산을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10시35분 암릉 길로 올라섰습니다.

산행시작 20분 후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오른 쪽 계곡을 건너 산으로 들어섰습니다. 길이 나 있지 않아 진가민가하면서도 큰 비로 왼쪽 면이 깎여나간 토사 길을지나 임도로 올라섰습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5-6분을 이동해 능선을 오르고자했으나 길이 보이지 않아 다시 올라선 임도지점으로 되돌아가 똑바로 치켜 올라가 능선에  다다랐습니다. 일단 올라선 능선에서 왼쪽으로 꺾어 산 오름을 계속했는데 경사가 몹시 가팔라 낙엽 길을 오르기가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남양주양정산악회 등 두서너 개의 낡은 표지기가 보이기는 했지만 등산로는 분명 아닌 것이 도대체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나흘 후면 만개할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로 저를 반기지 않았다면 엄청 짜증스러웠을 능선 길을 올라 암릉에 도착하는데 비취농원 출발 1시간15분이 걸렸습니다. 봉미산 정상에 올라서기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길이어서 올라선 바위에서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암릉 길을 계속 올랐습니다. 이 길이 등산로라면 당연 위험한 암릉 길에는 로프도 걸어 놓는 등 안전에 신경을 썼을 텐데 이번 암릉 길은 등산로가 아니어서 난코스다 싶은 곳에서도 로프를 보지 못했습니다. 꽤 긴 암릉 길 중 딱 한곳에서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통과에 위험을 느꼈습니다만, 대체로 암릉 길이 아슬아슬하기는 했어도 그래도 무난한 편이어서 크게 다행이었습니다.


 

  11시50분 해발856m의 봉미산에 올라섰습니다.

암릉 길을 통과해 올라선 봉우리에서 오른 쪽 성현고개에서 올라오는 봉미산 가는 길과 만나 왼쪽으로 몇 걸음을 옮기자 “봉미산1.34Km/성현1.50Km”의 이정표가 보여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분지 같은 곳을 지나면서 물푸레나무가 자라고 있는 이 분지가 봉미산의 늪지대가 아닌가 싶었는데 물이 보이지 않아 확인은 못했습니다. 반시간 만에 1.34Km를 걸어 일명 늪산으로 불리는 봉미산의 정상에 올라서자 남쪽 폭산 너머 먼발치로 하얀 눈이 덮인 용문산이 선명하게 보여 반가웠습니다. 평평한 정상에서 산행시작 3시간이 다되어 처음으로 짐을 내려놓고 맥주 1캔을 들며 10분을 쉰 후 북서쪽으로 10여분 내려가 왼쪽으로 비취농원으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홍천강까지 진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잘하면 장락산은 오를 수 있을 것 같아 갈림길에서 비취농원으로 내려가지 않고 똑바로 내려갔습니다. 이내 만난 암봉을 중간 쯤 올라 통과를 시도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내려가 오른 쪽 길로 우회하느라 10분 가까이 까먹었습니다. 가평의 유분동과 양평의 싸리골로 길이 갈리는 십자안부 삼산현으로 내려가는 길이 엄청 가팔랐습니다.


 

  13시50분 삼각점이 세워진 636.9봉에 도착했습니다.

삼산현에서 636.9봉에 오르기까지 한 시간 남짓 동안 수많은 봉우리를 넘었습니다. 꾸준히 고도를 높여가며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것이어서 힘들다거나 지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지루했습니다. 가평군과 양평군 그리고 홍천군이 만나는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베어낸 나무들로 장방형 쉼터(?)를 만들어 놓은 무명봉을 지나는 등 반시간 동안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려 636.9봉에 다다랐습니다. “피나무목쟁이”로도 불리는 이봉우리에 오르기까지 이 정도 높은 봉우리이면 틀림없이  636.9봉이겠지 하고 부지런히 올랐는데 삼각점이 보이지 않아 맥이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거세진 바람을 피하고자 636.9봉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26분을 쉰 후 14시 16분에 보리산으로 향했습니다.


 

  15시20분 해발 628m의 보리산을 올랐습니다.

636.9봉에서 암릉길을 지나 북서쪽의 보리산을 오르는데 1시간이 걸렸습니다. 한참을 걸어도 지도에 나와 있는 616봉의 삼각점이 나타나지 않아 혹시 길을 잘 못 들은 것은 아닌가 걱정도 했지만 거의 외길이어서 길 찾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암릉 길을 지나는 동안 모자가 바람에 날릴까 염려되어 바짝 당겨쓸 정도로 바람이 드세게 불었습니다. 이 산에 꽃소식을 최초로 전해줄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것이 거칠게 불어대는 바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리산 정상에 오르자 바람이 잦아졌고 햇살도 따사로움을 되찾아 10분만 쉬고 자리를 뜨기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위곡리(널미재)2.20Km/ 위곡리(블루베리)3.17Km/위곡리3.75Km"의 이정표의 널미재 방향표시는 지금까지 걸어온 남쪽을 가리키고 있어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정표의 방향표시를 무시하고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4-5분을 북진하다 나무판에 희미하게 등산로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보리산 주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섰습니다. 희미한 길을 따라 7-8분을 내려가자 바로 아래로 골짜기가 보여 더 내려가지 않고 오른쪽 능선으로 옮겨가 널미재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걸었습니다.  보리산에서 내려서자마자 즉시 오른 쪽으로 난 아주 희미한 길로 내려섰어야 했는데 조금 더 앞으로가서 내려가는 바람에 다시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16시50분 널미재로 내려서서 하루 산행을 접었습니다.

보리산에서 널미재 가는 길이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하산 길이라 한 시간이면 족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중간에 높고 낮은 봉우리를 네 곳이나 오르내리느라 보리산 출발 1시간 20분이 지나서 널미재에 다다랐습니다. 보리산 주능선에서 밑으로 내려갔다가 오른 쪽 널미재 행 능선에 올라 임도를 건넌 후 묘지 위 봉우리에 오르기까지는 동진 길이었고 그 다음부터는 편안한 북진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봉우리에 오르자 널미재 건너로 장락산이 바로 앞에 보였는데 오름 길이 꽤 가팔라보였습니다. 북서쪽 먼발치로 보이는 홍천강변의 금확산(?)과 오른 쪽 방향의 기암절벽이 빼어나 보이는 소리산(?) 등이 눈앞에 펼쳐져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경기가평과 강원홍천을 어우르는 널미재에 내려서서 설악버스터미널에 버스시간을 알아보고자 전화를 거는 중 버스 한 대가 저만치 와 부랴부랴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습니다. 이 버스는 상봉에서 모곡을 오가는 노선버스여서 4월에 상봉터미널이 없어지면 같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 8월 백두산 종주산행에 대비해 체력을 키우고자 용문사입구 주차장을 출발해 중원산-폭산-봉미산을 차례로 오른 후 산음리로 하산한 적이 있습니다. 푹푹 찌는 복더위를 무릅쓰고 장장 12시간을 산행해 산음리로 하산하면서 언제고 봉미산을 다시 올라 보리산-장락산-왕터산을 오르내린 후 홍천강변으로 내려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결심은 아직도 유효하며, 그래서 이 봄이 가기 전에 다시 이곳 널미재를 찾아 남은 구간을 마저 해볼 생각입니다. 그리하면  2003년에 시작한 용문산과 그 말산들의 기나긴 탐방 산행이 모두 끝나게 됩니다. 용문산을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의 유명산, 어비산, 대부산, 소구니산, 중미산, 통방산, 삼태봉, 백운봉, 함왕봉, 청계산 그리고 북쪽과 동쪽의 중원산, 도일봉, 폭산, 소리산, 봉미산과 보리산까지 어제로 모두 탐방을 마쳤기에 이제 남은 말산은 장락산과 왕터산입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초반 알바로 목적했던 홍천강변까지 나아가지 못했지만, 그래서 다시 한 번 용문산 일원의 산줄기를 다시 걸을 기회가 남아 있는 셈이니 이번에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했다 해서 그리 애석해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