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흥사에서 바라본 구봉대산
 

영월에 자리잡은 공대생 농사꾼 친구를 방문하여 님도 보고 뽕도 따자는 금강산의 제안에  영월의 산들을 살펴 보니 백덕산(1350m), 태화산(1027m), 구봉대산(903m)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백덕산은 이미 겨울의 산으로 자리잡았고 태화산도 겨울에 가는게 더 좋아 보이니 지금 계절엔 아기자기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구봉대산이 안성맞춤의 산인 것 같다. 영월읍 방절리 청령포 부근에 있는 조군의 집에 가는 중간인데다 산행시간이 길지 않고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법흥사가 있으니 나무랄 데 없는 산행지이다.

 

7시 10분, 금강산, 최변, 樂山樂水, magic의 4인조는 선릉을 출발해 치악휴게소에서 樂山樂水가 준비해온 아침, 혹은 간식을 먹은 다음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소재 법흥사에 도착하니 10시가 채 안되었다. 그동안 정선의 산들로 가기 위해 38번국도를 따라 지나치기만 했던 영월의 산자락을 모처럼 오르는 날,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여유로운 출발이다. 우선 적멸보궁을 둘러본 다음 1봉에서 9봉까지 인생의 흐름을 따라 구봉대산을 산행하기로 했다.

寂滅寶宮,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으로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다. 5대 적멸보궁이 있으니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년) 당나라에서 돌아와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취서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에 이어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고 興寧寺라 이름 붙였다 한다. 사자산 법흥사의 천하복지 명당터를 보호하는 좌청룡이 백덕산이고 우백호의 역할은 구봉대산이 하는 셈이다.

춘천, 홍천을 거쳐 남하해온 영춘지맥이 평창의 태기산(1261m)에 이르러 치악산을 향하여 남서진할 때 남쪽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문재를 지나 1125봉 삼거리에 달하면 동쪽으로는 백덕산으로, 남쪽으로는 구봉대산으로 향하게 된다. 국립지리원 지도에서는 백덕산 방향의 1181봉을 사자산으로 표시하고 있으나 남쪽으로 뻗은 능선의 1160봉을 사자산으로 표기하는 지도도 많다. 사자산 법흥사라 할 때 사자산이란 1160봉을 얘기하는데 암봉인 연화봉(915m)이 사자머리이고 1160봉이 사자꼬리에 해당하는 셈이니 산세를 볼 때 1160봉을 사자산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사자산 남쪽의 지능선에 아홉 봉우리로 이루어진 九峰臺山은 기암과 노송이 어우러져 수려한 산세를 보여주는데 멀리서 보면 크고 작은 염주알을 꿴 듯한 모습이며 인간이 태어나 유년과 청년, 중년, 노년기를 거쳐 흙으로 되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불교의 심오한 윤회사상을 담고 있다.

1봉(양이봉) : 인간이 어머님 뱃속에 잉태함
2봉(아이봉) : 인간이 세상에 태어남
3봉(장생봉) : 인간이 유년, 청년기를 거침
4봉(관대봉) : 인간이 벼슬길에 오름
5봉(대왕봉) : 인간이 인생의 절정기를 맞음
6봉(관망봉) : 인간이 지친 몸을 쉬어감을 의미
7봉(쇠봉) : 인간이 병들고 늙음을 의미
8봉(북망봉) : 인간이 삶을 마감해 공수래 공수거가 됨
9봉(윤회봉) : 산을 사랑하는 사람과 선한 사람이 다시 태어남

구봉대산의 산행은 법흥사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1봉부터 9봉까지 인생의 단계를 따라 오른 후 일주문으로 하산하든지 반대의 코스로도 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북쪽으로 안흥골을 따라가면 사자산으로 오를 수 있고 서쪽으로 가레골을 건너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사자산에서 흘러내린 지능선의 널목재에 올라서게 되는데 낙엽송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주차장에서 널목재까지 20분. 가을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계곡에는 물이 마르고 가끔 보이는 단풍도 빛이 바래 버렸다.

어린 시절의 시간이 흐르듯 1봉에서 3봉까지는 유순하게 지나치지만 4봉부터 6봉까지 길고 아기자기한 암릉길이다. 우회하면 한 봉우리라도 놓칠까봐 봉우리는 빼놓지 않고 다 오르는데 최변도 무조건 따라 오른다. 4봉을 지나 6봉에 이르는 길은 굴곡 많은 인생의 절정기를 표현한 듯, 직벽도 올라야 하고 칼날같은 능선도 지나야 하는 사연 많은 길이다. 표지판이 없어져 버린 5봉을 지나 6봉에 이르니 구봉대산 정상이다. 6봉의 고도가 870m이고 9봉의 고도가 903m이지만 6봉을 구봉대산의 정상으로 치는데 산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데다 시야가 막힌 9봉에 비해 바위에서 보는 조망이 아주 좋기 때문이리라.

구봉대산에 서면 북동쪽으로 백덕산이, 북쪽으로는 사자산과 연화봉이 펼쳐지는데 그 아래 자리잡은 법흥사와 적멸보궁은 아마추어의 눈에도 천하복지 명당터로 보인다. 6봉에서 7봉으로 가려면 한참 내려갔다 올라야 하며 7봉과 8봉은 별 특징이 없고 금방 지나게 되는 것이 그 또한 심오하다. 헬기장으로 된 9봉에 도착하니 1시 15분,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정상에서 거나한 점심을 먹고 하산하다 탁족한 후 일주문에 도착한 시간이 3시 반이었으니 전체 산행시간이 4시간 4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순산행시간이 3시간 반이면 볼 것 다 보고 오를 것 다 올라갈 것 같다. 인간이 태어나서 삶을 마감하고 다시 태어나는 시간은 그보다 더 짧아 1봉에서 9봉까지 겨우 2시간 정도에 그쳤으니 거참, 허망한 일이로세!

 

 

  Giovanni Marradi,  Somewhere in Time

 

법흥사 도착

널목재위에 흰 구름이~

적멸보궁과 연화봉, 도굴의 위험 때문에 진신사리를 연화봉 어딘가로 옮겼다고 한다.

불사리를 봉안하였기에 불상도 탱화도 없다.

들머리, 사자산도 구봉대산도 이리로

때깔 곱고~

널목재의 낙엽송숲

1봉(양이봉)

2봉(아이봉)

3봉(장생봉)

3봉에서 바라본 4봉

4봉(관대봉)

5봉(대왕봉)

6봉인줄 알고 열심히 오른 바위

구봉대산 정상(6봉)

色卽是空  空卽是色

우측에 백덕산, 좌측에 사자산과 가운데 연화봉, 사자산 밑 흰 바위가 치마바위, 우측아래 법흥사와 적멸보궁이 보인다.

멀리 남동쪽으로 보이는 삼방산과 절개산

멀리 삼정산(가운데)과 배거리산(우)

7봉(쇠봉)

8봉(북망봉)

최고봉인 9봉(윤회봉)

개옻나무 단풍은 곱다만~

탁족하고

억새지대 지나니

가을가뭄으로 단풍나무의 색이 바랬다.

벌개미취

날머리인 일주문

청령포에 흐르는 윤회의 강

그 옛날 어린 단종에게는 막막하고 살벌한 곳이었겠지만~

지금 보는 서강의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왕방연 시조비

뒷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