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 춤 속에 핀 보해산 ★

 

반년쯤은 걸린 친정 길(?) 이였다. 줄곧 주인 발뒤굽치 따르는 개새끼노릇  하다  주흘산(08.08)이후 코빼기도 안보인지라 내 딴엔 스스러웠지만 갈뫼의 따스한 눈길은 친정을 찾은 시집간 누이를 맞는 느낌이라. 게다가 송회장 옆구리에 자리를 주고, 더는 회장은 인사말에 이어 내 책<남김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를 소개 하는가 싶더니 판촉 립서비스까지 하는 게 아닌가!

하여 난 자연스럽게 일어나 인사를 하고 책 판촉에 들 수가 있었다.

책값을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한다는 명분에 용길 충천시킨 바지만 그 책장사(?)로 해서 친정에서의 스스럼은 가시어 마음이 편해졌다.

 

거창군 가복면 용산리에 닿자 가천천의 느티나무 대여섯 그루가 환영이라도 하는 듯, 간직한 것 죄다 벌리고 나를 맞는다. 그 놈들은 마을 수호신이고 저 뒤 보해산의 영접 꾼이기도 한 모양이다.

금귀산에서 보해산을 잇는 능선에 오르기까지의 반시간 남짓은 개판 오 분전, 사분오열 이였다. 임도(林道)와 산지개발로 파헤쳐진 산입로를 찾지 못한 탓에 각개전투식 산행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 반시간은 송림능선에서부터 펼칠 소나무들의 춤판 오프닝 무대에 입장시키기 위한 요금치곤 너무 싼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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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육송의 바디랭귀지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었다. 능선에 올라 파고들어서니 반세기에서 한 세기 이상을 훨씬 담금질한 그들의 춤사위는 점점 격해지고 현란하여 혼란스러워졌다. 한 놈 한 놈의 몸놀림을 감상하자니 발길이 앞서 자빠지려다 정신이 들기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춤꾼이었으리라. 곧게 자란 놈은 한 놈도 없다. 하기야 쭉 뻗었다간 진즉 왕따를 당해 도태 됐을 터.

 

곡선의 미학은 이곳에선 궁극에 이르렀나 싶었다. 옆 놈이 휘고 비틀며 트위스트에 신명이 났는데 그라고 가만있을 순 없었기에 소나무들은 모두가 춤꾼이 된 거다. 그들, 춤꾼의 무대는 춤꾼으로 성장하기 최적인 마사토였다. 마사토위에서 소나무가 아니곤 아니 춤꾼으로 살아남기 위한 강인한 수종이 아니고선 씨알이 못 배길 테다.

한 시간쯤을 나는 그놈들의, 오르면 오를수록 더 육중해지고 귀티까지 무럭무럭 지피는, 리드미컬 하고 원초적인 섹스얼스런 춤 속에 시선도 맘도 몽땅 뺏겼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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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몇 세기를 걸쳐 뜨겁게 몸뚱이 비벼댄 경연의 열기 땜에 이곳은 송이버섯이 지천이란다.

때문에 가을엔 산님을 거절한다. 오늘처럼 티켓 없이 입장하단 도둑놈이 된다. 하드래도 가을에 와보고 싶다. 몰래 숨어들어 송이버섯 춤까지 구경하다 한송이쯤 숨긴들 어떠랴. 기왕 도둑놈소린 듣게 됨인데…….

 

그들의 무대가 사라졌다. 하얀 바위산이 뾰족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다. 837봉이다.

그는 군데군데 동아줄로 허리를 메곤 나를 도우미한려드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내 몸이 늘어지고 있다.

겨우 두 시간 남짓의 산행이 이렇게 지칠 수가 없다. 밧줄을 잡고 바위를 붙들고 오르기가 이렇게 힘든 기억이 별로다. 어제 앞집 형님댁 5층의 물통 옮기는 작업을 거들며 용을 썼기로 기진한 후유증인가?

 

참으로 거북이가 되어 837봉에 올랐다. 몸이 무거우니 신명이 솟질 않는다. 내리막은 가파르긴 해도 그래도 좀 나았다. 암골지대를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풍광이 설악의 공룡일부를 빼왔나 싶다고 생각했다.

오른편에 얹힘 바위가 슬쩍 얼굴을 보였는데 그의 면상을 확실히 담보하려고 조금씩 발을 옮기다보니 바위가 불현듯 단애에 딱 달라붙여버렸다. 되짚어 발길을 옮겨 사진으로 담자니 몸이 무거워 포기했다. 한 발 옮기가 이렇게 싫은 적은 짧은 산력 속에서도 기억이 없다. 몸이 풀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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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나태는 생각의 종속성에 얽메인다고, 그래 기분전환을 하자고 심호흡을 해보지만 디딘 바위가 자석인지 발은 무겁기만 하다.

보해산이 보인다. 땅딸이 소나무를 키우고 있는 바위능선 이곳저곳에 산님들이 점심자릴 깔았다.

차가워진 겨울바람을 막아주고 있는 바위 앞마당에 선생님들 일행이 자리를 펴고 나를 불렀다. 앞은 천길 낭떠러지고 저 앞의 바위산의 위용이 너무 멋있는 최고의 오찬장이라.

 

난 선생님들 친절을 올타구나 챙겼다. 얘기하다보니 일년이 다 되가는 작년 4월 가야산행때 인사를 나눈 두 번째의 인연이라. 참으로 반가운지고. 일행 다섯 분이 챙긴 점심을 펼친 자리에 나도 끼였겠다. 미남선생님이 복분자 한 잔을 권한다. 하얀 눈발이 제법 난무를 하고 있다. 복분자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눈까지 내 목구멍에 부었다. 짙은복분자 향이 입안 가득하고 눈발이 목젖을 타고 뱃속을 시원케 하고 있다.

 

보해산 단애 마당바위에서 겨울의 마지막 발악일지도 모르는 눈발을 복분자에 타서 마시는 낭만은 아무나 얻게되는 행운은 아닐게다. 산님들만이 맛보는, 얻는 감동의 추억일테다.  어지러운 설무(雪舞)속으로 저 천애 바위에 걸터앉은 모아이상이 용산리 분지를 살피고 있는가 보다.

용산리 일대는 명당같다는 생각을 입산시부터 했댔는데 그는 그곳을 지키는 석상인가!  모아이상은 코만 덩실하게 누가 다듬다 말았을까?

 

씹는 걸 엿가락 늘리듯하며 시간을 붙드는데 뱃속이 즐겁지가 않아 밥통뚜겅을 닫았다. 산에 와서 점심을 남기기도 처음이라. 선생이 준 라면 국물이 그리 시원하고, 키위와 단감이 맛깔일진데, 그리고 분위가 참으로 좋은데 뱃속은 팽팽하다. (빼빼선생님은 나의 집 근방학교에서 여산여중으로 전근가셨다 했다)

 

자리를 털자 pm1시 반이였다. 다리는 좀 가벼워졌는데 몸뚱이, 배는 풍선이라. 어슬렁어슬렁 보해산정(911.7m)에 점을 찍고, 또 선생님일행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주상면 거기리 보해초교쪽으로 하산에 들었다.

아까 먹은 복분자의 효험인가? 배가 포만감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가파른 육산은 자연스럽게 내림의 발길에 가속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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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선 벌써 봄이 솟나보다. 두터운 등산화에 밟히고 있는 흙이 젖가슴처럼 보드랍고 말랑말랑하여 움푹움푹 페인다. 맨발이면 지열이 신경을 타고 내 전신에 봄을 전달할 것만 같다. 그 육산을 벗어나자 도랑에 서있는 버들강아지가 털보숭이가 되어 바르르 떨고있다. 요 며칠간 하 따뜻하여 성미 급한 봄이 얼굴을 내밀려다 숨결이 성애로, 털보숭이로 변해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허나 내일 모래면 버들강아지는 연둣빛 이파리를 내밀며 봄을 알리리라.

 

사과나무도 겨울눈을 웅크리고 있는데 농부가 그의 팔뚝들을 잘라서 겨울을 땅바닦에 내동댕이치고 있다. 잘리고 잘려도 사과나무는 3~40년은 농부에게 봄에서 가을까지의 기쁨을 선사한다. 자연의 선물이라. 사과나무밭 뒤로 원두충나무가 군락을 이뤄 산기슭에 회갈색 칠을 했다.

원래 중국생이란데 고혈압, 골다공증, 가래천식 등의 약효험이 좋대서 시집온 셈이니 그 놈의 왕성함(만병통치)이 우리네 산야를 야금야금 먹을지도 모를 일이다. 

껍질을 벗겨 말려 약용으로, 잎은 차로 쓴다니 오늘같이 소화불량에 기진할 땐  나도 그것들을 들이킬 것이라.

우리네 자연도, 토종약초가 외래종에 삶의 터를 뺏기지나 않을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해본다.

                                              09. 0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