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길을 따라 쉬엄쉬엄 병풍산으로

 

Mt. 0602  병풍산(548m) - 전남 순천시 월등면, 황전면

 

산 행 일 : 2006년 3월 26일 일요일
산의날씨 : 맑음
동 행 인 : 김정수

산행시간 : 3시간 54분 (휴식 1시간 21분포함)
           송치재 <09:00> 지능선 갈림봉 * 무덤 3기 <08:00> 농가 <32:00> 호남정맥 분기봉
<08:00> 첫 암봉 <06:00> ×병풍산 * 헬기장 <21:00> ▲삼각점 봉 <20:00> 구덩이 있는 암봉
<06:00> 병풍산 <12:00> 호남정맥 분기봉 <18:00> 농가 <13:00> 송치재

 

산행거리 : 약 6.0 km ⇒ 송치재 <1.8> 호남정맥 분기봉 <1.2> 삼각점 봉 <1.2> 호남정맥 분기
            봉 <1.8> 송치재

 

 

                                         1 : 50,000 구례 지형도(2002년 수정본)

 

만산홍엽 천고마비 계절도 좋지만 긴 겨울의 추위에서 다시 생동하려는 듯 선 하품과 함께 기지
개를 펴며 다투어 꽃을 피우고 싹을 돋으려 드는 봄날이 목전에 펼쳐지니 즐거움이 배가 되어야
할텐데 오히려 착잡하기만 하다.

시계(視界)는 만족스럽지 못할망정 오늘도 유명산을 오르거나 가시밭 험한 산줄기를 찾아 배낭
매고 휘파람 불며 나설 원색 옷의 산꾼들이 눈에 선하다.
'그래! 운동을 할 겸 거리가 짧은 근교 미답산 중 하나인 병풍산을 찾아보자.'

 

 

                                                 바랑산을 뒤로 하고

 

송치에 다달아 친구 차에서 내려보니 복된교회 컨테이너는 없어져 버렸고 산돌수양관 입구에 복
된교회 표지가 걸렸다.
흰둥이와 검둥이가 싱겁게 짖다 그만두었는데 작년 이 곳을 찾았을 때 컹컹 짖어댔던 그 개인지
는 모르겠다.

 

정맥을 종주 하면서도 부상으로 인한 50여 일만의 산행이어서 산길로 들어서지 않고 농로를 따라
걸었던 것이 께름직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때 걷지 못했던 산길을 따르기로 하였다.

 

 

                                       경주 정씨 묘지에서 본 헬기장과 바랑산

 

08 : 54 도로를 따라 50m가량 오르면 우측 산으로 표지기들이 정맥 길을 안내한다.
마른나무 가지들을 피해 잠시 오르자 참호가 둘러쳐진 군 초소 한 개가 나타나고 그 옆에는 지하
벙커가 마련돼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헬기장이 있다.
잘 정비된 경주 정씨 무덤 8기를 거슬러 둔덕을 내려서면 도로에 닿게 되는데 우측에는 파란색
철문이 막았고 울타리 안에는 '순천시 산림조합 표고재배교육현황'판과 함께 재배 목들이 줄을 지
어 세워졌다.

 

 

                                           애기 무덤이 있는 지능선 갈림봉

 

09 : 03∼06 도로를 왼쪽으로 보내고 다시 산길을 타고 오르면 무덤 2기 사이에 아주 작은 애기
무덤이 눈길을 끄는 지능선이 분기하는 봉으로 좌측으로 꺾어 내려간다.
'매화동산' 안내판이 세워진 삼거리를 지나 이제는 농로 좌측 작은 능선으로 들어선다.
무덤 4기 옆으로 작은 봉우리에 이르자 이곳 역시 빙 둘러 호가 설치되었다.

 

 

                                                  정맥길이 농가 뒤로 이어진다.

 

09 : 14 완공되지 않은 눈에 익은 농가 뒤안으로 돌아 넓은 길을 따라가면서 어린 묘목을 파내어
팔았는지 흙이 파헤쳐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 
도(道)자가 새겨진 작은 돌이 있던 분기봉으로 오르는 길이 급경사는 아니나 마음과 달리 다리는
물론 온 몸이 말을 안 들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발 늦은 친구인데도 멀어져 버린다.
'매미가 극성스럽게 울었었는데...' 벌거벗은 나무가 황량스럽다.

 

 

                                                       호남정맥 분기봉

 

 

                                       농암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의 표지기들
 
09 : 46∼56 분기봉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물을 마시며 정맥 길을 바라보니 정맥 종주시 매달아
놓았던 표지기가 주인을 보고 팔랑거리나 매직으로 쓴 글씨가 빛이 바래 초라하기 짝이 없다.
좌측 병풍산으로 이르는 길은 예상 밖으로 반들반들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다는 증거다.
잠시 내려섰다 앞에 우뚝 솟은 암봉을 올려다보니 앞서 간 친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첫 암봉

 

 

                                                 신 구 17번 국도와 바랑산

 

10 : 04∼23 우측으로 돌아 바위에 오르니 구불구불한 옛 국도와 터널 밖으로 시원스럽게 뚫린
요즈음의 국도가 대비를 이뤘고 바랑산 산불감시용 망루가 바라보인다.
10 : 29 상당히 널은 헬기장이 만들어진 봉우리.
지형도상 삼각점이 박힌 봉우리는 북쪽으로 더 가야되고 그 봉우리는 499.8m로 표기되었으며
548m로 표기된 이 곳 헬기장이 최고봉인 병풍산으로 추측해 본다.

 

 

                                                  이 암봉 위에 구덩이가 있다.

 

커다란 암봉이 앞을 막아 친구를 따라 무심코 좌측으로 돌아가다 보니 수 십길 낭떠러지가 발바
닥을 간지럽히나 되돌아서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안전지대로 올라서 지나온 벼랑을 되돌아보고 있
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푹 꺼져 내렸다 다시 치고 오르게 된 암봉으로 가는 길은 뚜렷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달리
사람들이 다니지 안해 부스러지지 않은 낙엽이 수북히 쌓여 발목까지 빠진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

 

안부에서 우측으로 길이 나있다.
잘 모르긴 해도 황전면 하검마을로 이어지는 것 같다.
우측으로 상당히 내려갔다 오르는 것이 좋겠으나 비좁은 벼랑 위를 거의 기다시피 하여 능선에
이르자 무덤이 하나 있고 바랑산쪽이 확 트인다.

 

 

                                                               삼각점

 

10 : 50 '구례462 1985재설' 반가운 삼각점이 설치된 암봉.
우리가 지나온 산줄기와 바랑산이 있는 남 서 방향은 그런 대로 조망이 있지만 백운산과 지리산
등이 있는 곳은 먹통으로 전혀 볼 수 없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자'는 구호가 불현듯 떠오른다.
기계뿐만 아니라 사람의 육신도 관리를 잘해야 되리라 생각된다.
길 없는 가시밭을 헤치며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걸었던 내가 불과 3km거리를 쉬엄쉬엄 걸었으면
서도 퍼질러 앉아 얼른 일어설 마음이 없으니 그런 생각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이리라.
응어리진 마음이 활짝 열리게 짐승같이, 미친 듯 소리지르고 싶다.

 

 

                                                          지나온 봉우리

 

 

                          무덤이 있는 곳에서 국사봉(중앙) 뒤로 조계산이 보인다.

 

11 : 21 펼쳐놓은 병풍 끝인 삼각점 봉 가장자리로 다가가 특색 없이 한 없이 꺼져버린 산자락을
휘둘러보고 발길을 돌린다.
비좁은 벼랑길을 버리고 아래로 조금 돌아 오르니 친구가 고로쇠나무에 박혀있는 가느다란 호스
를 뽑고 있다.
"물을 빼 먹었으면 원상복귀 시켜야지. 호스를 그냥 박아두면 나무가 좋아 허겄냐? 야! 거기에 있
는 것도 빼라" 말 잘 듣는 애처럼 군소리 않고 한 나무에 두 가닥이 박혀있는 호스를 뽑아냈다.

 

 

                                                         문유산 줄기
 
11 : 41 "참 나. 늙어가면서 철드는구나" 한 마디 하고 바위벽에 늘여진 새끼손가락 굵기의 끈이
안전한지 잡아당겨 본 후 구덩이가 패인 봉우리로 올랐다.
이곳 높이가 헬기장과 비슷하다.
헬기장이 있는 봉, 구덩이가 있는 이 곳 아니면 삼각점이 설치된 봉우리 어느 곳을 병풍산이라
꼬집어 말하는지 확실한 것은 모르겠다.

 

 

                                우측으로 살짝 솟은 봉우리가 호남정맥 분기봉

 

11 : 45 가느다란 줄을 이용하여 바위벽을 내려서 헬기장으로 향한다.
작고 납작한 돌로 만들어진 오래된 것 같은 참호가 있다.
예비군 훈련용으로 추측되나 '태백산맥'의 하대치와 염상진이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등 한때 30권이 넘는 조정래 대하소설에 흠뻑 빠졌었지만 그 두 사람이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산들이 무대였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바위 뒤는 농암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12 : 01 헬기장을 지나고, 휴식을 취했던 암봉을 돌아간다.
12 : 13∼17 호남정맥 분기봉.
예의 그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오늘도 정맥을 종주 하느라 땀 흘릴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어떤 이는 내가 앉은 이 바위에 나처럼 걸터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가까이 다가서는
백운산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호남정맥 종착지도 머지 안했다' 농암산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질 것이다. 

 

 

                                                         병풍산 바위벽

 

그리도 힘들게 올랐던 분기봉 내림 길은 수월하다.
우측으로 보이는 병풍산 바위벽들을 수시로 바라보는 여유도 생긴다.
그러나 잔돌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주의를 게을리 하지는 안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손자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땀을 쏟으며 오르고 있다.
뒤이어 자녀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와 아이들이 길을 비켜주었고 맨 마지막에는 '집에 있을걸 괜
히 왔다'는 생각을 하는지 할머니가 낑낑거리며 뒤따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3대가 산으로 향하고 있는데 참으로 보기 좋다.

 

 

                                                       표고재배교육장

 

12 : 35 금새 농가를 지난다.
앞선 친구가 산길로 들어서지 앉자 나도 그냥 도로를 따라간다.
한 가닥 세찬 바람이 먼지를 일으킨다.
표고재배지 파란 철문 앞에서는 빙 도는 도로를 버리고 헬기장과 초소가 있는 산길로 들어섰다.

 

 

                      작년 호남정맥 종주때 촬영했던 사진 - 복된교회 컨테이너가 있다.

 

12 : 48 송치재의 검둥이와 흰둥이는 관심 없다는 듯 배 깔고 엎드려 있다.
"다음에는 바랑산인가 뭔가 반대 쪽으로 가 보자"
"거기는 가고 싶지 않은데..."
'바위로 이뤄진 정상의 시원스럽게 트이는 조망을 빼면 경사가 몹시 급하고 한 번 갔으니 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라는 말은 입속에서 굴리다 삼켜버린다.

"배 안 고프냐? 밥이나 먹고 가자"
송치재를 조금만 내려가면 비빔밥이 그런 대로 입맛을 돋아주는 근사한 수목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