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이어가고자 했던 길인가

토요일 1박2일의 설악산행이 캔슬되어 부담없는 나의 길을 간다

어둠에 묻힌 비재.. 봉황산을 내려오며 마치 절벽처럼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속리산. 꿈의 대간길을 들어선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는데 아까부터 고갯길 너머에서

반짝이던 랜턴불이 내게로 다가온다 이 고갯길에서 비박을 하신

산님인 듯..물을 좀 보충해야 되는데..

꼭 나만큼이나 늙수레한 산님이다 ㅎㅎ

 

북진하시나요?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고

모처럼만에 둘이서 함께 대간을 가게 되었다.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산행을 예감하며..

 

모 산악싸이트에서 만나 답글을 주고받던 노짱

마치 산더미 같은 배낭을 메고 참 잘도 오른다 ㅎㅎ

 

못재로부터 갈령을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된비알의 연속

속세의 때 묻힘이 속리로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가 보다

4시 조금지나 시작한 산행이 갈령삼거리에는 아침이 훤히 밝아버린

6시 반이 되었다 가끔씩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의 덕분으로

그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하며 그리 힘들지 않게 올라서서

아침간식을 나눈다. 반가울시고!

 

형제봉을 넘어 피앗재

왼편으로 만수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곳

너무나 유명한 길 이어선지 표교수님의 안내도 보이지 않는다 ㅎㅎ

천황봉 5.7키로 진작에부터 배낭의 무게 때문에 힘들어하는 노짱님과

쉬며가며 가며쉬는 그래도 우리는 마음속으로의 행복을 느끼며 속리의 깊은속살로 오른다.

 

장관!

신경수님이 몽땅 들어다가 우리집에 두었으면..하시던

속리의 연봉들이 줄지어 동북으로 또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서북으로는 한강을 나누고 서남으로는 금강을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이루어 내는 우리의 산줄기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많은 산님들을 피해 문장대쪽으로 길을 잡는다

걸어갈수록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며 신선대 쉼터를 지나 문장대

꼭 백운대를 닮은 전망대 아래에서 얼른 사진한장을 남기고 서둘러 도둑산행을 하기 위한 개구멍을 통과한다. 들키면 못가거든요 ㅎㅎ

 

헬기장에서 동북쪽 길을 잡으며 표시기가 보이지 않아 또 한번 이 길이

통제구간이라는 것을 느끼며 선답자들이 한결같이 어려움을 말하던 밤티로의 내림길을 간다 시어동 골짜기를 이루는 속리의 짧은 동쪽능선을 보면서

 

암능구간..참으로 대단한 구간이었습니다

노짱님의 배낭이 통과가 않되어 슬링줄에 매달아 내린 것이 서너번!

잊고싶지 않은 속리의 뒷모습을 자꾸 돌아다 보며 입석바위에서 청화산을

건너 조항산,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백두대간을 봅니다

저 밑에 밤티와 늘티가 있습니다.

 

느릿느릿 걸어온 걸음이라 늘티까지 걷기에는 시간이 모자랄 듯 합니다

더욱이 차도 비재에 남겨둔 터 라서동물이동통로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은 사면으로 내려가며 아쉽지만 오늘의 산행을 접습니다

이제는 차를 찾아와서 노짱님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지어 먹어야죠^^

 

걸어온길

비재-갈령삼거리-피앗재-천황봉-문장대-밤티 20.2키로 약12시간

 

나야 늘 차속에서 자기 때문에 괜찮은데 노짱님은 비박에 재미를 붙이신 듯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 봅니다. 안개가 비처럼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리는 어제 못다한 밤티-늘티를 잇기 위하여 택시를 이용합니다 거금 만원!

아직은 속리의 끝자락이어선지 730봉을 오르는 길이 온통 바위투성이 입니다^^ 전망이 있다면야 괜찮겠지만 어둠속의 백두대간은 오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도 도란거리며 1시간 반만에 늘재에 내려섭니다

 

얼른 아침을 끓이고 도시락을 챙기고 부산스러운 몸짓을 한 후

노짱님은 청화산으로 나는 버리기미재로 이동하여 각기 산행을 하기로 합니다. 다른점이 있다면 노짱님이 오늘은 무거운 배낭을 차에다 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대야산을 넘어 버리기미재 까지 걸은 후 내 차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고 월요일 아침에 대간을 계속하기로 하여 청화산쪽으로 들어서는

노짱님의 걸음이 가뿐해 보입니다^^

 

아침 8시

버리기미재에서 장성봉을 오릅니다

기세좋게 막아놓았던 출입통제 표시는 부서져서 한쪽에 치워져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오름길을 갑니다 아침에 늘재구간을 해서인지 조금은 힘이 듭니다 한시간여에 장성봉에 올랐습니다 이곳도 경관이 참 좋은곳인데 자욱한 안개는 그냥 천상의 세상을 보일 뿐 입니다

 

공단에서 세워놓은 이정표에는 여전히 버리기미재가 탐방로아님입니다

악휘봉이라고 표기해 주면 참 좋을텐데…’절말이라고 이정표는 말하고 있습니다 정북쪽으로 산님들의 표시기가 많이 보입니다 무심코 그 길로 들어섭니다. 능선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이상스러웠는데 산님 두분이 올라오며

잘못을 지적해 줍니다. 과연 그 길은 마른 계류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 어쩌면 아무 쓸모가 없는 길 이었습니다.

 

사면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릅니다

얄밉게도 장성봉1키로 막장봉700미터 라는 이정목이 그곳에 서 있습니다.

500여 미터를 더 간곳에 제수리치갈림길이 보입니다 아무리 통제구간이기는 하지만 이런곳에 표식을 하지않는 이유를 알 수 가 없습니다.

 

오른쪽 길을 잡습니다

잠시전에 알바를 한 터라 급격하게 떨어지는 이 길이 의심이 듭니다

선답자들의 표시기도 전혀 없습니다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 길을 내려갑니다 아마도 고도 150미터는 까 먹은듯 합니다

확신이 서지 않아 잠시 다리쉼을 해 봅니다 반갑게도 두분의 산님들이

내려오다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합니다 장성봉은?ㅎㅎ 에고~ 돌아가셔야 되는데요그분들도 표시기를 얘기합니다 나도 동감을 표시합니다

그분들을 되돌아가게 한 후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고 아직은 알 수 없는 악휘봉쪽으로 걸어갑니다

 

서너번의 오르내림을 지나면서 선답자들의 표시기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를 믿고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음에 미소를 흘리며 <날등>으로 이어지는 어쩌면 이러한 길이 백두대간의 정수가 아닌가 생각하며 안개에 묻혀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등뼈끝에 꼿꼿히 서서 걷고있다는 흐뭇함이 있습니다 또 한번의 오름짓을 하고 악휘봉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아마도 없을터 이지만 안개를 핑계삼아 구왕봉쪽으로 돌아섭니다. 희양산을 어떻게 넘어야 하는가에 골몰하면서

여기서 부터는 왼편으로 내려가면 은티마을 입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안내판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안개속을 걷는 꼭 그런 마음입니다

 

지름티재까지 5키로가 조금 못됩니다 은티재 아래에는 이 있다는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기억하지만 길이 줄어들고 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멀고도 멀게만 느껴짐에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서 있는 그곳을 통과합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구왕봉 입니다. 아니 그런듯 합니다 ㅎㅎ

조금 내려선 곳에 전망대가 있습니다

 

인수봉을 몇 개나 묶어놓은 듯한 희양산이 내 앞에 있습니다

기울어져 가는 해를 보며 희양산을 바라봅니다 암벽사이로 길인듯 싶은

나무숲들이 보입니다 여기까지 내 발로 무사히 걸어왔다는 만족감과 저 산을 넘어야 한다는 염려스러움이 교차합니다 불암산대장한테 도움을 청 합니다 걱정마시고 넘으세요!고마운 격려를 받으며 전혀 길이 없는듯한 지름티재로 내려섭니다. 봉암사쪽과 희양산 양쪽으로 바리케이트가 쳐 있습니다 이미 땅거미는 지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설치해 놓은 비닐천막을 기웃거려 봅니다 어쩌면 비닐을 덮고 자지않아도 될 수 있을까 하고^^

 

누군가 비박자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800미터 산중에서 비박을 준비합니다 저녁을 지어먹고 도시락도 쌉니다

문제는 물이 모자라서 걱정인데 배너미평전근처에 계류가 있고 그곳에서

보충할 요량으로 벌레소리와 저멀리 은티에서 들리는 사람사는 소리를

벗삼아 잠이듭니다.

 

걸어온길

밤티-늘티 3.3키로.버리기미재-장성봉-악휘봉갈림길-곰틀봉-지름티재 11.2 키로 약10시간 30분.

 

 

밤새 모기와의 전쟁을 치루고 안개속에서 산상의 새벽을 맞습니다

3시도 못되어 일어나서 어제 보았던 내 앞에 있는 산을 넘어야 한다는 걱정을 털며 또 하루를 준비합니다

 

5시 안개속을 어두움을 헤치며 희양산을 오릅니다

오늘이 사흘째이니 체력도 바닥이 난듯하지만 꾸준한 오름짓을 하여 공포의 밧줄구간에 이릅니다 <굵은 밧줄은 모두 철거>하였다는 선답자들의 안내를 상기해 보며 지름 1센티정도의 밧줄을 시험해 봅니다^^

 

마치 비처럼 내리는 안개 때문에 상당히 미끄러워 보입니다

대여섯차례 씨름을 한 끝에 능선에 오릅니다 내려다 보기에 겁이나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어 봅니다 오른편으로 정상으로 가는 삼거리 입니다 역시 안개를 핑계삼아 왼편으로 길을 잡습니다

 

풀잎들이 물기를 머금고 있어 마치 비오는 날 인듯 합니다

스틱으로 물을 털어내며 기분좋은 날등을 갑니다 한참을 내려선 곳이 성터

나는 여기가 배너미..인줄 알았습니다 염려스러웠던 희양산을 넘어섰다는 희열도 잠깐 성벽을 넘나들며 또 날등을 걸어 내려옵니다

 

물소리가 들립니다

참으로 반가운 소리입니다 이쯤에 이정목이라도 있었다면 거리를 잘못 생각하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이미, 배너미를 지나 대단히 먼 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물을 한통만 채웁니다 금새 후회하였고 결국은 때문에 조금 남기게 되는 일이 생기고 말았으니까요.

 

왼편으로 계류는 흐르고 아마도 은티로 내려가겠지요

선답자들의 표시기가 전혀 없습니다 오른편쪽으로 길이 보이지만 대간길이 아닙니다 잠시 이쪽저쪽을 오가며 길을 찾아 봅니다 양쪽계류를 사이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수 많은 선답자들이 오고갔을 대간이 어제처럼 고개를 갸웃뚱 해보며 그래도 능선이라 느끼는 곳으로 꾸준히 오릅니다 마침내 청산에 홀로가는…’표시기가 보입니다 반가움에 왈칵 끌어안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루봉과 이만봉이 갈리는 이곳이 배너미평전입니다

오른편으로 꺽어올라가는 길이 조금은 염려가 되어 불대장한테 도움을 받습니다 잘 진행을 하고있다재차 격려를 받으며 아크릴판에 적혀있는 안내판을 따라 이만봉을 오릅니다 워낙에도 걸음이 더디어 황소걸음입니다만

수 많은 날등을 타고넘어도 40분거리라는 이만봉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9시가 다 되어서야 멋진 표석이 있는 어느 멋쟁이 산꾼의 표현처럼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는 이만봉에 올랐습니다

지름티를 출발한지 5시간이 되었습니다

 

도시락을 꺼내어 끓여 먹습니다

백화산 4.7키로 몹시도 멀게 느껴집니다 배고파 먹는 밥인데도 입맛이 없어

모래알을 삼키는 듯 합니다 그래도 커피한잔의 여유까지 부려보며 갈 길을 다짐해 봅니다 안경을 놓고와서 이만봉을 한번 더 만났습니다

 

날등에 날등을 거듭하는 백두대간은 언젠가 다시 와보고 싶은 그런 길입니다 안개 때문에 문경과 남쪽으로 대야산,속리산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저 안개속에 있을 것 이고 북으로는 조령산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산줄기가

확연하게 보이는 이 장엄한 길이 지금은 너무나도 힘이들어 대간을 가는 마음이 잠시 잊혀진 듯 합니다

 

얼굴을 얼마나 닦아내었을까요

두어걸음에 어김없이 달라붙는 거미줄을 떼어내느라 안 그래도 지친 몸이 더욱 지쳐만 갑니다 시원치않은 왼쪽 발목이 우두둑소리를 냅니다

조금씩 밝아지는 사위보다 뜨거운 햇볕이 먼저 내게 달려 옵니다

흐르는 땀과 달라붙는 거미줄과 절뚝거리는 발목과

 

사다리재를 지나고 평전치에 도착합니다

왼편으로 분지로 내려가는 길이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애초에 거리를 잘못

계량하여 물을 조금 보충한 것도 마음을 잡아 끕니다 이제는 의지로 걸어보기로 합니다 백화산만 오르면 황학산으로 조봉으로 전체적으로 내림길이니

이 길이 체력으로만 가는 길은 아니다 라고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 잡아 봅니다 드디어 백화산에 올랐습니다

 

물은 한모금이 전부이고 발목은 점점 더 아파오고

황학산은 내 앞에 어서오라고 손짓을 하건만 다짐하고 또 다짐하던 마음은 간곳이 없고 몸은 오른편에 내려다 보이는 마을을 봅니다

 

잠시 이화령보다 훨씬 남쪽으로 더 내려와있다는 것을 잊었나 봅니다

탈출로로 보이는 길이 남쪽으로 있습니다 남동쪽으로 가는 대간길에서 별 생각없이 빠져 나옵니다 대충 한시간쯤이면 내려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 길이 엄청난 고통에 빠지게 되었으니언제나 준비가 모자람으로 생각지도 않던 고통을 겪곤 했는데.. 내림길은 처음에는 평이하였으나 내려갈수록 족적이 희미해 지더니 마침내 길이 없어져 버리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아픈 발목을 끌고 길을 찾기 위하여 계곡을 헤매이다가 사면이 무너지는 바람에 두어번 곤두박질을 하는등 종내에는 되돌아 갈 수 도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내가 내려온 길을 되집을 수 없다! 스스로 탈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119로 전화를 합니다 요행히 통화가 되어 안내를 받습니다. 문경산악구조대에 근무하시는 분이 능선으로 다시올라 왼편 ‘덕원

탈출하라고 조언해 줍니다.

 

아무리 발목이 아파도 물만 있다면 빤히 보이는 황학산을 지나 조봉으로 이화령으로 가겠는데 아니 꼭 그리로 가야 하는데..덕원으로 내려가는 삼거리에서 망설여 봅니다 내림길 3.5키로 이 거리라면 조봉까지의 거리인데 거기서 이화령은 아주 잠깐이면 내려설 수 있는 길인데

무거운 마음으로 안말로 내려옵니다

 

또 이만큼의 길을 남겨놓았습니다

<준비>가 모자랐음을 새삼 느끼며 얼마 남지않은 백두대간을 다시는 헤맴없이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을 해 봅니다

 

장문의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드리며 하루의 산행을 줄이면서까지 이화령에서 나를 써포트해 주신 노짱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걸었던길

지름티재-희양산-배너미평전-이만봉-평전치-백화산 10.95키로 약 7시간

탈출로는 포함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