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산(白羊山) 단풍산행/ Photo 에세이
(2005. 11.1/내장산남부매표소-청류동골-운문암갈림길- 상왕봉-722고지-백학봉-영천굴-비자나무-국기단-청량원-백양사-쌍계루/ 일산'한뫼산악회'/016-372-2267채수천 고양시아파트입주자회장)


*. 단풍 산행
 
나뭇잎이 꽃처럼 빨강, 노랑, 갈색으로 기후의 변화 따라 피어나는 것이 단풍입니다.
단풍은 홍엽(紅葉)보다 황엽(黃葉)이 더 많은데 왜 붉을 단(丹), 단풍 풍(楓)이라고 단풍에 홍엽, 황엽을 포함했을까요? 초록 잎이 노랑보다 더 강한 빛이 빨강으로 물드니까 빨강 속에 노랑을 포함시켰나 봅니다.
단풍이 드는 것은 한 해가 가는 모습이기도 하여서인지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단풍을 찾아갑니다.
금년도 벼르다가 그대로 보내는 단풍이 될까봐 설악산을 찾아갔더니, 거기선 단풍을 제대로 못 본 것 같아서 한국에서 내장산 다음으로 유명하다는 백양사 단풍을 보러 일산 한뫼산악회 따라 4시간 30분만에 내장산남부 매표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내장산은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때부터 북부(내장)와 남부(백암) 관리사무소로 나누어 관리를 하고 있답니다.


 


 





일반적인 백양산 산행은 백양사에서 영천 굴, 백학봉, 상왕봉, 사자봉, 백양사이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역으로 갑니다.

백암산에서 제일 높다는 상왕봉까지 2시간 동안 비교적 쉽게 올라서 가파른 층계 따라 내려오면서 백양산 단풍의 진수를 보고자 함이었지요.
춘백양 추내장(春白羊 秋內欌)이란 말도 있지만, 산은 내장 절은 백양이란 말도 있으니 등산보다 오후의 백양산 단풍에 기대가 더욱 큽니다.

*. 상왕봉(象王峰)을 향해서
상왕봉을 향하는 길가에 감나무가 가로수 같이 무성합니다. 감은 가을꽃과 같습니다. 그 주황색 빛과 함께 주렁주렁 열린 감은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잡습니다. 우리들은 그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상황봉이 3.8km/ 몽계폭포1km의 이정표에서 우리들은 본격적인 등산을 합니다.
직진하면 입암산 가는 길이요, 그 입암산 중턱에는 687m의 입암산성이 있지요. 삼한시대 천혜의 요새가 되는 이 성은 둘레가 5.2km인데 성 내에 2개의 성문 9개의 연못, 14개의 샘이 있었던 곳입니다. 고려 때는 몽고군과 싸워 이긴 곳이요, 임란 때에는 왜놈들과 의병, 승병이 장렬히 전사한 곳이기도 하지요.
몽계폭포는 길을 벗어나 80m를 내려가야 있기 때문에 그냥 직진합니다. 한국의 지형은 폭포가 발달한 곳이 아닌데다가 그나마 지금은 가을이라서 물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나무다리입니다. 이 다리 다음은 지루한 통나무길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무들의 나라 산에서 죽어서도 다리가 되어, 층계가 되어 함께 하는 산의 계단을 오릅니다. 이제 고만 끝여도 되련만 통나무 층계는 지루하게 꼬불꼬불 계속되고 있습니다.

 긴 통나무길이 끝난 곳이 안부 능선 갈림길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상왕봉(741.2m), 왼쪽으로 사자봉(722.6m)이 각각 0.5km 거리에 있습니다. 사자봉은 운문암 뒷산입니다. 사자봉을 저만치 두고 상왕봉을 향하여 산죽 길을 지나니 드디어 시원한 전망이 시작됩니다. 온 산이 푸른빛 옷을 버리고 누르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단풍의 세계입니다.

*. 상왕봉(백암산) 단풍에 취해서

여기가 바로 백암산에서 제일 높다는 상왕봉(象王峰, 741.2m)입니다. 정상 표지목이 서있고 그 옆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먼저 온 선착 객들의 점심 식사가 한창입니다.
옛날에는 새벽 등산길을 떠나는 이 역마살의 유랑의 남편에게 아내는 꼭두새벽 밥을 해서 먹이고 보온도시락에 점심을 싸서 들려주곤 했습니다.
산의 정상 근처에서 그 아내의 체온을 감사의 눈물 말아 먹었는데 그 아름다운 정을 우리들 동네 1,000원 짜리 김밥 장수가 다 뺏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팍팍한 김밥이 싫어서, 요즈음은 마호 병에 뜨신 물을 가득 넣고 컵 나면으로 점심 식사를 하며 다닌답니다. 거기에 참치 캔 한 통을 더해서요.
단풍이 너무너무 좋아서, 그걸 보러 온 사람들이라서 이곳저곳에서 환성이 터집니다.
안성에서, 군산에서, 부산에서 온 사람들도 함께 입니다. 우리도 일산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다 함께 산을 찾아 온 ‘산’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한 분이 말합니다.
“나 부산에 사는 갑돌이입니다. 글을 쓰시거든 내 이름 좀 넣어 주이소. 내 친구들에게 자랑 좀 하게.”



함께 온 ‘한뫼산악회’ 여성 회원들이 이 절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싶어 합니다. 신바람 난 일만이 그걸 찍어 드리려 하다가 크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넘어졌습니다. 그냥 넘어진 게 아니라 나무뿌리에 신발 끈이 걸린 것입니다. 무릎이 얼얼하고 근육이 씰룩거리고 쾅- 부딪은 팔꿈치가 한동안 일어서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행이었습니다. 경황 중에서도 카메라를 지켜냈으니까요. 몸이야 옥도정기나 병원 몇 번 가서 고칠 수 있지만 고가의 카메라야 쉽게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팔다리가 부러지면 어쩌냐구요? 그야 운명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위 사진은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니 귀한 사진입니다. 그래도 걸을 수는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버스 속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팔이 되긴 하였지만.


*.단풍의 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오름길에 거의 보지 못했던 단풍이 백양사 쪽 산은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입니다.
상왕봉부터 백학봉까지의 능선은 전북과 전남을 가르는 경계선입니다. 국립공원내장산의 백양사지구와 내장사지구의 경계선이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은 홍길동의 출생지 장성군에 속하고 능선 길 오른쪽 내장산은 정읍 시에 속하는 곳이지요.
상왕봉에서 1.6km의 거리에 있는 갈림길은 8km 거리의 내장사로도 내려 갈 수 있지만 그냥 직진합니다.

오름길도 없이 싱겁게도 나타나는 것이 백학봉(白鶴峰, 651m)입니다. 정상 바위는 조그마한 것이 전망대였구요.

헬기장을 지나 단풍 산길을 뚫고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 내림 길을 갑니다.
그 내림 길은 거의 계속되는 층계지만 단풍 속에 묻힌 금강암의 호젓한 모습이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백양사의 당우들이나 그 너머 제1, 제2의 주차장들의 차들이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나라에 온 것 같은 이 한 폭의 그림들입니다.
그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는 길이 층계로 길게 이어집니다. 가는 길에 쉬고 가라고 도중도중 ‘口’ 자 모양의 쉼터가 있습니다.

왼쪽 단풍의 바다 위에 기암 하나가 있는데 그 가운데 바위를 뚫고 소나무 한 구루가 청청합니다. 촛대바위입니다. 중국 황산에서 보던 파석송(破石松)이었습니다.
층계를 내려가며 백양사가 가까울수록 보는 단풍이 아니라 단풍 속을 거니는 동화 같은 단풍의 나라가 이어집니다.



 

 

 

 

 

 

*.영천 굴의 전설

층계를 따라 영천 굴에 오르니 굴에는 등불을 켜고 있는 좌상의 보살들 앞에 약사불이 있습니다. 굴속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을 받고 있는데 수도관에서 졸졸 흐르는 물이고 그 밑 깊은 암반에는 많은 물이 고여 있습니다. 이 영천 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습니다.

  매일 세끼 1인분의 쌀이 나오는 쌀 구멍 있었답니다. 하루는 허기진 객승이 찾아와 쌀이 모자라서 쇠 지팡이로 쌀이 더 나오라고 후볐더니 쌀 대신 물이 나왔는데 빨간 핏물이 나오더랍니다. 그때부터 물이 조금씩 나오는데 이를 영천, 감로수, 약수라 한답니다. 이곳은 백양사라는 이름을 지은 환양선사가 백련경을 설법한 곳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 백양산 국기단(國祈壇)

비자나무 숲을 지나 백양사로 향합니다. 
비나나무는 지름 2m, 높이 15m의 늘푸른큰키나무입니다. 구충제나 기름을 짜는 열매로 그 재목은 가구나 바둑판 재료로 쓰이는 나무입니다.
비자는 추운지방에서 자랄 수 없는 난대성 나무로 백양사 이북에서는 자랄 수 없는 수목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153호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바자나무 숲을 지난 곳에 홍살문이 있고 그 문을 지나면 국기단(國祈壇)이 있습니다.
나라에 극심한 전염병이나 재앙이 생겼을 때 천지지지(天地地祗)에게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곳입니다. 장성군에서 옛 조상의 정신문화 유산으로 매년 가을마다 국기제(國祈祭)를 봉행하는 곳입니다.

*. 왜 백암산(白巖山)이라 했을까요

백양사 일주문에는 “백암사고불총림백양사(白巖山古佛叢林白羊寺)”라는 우람한 현판이 있습니다.
참선 도량인 선원(禪院), 경전과 계율 교육기관인 강원(講院)과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叢林)이라 합니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와 함께 백양사는  한국 5대 총림의 하나일 정도로 유명한 절입니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을 林(임)이하 하듯이 승(僧)과 속(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一處住)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총림(叢林)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오다 본 큰바위 얼굴 같던 거대한 바위가 백양사를 뒤에서 위엄 있게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직벽의 바위가 백학암(白鶴岩)입니다. 그 색깔이 계절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전체의 색깔이 백색 바위여서 백암(白岩)이라 한 것이고, 그 바위의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이 서있다 하여 학바위 또는 백학암(白鶴岩)이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이 산의 최고봉인 상왕봉, 사자봉, 백학봉을 아울러서 백악산(白嶽山)이라 한 것이지요.
백양사의 어원을 전하여 오는 전설과 백양사 경내에 있는 연역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이 재구성하여 봅니다.
백양산은 백제 때에는 백양사, 고려 때에는 정토사(淨土寺)라 하여오다가 이조 선조 때에 환양선사가 백양사(白羊寺)이라 개칭하였답니다.  
그 선사 법명이 부를 환(喚), 양 양(羊), 환양선사(喚羊禪師)라서인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옵니다.


스님의 설법 찾아 팔도에서 모여들 때
이 산의 백양 한 마리도 깨우침을 얻었대서
정토사(淨土寺)
이름을 바꿔
백양사(白羊寺)라 했답니다.



*. 산은 내장산, 절은 백양산

백양사의 멋은 좌측의 운문암과 우측의 천진암에서 흘러드는 양계곡이 만든 호수 위의 고색창연한 쌍계루(雙溪樓)너머 우람한 백학봉을 우러러 보는 것이 백악 제1의 절경입니다.
육당 최남선 님도 백학봉의 미를 보고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답니다.
 "백학봉은 흰맛, 날카로운 맛, 맑은 맛, 신령스런 맛이 있다."

거기에 오늘처럼 붉게 물든 단풍 속의 쌍계루(雙溪樓)는 금상첨화입니다. 쌍계루(雙溪樓)란 이름은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분이신 이색(李穡) 선생이 명명한 누명입니다.

시냇물 합류처 쌍계루 걸터 앉아
물 아래 그림자 목은(牧隱)인가 일만(一萬)인가
백학봉
우러르면서
목은(牧隱) 시조 읊습니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포은 정몽주님도 누각에 올라 시 한 수 지은 것에 시인 묵객들이 달아놓은 리풀이 가득하던데 무심히 지나친 것이 후회가 됩니다.

백양사 경내에 들어서면 '이 뭣고' 비가 있습니다. 1,700여 가지나 된다는 화두(話頭) 중에 하나입니다. 갑사에 가서, 속리산 복천암에 가서 보던 말입니다. 그때 저는 이런 글로 '이 뭣고/를 풀어본 일이 있습니다. 

              →로 갔다 ←로 가고 

                ↑갔다가 ↓오고 
                  ?하다가 !하고 
                 !하다가 ?하더라.
                      이 뭣고
                   묻는 이 누군가. 
               뭣고가 뭣고지 뭣고.
                                 -이 뭣고




백양사단풍원대웅전과백학봉범종각대웅전석가불 극락전 소요대사부도
백약사에는 다른 절처럼 대웅전도, 범종각도,극락전도, 부도 등이 있는데 다 '이 뭣고?'
한 마디로 백양사 들어오는 입구에 있던 말이 아니던가요.

           오시는 길 부처님 마음 배워서 
           가시는 길에 부처님 마음 행하소서


설명이 필요없는 백양사 단풍을 이사전심(以Camera傳心)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 하고자 합니다. 성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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