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2007.1.12.금요일. 맑음

*산행시간:5시간50분(도상거리:약11km)

*지형도:1/50,000(영진353쪽)


 

서울역(07:15)-대전역(08:15)/(08:24)-영동역(09:54)-30분걸어재궁골 도착


 

재궁골(09:40)-무량산(426.5m)(10:26)-안부(10:50)-백마봉(H)(11:43)

-538.2봉(12:50)-노근리뒷산(440m)(14:00)-441.1봉(14:50)

-440봉(H)(15:00)-우천리(15:30)


 

우천리(15:30)-노근리(16:20)-영동역(16:40-17:11)-대전역-서울역(18:43)


 

(노근리터널)




 


 

*후기


 

산행 전날 어쩌다 있는 일이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야지..’ 하고 침대에 누우면, 슬며시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쓸데없는 잡생각이 떠오르고 잠을 청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이럴 때에는 몸을 혹사 하기위해 건너 방으로가 바둑과 잡기에 빠져

늦잠을 자다보면 다음날 해는 중천으로 떠 있는데,

그날따라 환장하게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찬란한 푸른빛인 것이다.

그 투명한 블루톤의 공간을 보면 왼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하염없이 하루가 지나 가버린 것 같고, 다시 저녁이 찾아오면 스스로가

미워지며 망쳐버린 산행에 미련이 남는 것이다.


 

오늘은 새벽의 더 자고 싶은 욕망과 적막을 물리치고 일어났다

서울에서 기차로 대전으로, 대전에서 영동으로 가는 보통열차로 갈아탔다.

때마침 차창밖에 식장산의 아침 해가 장밋빛으로 반짝이며 떠올랐다.


 

아. 찬란한 일출이다!

창밖엔 하늘과 땅, 그 사이 공간의 엷은 안개는 부드럽게 흔들리면서

나를 행복감에 젖어들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도심의 아파트에 가려

태양이 사라지면서 나의 시선은 객실통로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본다.


 

잠시 후 정리가 된 객실은 조용해지는데...

다시 뒤쪽의 출입문이 열리면서 키 작고 몸집이 실팍한 여인이 먼저 지나가고, 

뒤이어 탄탄한 거기와 가랑이까지 스커트가 올라간 여인들이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그러면 나는 그것에 대범한 듯, 한편으로는 가당찮게 경멸하듯,

더 나아가 무관심한척 창밖으로 애써 시선을 돌리지만

머리에는 그 예쁜 엉덩이가 그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유치한 사고를 가진 나란 놈이 한없이 슬퍼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불가능하지만) 유혹의 침대도 그려지는 것이다.

누군가 그랬듯이 나이가 먹어 머리가 물렁물렁해져도

마구간의 굶주린 말처럼 달려가고 싶은 것이 남자의 본능일까?


 

뭐,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나는 영동역에 어김없이 내렸다.

들머리는 골프연습장이 있는 화신리의 재궁골.

그곳에서 무량산(426.5m) 과 백마산(532nm)을 경유하여 538.2봉

그리고 노근리 뒷산인 420봉을 넘어 북쪽의 441.1m봉을 타고

우천리로 내려오는 것이다.


 

산세가 크지 않은 고만고만한 산들이지만 차를 타고 자주 근처를 지나면서

노근리를 감싼 420봉에 올라 보고픈 마음이 있던 터였다.

그러면서 저 산위엔 착화되지 않은 불발탄은 없는지,

아니면 인민군 따발총이나 U.S마크가 있는 쭉쟁이 탄피조각은 없는지

막연하게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영동에서 황간 방향으로 향하던 4번국도가 왼쪽으로 휘어 돌아가는

재궁골까지 약30분을 걸어 마을로 진입하였다.

때마침 마을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두 여인이 있어


 

“저 산에 오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하고 정중하게 내가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놀란 토끼눈으로

“이 길로 해서 건너편의 숲으로 가면 길이 있지요.” 한다.

‘산길이 있는 것을 보니 등산로가 잘 되어 있겠구나’ 혼자 생각을 하면서

일러준 곳으로 향한다.

 

(도깨비뿔 형상의 삼봉산)


 집 몇 채를 지나 지능선 사이의 골에 있는 <영동골프연습장>을 왼편에 끼고

흘러내린 작은 산줄기를 따라 오르니 길이 뚜렷하게 이어진다.

양지바른 몇 기의 무덤을 지나 휴식 터가 있는 바위 전망대가 있었다.

 

 

해가 오른 하늘은 맑았다.

영동읍사람들의 산책로에 있는 전망대에서 잠시 뒤돌아보면 걸어왔던

4번국도와 그 옆의 경부고속철도, 건너편으로 가리터널부근에서

삼봉산으로 이어진 영동의 산줄기가 병풍처럼 확 펼쳐진다.


 

내 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얼마 전 그곳을 산행했던 터라 이렇게 떨어진 공간에서 삼봉산으로 이어진

줄기를 바라보니 몸은 전율되고 마음은 한줄기 파도가 되어 넘실거린다.

혼자일 때 감상적인 사색은 더더욱 풍부해지는 것인지 느낌이 그랬다.

(795봉에서 도깨뿔같은 삼봉산으로 이어진 줄기)


그러면서 

“그래그래.. 저기 쑥 들어간 곳이 **안부였지!”

“거기에서 치고 올라가느라 쌔 빠지게 애 먹었던 곳이야!”

“또한 795봉에서 삼봉산까지 제법 폼 나는 줄기였지!”


 

나는 쉼 없이 눈을 굴리면서...

삼봉산의 남봉과 북봉 사이에 가운데 부분이 살짝 도드라져서

‘그래서 삼봉이였구나!’ 하면서 

마치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인 냥 즐거워한다.

 

그렇게 두루두루 입맛과 눈(目) 맛을 모두 다신 뒤에  

풀었던 배낭을 걸머지고는 마지막으로 내 체취의 흔적을 다람쥐처럼

곳곳에 ‘휘휘’ 갈겼다.

이때 머리위의 작은 새가 버릇없는 침입자를 희롱하듯 재잘거리지만,

지금 이 순간, 대지의 가슴에 내가 안겨있음을 뿌듯하게 확인할 뿐이다.

  

아. 기분이 좋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행복해지려 한다!

휘파람 휘휘- 불며 426.5봉으로 올라간다.

(426.5봉)


426.5봉. 

무명봉인 줄 알았더니 <무량산> 이란 멋진 흑표석이 서있다.

산 아래 영동읍의 모습이 보인다. 외로운 당나귀마냥 멍하니 바라본다.


 

무량봉에서 바로 동북방향으로 가려니 가벼운 눈밭에 너덜지대가

이어지면서 잠시 걸음을 주춤주춤 내려가니 주곡리와 봉현리를 잇는

돌탑이 있는 안부를 만났다.

(봉현리안부)


정적이 깃든 안부를 지나 왼편으로 꺾여 첫째 봉우리에 올라서려니

무언가 후다닥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라니인가?” 

잠시 후 그곳에 닿으니 그 꽈의 짐승 발자국이 하얀 눈에 찍혀있었다.

 

터덜터덜 오른쪽의 백마산을 향하여 올라간다.

짐승의 발자국은 주능선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다가서면 조금 더 빨리 가면서 계속 하나의 능선을 따라 가고 있었다.

잠시 후 눈길에는 그놈의 발자국은 사라지고 다섯 개의 발가락이 찍힌

동물의 흔적과 같이 움직인 듯 사람의 발자국이 같이 보였다.

 

 

“앗! 사냥꾼인 모양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몇 일전 다녀간 발자국 흔적이다.

“이런 놈들 산에서 만나면 재수 드럽게 읍지!”

“아주 유쾌하지 않거든!” 하면서 혼자 중얼대며 걷는다.

(백마산)


오래된 헬기장인 백마산에 닿았다.

그곳에 바람 한 점 없는 겨울햇살이 내려 쬐어 따뜻했다.

내 몸과 마음은 아늑한 이곳을 원하고 있었다.

‘더 가봤자 요만큼 아늑한 장소는 없을 것이니 이곳에서 점심을 먹자!’

뼈마디를 즐겁게 해주는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맛있게 먹었다.


 

바로 옆 백마산에 올라서니 멀지않은 곳에 538.2봉이 보인다.

백마산에서 부드럽게 떨어지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고 다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그만그만한 봉우리를 넘어 어렵지 않게 538.2봉에 올랐다.

북쪽 가까이에 있는 540으로 등고선이 표시된 봉우리가 멋졌다.

윗부분이 암봉으로 이쁘게 보인다.


 

538.2봉에서 동쪽으로 꺾여 내려가서는 다시 동북으로 방향을 틀어

노근리 뒷산인 440봉을 향해 올라가니

중간에 산불흔적이 흐릿하게 나 있고, 이곳에서 좌우로 조망이 좋았다.

주위에는 햇살이 따뜻하게 흐르고 발아래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열차 지나는 모습과 4번국도의 자동차들이 보인다.

 

겨울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아주 포근한 날씨였다.

갈색 잎 새 사이로 평화롭게 노근리가 내려다 보였다.

수증기를 머금은 희미한 대기 사이로 햇살이 흐르고 있었다.

건너편 백화산은 안개에 쌓여있는 성 처럼 희미하게 숨어있었다.


(책바위)

 


(희미한 백화산)


노근리 뒷산인 440봉에 닿았다.

봄처럼 포근한 대기 속의 미풍이 내 볼을 핥아 주었다.

건너편의 540봉이 뾰족한게 이쁘게 보였다.

그리고 왼쪽의 상도골 마을이 한가로웠고 움직이는 도로의 자동차는

인간사 부질없는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540봉)


(상도골)

 

이곳에서 노근리로 바로 내려 갈까하다 시간여유도 있고 하여

우천리의 441.1봉을 넘어 가기로 했다.

내려가 다다른 안부에는 작은 소나무가 많았다.

아무도 다닌 흔적이 없어 죽은 나뭇가지를 꺾어가며 진행한다.

죽은 가지는 때로 눈이나 콧구멍을 느닷없이 찔러 대서 아주 곤혹스럽게 하기에

천천히 진행을 하였다.

(소나무길)


정적의 심연 속에 작은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소나무 숲에는 이제 동물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대지가 몰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산도 짐승처럼 숨도 쉬고 슬피 울기도 할까?’

 

 

전위봉을 지나 441.1봉에 오르니 벌목한 나무가 있고 조망도 좋지 않았다.

더 진행하여 건너의 봉우리에 다다르니 폐 헬기장으로 건너편의

백화산이 엷은 안개에 숨어있었고, 발밑으로 경부고속도가 가까웠다.

수 없이 바삐 오고 가는 자동차속의 사람들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오늘 왼 종일 나는 바삐 달리는 저속에서 잠시 벗어나 있었다.

지금은 내가 저속에서 영원히 이탈된 것처럼 느껴졌고, 또한 그것을 즐겼다.

(441.1 다음봉에서의 경부고속도로)


우천리로 향한 하나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아래에 민가 한 채가 보이고

가시넝쿨이 안개처럼 자욱했는데 차곡차곡 모아 악마 거세하듯 밟고 지나갔다.

아래의 그 외딴 민가로 내려서려다 견공 앵앵거리는 것이 싫어

옆으로 내려서니 고속도로의 차들이 수 없이 지나치는데 차에 탄 사람들이

미친놈인 듯 바라보는 것 같아

‘그게 아니거든!’ 하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려서서 작은 다리를 건너니 외딴 민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최근 새로 포장된 작은 마을길을 따라가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두 눈만 반짝이는 장년의 남자가 노근리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가까웠다.

냇가 옆의 포장길을 따라 그곳에 이르니, 살얼음이 언 쓸쓸한 냇가에는

백로 한마리가 외롭게 홀로서서 나를 바라보는데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노근리 철길다리)


버스시간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길 건너 마을까지 가서 물어보기도 귀찮아 노근리의 그 유명한

철길다리 이르니 마침 들어오는 차가 있어 잠시 손들어 세웠는데

영동행 버스의 시간을 알지 못하는지

 

“지금쯤.. 지금쯤 ...” 하면서 지나쳐 버렸다.

철길다리 가까이 다가서니 흰 페인트로 6.25당시 총탄 자국을

표시해 놓은 시멘트벽과 다리 부근에 위령자 비석이 있었다.

 

6.25 전에 지어졌지만 다리는 새것처럼 튼튼해 보였다.

다리를 아래로  지나오자 게시판에 노근리 사건에 관련된 여러 사진들이 보였다.


 


‘산행은 좋았는데...’

상반된 그림들에 대한 무거운 심정들이 쏟아져 들어와 가슴이 답답했다.

 

서녘으로 햇살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하늘은 아름답고 조용했다.

노란색이 깃든 보랏빛 새털구름이 새와 양을 만들고 있었다.


 

4번 국도에서 히치를 하려다

마침 황간에서 영동으로 가는 택시가 달려와 잡아타니

10분 뒤면 영동 가는 버스가 올 것이라고 택시기사가 말했다.

그냥 태우고 영동으로 가면되는데 일러주는 그가 고맙기도 해서

가격을 물으니 그냥 많이 나올 거라 하였다.

 

인생을 다 산 듯, 그래서 금전에 초연한 멋진 사람 같았다.

기사는 황간 손님을 태워다주고 돌아오는 길이니

3,000원만 달라고 하였고, 나는 내리지 않고 그냥 달렸다.


 

‘아, 올해도 나의 산행은 히치 복이 터지나보다!!’ 하고 흐믓했다.

영춘과 정선지맥 할 때도 그랬지만,

손만 들면 ‘척척-’ 태워 주시니

올해에는 기필코 좋은 일 하나 해서 산신령께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산우 여러분!

올해도 즐산과 함께 가정에 황금빛 깃드는 한해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