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백덕산 산행기

 

모처럼 산을 찾는 기분이 설렜다. 이것저것 일정이 있지만 1월 강원도 평창군 백덕산 산행만은 꼭 참가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근래 산이 더 그리워지는 기분이 든 것은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산을 찾아갈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갈증이 느껴지는 터에 강원도 산악지대에 해발 1350m가 넘는 심원한 산세이면 겨울 산의 정취를 제대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강원도 지역에 속하는 곳이라 걸었던 백두대간의 품도 다시금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새해를 맞은지 한 주가 지났다. 새로운 해를 앞두었던 지난 연말도 아쉬움 속에 보냈다. 하루하루 더 알뜰히 시간을 쓰려고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연말 모임에도 더러 참석치 않을 수 없었고 1일자 건축문화신문에 게재한 원고 작성도 신경이 쓰였다. 하고 나면 대단치 않은 일에 시간만 많이 썼다는 기분이 들지만 하는 동안에는 매사 신경을 곤두세우고 전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속세에 얽매이는 느낌이 클수록 산에 대한 그리움도 크게 자란다.

 

겨울철에는 산을 찾기에 더 큰 마음을 먹어야 하게 된다. 챙길 가지수도 더 많아지고 추위에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자칫 미적거리게 된다. 그런 분위기에 집에만 있다 보면 산행의 발걸음이 더 뜸해지게 된다. 작년 초 눈이 많이 내린 날 맘먹고 북한산을 찾았었다. 그 때 세상이 다 새로워진 표정을 띠고 있는 느낌을 느꼈다. 눈이 깊이 쌓인 길을 나서기 부담스러웠지만 산에 오르고 나서는 벅찬 기분이 들었다. 그런 때마다 매번 산행은 일단 걸음을 나서고 볼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대역에 도착했다. 7시 정시에 출발을 하기로 했는데 기사가 갈 위치를 몰라 출발을 멈추고 그제서야 위치를 파악하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아직 창밖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오늘처럼 강원도 지역으로 단체 여행을 떠날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이쪽의 교외로 나갈 때는 봄철이 많았다. 봄철에는 늘 들뜨게 되었던 것 같다. 생동감으로 가득하던 들녘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달아오르곤 했다. 그 들뜸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름의 수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번은 겨울철이니 차분히 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덕산이 있는 평창군은 남으로 제천, 영월과 경계하고 동쪽으로는 정선, 서쪽으로는 원주, 그리고 북쪽으로는 횡성과 이웃하고 있다. 그리고 백덕산 이웃에는 직선거리가 4km 정도밖에 되지 않은 곳에 사자산이 있는데 그 산을 포함해 모두 백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자산에는 적멸보궁인 법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곳을 포함해 오대 적멸보궁이 있는데 설악산 봉정암, 함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가 그곳이다. 그 외에도 적멸보궁이 지어져 있는 곳이 몇 곳 더 있는데 부처님 진신 사리가 모셔진 곳인지 이름만 그리 붙여놓은 곳인지 알 수 없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가다보면 양평, 여주 원주 횡성 등이 차례로 산세가 깊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지리적 조건에 의해 각각의 지역에 생성된 도시와 고을들의 상황도 다르게 느껴지는데 여주가 수원 같은 분지성 도시 입지를 벗어나 낮은 산세와 어우러진 형국이라면 창평은 오대산과 같은 큰 산세에는 못 미치지만 평지를 벗어나 온통 산세에 입지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그런 입지성은 곧바로 그만의 삶의 양상과 문화적 성격을 띠게 되는데 평창에는 맑은 물에 서식하는 송어양식장이나 산지성 작물인 메밀, 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그리고 작은 산지 곳곳에 그리 크지 않은 고을들이 흩어지듯 들어서 있다.

 

영동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갈 때까지 차안에서 진행 중인 일의 스케치를 조금 했다. 먼 곳으로 떠나는 길에 틈틈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생각으로 일거리를 챙겨갖고 갔는데 작은 실마리라도 풀어 놓은 듯하여 안도가 되었다. 졸려서 눈을 감고 있다 보니 우측 어께가 시려왔다. 손으로 어께를 감싸며 바라보니 차창에 성애가 끼어 한기가 전해왔다. 그처럼 차 안도 추운데 바깥에 나가면 얼마나 추울까 생각이 되었다. 바삐 나오느라 옷을 든든히 챙겨 입지 않은 것이 걱정이 되었다.

 

백덕산 산행을 시작할 운교리에 버스가 도착했다. 백덕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이 곳 운교리와 문재, 먹골 등 세 갈래인데 오늘 산행은 운교리에서 출발해 밤나무골 베네소골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이다. 버스 기사가 위치를 잘 몰라 어딘지 어정쩡한 위치에 내려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어떻든 오늘 오르려는 백덕산 언저리에 닿았으니 어디서든 정상만 찾아가면 될 듯 했다.

 

내린 곳 주변에 민가가 몇 채 보였다. 그 몇 채의 집들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산중이 아닌 고을 같았다. 옆에는 큰 도로도 지나고 있었다. 오는 도중 곳곳에는 구제역 방제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처음에는 설마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모르고 있다 국가적 재앙으로 번져 모두 걱정을 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했다. 동네 어귀를 지나 들어서니 교회가 보였다. 마을길 옆 밭에 작물의 줄기들이 겨울의 무게를 지고 있었다. 생명이 자취를 감추고 지난 해 푸르던 초목들이 겨울눈과 바람을 맞아 미라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투명한 풍경이 색다른 아름다움을 띠며 다가왔다. 수행자들이 수도 정진한 후 깨달음에 이르러 하는 말들은 대개 현상의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봄에 새 싹을 티우는 초목은 여름철에는 무성함이 정점에 다다르고 모두 한 숲이 되어 그 하나하나의 모습을 느끼기조차 어럽다. 그런데 앙상한 뼈대만 남아 투명한 감각이 느껴지는 겨울 풍경은 진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길에 접어들어 눈길을 걸어갔다. 동지를 지난 후부터 시시각각 햇살이 길어지고 겨울 세상은 점차 더 생기 띤 표정이 되어간다. 늘어진 햇살이 얼어붙은 대지에 조금씩 온기를 쌓이게 하여 결국 봄이 오게 할 것이다. 눈 위에 햇살이 비추면 흰 눈도 광채가 나서 빛깔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햇살이 비추지 않으면 사물의 표정도 생기가 사라진다.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눈 덮인 산등성이에서 찬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겨울산은 정신이 번득 나게 한다. 코끝이 찡하도록 스치는 한줄기 산바람을 쏘이면 정신이 저절로 번쩍 드는 듯하다. 무의식적으로 겨울 산행을 꼭 하고 싶은 의지를 갖게 하는 점이다. 무성한 푸른 숲을 이루던 수목은 앙상해져 시선을 트여 나가고 앙상한 나무줄기가 하늘을 행해 높다랗게 보였다. 그런 투명한 풍경이 점차 마음을 맑아지게 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오르다 뒤돌아보니 시작한 지점의 마을이 아래쪽에 보였다. 어엿한 시골 동네처럼 보이던 운교리나 밤나무골 등의 마을도 겨우 산지 틈에 점점이 놓인 모습이었다. 주변의 산들이 모두 이어져 보이는 광활한 산세의 시선이 펼쳐지면서 점차 더 너르고 깊은 산세와 교감하게 되었다. 오르는 길 우측으로는 높은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백덕산 정상은 그 능선 너머 더 안쪽에 놓여 있는데 앞에 둘러친 능선을 올라야 가늠이 될 것 같았다.

 

길을 가다 멈춰 한걸음 비켜 소변을 보다보니 다른 사람의 흔적도 보였다. 너른 산에서도 그처럼 나름의 장소성에 대한 공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다시 길을 걸으려고 주변을 돌아보다 그 곳에서 특별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앞 쪽의 너른 공터 같은 공간 너머로 올라갈 산봉우리가 봉긋 솟아 보이고 좌측에는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이 별천지 같은 분위기를 띠었다. 그 평온한 느낌에서 문득 천당이 생각났다. 천당(天堂)이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하늘 장소이니 산행을 시작한 저 아래 마을로부터 치면 이곳도 하늘 장소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의미가 일상의 공간보다 좋은 곳이라면 여기를 그냥 그렇게 여겨도 될 것 같았다. 그 평온한 풍경에 동해 멈춰서 스케치를 했다

 

다시 눈길을 나섰다. 점차 바람이 세게 불고 진눈개비가 날렸다. 시작할 때 맑은 날씨가 돌변하는 듯해서 걱정이 되었다. 몇 년 전 일행과 함께 고생을 했던 백운산 때가 생각났다. 그 때도 시작할 때 좋았던 날씨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씨로 변해서 산행의 어려움을 겪었었다.

 

칼바람을 맞은 뺨이 얼얼했다. 혹시 동상이라도 걸리게 될까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걸었다. 한동안 견디며 걷다 삼거리에 닿았다. 헬기장이 있는 평평한 지점이다. 다행이 바람이 잦아들어 다시 평온함이 느껴졌다. 거기서 백덕산 정상부가 보였다. 이정표에 남은 거리가 0.8km로 쓰여 있었다. 그 곳에서 일행과 함께 사진을 찍고 서둘러 정상으로 행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올라온 길보다 더 가파랗다. 눈이 덮여 원 지형을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암릉지대로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라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르는데 발이 자주 미끄러졌다. 평소 맨 몸으로 자연 앞에 서려는 마음으로 스틱이나 아이젠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 한다. 더우기 전에 등산 학교 수업을 들으니 그것들이 산길과 바위를 훼손하게 된다고 했다.

 

정상으로 가는 외길에 다른 팀으로 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가고 있었다. 삼거리에서 앞에 보이던 봉우리를 우측으로 졸아 가다 보니 좌측으로 높은 암벽이 솟아 보였다. 그 암벽은 거북 등처럼 표면이 층층이 갈라져 있어서 마치 돌들을 쌓아 놓은 듯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백덕산(百德山)이라는 이 산의 이름대로 그 한충 한 층이 백 개의 덕을 이루는 한 조각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암벽에 한그루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었다.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저마다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좁은 공간에 여러 팀의 많은 사람이 섞여 있었다. 옆에서 정상주를 마시며 “첩 하나 보게 해 달라”고 빌었다며 농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산에 오면 산이 크든 작든 정상이 공동의 목표가 된다. 그리고 그 곳에 이르러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정상주를 마시던 분이 소주를 한잔 권했다. 추운날씨에 숙성이 된듯 달디 달아서 술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흐려 시야는 트이지 않았다. 날이 좋으면 그곳에서 월악산, 치악산 등과 멀리 대간 줄기인, 전에 걸었던 선자령도 보인다고 하는데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맑은 날에는 고산 준봉의 산세가 펼쳐 보이는 것이 장관일 듯싶었다. 일행이 삼거리 너른 곳으로 가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삼거리에서 정상으로 오를 때보다 내리막길이 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길이 많이 미끄러웠다.

 

삼거리로 되돌아오니 안치규 건축사가 눈 위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일행이 세 개의 깔판위에 옹기종기 앉아 식사를 했다. 눈발이 내려 식사하기에 편치 않았다. 오후에 있는 모임에 참석하려면 먼저 따로 출발해야 될 것 같아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내려왔다. 내려갈 길은 오를 때 코스보다 더 길어 삼거리에서 4.6km로 쓰여 있었다.

 

내리막길을 지나기가 어려웠다. 아까 오를 때 길보다 눈이 깊게 쌓여 발이 푹푹 빠졌다. 길옆을 디뎌보니 발이 깊게 빠졌다. 아이젠을 차지 않아서 자칫 잘못하면 벼랑에 추락할 위험도 느껴져 길가의 나무들을 붙잡으며 조심조심 걸었다. 산은 온통 눈 천지였다.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라 쌓인 눈에 먼지가 끼지 않고 깨끗했다.

 

내리막길을 걷다 미끄러져 길에 나뒹굴었다. 경사가 급한 길은 제대로 걸어갈 수가 없었다.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 않아 있으니 미끄럼틀을 타듯이 그대로 계속 미끄러졌다. 그것이 지나기 더 편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이 눈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 평소 도구룰 쓰지 않을 생각이지만 아이젠 없이 이런 길을 걷는 것은 무리였다. 어제 늦게까지 일을 하다 아침에 갑자기 준비 없이 나오느라 더 챙기지 못했게 되었다. 웬만하면 문제없이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깊게 쌓인 눈밭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마주 오는 사람에게 물으니 먹골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내려갈 곳을 물으니 거기서 내려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고 했다. 눈길에서 조심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빨리 내려 온 것 같았다. 조금 더 내려오다 보니 먹골까지 2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그 곳 옆 눈밭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다시 햇살이 비추었다. 뒤돌아보니 내려온 산이 높게 보였다. 산에 덮인 눈이 더 희고 깊게 보였다. 미리 택시를 부르려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먹골로 내려 왔다. 택시를 부르고 한참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금방 도착하리라 여기고 기다리는 터라 길가 식당 주인이 권하는 비닐하우스 안에 있을 수 없었다. 20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잠시 후 타고 온 버스가 도착했지만 차에 오르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니 일행이 내려왔다. 아까 먼저 가겠다고 인사한 것이 무색해졌다.

 

택시를 기다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바라보이는 산 풍경이 나름대로 괜찮은 구도로 보여 스케치를 하면서 계속해 택시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 쪽에서는 갔다고 하는데 올라오는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거니 다른 손님을 태우고 오는 것 같다고 하면서 다시 보내겠다고 했다. 추운 밖에 서 있는 동안 온 몸이 시려왔다. 평창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3시 45분 차가 있다고 했다. 늦어도 그 차는 타야 될 것 같은데 한 시간 가까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 차 시간을 놓칠 것 같으면 일찍 간다는 의미가 없어 일행과 함께 올라갈 생각을 했다. 산행에서 세속의 시간을 의식하다 보니 더 바쁘고 마음이 갑갑해지게 되었다. 포기하던지 마음을 비워야 할 것 같았다.

 

다시 전화를 거니 더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주차장에 서 있던 버스 한대가 막 출발하려고 했다. 그 차를 붙잡고 평창을 지나가면 좀 태워달라고 하니 원주로 간다고 했다. 단념하려는데 서울을 갈 거면 태워줄테니 원주에 내려 고속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안도가 되었다.

 

그 일행은 원주고등학교 동기들의 산행 모임이라고 했다. 제일 막내가 55회이고 4회 되시는 분이 가장 높은 기수라고 했다. 옆에 앉으신 분도 4회였다. 차를 태워준 분은 그 회의 전 회장을 지내신 이창하 선생님이었다. 아까 내가 택시 회사와 통화하는 말을 들었다면서 추운데 밖에서 고생했다며 따뜻한 커피를 타 주었다. 그리고 원주고등학교를 나온 아들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 소주와 안주도 갖다 주었다. 예기를 듣고 보니 버스 기사분도 동기였다. 동기중에 변호사, 의사, 교수 등 갖가지 작업을 가진 사람들이 다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차에 탄 사람들도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고 했다.

 

오는 도중 문재 터널을 지나며 이 선생님이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원주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평창을 거쳐 오는 것보다 거리가 더 가깝고 시간도 적게 걸리게 되어 더욱 안도가 되었다. 원주에 들어서 터미널 가까이 내려준 친절한 배려가 감동스레 느껴졌다. 차에서 내리며 뒤돌아서서 모든 분께 인사를 드리니 모두 내 일을 알고 있는듯 한목소리로 잘 가라고 했다. 그렇게 차에서 내리며 큰 마음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까 먹골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초조하고 언잖았던 마음과 한겨울 밖에서 떨었던 한기가 가시고 겨울 산행의 정취와 좋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이 간직되었다.

(2011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