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에 가시가 돋는듯한 날들이 이어진다.

3월이 끝나는 날,
어제까지 비가내린 뒤라 입산통제를 하지않을 것이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오랜만에 산을 향한다.

막상 집을 나섰지만 딱히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한곳에 차를 세워놓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문득 백덕산을 떠올린다.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문재에서 정상 코스를 떠올리고 백덕산을 향한다.

42호 국도를 타고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을 지나 문재를 오른다.
짙은 회색 구름이 산릉들을 뒤덮고 있다.
문재 정상 터널이 가까워질 즈음, 차창밖으로 펼쳐진 예상치 못한 풍경에
눈이 의심스럽다.
다시 한번 자세히 훑어본다.
산을 감싸고 있는 짙은 구름인가 했는데 그것은 하얀빛깔의 눈꽃이었다.
나뭇가지 마다에 눈꽃이 피어있다.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오늘은 재수 좋은 날,
축복을 받은 기분이다.
근래에 좋은 일을 한적도 없는데...

문재터널을 지나서 길옆 주차장으로 차를 붙이는데
입산통제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등산로 입구에 서있다.
주차를 한 후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입산을 할 수있는지 물어본다.
산은 온통 눈으로 뒤덮혀있다.
이런날에 입산을 막는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

그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입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산불예방 입산통제기간이기 때문이고
비록 산불 날 염려는 없지만 산을 해꼬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없다.

산이 좋아서 산을 찾는 사람이 해꼬지 할일이 무에 있겠는가라고
되묻는다.
혼자 산을 찾은 내모습이 가상했는지 그는 한발 물러선다.
이름을 수첩에 적고는 올라가도 좋다고 한다.
끝까지 실갱이 하지않아도 좋아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고는
배낭을 챙겨서 터널 옆 들머리로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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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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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만나는 925봉을 넘어서 발자국 한점없는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간다.
인적없는 이곳에서 나는 그저 행복함을 느낄뿐이다.
시간을 묶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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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과 점점 단절되는 피안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듯이 희뿌연 길을 따라 걷는다.
그저 경사를 오르며 숨이 가빠지기에 올라가고 있음을 알 뿐 바깥 세상과는
전혀 별천지를 나는 걷고 있다.

오늘은 그저 이길을 걷는 것에서 행복을 만끽하자.
목표는 정상까지이지만 정상은 없다.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상은 정상이 아니다.
그저 이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바람서리꽃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난겨울 내내 이것을 보지 못했다. 때를 맞추지 못했었다.
이젠 그 아쉬움마저 잊은 채 봄을 맞았다.
수수한 봄꽃들로 가득한 산을 맞을 채비를 하면서.
그러나 아직 겨울의 끈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3월의 끝자락에서 이것을 볼수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역시 만물의 가치는 그 희소성에 있다.
비록 한겨울에 보는 화려함은 없지만 그것 이상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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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봉 삼거리,
살짝 비켜나있는 봉우리로 올라가니
이곳이 사자산이라는 표지판이 서있다.
한참 비켜나있을 사자산이 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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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쪽으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춘삼월의 끝날에 바람서리꽃 활짝 핀 숲길은 마치 나만의 길인 것 같다.
그저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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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걷지 않은 길은 홀로 든 산객을 위해
마치 예쁜 수를 놓은 융을 깔아놓은 듯 펼쳐져있는데
그림 담는 솜씨가 변변찮아서 아쉬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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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아름다움을 혼자만 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단 몇 시간만 지나면 없어질 이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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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몇년 전에 올라왔던,
먹골에서 이어지는 등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제 목표점까지 남은 거리는 500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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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하늘은 푸른 빛을 드러낸다.
행여 정상에서 환하게 걷힐까 기대를 하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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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15분,
문재를 출발한지 3시간을 훌쩍 넘겨서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제작년 여름에 올랐을때 있었던 허리가 부러진 정상석 대신에
조그만 정상석이 그자리에 대신 세워져 있다.
사방은 여전히 구름에 잠겨있고 바로 건너편의 암봉만이 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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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만이 넘실대는 산정,
오랜 시간을 머무르다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쯤,
올라온 길을 되짚어서 속세를 향한다.

불과 몇 시간 전부터 남겨진 내 발자국을 보면서 돌아오는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고스란히 선명하게 남아있는 내 흔적이 너무 반갑다.
그리고 괜시리 센치해진다.
선명한 내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내 발자국을 피해서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며 걸으려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실소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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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를 향한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느새 바람서리 꽃은 자취를 감추었고
앙상한 가지만 덩그러니 남은 나무들이 새삼 계절의 현실을 느낄때쯤,
다시한번 하늘은 온통 검회색 빛으로 변하더니
광풍과 함께 싸래기눈이 따갑게 볼을 때린다.
그냥 그대로 한참을 걷다가
한겨울의 그것처럼 몰아치는 한기에 더는 못이겨 바람막이를 꺼내어 입고는 마치 등을 떠밀리듯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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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문재터널 주차장,
눈은 그쳤다.
하얀 눈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애물단지가 반갑다.
여섯 시간의 짧은 여행, 마치 별천지 설원의 세상을 빠져나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