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산

 

               *산행일자:2009. 6. 28일(일)

               *소재지  ;경기파주

               *산높이  :박달산369m

               *산행코스:광탄삼거리-전망대-박달산-군부대정-367.9봉-됫박고개

               *산행시간:13시18분-17시27분(4시간9분)

               *동행    :나홀로

 

 

  이번에 오른 박달산은 제 고향인 파주시 광탄에서 고령산 다음으로 높은 산입니다.

조선조 숙종 때 권대련이  중국어학습서인 박통사언해를 이 산에서 숙달하였다하여 박달산으로 불린다는 이 산은 산세가 완만해 가족과 함께 등산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자연학습도 같이 할 수 있도록 등산로를 정비하고 쉼터도 만들어 놓는 등 쾌적한 산림욕장으로 조성하느라 파주시가 나름대로 애쓴 덕분에 태어난 지 61년 만에 처음으로 오르는 박달산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꼭 한 번 오르겠다고 벌써부터 별러왔으면서도 더 높은 산들과 대간 및 정맥들을 종주하느라 산 높이가 400m도 채 못 되는 이 산에 이제껏 짬을 내지 못했습니다. 지난 가을 용화산에서 허리를 다친 후 요즈음은 좀 무리일 듯싶은 정맥 종주를 삼가하고 있어 이때가 찬스다 싶어 이번에 눈 딱 감고 박달산을 오른 것입니다. 고령산과 감악산, 그리고 파평산 등 파주 땅의 웬만한 산들은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지맥이나 이 지맥에서 분기된 단맥들을 종주할 때 한번 씩 다 올랐습니다만, 이 산은 2005년 봄 오두지맥 종주 길에 정상을 오르지 않고 밑으로 그냥 지나쳤다가 이번에야 처음 올랐습니다.   

 

  아침6시에 주일미사를 올린 후 9시경에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연신내에서 정류장 안내판에 적혀 있는 대로 보광사를 거쳐 광탄 가는 33번 버스를 반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정류장이 구파발역 2번 출구 앞으로 옮겼고 차번호도 333번으로 바뀐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용미리를 경유하는 광탄 행 버스에 오르고 나자 가는 길에 석불입상과 윤관장군 묘역을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미리에서 하차했습니다. 석불입상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윤관장군 묘역으로 옮겨 왕릉과 형태가 비슷한 장군의 묘지를 한 바퀴 휘둘러본 후 광탄 읍내로 이동했습니다.


 

  13시18분 보광사와 광탄면사무소 길이 갈리는 광탄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동신아파트 앞에서 하차해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삼거리 슈퍼마켓으로 옮겨 맥주 한 캔을 사 넣은 후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약대울2길의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덩치만 컸지 얼굴부터 순덕이로 생긴 황견하나가 저를 보고 슬쩍 집안으로 들어가 길을 비켜주더니 제가 지나간 후에야 낯선 사람을 보고 멍멍 짖는 것이 자기 일임이 생각났는지 큰 소리로 짖어댔습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에코브리지 앞에 다다르자 오른 쪽으로 광탄면사무소가 보였습니다. 삼거리 출발 12분 후에 “박달산산림욕장종합안내도”가 그려진 안내판 앞에 섰습니다. 다음에 서울에서 용미리를 지나는 광탄행버스를 타고 올 때에는 이번처럼 동신아파트에서 내릴 것이 아니라 그 전 정류장인 광탄면사무소에서 하차해 오른 쪽 큰 길을 따라 오는 것이 이 산에 들기가 훨씬 쉬울 것 같았습니다. 남동쪽으로 난 길로 얼마 오르지 않아 “광무정0.2키로/박달봉3.9키로”의 첫 이정표를 지났습니다. 


 

  왼쪽으로 만장봉과 그 오른 쪽 아래 만장이 고개가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1963년은 중학교2학년생인 제가 시골 창만리의 집에서 여기 광탄시내까지 약3Km를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금촌까지 가서 다시 1.5Km 가량 걸어 문산중학교를 다니던 때였기에 귀가할 때면 저 혼자서 캄캄한 밤에 이 고개를 자주 넘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만장이고개 위에 미군부대쓰레기장이 있었는데 이 쓰레기장을 뒤져 먹을 것과 쓸 만한 물품을 찾아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 때는 배 골은 사람들만이 이 쓰레기장에 모여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즈음은 사라진 듯 보이지 않는 승냥이가 밤만 되면 이 쓰레기장을 어슬렁거리며 기분 나쁜 소리로 울어대 비오는 밤에 이 고개를 혼자 넘을 때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했습니다. 만장봉을 바라보며 제가 굳이 가난했던 옛 추억을 되살려보는 것은 오늘 이 정도로나마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어르신들이 그 공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한 분 두 분 떠나시는 것을 지켜보기가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14시1분 정자가 서있는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광무정에서 박달봉까지 4.1Km 거리가 이번 산행의 오름길인데 초반 얼마간은 키가 낮은 잡목들이 해를 가리지 못해 땡볕을 쬐어가며 산을 올라야했습니다. 올 들어 30도를 웃도는 후덥지근한 날씨에 산행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최대한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고향 산이 아니라면 제가 굳이 산본 집에서 이 멀리까지 찾아왔겠나 싶을 정도로 밋밋한 이산을 오르는 중 야생화조차도 하얀 까치수염 외에는 별반 눈에 띄지 않아 산행 또한 밋밋했습니다. 둥근 나무 대를 세워 로프로 연결해 놓은 비알 길을 걸어 전망대에 올라섰어도 조망거리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2층 누각의 전망대에서 화투를 즐기는 아주머니 몇 분들은 고스톱삼매에 빠진 듯 불청객인 제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전망대를 조금 지나자 그늘진 숲길이 이어져 비로소 걸을 만 했습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두 번째 로프 길을 따라 오르다 1970년대에 만들어졌을 토치카를 보았습니다. 토치카 위 봉우리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277.4봉에서 만장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갈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40-50m 가량 고도를 낮추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세 번째 로프 길을 따라 올라 박달봉 전방 1.7키로 봉우리에 오른 것이 13시42분이었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긴 의자에 등을 눕혀 나뭇잎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며 10분간 쉬었습니다.


 

  15시42분 해발369m의 박달산에 올라섰습니다.

119구급함이 설치된 전망대삼거리를 지나 첫 번째 헬기장에 오르자 북서쪽 멀리로 감악산이 보였습니다.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으로 쓰이는 이 헬기장에서 40m가량 고도가 낮추어 왼쪽 아래로 근창약수터 길이 갈리는 십자안부에서 110m가량 고도를 높여야 이르게 되는 정상까지의 오름길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고되었습니다. 네 번째 로프길이 끝난 지점에서도 한참 더 올라가 두 번째 헬기장이 들어선 정상에 오르자 광탄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보였습니다. 동쪽의 전망데크에 다가가자 북동쪽으로 고령산이 보였고 시계반대방향으로 팔일봉과 꾀꼬리봉, 그리고 금병산도 같이 보였습니다. 정상에서 10분간 휴식을 취한 후 15시53분에 박달산 정상을 출발하면서도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해 영 찜찜했습니다. 


 

  16시26분 군부대 후문 옆을 지났습니다.

정상에서 왼쪽 아래가 마장리이고 오른 쪽 아래는 분수리이며 남서쪽으로 직진하는 길이 이번 산행의 종착점인 됫박고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10분 가까이 똑바로 내려가 여기는 특수훈련장이니 무단으로 출입하지 말라는 군부대장의 경고판 앞을 지났고, 2-3분을 더 내려가 한북오두지맥길로 들어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갈라진 길은 오두산으로 향하고 직진 길은 오두지맥이 갈리는 한북정맥의 분기점에 닿게 되는데 2005년 3월에 한북오두지맥 종주 때 한번 지난 적이 있어 지맥길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계속 직진해 수원백씨 묘를 지나자 왼쪽 아래로 군부대가 보였고 오른 쪽으로 꽤 넓은 공터의 헬기레펠교장이 나타났습니다. 넓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 만난 아스팔트 길 왼쪽으로 군부대 정문이 보였는데 이 길을 건너 산 오름을 이어갔습니다.


 

  17시27분 됫박고개에 도착해 4시간 남짓 걸린 박달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군부대정문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건너 박달산 정상에서 내려선 만큼의 고도를 다시 높여야 했기에 헬기장이 들어선 367.9봉에 올라서기까지 꼬박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폐타이어 길을 따라 훈련용 오름 틀이 있는 훈련장을 지나 367.9봉에 오르는 길에 4년 전에 보았던 위장용미사일을 만나보지 못하고 대신에 여기저기 시들음 병에 걸려 잘려나간 참나무그루터기를 많이 보았습니다. 멀쩡한 나무에로 전염을 막고자 베어낸 나무토막을 비닐로 밀봉한 묶음들을 보고 천수를 다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기장에서 조금 떨어진 송전탑을 지나 “참나무시들음병방제실험시연안내”판이 서있는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오른쪽으로 혜음령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군사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20분간 걸어 됫박고개에 내려가는 길은 편안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파주광탄과 고양벽제를 경계 짓는 됫박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접고 왼쪽 아래 보광사로 내려가 경내를 일별한 후 서울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번에 석불입상과 윤관장군묘역 및 보광사를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이틀 전에는 파주 땅의 임진각, 도라산전망대, 제3땅굴, 통일촌과 도라산평화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이제 파평의 두지나루에서 황포돛대로 임진강을 둘러본 후 율곡선생을 배향하는 자운서원을 찾아본다면 파주의 명소도 거의 다 들러보는 셈이 됩니다. 휴전선과 인접해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파주 땅이 일반인들에 널리 열려 역동성을 띠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고도제한에 걸려 군청소재지인 금촌에도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했습니다만, 이제는 군부대의 협조로 웬만한 산봉우리는 다 올라갈 수 있고 민통선 넘어 명소도 탐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유수대학들이 미군들이 철수한 공간에 새 대학을 짓고 운정지역에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예향의 헤일리마을과 그 옆의 영어마을 그리고 새로 옮겨올 대학들이 파주의 미래문화를 열어나갈 것입니다. 이 미래문화에 디딤돌이 되는 것은 당연히 파주 교하의 지석리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일 것입니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파주 땅에 과거를 디딤돌로 하는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고 기대도 됩니다. 저도 몸은 떠나있지만 파주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