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1,118.8m 강원도 정선) 억새 산행/ Photo 에세이
(2006. 10. 19/남면 증산초교 -민둥산(1,008.8M) - 구슬옥- 화암약수/늘푸른산악회 따라 http://cafe.daum.net/greenalpine2030 tel: 011-253-7094)


*. 전국 5대 억새꽃 군락지 민둥산
민둥산이란 특정한 산을 가리키지 않는 보통명사로 흔히 나무가 없는 산을 말한다. '민둥민둥하다'라는 말은 산에 나무가 없어서 번번하다는 말이요, '민둥머리'란 제주도 사투리로 대머리를 뜻하는 말이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에 위치한 민둥산(해발 1,119m일명 민드기산)은 그 이름처럼 정상에 나무 한그루 없는 산이다. 나무가 있어야 할 14만평의 주능선이 가을이 오면 온통 은빛억새밭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꽃밭에 꽃들이 모여 살듯이 민둥산에 모여 사는 억새는 사람의 키를 푹 파묻힐 정도로 크다.
등산 기점인 남면 증산초교는 해발 645m로 높은데다가 경사가 완만해서 가족산행은 물론 나 같은 나이의 사람들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산에다가 증산역이 있어 기차 여행도 가능한 곳이다.

민둥산을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로 세 길이 있다.

-증산초교 코스: 증산초교-(40분)쉼터-(50분)정상
-삼내약수 코스: 삼내약수(三來藥水)- (50분)갈림길- (70분)정상
-화암약수 코스: 화암약수- (10분)구술동- (150분)갈림길- (70분)정상 (총3시간 50분)

우리나라 5대 억새꽃 군락지로는 민둥산 이외에 제주도 오름지역, 경남 창녕 화왕산, 장흥 천관산, 포천 명성산이 더 있다.

*. 오불출(五不出) 이야기
  요즈음 시중에 유행하는 '오불출(五不出)' 이야기가 있다.
'불출(不出)'이란 말은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조롱하는 말로 요즈음 세상을 풍자하는 유행에 속하는 은어다.

-'복상사(腹上死)'를 절 이름이라 우기는 놈
-'몽고반점(蒙古斑點)'을 자장면 집이라 우기는 놈
-'설운도'를 섬 이름이라 우기는 놈
-'으악새'를 새 이름이라 우기는 놈
-'XXX'도 대통령이라고 우기는 놈

  이 오불출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끝에 둔 것 같지만, 여기서는 으악새를 말하기 위함이다.
'으악새'는 '새' 발음의 장단에 따라 두 가지 뜻으로 나뉜다. '새'를 짧게 발음하면 '억새'의 사투리요, '새:'를 길게 발음하면 '왜가리새'를 뜻한다.
그러니까 고복수가 노래한 '짝사랑' 중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에서의 '으악새'는 가을과 호응하는 억새를 뜻하는 말이다.

'으악새 슬피 우니'라는 것은 억새가 바람에 잎이 서로 부닥쳐서 사각거리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으악새'를 '새'라고도 보는 견해의 이유는 백로과에 속하는 '왜가리' 새의 우는 소리가 '으악 으악' 또는 '왝왝'하고 울기 때문이라 한다.

*. 민둥산 등반길

  고양시 일산에서 5시 30분에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어둠을 뚫고 4시간을 달려 민둥산 산행 들머리인 정선군 남면 증산초등학교 건너편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날씨는 안개로 뿌옇지만 가을치고는 무더운 요즈음 날씨에 산행으로는 적당한 날씨였다.
  초라한 천불사 아래에 있는 입산통제소에서는 '민둥산억새꽃축제' 위원회의 노인들이 청소비 명목으로 입장료 1,000원씩(단체 700원)을 받고 있는데 주변에 산행지도와 카르스트 지형으로 된 '발구덕 마을'을 소개하는 표지가 요란하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2.7km 산행길로 가족들도 오를 수 있다던 말과는 달리 초입부터 내내 엊저녁 비가 온 뒤끝이련만 밀가루 같은 고운 흙이 날리는 힘든 오름길이었다. 힘겨워 하는 나에게 함께 한 우리 일행이 묻는다.

  "힘드시지요?"
하는 말에 그렇지 않다고 가볍게 대답은 하였으나 민둥산이란 이름 같이 그렇게 가볍게 볼 산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백 개의 산행을 하였지만 힘들지 않은 산은 하나도 없지 않던가.
'그래 쉬지 말고 가자. 요번 산행에서도 내가 최고령인 모양이니 일행에게 누(累)가 되는 사람이 되지 말자.' 하고 중간에서 열심히 열심히 발길을 재촉하였더니 '완경사등산로 3.5km'라는 이정표가 있다. 2002년 축제 시에 누구나 갈 수 있도록 2.7km의 길을 3.5km로 우회하는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바로 우측 위로 가파른 옛길 지름길이 억새 길인데, 억새 산행을 와서 어찌 편안한 길을 고집하겠는가.

거기서 얼마 오르니 의자와 포장마차와 화장실이 있는 휴게소가 있고 그 좌측에 삼내약수 쪽으로 향하는 차도가 있다.
 멋있는 나무층계를 올라 수림지역을 지나니 억새풀 너머 저 멀리 남면(南面)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한다.

*. 아, 억새의 나라 민둥산
드디어 민둥산 정상으로 이어진 억새길이 시작되고 있다. 이 것을 보러 백리 길을 달려 온 것이다.

아, 억새의 나라 민둥산. 14만 평의 시야에 나무 한 그루 없이 전개되는 억새꽃의 그 하얀 물결이여! 그 억새가 바람 따라 파도 같이 일렁이는 모습이 노 시인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나도 한 포기 억새가 되고 싶다
쪽빛 동해 바람에 머리를 씻기우고
그리움
찾아 모여드는
민둥산 가을이 되고 싶다


 이렇게 나무 대신 억새가 무성해진 이유는 가난한 이 고장의 옛 조상들이 곤드레, 참나물 등 산나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매년 한번씩 불을 질러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디어 민둥산 정상에 올라 사방을 굽어보니 전망은 안개가 뿌옇게 가려서 주변의 산은 헤아릴 수 없지만, 억새 사이로 난 통나무 울타리 사이로 오르내리는 길이 구불구불한 속에, 신선 같은 등산객들의 옷차림이 어울려 단풍이 든 것같이 아름답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여느 산보다 많았고,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준 민둥산 가을의 억새풀에게 준 '풀꽃상' 본상과 '민둥산억새풀 잔치를 벌이는 정선군 남면 사람들'에게 준 부상과 같이 천혜의 억새 평원을 자랑하는 이분들에게 나도 축하의 말을 전해 주고 싶다.

 
 
*. 발구덕 마을

민둥산 입구도 그렇지만 정상 표지에도 '발구덕 돌이네마을'이 자주 등장한다. 그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성군 남면 민둥산 일대 지역은 억새 숲으로도 유명하지만, 석회암 지대의 특징인 땅이 움푹 팬 돌리네(구덩,Doline)가 형성되어 있는 카르스트 지형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카르스트 지형은 석회암내 탄산칼슘이 빗물에 용해되어 나타나는 침하 현상으로 돌리네가 발달되어 산 주변에 4개를 포함하여 총 12개 이상의 돌이네가 주변에 분포하고 있으며 산 아래 '발구덕'이란 마을도 8개의 구덩이(돌리네)가 있다는 것에 그 이름이 유래 되었다.
'발구덕'이란 동내 이름은 그 마을에 구덩이(돌리네)가 8개가 있어 '팔구덩이'라고 하던 것이 그 뜻을 잃고 '발구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민둥산 억새꽃 능선은 정상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전경도 일품이지만, 뒤돌아보는 민둥산의 모습 또한 환상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감격하게 한다. 이젠 다시 오랴 하는 나이를 생각하면 그 아름다움은 슬픔의 경지까지 나아가게 한다.
우리들 일행의 점심은 지악산을 향한 정상이 보이는 곳 목책 가에서 하고 있었다.
병든 아내를 두고 나 홀로 산행을 떠나면서 도시락까지 부탁할 수가 없어서 꼭두 새벽에 일산의 24시김밥집에 갔더니 너무 일러서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막 가게를 열고 있는 떡집에서 떡을 사가지고 왔기 때문에 합류하기가 마음에 내키지 않더니 반가운 부름이 있어 산상의 만찬을 공짜로 들다가 일찌감치 하산을 서둘렀다. 언제나 맨 뒤에 쳐져서 하는 나의 산행 속도를 고려함이다.

*. 갈대와 억새의 어원

  민둥산 정상에서 지억산(1,116.7m)에 이르는 억새 능선 또한 장관이었다. 그러더니 지억산 갈림길에 들어서니 언제 갈대 초원이 있냐는 듯이 무성한 수림길이요, 단풍 길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왜 갈대를 '갈대'라 하고 억새를 '억새'라고 하였을까?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어원에 대한 궁금증이 누구보다 심하기 짝이 없다.
갈대의 줄기는 녹색으로 속이 비어 있어서 그 모양이 대나무와 유사한 풀이라 해서 갈대라 부른 것이라면, 억새는 그 잎이 갈대보다 더 억세어서 억새풀이라 한 것 같다.
  갈대와 억새를 가장 쉽게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물가나 습지에 사는 것이 갈대요, 밭두렁이나 산에 피는 것은 억새로 구분하는 것이다.
둘 다 벼과에 속하는 생김새가 비슷한 이 두 다년생 식물은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집단적 군락을 이루는 것으로 둘을 비교하여 보면 털이 부숭부숭한 것이 갈대요, 매끈한 것이 억새다. 억새의 키는 평균 1m 20cm 정도지만 갈대는 2m 이상 자란다.
  갈대는 키가 크고 줄기가 가는데, 그 줄기에 비하여 잎이 무성하므로 가을바람이 불면 바람의 방향 따라 금방 바람에 쏠린다. 그래서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화는 여자의 마음'이란 노래 가사가 생기게 된 것이다.
옛날 우리들의 조상들은 갈대로 지붕도 이고, 갈목비라는 빗자루도 만들거나 김을 말리는 발이나 돗자리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식용으로는 가축의 사료로도 쓰이고 갈대의 땅속의 어린순은 죽순처럼 먹기도 하였다. 약용으로도 쓰여서 한방에서는 갈대의 뿌리를 말려 구역질이나 구토를 멈추게 하는 진토제로 쓰기도 하였다.
한 편 억새의 줄기는 잘 말려서 지붕을 잇기도 하고, 말려 다린 물은 이뇨제로 쓰기도 했다.

*. 국민관광지 화암약수


동양 사람들이 약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수터에 대한 관심이 유독 크다. 서울에는 동명(洞名)까지 '약수동'이 있을 정도다. 약수가 소화불량과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거나, 피부병, 신경통, 안질, 빈혈, 만성부인병에 약효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유명한 약수터로는 서울에 장춘약수터, 현저동약수터(靈泉)를 위시해서 충북에 명암, 초정, 부강약수터, 경북에 달기, 오전, 도통약수터, 경남의 영산, 화개약수터가 그런 곳들이다.
그 중에 하나가 정선의 화암약수터다. 화암약수터엔 이런 전설이 전하여 온다.
- 1910년 무렵이었다. 가난하였지만 마음 착한 문명무씨라는 이 화암리에 사는 분이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구슬봉 높은 바위 아래 청룡, 황룡 두 마리가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꿈을 꾸고 꿈 속의 곳을 찾아가서 오늘날의 화암약수터를 발견하게 되었다.
  정상에서구술동을 지나 화암약수터까지 8.1km는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다.
도중에 불암사를 들려 갈까 하였으나 입구에 세워놓은 시주 이름의 거대한 비석을 보고 발길을 돌려 버렸다. 절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한 기림이 너무 속되다고 여겼기 때문에서였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냇가에는 우리 일행들이 탁족을 하고 있었고, 드문드문 있는 단풍 앞에서는 가는 가을을 기념하고 있었다.

*.민둥산 부근의 명승지
  노인들이 하는 말 중에 '젊은이들을 따라 여행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따라잡기가 힘들고 그보다도 젊은이들에게 폐가 된다는 것이다.  속도를 자랑하는 그 건장한 젊은 산꾼을 사이에 낀다는 것은 고생을 자초하는 격이지만, 그런 무리를 하지 않고는 어찌 민둥산을 보겠는가. 요번 산행에는 추억이 어린 화암약수를 들른다 하니 이 얼마나 황홀하고 복된 일인가. 이 정선의 곳곳은 젊어서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누비고 다니던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산행 들머리인 남면 증산초등학교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7~80년대 서민의 애환이 어린 탄광촌 사북이 있다. 거기서 고한 조금 못 미쳐 그 유명한 카지노 강원랜드가 있고 더 남쪽으로는 한국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제일 높은 고개라는 만항재(1,340m)로 가는 도중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정암사(淨巖寺)가 있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당우를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다음과 같은 그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이 있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通道寺), 오대산 중대(中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영월의 법흥사(法興寺), 강원도 고한의 정암사(淨巖寺)가 그곳이다.

우리들의 민둥산 종주 끝머리가 국민관광지 화암약수(화암제1경)인 동면(東面)이다.
거기서 남동쪽 길을 따라 가다보면 유명한 정선8경을 여섯 군데나 만나 볼 수 있다.
화암약수터 매표소 옆을 자세히 보면 기암괴석의 절벽 위에 큰 거북이가 남쪽을 향해 기어가고 있는 모양이 있는데 이것이 화암2경인 거북바위다.
소금강 입구의 절벽 위에 뾰족하게 깎아 세운 듯이 우뚝 솟아있는 두 개의 돌기둥이 5경 화표주(華表柱)다. 옛날에 신선들이 집신을 삼았다는 전설이 전하여 오는 곳이다.
이 화표주에서부터 4km 펼쳐지는 사북 방향으로 우측에 있는 기암절벽이 6경인 '정선소금강'인데 겨울에는 눈경치가 유난히 아름다워서 설암(雪岩)이라고도 불린다.
소금강이 끝나는 곳에 한치마을이 있고 몰운대 쉼터가 있다. 여기서 300m 지점에 오른쪽에 있는 제7경 '몰운대'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굽어 살필 수 있는 층층한 암석이 이룬 반석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몰운대에서 300m 우측에 제8경 광대곡이 있다. 거기에는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붙은 3km 신비의 계곡이 있고 12용소를 비롯하여 촛대바위, 영천폭포, 동굴 등을 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