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억새! 억새! 억새가 만발한 민둥산

 


 


 


  민둥산 개요

 

  강원도 정선군 남면에 위치한 민둥산(해발 1,119m)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상주능선에 나무가 없고 광대한 면적에 억새초원이 형성된 특이한 산으로, 우리나라 억새의 대명사라고 불리어질 만큼 가을철에는 온 산에 출렁이는 은빛억새물결로 장관을 이룹니다. 이렇게 억새가 무성해진 이유는 산야초가 잘 자라는 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해 매년 한 번씩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곳 주변을 흐르는 물은 상류의 사북읍 및 함백산 일대가 채탄지역이었으므로 물빛이 카바이드 색깔에 가까운 회색  흙탕물입니다. 그 이유는 1960년대에서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인 무연탄을 공급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증산 초교∼민둥산 정상

 

  2005년 10월 22일 토요일, 35명의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G산악회 주관)가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을 지나 산행들머리인 정선군 남면 무릉리 증산초등학교 앞에 정차합니다(11:05). 국도 38호선은 동남천을 흐르는 계곡을 따라 꼬불꼬불하게 조성된 길입니다.


  과거 강원도 오지의 산촌마을에 불과했을 이곳이 이제는 전국에서 민둥산을 찾아오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산행안내도에는 이곳이 해발 645m임을 알려줍니다. 이미 버스에서 내린 많은 사람들이 등산로 입구에 줄지어 서 있는데 1인당 청소비 명목으로 1천 원씩 징수하니 과거 별 볼일 없었던 민둥산이 이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모했습니다.

 

  그러나 산에서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므로 청소비를 징수한다고 꼼수를 부리기보다는 차라리 떳떳하게 "억새관람료" 또는 "민둥산입장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배낭을 맨 등산객들과 평상복 차림의 청소년들이 한꺼번에 등산로로 진입하니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산행초입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므로 빨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갈림길에서 돌아가는 길을 두고 빠른 길을 택하여 오르니 등산로 지체가 풀립니다.


  간간이 뒤돌아보면 중산마을이 내려다보이는데 주차장에는 대형버스가 15대 이상 주차되어 있습니다. 계속되는 오르막을 헤쳐 나가니 임도입니다.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발구덕마을에 다다르지만 우리는 바로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합니다.

 

  임도 바로 뒤에는 민둥산억새축제추진위원회에서 세워둔 '소원성취표찰 달기 안내문'이 있는데, 표찰(개당 3천원)을 구입하여 소원을 적어 걸어두면 민둥산 산신께서 지켜주며 이듬해 산신제때 소각하므로 소원이 성취된다는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오르막을 지나 오른쪽 비탈면으로 돌아가던 등산로는 다시금 왼쪽으로 꺾여져 위로 올라가는데 맑은 가을 하늘아래 동남쪽 조망이 확 트여 눈이 시원합니다.


  정상이 가까워지는 능선에 올라서자 길섶의 소나무가지에 눈이 조금 맺혀 있습니다. 이름하여 첫눈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어제부터 설악산 대청봉에는 많은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오늘 우리가 오른 민둥산에서 첫눈을 감상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쪽의 두위봉(1,466m) 꼭대기가 하얗게 변해 있어 처음에는 억새가 꽃을 피운 곳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바로 어제 내린 눈의 흔적입니다.          

  
  정상이 바라다 보이는 곳부터 주변은 온통 억새천국입니다. 그러나 등산로 주변은 사람들이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 놓아 억새 속에 파묻혀 증명사진을 남길 수는 없습니다. 또한 바람이 거의 없어 은색빛깔로 출렁이는 억새의 모습을 직접 감상할 수 없음은 유감입니다. 쉬어 가는 장소인 움막을 지나자 드디어 정상입니다(12:20).


 

    증산초교에서 민둥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증산마을과 주차장


 

    소원성취표찰 달기 안내문


 

     산신제단 밑에 걸려 있는 표찰들


 

                         뒤돌아본 증산마을

 


 

      민둥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동남쪽 조망


 

                      흰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쪽의 두위봉 


 

    지난밤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 능선의 소나무


 

        억새풀밭사이의 등산로로 오르고 있는 사람들뒤로 두위봉이 보임   


 

          가야할 정상


 

                         등산로 옆의 쉬어가는 장소(움막)

 


  민둥산 정상의 풍경

 

  넓은 정상 한 가운데에는 새로 조각된 거대한 정상표석이 밧줄에 묶인 채 바닥에 드러누워 있습니다. 행정당국이 기존의 다소 초라한 표석과는 별도로 큰 것으로 설치작업을 추진 중에 있군요. 누운 표석을 중심으로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죽 둘러앉거나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고 그 뒤의 오른쪽에 있는 기존의 아담한 표석도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한마디로 일품입니다. 남쪽으로는 지나온 민둥산의 억새능선너머 두위봉이 흰머리를 자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가야할 억새능선과 지억산(1,116m) 너머 이름 모를 고산들이 청명한 가을하늘아래 춤추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으로는 첩첩한 산그리메가 하늘의 뭉게구름과 조화를 이뤄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특히 동남쪽으로는 백두대간 길에 위치한 함백산이 특유의 안테나를 자랑(?)하면서 주변을 호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동북쪽으로는 두타산과 청옥산까지 조망된다고 하지만 필자의 능력으로는 분간이 안됩니다.  

    
  그리고 강원도 지방에 내린 첫눈은 하루가 지난 지금에도 해발 1천 미터 이상의 고산에 그대로 쌓여 있어 오늘 산을 찾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억새꽃에 생기가 부족한 것을 보면 억새도 한창 때를 이미 지난 듯합니다. 필자는 2년 전 가을 민둥산을 찾아 오늘과 같은 코스로 산행을 했는데 그 당시의 억새는 정말 필설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평소 생활근거지 근교의 산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같은 코스로 한번 방문한 산을 다시 찾는 일은 흔치 않지만 필자는 2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곳에 온 것입니다.      


 

                      정상 표석


 

          정상표석 옆의 지형설명문


 

          정상에서 바라본 북서쪽 조망


 

    정상에서 뒤돌아본 남쪽 조망(증산마을과 두위봉이 선명함)


 

    가야할 북쪽 능선


 

                       남쪽 하늘의 뭉게 구름


 

         정상에서 바라본 북동쪽 조망


 


 


  억새와 갈대의 비교

 

  억새의 장관을 보러 민둥산에 왔으니 갈대와 어떤 차이가 나는 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억새와 갈대는 생김새는 물론 꽃이 피고 지는 계절까지 비슷하지만 둘은 엄연히 구분됩니다. 우선 억새는 산이나 비탈에 살지만 갈대는 물가에 무리를 이뤄 삽니다. 또한 억새의 뿌리는 굵고 옆으로 퍼져 나가는데 비해 갈대는 뿌리 옆에 잔뿌리가 많습니다.


  그리고 억새의 키는 1m 20cm 정도가 대부분이지만 갈대는 2m 이상 자라며, 억새는 은빛이나 흰색을 띠는데 비해 갈대는 고동색이나 갈색을 띱니다.

 

  특히 억새꽃은 생김새가 백발과 비슷해 황혼과 유달리 잘 어울리므로 억새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해질 무렵 해를 마주 보고 봐야 합니다. 낙조의 붉은빛을 머금으며 금빛 분가루를 털어 내는 억새는 가을이 전해 준 가장 큰 자연의 선물입니다(자료 : 2003. 6. 26 소년한국일보에서 발췌).

 


  민둥산 정상∼불암사

 

  민둥산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흙 길은 하루 전 내린 눈이 녹아서인지 무척 미끄럽습니다. 이렇게 미끄러운 내리막에는 등산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만 스틱이 없는 일반인들은 길을 가는데 애를 먹습니다.


  한 구비를 돌아가 응달에 들어서니 대지에는 새하얀 눈이 쌓여 있어 탄성을 지릅니다. 산악회 회원들이 임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는 임도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니 지억산 사거리입니다.


  이정표를 보니 지억산까지 15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어 홀로 왼편의 임도를 건너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가다가 그만 되돌아섭니다. 다시 억새풀숲을 지나 뒤를 돌아보며 햇빛에 반사되는 은색 억새를 배경으로 카메라 초점을 맞추니 오늘 산행 중 가장 좋은 사진을 얻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완만한 오르내림을 계속하다가 내리막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던 등산로는 다시 왼쪽으로 꾸부러져 임도와 연결됩니다. 임도 옆의 고랭지 채소밭에는 수확을 거둔 후 듬성듬성 남아 있는 배추가 바람에 흩날리는 송엽(松葉)을 쓸쓸하게 맞으며 가는 세월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하산길의 억새


 

    뒤돌아본 민둥산 정상


 

     태양빛에 반사된 억새군락

         삼거리 이정표


 

                       소복히 쌓여 있는 첫눈


 

     임도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산악회 회원들


 

    지억산 사거리 이정표


 

                       남서쪽 조망


 

    하산길 도로변의 등산 안내도

 


  불암사∼화암약수

 

  도로 오른편 안쪽에 위치한 불암사 경내로 들어서니 제법 운치가 있어 보이는 범종각이 홀로 산사를 찾은 나그네를 불심(佛心)도 없이 왜 찾아 왔느냐고 질책하는 것만 같습니다. 범종각 옆의 장독대에는 옹기 독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어 옛날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오른쪽 언덕 위의 대웅전 옆에는 오색으로 물든 단풍나무가 부처님과 대화를 하는 듯 퍽 평화로운 정경입니다. 


  다시 도로로 되돌아와 차도를 따라 걷습니다. 일반적으로 하산한 후 차도를 걷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인데도 오늘은 개천을 따라 펼쳐지는 단풍을 구경하는 재미에 지친 줄도 모른 채 발걸음이 매우 가볍습니다.

 

  사실 민둥산은 억새를 보기 위한 산이지 단풍구경을 하려는 산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민둥산 산행을 하면서 단풍다운 단풍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화암약수에 이르기까지 왼쪽의 개천을 중심으로 우뚝 선 기암절벽에 또는 냇가에 화려하게 옷으로 단장한 단풍나무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대웅산 불암사(大雄山 佛巖寺)라는 대형 사찰표석을 뒤로하자 개천건너 팔각정 안에 위치한 화암약수(畵巖藥水)는 신선이 마시던 영험한 약수로 '불노장생수(不老長生水)'라고 찬미한 비석이 서 있습니다. 태고의 신비함을 간직한 정선군 동면 화암리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곳을 "화암팔경"이라 부르는데, 화암약수는 그 중 제1경에 속합니다.

 

  안으로 들어가 겨우 물 한 모금을 떠 마셔보니 꼭 설악산 오색약수처럼 철분이 굉장히 많은 물입니다. 하도 이름을 날리는 약수이기에 수통에 채우려고 하였지만 수량이 적어 포기하고 맙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쌍약수"라는 이름이 붙은 약수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여러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주차되어 있는 버스에 오릅니다(15:28).

 

  오늘 산행에 4시간 23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억산으로 가다가 되돌아오고 또 불암사 경내를 둘러보는 등 유유자적한 산행을 했으므로 4시간 미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산행코스는 증산초교/민둥산/지억산사거리/불암사/화암약수입니다.  


 

     불암사 범종각과 장독대


 

      불암사 대웅전과 단풍


 

                      하산길의 단풍(1)


 

        하산길의 단풍(2)


 

                         하산길의 단풍(3)


 

    대웅산 불암사 안내표석


 

      화암약수


 

                      화암약수을 찬양하는 비석


 

          옹기에 새겨진 각종 싯귀

 


  정선 5일장

 

  화암약수를 출발한 버스는 지역의 명물인 '정선 5일장'으로 향합니다. 정선 장터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다섯 시가 다된 시각이라 파장 분위기가 엿보이지만 그때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저자 거리에 펼쳐 놓은 여러 상품들이 어렸을 때 고향에서 보던 5일장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버스에서 한꺼번에 사람들이 내렸지만 장내를 둘러보는 사이 모두들 어디로 갔는지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일행을 찾는 것도 귀찮아 홀로 마음놓고 장터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중앙통로로 들어가니 '정선5일장 먹거리골목'이 있는데 식당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입구 쪽으로 나와서는 큰 가마솥의 팥을 열심히 젓고 있는 남자에게 음식 메뉴에 적혀 있는 "콧등치기"라는 것이 무슨 음식인지 질문을 하니 메밀국수(모밀국수)를 강원도 말로 이렇게 부른다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가격이 대부분 3천 원에서 5천 원 정도로 저렴합니다. 필자는 첫 가게에 자리를 잡고 손칼국수 한 그릇을 시킵니다. 벽에 부착되어 있는 메뉴를 보니 정확하게 20가지입니다. 이들 음식에 대한 재료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아주머니 2명이 일하고 있는 데 손님이 와서 주문을 해도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무척 바쁜 모습입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다 만들어 팔겠다고 욕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있는 메뉴 약 5가지만 선별해서 팔아야 좋을 것 같습니다.


  필자도 한참을 기다려 주문한 칼국수 상을 받았는데 배추김치와 무김치의 맛이 입에 살살 녹습니다. 칼국수의 양도 많지만 메밀을 넣었는지 도시에서는 국물이 횐 색인데 비하여 여기 국물은 메밀색깔이 나는 것이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현재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이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김치애호가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지금, 이곳 고랭지 밭에서 재배된 채소로 담았을 우리의 김치를 안심하고 먹을 수가 있어 좋습니다. 


  귀경 길의 버스 속에서 한 등산객이 정선에서 파는 음식은 과거에는 춥고 배고픈 시절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웰빙 붐을 타고 배부른 사람들이 즐겨 찾는 메뉴가 되었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잠을 청해 봅니다.

 

  그렇지만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해 지는 것은 장거리 산행을 하는 필자의 핸디캡입니다. 자리에 앉은 즉시 코를 골 정도로 잠에 골아 떨어지는 사람이 정말 부럽습니다.


 

       정선 5일장 먹거리골목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