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토요일), 22시 10분경에 집을 나와서 서울역 8번 출구에 도착하니 23시경. 수십 미터 앞에 이미 일산하나산악회의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무박 산행은 이번이 처음인데 목적지는 통영의 미륵산, 서울에서 당일 산행을 하려면 너무 멀어서 오고 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전날 밤에 출발하여 한밤부터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 곳이다.

버스는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을 예방하기 위해서인지 기흥휴게소, 인삼랜드휴게소, 산청휴게소, 거창휴게소 등에 들러 쉰 후에 다시 출발하여 통영시에 이르러 연륙교를 건너 미륵도로 들어가서 5시 5분경, 주차장인 용화사광장 앞에 도착한다.

버스 두 대에 가득 탄 90명에 가까운 산행객의 대부분은 여기서 라면을 끓여 아침을 먹기로 하는데 자신은 밤중에 식사를 하는 게 내키지 않아서 선두로 가는 다섯 명쯤의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가게 되는데 중간에 쌍스틱을 펴느라고 뒤떨어져서 쫓아가게 된다.

가로등이 군데군데 켜진 임도를 지나니 어느덧 등로가 시작되고 헤드랜턴이 꺼지면 칠흑 같은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을 등로를 올라 도솔암 입구를 지나서 산행을 한 지 30분 만에 방향표지판과 돌탑이 설치돼 있는 미륵치에 이르는데 방향표지판을 자세히 살펴보니 안부 오거리인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띠밭등,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어지면 현금산,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꺾어지면 야소골, 직진하면 미륵산으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미륵산까지 0.8 킬로미터이고 현금산까지 1.1 킬로미터다. 여기서 현금산을 들러보고 싶어 잠시 망설이다가 선두는 미륵산 쪽으로 갔고 홀로 어두운 밤중에 외진 산길을 걷다가 야행성인 멧돼지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륵산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차 안에서 눈만 감고 있었지, 깊이 잠든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기에 육산이지만 바닥에 바위가 많이 튀어 나와 있는 험한 오르막길을 오르니 가끔 걸음이 비틀거려진다.

미륵치에서부터 험해지는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시내의 야경이 보이는 곳에서 이따금 야경을 조망해 보기도 하며 철계단을 올라서 돌탑이 있는 바위에 오르면 통영항 주변의 야경과 적막에 쌓인 다도해의 실루엣이 마음을 적시고 걸음을 멈추게 한다.

진행방향을 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의 실루엣이 눈앞에 다가오고 돌탑 두 개가 있는 바위에 올랐다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에 오르니 길은 끊어지고 막다른 절벽이라서 되내려와 조심스럽게 바위지대를 내려서서 여명의 희미한 빛이 바다 저편에서 솟아올라 서서히 환해지는 미륵산 정상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니 곧 해발 461 미터의 미륵산 정상에 이른다.


 


가로등이 켜진 임도.


 


돌탑이 있는 미륵치의 방향표지판.


 


어둠 속의 등로 1.


 


어둠 속의 등로 2.


 


어둠 속의 등로 3.


 


철계단 위의, 돌탑이 있는 바위.


 


돌탑이 있는 또 다른 바위.


 


여명 속의 미륵산 정상.


 

목제 데크가 넓게 설치돼 있는 정상 부분은 밤새 영하의 추위에 시달린 데크의 바닥에 온통 허옇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어서 미끄러워 걸음을 옮기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여명 속에 내려다보는 통영항의 은은한 야경과 고요하고 평화로운 다도해의 정경은 여독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며 그 아름다운 풍광이 주는 흥취를  흠뻑 맛보게 해 준다.

7시가 가까워지니 동쪽의 섬 위로 일출이 시작되는데 하산하면서 일몰과 석양은 가끔 봤었지만 산상에서의 일출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서 그 감회는 무척 각별했고 힘든 무박 산행의 보람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섬 위로 살짝 고개를 내민 해는 일분 만에 완전히 섬 위로 떠올라서 서서히 더 크게 보이면서 그 빛이 훨씬 더 밝아지기 시작한다.

육지와 두 개의 연륙교로 연결돼 있는 미륵도의 한가운데에 치솟아 있는 미륵산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짧지만 느긋하게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며 산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산림청이 선정한 백대 명산 중의 하나이기도 한 산이다.

그리고 통영이라는 지명도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됐었던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고 계획된 군사도시였었던 이 부근에서 한산대첩과 당포해전 등의 화려한 승전이 펼쳐졌었던 것이다.

또한 한산도에서 여수에 이르는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동쪽에서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명 속의 통영항.


 


여명 속의 다도해 1.


 


허옇게 서리가 내려앉은 목제 데크.


 


여명 속의 다도해 2.


 


여명 속의 다도해 3.


 


봉수대.


 


다도해의 일출 1.


 


다도해의 일출 2.


 


현금산능선과 지나온 산불감시초소.


 


미륵산 정상의 전망대.


 


해발 461 미터의 미륵산 정상.


 

아침을 먹고 사방을 조망하며 일출도 보면서 50분 남짓 미륵산 정상에서 머물다가 봉수대 쪽으로 내려선다. 봉수대 밑에서 박경리 묘소 전망 쉼터에 갔다가 그 밑의 당포해전 전망대에서 당포해전 전적지를 내려다보고 다시 오르는 길에 봉수대의 절벽에 자라고 있는 부처손에 유심히 눈길이 간다.

동그란 목제 데크 전망대의 한복판에 최근에 설치해 놓은 정지용 시비를 둘러보고 나서 미래사 쪽으로 내려간다. 나무계단을 내려서서 산길을 내려가면 10분 만에 무덤 한 기가 있는 곳에 용화사광장으로 꺾어져 내려가는 첫 번째 갈림길이 나타나고 다시 5분 만에 두 번째 갈림길이 나타난다. 여기서 직진하여 몇 분쯤 더 내려가면 미래사에 닿는다.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20분이 걸렸다.


 


미래사와 띠밭등으로 가는 길.


 


당포해전 전적지와 당포해전 전망대.


 


박경리 묘소 전망 쉼터.


 


봉수대와 부처손.


 


최근에 설치된 정지용 시비가 있는 전망대.


 


미래사로 내려가는 길.


 


용화사광장으로 내려가는 첫 번째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 - 미래사까지 400 미터.


 


용화사광장으로 내려가는 두 번째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 - 미래사까지 100 미터.


 

미래사에 들어가서 대웅전도 둘러보고 약수터의 물도 마셔보는데 물이 너무 탁해서 마시기가 꺼려졌지만 불자 한 사람이 절간에서 항상 먹는 물이라고 먼저 먹는 것을 보고 나서 먹어보지만 찝찝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포탄 사격장이 있는 명성산의 계류처럼 색깔이 탁하니...

해우소에도 들르고 미래사를 차분히 둘러보다가 마루에 앉아 쉬기도 하며 30분 남짓 미래사에 머물다가 다시 침엽수들이 상쾌하게 하늘로 쭉쭉 뻗어 있는 산책로를 3분쯤 되돌아가면 띠밭등을 거쳐 용화사광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닿는다. 여기서 잠시 망설이며 미륵산으로 되올라가서 정토봉과 현금산까지 올랐다가 내려갈까 생각해 보다가 11시까지로 약속한 하산시각에 맞추기 어렵고 띠밭등과 용화사를 둘러보며 시간이 좀 남더라도 느긋하게 산행을 즐기고 싶어서 미륵산의 허리를 휘감고 도는 산길로 걸음을 옮긴다. 갈림길에서 1분 만에 왼쪽으로 꺾어져 오르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길로 100 미터만 가면 미래사약수터라고 방향표지판에 표기돼 있어서 호기심이 발동하여 4분을 올라 미래사약수터에 닿는데 100 미터는 더 될 듯하다. 미래사로 내려가는 식수라고 하는데 동파방지를 위해서인지 볼밸브는 핸들을 빼 놓았고 그 옆의 철판 뚜껑은 열어보지 않았는데 그 통 속에서 샘물이 땅 속에 얇게 묻은 PVC 파이프를 통해 미래사로 내려가나보다. 미래사약수터에 잠시 앉아 쉬는데 여기에 설치된 방향표지판에는 띠밭등까지 1,1 킬로미터라고 표기돼 있어서 이 길로 가려고 하다가 2분 만에 다시 올라왔었던 갈림길로 되내려가서 미륵산의 비탈을 굽이굽이 도는 완만한 산책로를 걷게 된다.


 


미래사.


 


미래사의 약수터.


 


 

기와지붕이 특이한 미래사의 범종루.


 


미래사의 대웅전.


 


미래사의 전경.


 


되돌아온 두 번째 갈림길의 방향표지판.


 


미래사로 내려가는 식수가 있는 약수터.


 


걷기 좋고 운치 있는 산책로.


 

띠밭등이 가까워지자 케이블카가 하늘 위에서 오르내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고 비탈진 넓은 잔디밭과 사철 푸른 소나무들이 멋지게 어우러진 띠밭등이 그 운치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띠밭등 주변의 산책로는 나무 부스러기들을 모아 놓아서 우레탄으로 포장한 산책로보다 더 푹신한 감촉을 발바닥에 전해 주는데 화재에는 무척 취약할 듯하다.

띠밭등에는 도남동 하산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가 있는데 용화사광장 쪽으로 걸어간다. 갈림길의 왼쪽 위에 만들어 놓은 예쁜 화장실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갈림길의 돌계단을 오르니 희고 작은 자갈을 잔뜩 깔아 놓은 임도가 시작된다. 임도를 걷다가 왼쪽의 산비탈에 길이 나 있어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임도를 고집하여 걷는데 임도를 따라 구불구불 돌아 내려가니 그 길은 돌아가지 않고 바로 내려가는 지름길이다. 임도를 15분쯤 내려서니 한참 공사중인 용화사 입구에 닿는다.


 


띠밭등 1.


 


나무 부스러기들이 잔뜩 깔려 있어서 푹신한 길.


 


띠밭등 2.


 


도남동 하산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


 


임도의 정경.


 


임도에서 쳐다본 미륵산.


 

용화사로 들어가서 거북이의 입에서 나오는 물이 위의 물통에 고였다가 다시 용의 입으로 나오는 이단 구조의 약수터의 물도 한 바가지 퍼 마시고 보광전과 명부전 내부도 자세히 들여다보며 15분 남짓 용화사를 느긋하게 둘러보다가 절을 나와서 잠시 내려가면 곧 왼쪽의 공터에 부도탑과 사리탑비들이 모셔져 있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도 잠시 둘러보며 카메라에 담는다.


 


용화사의 전경.


 


용화사의 종루.


 


용화사의 보광전.


 


용화사의 불사리 사사자 법륜탑.


 


용화사의 약수터.


 


용화사의 사적비.


 


명부전의 불상.


 


보광전의 불상.


 


계단 옆의 작은 불상들.


 


용화사의 부도탑과 사리탑비.


 

다시 임도로 나와서 멋진 노송들이 그 자태를 뽐내는 길을 5분쯤 내려서면 새벽에 버스가 도착한 용화사광장에 닿는다. 도착한 시각은 10시 3분경.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이른 시각이다.

여기서 생선회를 싸게 판다는, 통영항의 중앙시장에 들렀다가 귀경하기로 하는데 관광버스가 가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가 13시 30분까지 되돌아오기로 약속하고 10시 20분경 시내버스를 타고 15분쯤 달려서 10시 35분경 중앙시장 앞에 도착해서 중앙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온 수십 명의 일행 중에서 열 명이 모여 1인당 1만원씩 모아서 좌판의 활어를 사는데 2 킬로그램 이상 되는 참돔 두 마리, 1 킬로그램 이상 되는 광어 두 마리, 1 킬로그램 가까이 될 듯한 밀치(참숭어) 두 마리, 500 그램 가까이 될 듯한 우럭 한 마리와 해삼, 멍게 약간을 8만원에 사는데 양이 많아서 회를 뜨는 데만도 30분 이상이 걸린다. 소주와 야채, 초고추장 등을 별도로 사서 중앙시장 옆에 있는 통영항의 바닷가에 자리를 펴고 먹으니 그 많던 회가 한 시간이 채 못 돼 동이 난다.

일행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시내버스를 타고 용화사광장으로 되돌아오니 13시가 채 되지 않았다. 늦게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14시경 출발한 관광버스는 고성의 공룡랜드휴게소와 금산의 인삼랜드휴게소, 안성휴게소에서 쉰 후에 서울로 올라와서 명동역 앞을 거쳐 서울역 앞으로 가게 되는데 운전기사가 편의를 봐 줘서 20시경 명동역 앞에서 내리게 된다.

오늘의 총산행시간은 4시간 50분이 걸렸는데 이 중에서 약 1시간 50분의 휴식 및 관람, 조망시간을 제외하면 순수산행시간은 약 3시간 정도인 셈이다.

나이에 비해 견문이 좁아서 통영과 한려수도도 처음 가보고 산 위에서의 일출도 처음 보았으며 무박 산행도 처음 해 보았으니 개인적으로 값진 체험을 한 산행이었다.

우리나라의 삼대대첩 중의 하나이자 임진왜란의 삼대대첩 중의 하나인 한산대첩이 있었던 역사적 격전지의 현장을 답사하는 감회가 유달리 깊었고 열강들의 강력한 외세에도 굴하지 않고 맞섰던 선조들의 지혜와 용기에 새삼스럽게 자긍심을 가지며 감탄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열등한 민족이라는, 일제가 세뇌시킨 식민사관으로 인해 열패감과 좌절감을 갖고 비루하게 열강들만 추종하는 사대주의에 젖기보다는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역사를 거울삼아 본받을 것은 철저히 본받고 바로잡아야 할 큰 잘못들은 철저히 바로잡아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역사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이 나라의 역사와 정기가 바로 서리라 생각한다.


 


노송이 있는 임도.


 


임도에서 내려다본 용화사광장.


 


통영항의 중앙시장 내부 모습.


 


통영항.


 


통영항의 거북선.


 


오늘의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