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을 넘어 소쇄원으로

 

일 시 : 2011. 6. 4

산행장소 :   무등산  

동 행  :   나홀로 

산행시간 :   11시간 (휴식포함)         

산행코스  :   증심사 - 송풍정-중머리재-중봉-서석대-서호대-입석대-신불재-원효사-무등산 옛길2구간-충장사-무등산역사길-환벽당-소쇄원(약22km)

날    씨  :   맑음 

 

 

지난주 북한산을 다녀오면서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었는데 새로 한주가 지나는 동안 다시 일상의 번잡한 일들이 찌꺼기처럼 쌓였는지 심신에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리 대단치도 않은 일들은 하면서도 올해 지난 몇 달 새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되고 보니 주말의 산행으로도 다 회복이 되지 않는 느낌이다. 며칠이라도 일상을 훌훌 벗어나 나의 일상과 전혀 다른 장소와 다른 사람들의 체취를 느끼고 나면 정신이 맑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 불현듯 주말에 평소 살갑게 여기는 담양의 소쇄원을 다녀올 마음을 먹고 부랴부랴 배낭을 꾸리어 광주가는 심야고속 버스를 탔다. 1시 20분 차표를 샀는데 12시 55분 차 앞에서 기다리다 한자리가 비어서 그 차를 타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먼 곳을 갈 때는 시간을 절약하는 의미로 심야버스를 애용하게 되었다. 밤 시간을 이용하여 내려가 아침 일찍부터 목적지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로 접어든 차 안에는 요모조모 일정을 생각하다 무등산을 거쳐 소쇄원까지 걸어갈 생각을 했다. 오래전 광주대에 출강한 적이 있어 자주 들렀지만 아직 무등산은 오르지 못했었는데 산행을 해서 무등산을 지나 소쇄원까지 걸어가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소쇄원은 바로 무등산 끝자락의 자미탄 건너에 있는데 그 곳 터를 아우르고 있는 산세와 함께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3시 10분 광주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요새 낯에는 한여름 날씨가 되었지만 새벽녘 어둡고 인적 드문 밤공기는 싸늘하게 느껴졌다. 당초 생각에는 가까운 찜질방으로 가서 두 시간쯤 잠을 자고 새벽에 산행을 시작할 생각을 했는데 요즈음은 일출 시각이 빨라 바로 시작해도 곧 동이 틀 것 같아서 무등산 들머리가 있는 증심사로 택시를 타고 갔다.

 

의제 미술관 길목의 다리 근처에서 내려 완만한 오름길을 걸어 올라갔다. 산행을 시작하는 차에 절 가까이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게 여겨졌다. 조금 올라가다 의제 미술관을 밖에서 잠시 둘러보고 증심사 쪽으로 가는데 뒤에서 등산 차림을 한 두 분이 다가오면서 산에 가느냐고 불어보았다. 내가 그렇다고 아침 일찍 산행하는 사람이 드문데 함께 올라가자고 했다. 아까 택시를 타고 올 때 걸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올라왔는지 걸음이 무척 빨랐다.

 

3시 40분경 증심사 입구에서 무등산을 오르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초행에 산길도 잘 모르는 차에 동행할 분들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낙동정맥 등 장거리 산행때 야간 산행도 더러 해보아서 부담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문득 생각하니 지도를 갖고 오지 않아서 길을 찾아갈 대비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선 상태였다. 이 산은 평소 광주 시민들이 아끼며 자주 찾는 산이라 생각하고 오르는 길도 쉽게 눈에 뜨일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올라가면서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여기서 만나 두 분 가운데 광주에 사시는 기선생님이 서울서 내려온 이선생님을 마중 나와 함께 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선생님은 수시로 무등산을 다녀가서 산길을 훤히 알고 있었다.

 

4시 2분 송풍정에 닿았다. 그 앞에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고풍스런 연륜을 풍기며 서 있었다. 정자에 걸린 안내 표지판을 보니 이곳은 화순 등지에서 광주읍성으로 오갈 때 잠시 쉬어가던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곳을 지나 20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니 너른 터에 구대피소라고 표지가 새워져 있었다.

 

지리를 잘 아는 기선생이 0.6km 정도 더 가면 중머리재가 나오는데 거기까지 가서 잡시 쉬자고 했다. 함께 걷는 이선생은 걸음이 무척 가볍고 빨라서 계속해서 앞장서 걸었다. 그 품새에서 산행으로 단련된 느낌이 들었다.

 

4시 39분 중머리재에 닿았다. 기선생님이 이십여년 전까지는 저 위로 군부대가가 주둔해서 대개 이 중머리재까지만 올라왔었다고 했다. 적막한 어둠속에서 저 멀리 산 능선의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평소 일상에서는 이처럼 이른 새벽에 깨어 대자연의 체취를 대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오랜만에 깜깜한 밤에 산에 올라와 산천의 느낌을 대하는 느낌이 좋았다. 이런 깜깜한 밤에는, 풍경은 눈으로 식별이 잘 되지 않지만 마치 산천이 잠을 자다 뒤착이는 것 같은 생명의 체취가 느껴진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토마토를 꺼내 두 분께 하나씩 건넸다. 시장기가 돌아 급히 토마토 한 개를 먹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오르면서 좌측을 보니 광주 시내 불빛이 넓게 보였다. 기선생이 정상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위로는 경사가 급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앞장서 걷는 이선생은 가뿐하게 오르는 느낌이었다. 점차 희미하게 날이 밝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개가 짙어지고 있어서 물체가 흐물흐물 보였다. 한동안 오르다 이선생이 멈춰서 위쪽 봉우리를 올려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에게 기념으로 사진촬영을 부탁하고 번갈아 찍어주려고 내가 사진기를 받다 바닥의 바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고장이 났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튕겨나간 배터리를 다시 끼우자 작동이 되었다.

 

조금 더 오르니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산자락의 안개가 걷히며 송신탑이 두 개 솟아 보였다. 기선생이 그 곳에 mbc송신소가 있다고 했다. 바로 옆에는 조형미가 느껴지는 소나무가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었다.

 

5시 14분 중봉에 닿았다. 그 봉우리 너머로는 훤칠한 능선이 완만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중봉 표지석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 그 곳에 있던 군부대를 이전하고 생태계 복원중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안개가 더 자욱해져서 앞서 능선을 걷는 앞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지만 어둠이 걷힌 시각이라 안개 사이로 정상부 산세가 뭉게구름처럼 보이고 그 위로 동이 트기 시작하는 아침 햇살의 붉은 빛이 감돌았다.

 

능선을 지나니 포장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가로 질러 중봉복원지 입구 표지가 잇는 곳에 다다랗다. 거기서부터 서석대0.7km, 입석대1.2km, 누에봉1.8km 거리로 각각 쓰여 있었다. 그 들머리부터 판자로 된 데크길이 놓여 있었다. 다시 나타난 도로를 건나가니 무등산 옛길 표지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서 조금 걷다보니 우측으로 시야가 훤히 트이며 아까 보았던 송신탑이 안개구름 사이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11시 방향으로 정상부 봉우리들이 앞뒤로 거리를 두고 눈에 띠었다. 드디어 정상부가 가까워지고 있는 듯 했다.

 

조금 오르다 기선생이 앞서 가는 이선생을 의식한 듯 “안보고 그냥 갔나?”하고 혼자말을 했다. 그러면서 바로 우측에 솟아 보이는 바위가 바로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이선생이 벌써 촬영을 마치고 나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가 앞장서 이동한 곳으로 가니 주상절리의 기암적벽이 올려다 보였다. 한눈에 진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정선과 김홍도의 그림에 나오는 총석정의 그림을 통해 주상절리의 특별한 인상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렇게 멋진 풍경을 직접 대하기는 처음이었다.

 

서석대를 지나 5시 49분 서호대(1,100M) 에 올랐다. 그 위쪽의 천황봉은 부대 진지가 있어 통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이 출입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대인 것 같았다. 거기서 보니 천황봉 뒤로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입석대쪽으로 난 완만한 데크길을 걸어갔다. 데크길 끝 지잠에서 천황봉쪽 경관을 조망하며 잠시 머물러 쉬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선생이 가져온 오이를 한 개씩 나눠 먹었다. 거기서 천황봉을 잠시 스케치하다 입석대로 행했다.

 

조금 내려가는 동안 앞쪽 너머 완만한 능선이 깊고 그윽하게 펼쳐 보였다. 조금 가다보니 승천대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였다. 반대쪽에서 올려다보니 미끄럼틀처럼 생긴 바위가 놓여 있는데 그 끝부분이 하늘로 행해 있어 그리 이름 붙여진 것 같았다.

 

그 아래 입석대에 닿았다. 이곳도 아까 지나며 보았던 서석대처럼 주상절리의 바위가 장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기선생이 이곳저곳 사진 프레임이 좋은 장소를 안내해주어 그 경관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을 지나 신불재로 내려섰다. 그 옆에 kbs 와 kt 송신소가 있었다. 기선생의 동료가 그 송신소에서 아침을 준비했다며 들어가자고 했다. 얼마전부터 일반인에게 그 경내를 개방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송신소 안에도 견학할 수 있다고 했다

 

그곳으로 들어서니 입구에서 두 분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새벽에 산을 함께 오른 인연으로 평소 출입금지 구역으로만 의식하던 시설안에서 아침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 곳에 근무하는 분이 작은 식당으로 가서 여러 가지 김치 반찬과 함께 아침밥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이선생이 가져온 오미자 술을 반주로 곁들여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다시 숙소로 자리를 옮겨서 세수를 하고 이런저런 에기로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 다시 길을 나섰다. 잠시 후 장불재 삼거리에서 두 분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길림 길을 알지 못하고 있다 금세 헤어지려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초면에 베풀어준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9시 11분 인사를 하고 소쇄원 방향으로 홀로 길을 잡았다. 기선생이 포장길로 똑바로만 가면 된다고 했다. 조금 가다보니 아까 오르면서 건너가던 곧이 나타났다. 조금 가다 마주 오는 부부를 만나 길을 물으니 휴대한 지도를 보며 설명해 주었다. 원효사를 목표로 내려가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을 것 같았다.

 

에둘러 난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가다 보니 우측으로 훤히 시야가 트였다. 멀리 산자락 아래로 호수와 작은 들녘이 보였다. 그 부근 어디에 소쇄원이 위치하고 잇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졌다. 차가 지날 수 잇게 낚여진 완만한 내림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가는 동안 맞은편에서 정상부로 행해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띄엄띄엄 비나갔다.

 

한참을 내려가다. 우측으로 꺽여지는 지점에 놓인 정자에서 한 분이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곳에 올라보니 광주 시내가 조망 되었다. 그 옆 표지판에 거기서 바라보이는 주요 지점들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곳에 계시던 분이 저 앞에 보이는 것이 월드컵때 스페인과 승부차기 하던 경기장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잠시 쉬면서 그분과 예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대선배 뻘 되는 분이셨다. 다시 출발하려니 그분이 내려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 아래 원효사로 내려와 무등산 옛길로 들어섰다. 옛길 가까이 포장도로가 새로 나 있었는데, 군데군데 길표지가 자주 설치되어 있었다. 그냥 여느 산과 같은 등산길인데 그 도로길과 구분해서 옛길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길 곳곳이 바위들이 널부러진 너덜길이어서 걷기가 불편했다.

 

그 길로 충장사로 나가 소쇄원으로 걸어가려는 중이었다. 그런데 당면 목표지점인 충장사까지도 길이 멀었다. 걷고 있는 길이 무등산 아랫자락을 빙 둘러가도록 나 있었다. 마음이 급한 상태여서인지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

 

걷고 있는 옛길이 도로를 가로질러가는 곳으로 내려섰다. 그 우측 조금 떨어진 곳에 충장사가 있었다. 12시 충장사에 도착했다. 충장사는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었던 김덕령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김덕령 장군은 모함으로 옥사를 한 뒤 나중에 신원되어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다.

 

충장사를 들러 입구 가게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운 후 소쇄원을 향해 걸었다.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무등산 역사길로 가면 된다고 했다. 입구로 들어서며 표지를 보니 거리가 6km 정도 되었다. 이미 많이 걸은 터라 걸음이 팍팍했지만 평소 의미 있게 여기는 소쇄원과 환벽당과 연관된 인물의 체취가 베인 역사의 흔적을 답사한다는 생각을 하니 망설임이 생기지 않았다.

 

그 길을 접어들어 가다보니 아까 무등산에서 내려오며 옆에 보인 도로가 다시 가까이 지나고 있어 길의 방행을 바로 들어선 것인지 조심스러웠다. 조금 가다보니 사촌 김윤재 제실을 안내하는 비석이 보였다. 그 비석 옆에 부착된 표지판을 보고 좌측으로 조금 가다보니 사촌의 제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건물이 사당같은 모습이 아니고 농가의 일부처럼 보여 바로 알지 못하다가 집주인에게 물어 확인하게 되었다.

 

그곳을 지나 잠시 후 계곡을 건너가니 정자가 나타났다. 아까 길 표지에 안내된 풍암정일것 같았다. 1시 8분 정자 앞으로 가서 바라보니 풍암정사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었다. 정자에는 연배가 지긋한 몇몇 부부가 과일을 먹으며 즐겁게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풍암정을 나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길을 지나 마을 인근의 논과 밭이 있는 곳으로 나갔다. 포장길로 올라서기 전 건넌 개울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던 분에게 길을 물으니 좌측 마을 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조금 가다보니 무등산 분청사기 전시관이 나타났다. 먼 길에 마음은 급했지만 그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깐 전시장을 둘러본 다음 서둘러 걸어갔다. 완만한 길을 조금 내려가니 마을이 나왔다. 마을에서 우측으로 몇 마지기쯤 되는 논에 모내기를 준비하며 논물이 채워져 있었다.

 

그 앝은 논물에 파란하늘과 흰구름, 그리고 주변 산세의 풍경이 말게 비추고 있었다. 못자리에는 가녀리게 보이는 연둣빛 모가 촘촘히 자라 있었다. 그 모습을 대하면 언제나 풍성한 장래에 대한 희망의 설렘이 느껴진다. 조금 전 들른 전시관에서 문화 해설사분이 거기서 우측 마을 끝 지점에서 좌측으로 가라고 알려 주었다.

 

다시 긴 산길을 지나갔다. 얼마동안 산길을 지나가니 10시 방향에 멀리 광주호가 보이고 우측으로 마을과 주변 들녘이 보였다. 그 곳에도 논물이 담겨 있어 더 맑고 시원하게 보였다.

 

그 마을 끝자락의 자미탄을 감싸고 둘러친 낮은 산자락에 역사길의 끝인 환벽당이 있을 것 같았다. 산길을 빠져나와 들길을 걸었다. 논 한쪽에서 가족일 듯 한 사람들이 이양기로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한낮의 기온이 달아올라 그늘 없는 땡볕길이 따가왔다. 그렇지만 주변 풍경이 그윽하여 그 따가움이 덜 느껴지는 듯 했다.

 

내가 소쇄원을 목표로 남들이 무모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먼 길을 걸어올 생각을 한 것은 소쇄원이 나의 졸저 ‘한국전통건축의 좋은 느낌’에 쓴 아홉곳 중의 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을 시작하면서 이곳의 특별한 평온함과 그 느낌을 자아내는 지리적 특성을 언급한적 있는데 지금 걸으며 바라보이는 지세와 풍광의 느낌이 내가 말한 그대로였다. 더욱이 오늘은 무등산을 올라 지나왔으니 그 큰 시제로부터 평온하게 인근에 펼쳐진 지리의 감각을 몸으로 느낀 터라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광주 동초등학교 충효분교장을 지나 마을 뒤 낮은 산자락 길을 지나니 길 주변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보였다. 환벽당이나 소쇄원의 주인 같은 선비들이 한가롭게 시음을 주고받을 때의 그 시절에도 농부들은 지금 보이는 농부들의 생활과 다름없었을 것 같았다.

 

산자락 길을 걸어 내려오니 버스길과 만나는 마을 입구가 나왔다. 그 근처에 안내표에 나타난 김덕령 장군 생가 터를 돌아보고 2시 44분 역사길 종착지인 환벽당에 다다랐다. 여기저기 들른 곳들도 있지만 새벽 3시 40분부터 걷기 시작하여 11시간이 걸린 샘이었다. 개울 건너 소쇄원 등이 있는데도 역사길을 환벽당으로 한 것은 행정구역상 개울 저편은 담양땅이기 때문일 것 같았다.

 

이곳을 포함해 소쇄원 등은 여러 번 다녀간 곳이어서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친근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근의 정자들을 다시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환벽당을 나와 소쇄원으로 갔다. 무등산 건너편 소쇄원이 의지한 산 능선도 올라가고 싶은 곳인데 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3시 25분 소쇄원 입구에 당도했다. 입구 도로변 주차장에 차가 가득했다. 대숲 사이 녹음이 우거진 길로 들어서다 별천지처럼 펼쳐진 안 풍경이 펼쳐보였다. 그리고 이곳저곳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평소 소쇄원은 은일의 장소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관광객이 들어와 잇는 상황에서는 모두가 그 진수를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구경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함께 온 일행과 주고받는 말들을 들으니 역시 진수를 느끼지 못한 듯 했다. 그리고 그 인색한 평가에 어쩐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 잠시 서서 이곳의 느낌을 자아내는 바탕의 지세와 분위기를 생각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설 마음이 잘 내키지 않아서 더 머물며 스케치를 했다. 스케치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전에 한적할 때는 느끼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더 분석적인 태도로 돌아보았다.

 

5시 11분 다시 입구로 나왔다. 어제 밤차로 내려와 광주에 진산인 무등산과 그 인근에 펼쳐진 산자수명한 유적을 함께 느낀 귀한 시간이었다.

(2011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