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상당 시간. [무등산 / 광주]





수만리 - 백마능선 - 장불재 - 입석대 - 서석대 - 중봉 - 늦재 - 원효사 - (P) [5시간]




2012. 10. 14 [일]


평택 K3  53명

 

 

 

 

 



 

가을의 중심이다. 호젓하게 걸어보는 가을 거리에 퇴색된 잎들의 나부낌이 잔잔하게

  비쳐든다. 짧은 시간 속으로 파고드는 순순한 마음의 결이 나도 모르게 은은하게 배여

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것은 빠르게도 다가오는 절기의 허전함이 들어서가 아닐까.

 

 

 

 

 

 




낙엽사이로 가을빛의 어둠이 짙어진다. 가을의 깊이를 느끼는 순간이다. 멀고 아득한

시간이 산창 넘어 너울너울 피어오른다. 고운 물빛 같은 하늘빛은 그동안 달구어왔던

  묵은 빛을 차례차례 밀어내며 분주하다. 산정은 이미 이 시간밖에 서 있는 듯한 자세로

그간의 자취를 멈춰 섰다.

 

 

 

 

 

 

 

 

 

 

 

   



묵묵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오르는 님들의 뒷모습엔 무게감이 섧은듯 하다.

 잊혀져가는 시간의 흔적이 퇴색되어서일까, 흘러온 시간의 무게가 줄어서일까. 눈길에서

머무는 처연함이 사그라지질 않는다. 유연하게 다가오는 가을바람에 입맞춤하며 살며시

기대본다. 떠나지 않으려는 듯 한동안 머물러 있다.

 

 

 

 

 


 

    퇴색된 갈잎들이 마구 뒤엉킨다. 갖가지 색으로 물든 그 잎들의 모습에 시간의 흔적이

고단히 녹아 있다. 가지런히 뻗은 산목들의 몸체에도 가을의 운기가 스며 활발하게

   운신하였던 자세를 고정시키고 있다. 바람 속에 구르며 세월의 흐름을 전하는 모습이

늘 배치되는 자연의 구속이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가을의 입김이 내안을 감싸 돌며 포근히 전해온다. 검붉게 그을린 산정의 끝자락이

선선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부드럽게 이어져 뻗고 내린 능선과 사면엔 가을의

    뒤안길이 서려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우수에 젖게 만든다.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넓게 드리워진 무등 평야의 가을 미에 눈길을 돌린다.

 

 

 

 

 

 

 

 

 

 

 

 

 

 

 

 


 


   아련히 떠있는 가을 안개의 고독이 도무지 사라질 틈이 없어 보인다. 가을의 입구에서

피어난 시간의 굴레이지만 그 속에는 허전함이 심상처럼 가득히 배여 있는 듯 하다.

또 으레 정해놓은 길이 없어 편안하다 싶으면 한동안 머무르는 습관이 있다.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숲속은 그로 인해 성대히 가을을 구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 완연한 가을 색에 잔잔히 동화되는 감성이 나도 모르게 물 믿듯 몰려오네요. 』

                                  『 가을 기분을 내며 사아~삭 거리는 억새잎들의 속삭임은 애잔한 우수를 자아냅니다. 』

                                  『조금 후면 이 낭만도 시간 속에 묻혀 버리고 스산한 서걱거림으로 변할 겁니다.

                               황량함으로 물들겠지요. 』

 

 

    

 


 

 

 

 

 

 

 

 

 

 

 

 

 

 

 

 

 


         가을의 멋을 촉촉이 전해주는 백마능선봉의 중심에 섰다. 장대하게 펼쳐지는 가을산정의

   웅엄한 힘이 유유한 가을시간을 인도하는 듯하다. 산정의 속살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겹침의 미학이 속속 펼쳐지는 그 풍경은 훨씬 가을의 깊은 맛을 준다. 산 결을 타고

온후하게 넘어오는 산바람의 향기가 꼭 고향의 향기인 듯 부드럽다. 바위 속에서

그 향기를 맡고 있는 솔나무의 표정이 산듯하게 밝아온다.

 

 

 

 

 

 

 

 

 

 

 

 

 

 

 

 




  광활하고 장대한 억새 평원이 가을을 이며 하늘과 닿아 있다. 중후한 가을빛을 받으며

   붉은색감에 물들여진 채 정적에 잠겨 있다. 가을 안개의 냉랭한 고요가 이 산정 속으로

천천히 퍼져가는 듯 그윽한 포만감에 차 있다. 그 산등성에 유정한 억새꽃이 피었다.

  연약해 보이지만 단아함을 감추지 않는다. 흰 빛깔 꽃무늬에 눈이 부실정도다. 절박한

   사연이 깃들어있는지 흔들흔들 대며 바람을 쫒아가는 자태가 투명한 햇살을 받으며 더

밝아지는 듯하다. 그 빛깔 그대로 시간이 멈춰졌으면 좋으련만…. 

 

 

 

 

 

 

 

 

 

 

 

 

 

 

 

 

 

 

 

 

 

 



  

 두 갈래로 늘어선 산맥. 한쪽에 천왕봉을, 또 한쪽에 인왕봉을 거느리며 그 가운데에서

 가을 안개를 소복하게 피워 올린다. 주위로는 광활한 평원이 깊게 들어서 있고, 가을을

맞아 온전한 멋을 음미하고 있는 산정 속에도 깊게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대로의 가을

낭만이고, 유정한 가을이 낳은 절대적인 미학이다.

 

 

 

 

 

 

 

 

 

 

 

 

 

 

 



                     [입석대]


      검정투톤의 돌기둥이 무등의 웅장한 산정을 뒤받치고 있다. 주상절리의 거대한 위용이

    아닌가. 잔혹한 세월 속에서 자신을 다듬고 또 가다듬어 내보이는 알몸의 찬란함이다.

   그러나 세월의 전리품일지도 모른다.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 나머지 내면을 배재한 채

외면적 아름다움만을 위한 욕망이 강해 浮薄한 세월에 몸을 낮추었을지도… 그러나

아닌 듯. 차곡차곡 내리선 형상과 刀처럼 강하고 치열하게 정교한 고운 선에 억겁을

주유하며 보내온 날들이 올곧이 배여 있다. 침묵만….

 

 

 

 

 

 

 

 

 

 

 

 

 

 

 

 

 

 

 

 

 



          시간도 쉬어가게 하는 가을빛에 찬연히 드리워지는 산정의 숨결은 붉어지기 시작한다.

그 속에 상봉을 받쳐온 거대한 암릉이 은밀하게 산봉에 걸쳐 있다. 갈수 없기에

     눈으로만 배회하며 마음을 내려놓는다. 지적인 가을을 끼고 이 산정의 정점을 찾아

    마음의 길로 들어서려 했던 것이다. 장엄하기 때문에 거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소망을 품어야겠다.

 

 

 

 

 

 

 

 

 

 

 

 

 

 

 

 

 

 

 

 

 




                      [서석대]


전신운봉의 기운, 성곽처럼 펼쳐있는 돌병풍의 위엄은 가히 하늘을 찌를만하다.

  산허리를 감싼 장엄한 그 자태는 석벽의 최고 난이도를 유감없이 나타낸다. 텅 빈

      기운 속을 홀로 누비며 응축된 장대함을 보이고 있다. 무등의 생명이다. 빛바랜 산정

 속에서의 기억되게 하는 무리 없는 안정감이 그 고요 속에 잔잔히 흐른다. 눈빛에

전율이 느끼기 시작한다. ‥‥.  아무도 모르리라.

 

 

 

 

 

 

 

 

 

 

 




    곱게 드리워진 산 능선을 꿈결삼아 구릉을 거쳐 중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가을길이

      완연하게 배여 들었다. 툭 터지는 산정의 붉은 물결이 단아하게 펼쳐져 시선을 끌어

모은다. 여인의 부드러운 살결처럼 소박한 가을의 향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그 속으로 우리가 걸어간다. 가을이 이 무등 산정에 다가와 있다.

 

 

 

 

 

 

 

 

 

 

 



                                        『 광활한 억새평원에 가을꽃이 무르익어 찬연히 피어올랐네요. 』

                                        『 가을빛에 어른거리는 백화를 바라보면 내 마음에 가을이 꽉 찬 느낌이 듭니다. 』 

                                        『 금세 겨울 빛이 몰려들 테면 더 아름답게 농익은 빛깔로 다시 태어나지는 않을까요? 』

                                        『 그러려면 갖은 고생과 희생이 따르겠지요. 세월에 맞서는 전사는 없으니까요. 』




     꽃순의 연약함이 바람을 멈추게 한다. 가련한 꽃대 속에는 가을바람이 살이 오른 것처럼

통통하게 배여 있다. 환하게 마주치는 녀석들이 부지런한 가을의 빈 공간속을 메우는

듯하니 지해한 생각이 든다. 붉은 억새꽃 속에 스르르 함몰되어가는 영원의 순간이

차갑도록 시려댄다. 사람의 길이 환하게 눈동자를 감아 싼다.

 

 

 

 

 

 

 

 

 

 

 

 

 

 

 

 

 

 

 

 

   




이 산정과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 속에는 무정하리만큼 허허로움이 숨어든다.

     쓸쓸히 젖어오는 회색빛 그늘이 더욱 그토록 들게 하여주는 것이다. 바람 따라 머리를

     흔든다. 가을바람 앞에서 어깨를 편다. 아늑하게 비치는 산정의 물결에 마음을 기대며

따뜻한 가을빛의 환영 속으로 빠져본다.

 

 

 

 

 

 

 

 

 

 

 

 

 

 

 

 


 

          부드러운 구릉의 선이 가을빛을 받으며 유유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매끄럽다. 흘러가는

강물의 유연함처럼 소리 없이 굽이치며 가을을 맞고 있다. 유장한 흐름의 기운을

        느낀다. 그 기운에서 가을이 빚은 천연의 소리를 듣는다. 시간을 멈춰서게 하는 산정의

      제심은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 외에도 더 많은 존중감을 갖게 한다. 시간은 여전하다.

짧은 시간이 우쭐대며 포박하는 듯하다.


  

                          ◈◈◈

 


     유정한 가을날에 날개 돋친 듯한 바람에 실려 가며 내뱉는 흰빛의 아련함이 산정 속으로

스며들었던 이 시각. 단아한 動感을 느낄 수 있었다. 우아한 감빛이 되어 장대한 능선

   위로 낮게 깔리는 고고한 가을빛은 천상 생생한 화사함으로 뒤바뀌며 무등벌을 가을의

관념으로 물들였다. 가히 두드러진 산정의 투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