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루엣.jpg

  

초봄에 다시 찾은 속리의 묘봉-상학 릿지

 

(1)

지난 가을의

충북알프스 44km 섭렵에 대하여

지금도 밤마다 자리에 누우면

어떻게 그 종주를 이루었고

또한 그 꿈결 같은 허리를 어떻게 어루만졌는지

감개 무량하게 떠오르곤 한다.

 

(2)

그 긴 여정 중의

수많은 봉우리와 암릉 중에서도

神이 빚어 놓았다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는

묘봉-상학봉 구간의

아슬아슬한 릿지 산행은

꿈결 속에서도 잊지 못한다 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다시 찾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도를 탐색해보다가는 법주사 뒷편

여적암(汝寂庵)에서 오르는

한적한 길을 알게 되었더라.

 

(3)

예상대로 여적암 계곡길은

수백년된 松林이 우거진 완만한 肉山으로

북가치에 오르기까지 그 天然의 원시림은

속세를 떠나 신이 빚은 암릉을 보여주려는

전조(前兆)로 보였더라.

 

(4)

그러나 들머리부터

우람하게 우거진 松林에도 애환이 있더라.

가슴 높이 부위의 껍질을 누군가 예리하게 절개해 놓아

너무나 가슴이 아프더라.

초입에서부터 8부능선까지

수 많은 송림이 상처입고 부러지고 넘어져 있더라.

 

넘어진 나무의 나이테를 세어보니

100년은 족히 넘었음직한데

정이품송의 자손들인 듯한

그 우람한 자태는

가히 국보림으로 지정하여도

손색이 없을 듯한데

그러한 엄청난 거송군락의 수난을 보니

처절한 비명 소리가 환청되어 들려오더라.

 

짐작컨데

폭설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절개해 놓은 허리가 부러지지 않았나 생각되더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는데

하산길에 들른 여적암 스님 말씀에 의하면

일제와 6.25동란시 비행기 연료용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그리했다는데

상처의 부위를 보아서는

훼손한지 50여년 이상은 되 보이지는 않더라.

 

(5)

그러한 송림의 애환도 8부 능선에

올라서니 사라졌는데 거기까지는

사악한 훼손꾼이 올라오지 못한듯 하더라.

그제야

소나무들이 지르는 비명의 幻聽이 사라졌더라.

북가치에 다다른 후 묘봉의 後面에 달라붙으니

동행한 이상무가 그 가파른 위세에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르더라.

하지만 곧

그 천하절경에 감탄사를 또한 연발하더라.

 

(6)

묘봉을 우회하여 상학봉까지

통천문과 수직의 벼랑과

개구멍을 비집으며

거북이와 스핑크스와 엉덩이와

시루떡, 그리고 코끼리를 닮은 바위들을 지나니

鶴이 많이 살았다는 상학봉에 다다랐더라.

 

(7)

상학봉에서 바라보는

지난 가을 거슬러 올라온 미남봉, 매봉이

왜 자기한테는 오지 않는냐고 원망하는 듯하여

불현듯 눈길을 돌리니

좌측의 충북 신정리, 우측의 경북 운흥리의

올망졸망한 전답과 마을이

精巧한 지도를 그리고 있더라.

 

(8)

다시 상학봉에서 묘봉으로

돌아오는 암릉은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하더라.

더구나 멀리 관음봉과 문장대가 손짓하고

입석대로부터 천왕봉까지의

우람한 하늘금 실루엣이

연신 지난 가을의

대종주를 상기시켜

암릉의 저항을 가볍게 물리치게 하더라.

 

(9)

올 때 지나친

묘봉 언저리에 다다르니

두 다리와 팔의 힘이 바위들에게 빼앗겨

주저앉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묘봉의 넓직한 바위의 안락함이 또한

그러한 고단함을 금새 잊게하고

그 넓직한 바위에서 상학봉 주위의 봉우리들과

관음봉까지 줄줄이 읍소한 이름모를 봉우리들을 닮아

내 자신도 장엄한 大自然 앞에 읍소하고 말았더라.

 

(10)

묘봉에서 북가치를 거쳐

여적암으로 내려오는 길에도

상처받은 소나무들로 가슴아팠는데

나라에서 그 상처를 시멘트로라도 보수하여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더라.

기왕이면 지난 겨울 태백산에서 보았던

상처난 주목들을 보수한

나무색깔을 낸 시멘트로 보수하면 어떨까? 생각하였더라.

 

(11)

산행 여정및 시간

여적암(09:20)->북가치(10:20, +60)->묘봉북측우회

->상학봉(11:30, +70=130)->다시 묘봉(12:30, +60=190):점심 20분

->여적암(14:00, +70=260분)

 

배달9204/개천5905/단기4340/서기2007/3/18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http://blog.chosun.com/blog.screen?userId=kanghan8

 

속리1_초입1.jpg

1. 여적암 들머리 初入(저 거송들에 애환이 있을 줄은 몰랐다.)

 

속리2_수난4.jpg

2. 이렇게 쓰러진 巨松들을 보고도 그 원인을 몰랐다.(그저 폭설 때문이겠거니...하고 생각했다.)

 

속리2_수난3.jpg

3. 그런데 그 거송들을 살펴보니 흉측한 상처가 있었다.

 

속리2_수난2.jpg

4. 그랬다. 눈이 오자 그 상처난 부위가 꺾여 生을 마감했던 것이다.

 

속리2_수난1.jpg

5. 이 거송들의 운명은? 저 상처를 시멘트 풀로라도 치료해주면 어떨까?

 

속리3_북가1.jpg

6. 북가치 모습(좌측 경북 운흥리, 우측 충북 수정봉, 직진하면 관음봉)

 

속리3_북가2.jpg

7. 묘봉 우회길에 본 얼음(길에도 눈이 쌓임)

 

속리4_묘봉11.jpg

 

속리4_묘봉13.jpg

 

속리4_묘봉12.jpg

  

속리4_묘봉1.jpg

 

속리4_묘봉7.jpg

 

속리4_묘봉5.jpg

 

속리4_묘봉6.jpg

 

속리4_묘봉2.jpg

 

속리4_묘봉10.jpg

8. 뒤돌아 보며, 돌아오며 본 묘봉 근처의 황홀한 풍광

 

속리4_묘봉3.jpg

9. 코끼리 바위

 

속리4_묘봉4.jpg

10. 신정리 방향

   

속리4_묘봉8.jpg

11. 멀어져 가는 묘봉, 그 뒤로 문장대가 고개를 내밀고

 

속리4_전망1.jpg

12. 묘봉 정상

 

속리4_전망2.jpg

13. 묘봉 정상에서 식사 중인 대구에서 오신 분들(관음봉과 문장대를 찍으려다 그만 실례)

 

속리4_전망3.jpg

 

속리4_전망4.jpg

14. 정상부의 넉넉한 바위

 

속리4_전망8.jpg

18. 묘봉 정상의 마당같은 바위

 

속리5_암릉1.jpg

 

속리5_암릉2.jpg

 

속리5_암릉3.jpg

 

속리5_암릉4.jpg

19.  상학봉 가는 길의 암릉 릿지

 

속리5_암릉5.jpg

20. 스핑크스 바위

 

속리5_암릉6.jpg

21. 그리고 미륵바위

 

속리5_암릉7.jpg

22. 엉덩이 바위

 

속리5_암릉8.jpg

23. 또 다른 엉덩이 바위

 

속리5_암릉9.jpg

 

속리5_암릉10.jpg

 

속리5_암릉11.jpg

24. 상학봉 근처 풍광

 

속리6_상학1.jpg

 

속리6_상학2.jpg

 

속리6_상학3.jpg

 

속리6_상학4.jpg

 

속리6_상학5.jpg

25. 상학봉

 

속리6_전망1.jpg

 운흥리 방향의 토끼봉

 

속리6_전망2.jpg

 

속리6_전망3.jpg

 

속리6_전망4.jpg

26. 상학봉 정상에서의 조망

 

속리7_여적1.jpg

27. 여적암 초입의 중수기를 새긴 바위(꽤 큰 암자였던듯함.)

 

속리7_여적2.jpg

 

속리7_여적3.jpg

28. 삼성각(한인, 한웅, 단군)

 

속리7_여적4.jpg 

29. 무량대자대비를 아직 담을 뜻이 없는 비구의 고무신

 

 

 

 

실루엣[1].jpg

 

 

 

 

sokri-balanceq.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