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들의 산행길로 딱? - 속리산 묘봉

충북보은과 경북상주를 가르는 백두소백등걸의 속리산묘봉(妙峰)은 이름만큼 묘(妙)한 바위군상들이 연봉을 이룬, 산님들에게 사랑받을 산이란 생각이 들었다.

운흥리 두부마을에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묵화병풍연봉(墨畵屛風連峰)은 나의 시선을 붙잡고 맘을 궁딱두근질 하게한다. 병풍안골을 찾아드는 숲길은 아침서기와 부엽토향이 깊은 산골짝의 적요와 어우러져 일상탈출을 시도하는 나를 깨 홀랑 벗기는 거였다.

 

아직 짙푸름이 한갓진 골짝에 성미 급한 생강나무가 혼자 노랑가을을 뒤집어쓰고 있다. 갈이 깊으면 겨울이 오고 깨 벗고 추위와 맞서야 할 푸나무는 그런 생강나무가 백여우라 마땅찮다. 그래 늘 왕따 당하는 생강나무는 체구도 외소하며 숨어살아 눈에 잘 안 띈다.

 

병풍안 진터골은 웅숭하고 깊어 한참을 헐떡여야 584연봉에 오르는데 장군,치마,감투,병풍,말,덤,애업은,낭,굴바위들이 토끼,개,쥐,삼각,네모,뿔구멍을 만들곤 나더러 통천문을 넘나들며 토끼,주전,상모,비로,상학,855,묘봉을 알현하라는 게다.

그 많은 바위들을 뭣 땜시 저렇게 멋대로 포개 쌓아놓고 산님들을 유격훈련 시키는지?

 

거대한 바위들은 지들끼리 연애도 못하나? 바윈 지 몸 뽀개서 소나무를 키우며 그 오랜 세월을 짝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위 쪼개진 틈새기로 옹색하게 발목 붙잡힌 채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할 소나무가 불쌍하기도 하지만 한껏 생각하면 놈들도 행복한 일생이다.

거대한 바위나 되니까 있는 것 없는 것 다 쏟아 건사하며 짝사랑하고, 근래에 좀 귀찮기는 하지만 영양부족으로 기형이 된 몸짱 탓에 산님들의 사랑도 받게 됨이다.

어쨌거나 산님들은 우왕좌왕하며 나무늘보 걸음걸일 한다. 바윌 오르고 건너뛰며 개구멍을 통과 하다보면 밧줄잡고 벼랑길 올라야 하고, 통천문 지나면 수직 단애가 걸친 밧줄에 몸뚱이 실어 내려와야 하니 너럭바위에 주저앉기 다반사고, 그래 땀 훔치며 가쁜 숨 진정시키면 코앞에서 소나무는 달아나려고 팔 있는 대로 휘저어대지만 바윈 놓아주질 않는다.

사위를 둘러보면 검푸른 산은 명당자리마다 거암들을 모아 하얀바위마실 동양화 병풍을 그렸고, 쪽빛하늘은 소나무침엽에 찔려 금방 금이 가 와장창 쏟아질 것만 같다.

불가사이 한 것들을 생각하다가, 만능해결사 인터넷도 어쩌질 못한다는 <검색>이란 오성일씨의 시가 생각나 흉내 내 본다.

산은 등허리에 큰 바위들을 업고 왜 아프다고 않는지 

세월한테 물어볼까

바윈 지 몸 뽀개서 왜 소나무를 키우는지 

바람한테 물어볼까

바람은 잠자면서 코를 고는지 안 고는지

별들한테 물어볼까

상수리나문 뭘 먹고 살려고 열매 다 터는지

다람쥐한테 물어볼까

단풍지고 깨 벗은 나목들은 겨울밤에 이불 덮는지 안 덮는지

된서리에게 물어볼까

아! 단풍이 저리 이쁜데 왜 벌 나비가 안 오는지

새들에게 불어볼까

 

오르고 내리는 바위길이 험하니 걸음이야 오살 맞게 굼뜨고, 시간은 구름마냥 달아난다. 난 산행 때 거의 홀로산행을 즐기는 편인데 오늘은 애당초 물 건너갔다. 일행들과 같이 살다가 같이 죽는 수밖에 없다.

꽃뱀처럼 늘어진 산님들 행렬을 보면서 여기 묘봉산행은 커플들끼리 오면 딱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윌 건너뛰고 오르고 내리면서 손 잡아주고, 엉덩이 밀어주며, 때론 벼랑 뛰어내릴 때 보듬어 안아야 할 때가 어디 한두 번이 아니지 않는가!

 

남자는 기사도정신 발휘하기 딱이고, 뭔가 소원한 커플이람 스킨십으로 사랑확인하기 최적이란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드는 거였다.

여기 바위군락의 연봉들은 고작 600m~900m안의 고만고만한 키에 칼바위도 아닌, 매끄러운 화강암도 아닌, 아찔한 암반등반도 아닌, 숨 막힐 벼랑하강도 아닌, 끼어가다 걸려 개귀신이 될 개구멍도 아닌, 파란 하늘 보며 통천문 나서다 하늘나라로 갈 걱정 안 해도 될 적당한 긴장과 스릴이 연속되는 코스여서 하는 말이다.

 

하여 나도 일행 숙녀분들에게 식어빠진 기사역할 하며 젊은 날의 초상을 케케묵은 기억창고에서 꺼내 맛보며 고소를 했다.

홀로산행에 거의 홀로점심 했었는데 오늘은 오찬(?)에 끼었다. 푸짐한 먹거리에, 풍성한 입담에, 정 듬뿍한 배려를 즐기다보면 산행의 또 다른 별미를 만끽하게 된다.

이삐,꽃임이,여여의 친절에 입이 째지는데 나비아타신랑은 복분잘 따르며 “깡쌤 잘 챙겨드리라.”고 거푸거푸 당부한다.

 

아이~두커플, 나비아타커플의 배려에 갈뫼사랑을 피할 수 없는데, 식물도감 (화원주인임을 오늘 알았다)꽃임씨가 내게 야생화선생노릇을 할 테고, 이삐와 여여의 미소가 있어 이젠 능청떨며 갈묄 더 찾게 됐다.

세 분 숙녀들, 익히 눈인사는 하고 지냈었다. 아니다, 오늘 나비아타의 소개로 정식 통성명하다시피 함이지만 꽃임,이삐씨는 언제가 동행하여 산행기에 까미녀(까탈스런 성격으로 미혼인 여자)라고 쓴 적이 있는데 눈감아 줘 무탈했었다.

꽃임씨가 화원을 운영해 식물에 일가견이 있단 걸 내 일찍 알았다면 그녀가 싫어하든 마든 솔찬히 귀찮게 굴었을 나다. 담에 기회가 생김 꽃임씬 내 옆에 아니, 내가 바짝 붙어 귀찮게 할 것이다.

오늘 그녀는 점심때 무슨 말미에 ‘여자의 3M(man,money,mood)’을 얘기해 고갤 끄덕이게 한 유머골든·걸이기도 했다. 항상 상큼한 분위길 만들 줄 아는 돈 있는 남자라면 사랑하지 않을 여자가 없다는 건 정설이다.

묘봉 정상8부 능선엔 빨강가을이 도장밥처럼 앉아있다.

놈들은 저렇게 머물며 바람의 눈칠 볼까? 하늘의 신호를 받을까? 일시에 노랗고 붉은 떼거릴 만들어 남하할 것이다.

그때 여기 묘봉을 찾는 커플들은 바윌 뛰넘다 보듬고 탄성을 지를 것이다. 그러다가 미처서 저 앞의 속리산 문장대 연봉으로 거푸 내달릴지도 모른다.

산은 곧 사랑이라!

우리가 일상에서 짊어지고 온 별 시덥잖은 투정도 품어주고, 몸과 맘의 건강을 챙겨주며 사랑의 가교역할도 기꺼이 거드는, 모든 걸 베풀며 감싸는 사랑의 산인 것이다.

북가치를 밟고 미타사쪽으로 내려오는 골짝은 아직 녹음 울창하여 풀 섶에 숨어 “시시시~잉” 가냘프게 우는 산귀뜨라미 소리만 아니라면 가을은 딴 나라 얘기일 것 같았다.

그 하산 길엔 곧장 아이~두가 선도를 한다. 이태 전만 해도 꼴찌도꼴찌도 상꼴찌였는데-.

여섯 시간 남짓 거뜬하다.

산은 그렇게 사람을 건강과 자신감을 심어준다.

해도 가는 시간은 붙잡아놓질 못해 노쇠는 나를 찾아오고 그래선지 첨으로 장딴지에 쥐가 났다. 은근슬쩍 시름이 돋았다.

뒤풀이마당에서 익산님이 정성껏 맛사질 해준다. 묘봉을 안내한 갈뫼에게 박술 보낸다.

2013. 10. 20

 

 

-이삐,여여&나 셋인데 왜 내가 없는지, 카메라에게 물어볼까-

 

-처갓집 고구마밭에 있어야할 텐데 왜 여기 숨었는지, 바위에게 물어볼까-

 

-각시 아무리 기다려도 왜 안 오는지, '관상'한테  물어볼까-

 

-오늘내내 발버둥처봐라 왜 안 나오는지, 가슴한테 물어볼까-

 

-그림 그리며 설명해보소 왜 안듣는지. 저기 예쁜여자에게 물어볼까-

 

-보소! 내가 왜 굴속에 숨는지, 구렁이한테 물어볼까-

 

-잠깐! 바위가 기우뚱--울 다 죽는~난 안 들어가지, 느낌 아니까-

 

 

-내가 왜 바윌 붙잡고 고생하는지, 배낭에게 물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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