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후산 산행기


 


 


 

‘10년간 100군데 산 찾아다니기 그 스물세 번째’


 


 

1. 남도 당일산행 출발 


 

 단독산행을 할 때 경남이나 전남 지방에 갈 때는 전날 심야버스로 이동했다. 스스로 로켓이라 부르는 장거리 버스나 열차로 이동했다. 그간 ‘한국의 산하’ 산행기 게시판에 출입한지도 2년이나 되었다. 단독산행에는 늘 산행기가 필요했다. 여러 번 요긴하게 썼다. 모후산 간다는 공고를 보고 오래 전 했던 약속을 깨야 했다. 그 모임은 8년 된 산행 모임이지만 석 달에 한번 정도 보는 얼굴이다. 어찌됐든 ‘한국의 산하’ 산행기에서 본 이름들과 그 주인공들의 얼굴이 더 궁금했다.   

  몇 주 전 와이프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갈 리가 없지만 물어봤다. 그때는 안 간다더니 어제는 웬일로 ‘나도 갈 걸’ 하는 거다.

 알람 소리에 놀라 서둘러 바꿔 타고 갈아타면서 사당역에 도착하니 6시 50분. 김밥집이 많다던데 한 군데도 없다. 겨우 대기한 관광버스 ‘유’ 관광 근처 패밀리마트에서 김밥 두 줄, 우유 둘, 팥빵을 몇 개 샀고 사과만 잔뜩 뒹굴고 있는 배낭 속에 구겨 넣었다. 전에 했던 단독여행의 출발준비공식은 늘 이러했다.

 버스 안에 들어가 잠시 당황했다. 두 좌석 모두 사람은 없는데 배낭만 하나씩 놓여있다. 자리 없는 한 명은 앉으라는 건지 두 자리 다 맡았으니 않지 말라는 경고용 배낭인지 알 길이 없다. 눈치 보며 혼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사람이 있다는 거다. 두어군데 더 물어도 그 대답에 진땀났다. 아예 맨 뒤로 갔다. 한 산우에게 물으니 빈자리라는 거다. 그제야 자리를 잡았다. 떠들며 먹으며 편해진 다음에 구체적으로 명찰을 가리키며 물으니 노만우님이다. 여러모로 대 선배다. 산 관련 잡지에 투고도 하고 산행기도 200편은 올리고 달리는 버스 창밖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렀다. 2, 3일 후면 산행기에서 재미있게 보리라. 그러고 보니 이 차는 글 좋아하거나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로 꽉 찬 셈이다.

 차에 오르고 나자마자 먹을 것을 많이 돌렸다. 김밥도 돌리고 흰떡도 돌리고 밀봉된 사과즙도 돌렸다. 어? 이런 것 준다는 내용은 없었는데. 아침을 이렇게 많이 주면 점심은 당연히 주겠구나.

 드디어 뒤집어지는 착각에 빠졌다. 이솝 이야기를 떠 올리면서 짐 되는 것은 다 먹어치우는 거야. 어차피 점심은 나온다는데. 지고 다닐 필요가 없지.


 

2.  관광버스라는 울타리


 

  권경선 총무님이 산행개요를 설명하면서 설명 중간에 ‘화순’, ‘초청', '산악회’, ‘모후산’ 등 낱말이 반복돼 들려왔다. 모후산 이름 자체가 무협지에 나오는 중국의 무슨 산인가 생각할 정도로 낯설었다. 관계자들의 인사말과 함께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듣다보니 낯익은 닉네임도 더러 있다. 그렇다고 뛰쳐나가 손잡고 반갑다고 호들갑 떨 용기가 없다. 점잖은 체면에...  

 나중에 백산을 묻는 분이 있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백군데 산을 백산이라는 모양이다. 나는 백산이라는 말이 멋있어 보였다. 이름 앞에 붙일까.


 

 아침부터 착각에 빠진 나는 아침을 먹어 안 먹겠다는 노 만우 님에게도 권하는 등 나눠 준 김밥 두 줄을 다 먹어치우고 사당역에서 산 김밥 두 줄까지 옆 사람에게 줘가며 빵이며 우유며 열심히 먹어 버렸다. 점심까지 한 몫에 거의 다 먹었다. 사과즙에 떡 일부까지 다 쓸어 넣었다. 눈치 빠른 와이프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배는 부르고 잠은 안 오고,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꺼내 읽는데 이번에는 글자들이 눈알을 흔들어댄다. 곡절 끝에 드디어 11시 경 목적지에 도착했다.  

 

 

3. 자연림 아닌 조림의 결과 

 

 모후산은 해발 918m의 작은 산이다. 우리가 도착한 11시경부터 한 시간에 걸쳐 전국산악인초청 행사가 있었다. 모두들 붉은 등산복 차림이니 붉은 깃발만 들면 영락없는 홍위병 출정식이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 생긴 이래 가장 많이 모였다고 떠든다.  오랜만에 가슴에 손 얹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애국가도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도 했다. 공주산악회에서 밤술을 열세 말이나 가져왔다니 정성이 지극하다. 피켓을 앞세우고 모후산으로 향했다. 조금 오르다가 한 쪽에 모여 점심식사를 한단다. 난감했다. 이미 다 먹어 버렸으니. 

 여기저기 잔디 위에 먹자판을 만들고 있다. 둘러앉아 음식을 꺼내 펼치는데 마음이 춥다. 우유를 남겨 다행이고 사과 여러 개와 우유, 빵이 그나마 남아있어 다행이다. 일송과 일영 부부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다. 엉덩이를 자리 한 쪽에 걸쳤다. 하지만 허공에 뜬 마음은 걸칠 데가 없다. 그 부부가 고맙다. 준비한 밥을 먹으라고 해서 몇 술 떴다.  그때는 친절한 그분들이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됐다.   

 

 오늘의 일정은 이러했다.

 

1. 서울돈암동출발 06:00 - 성신여대환승 - 사당역 - 유 관광버스 07:10 - 모후산 주차장 도착 11:00

 

2. 주차장 출발 12 : 10 - 용문재 13:30 - 모후산 정상 14:30 - 중봉 - 철철바위 - 유마사 - 주차장 16:30 - 출발 17:00 - 서울 : 12:00 - 집 도착 13:00

 

 용문재가는 비탈길 옆에 있는 대나무와 삼나무, 전나무가 볼만했다. 매번 느끼지만 자연림 아닌 애국적 조림의 결과다. 산속에 비비추도 심고 옥잠화도 심었으니 정성이 대단하다. 숯 굽던 가마터는 타오르는 불꽃을 누르느라 애쓰는 듯 불길이 금방 솟아날듯하다. 가파른 길을 조만우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그가 셔터 누르고 있으면 내가 앞서고 내가 쉬고 있으면 그가 앞선다.  어느덧 1시 30분.

    

4. 모후산 산행 여정 

 

  가파른 곳은 끝난 것 같은 용문재에서도 제법 걸었다. 숨도 찼고 짜증도 났다. 멀리 보이는 계곡, 도로, 마을, 움직이는 차량, 흐르는 물줄기가 실로 만든 그림 같다. 걷는 동안 내 딴에 중요한 생각에 잠겼다. 이달 내내 마음에 담고 싶었던 세 가지 생각에 골몰했다. 

 첫째가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 비법이다.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았다는 비법에 웃다가 멈췄다. 장군이 보기에 질 것이 뻔한 싸움에 나가라는 왕의 말을 안 듣는다고 모함 받아 서울로 압송되는 장면이 떠올라서다. 웃을 일이 아니다. 정말 질 싸움은 안했다.

 두 번째가 내려오는 칼끝은 잡지마라. 요즘 경제 상황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하락은 분명 내려오는 칼끝이다. 부동산, 주식 마찬가지다. 하루 이틀, 한두 달 조정했다고 달려드는 것은 칼끝 잡는 일이다. 그럼에도 당국자들은 칼끝을 잡으라고 꼬드긴다. 미국 경기가 10년 이상 정체될 수 있음을 생각해봤는지. 그 이상 오래가도 30년 뒤에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 번째가 행운이란 준비한 자가 기회를 만났을 때 온다는 말이다.

‘마지막 강의’에 나오는 구절이다. 벽에 붙인 지도를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백두산은 머리 위에 있고 한라산은 발아래 있는 느낌이었다. 마찬가지로 행운도 백두산 부근에 있다고 믿었는데 물에 둥둥 떠다닌다는 거다. 준비한 사람은 언제든 건질 수 있다던가.   

 

 제법 가파른 길을 걸었다. 끝났는가 하면 다시 시작이고 계속 나타났다.  정상에 섰을 때는 바람이 꽤 차갑다. 주황색 상의를 팔에 걸고 걷다가 다시 입었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2시 30분이 넘었다.

 

5. 하산 길 

 

 산위에서 먹는 사과는 정말 맛있다. 사각사각하면서 입 안 가득 뭉치는 과육이 최고다. 올 가을에는 참 많이 먹었다. 중봉 가는 길 양 옆은 산죽이 시골울타리처럼 둘러있어 돌담길 걷는 기분이다. 포근하고 아담했다. 다시 철철바위 쪽으로 내려가는데 비탈이 심했다. 그나마 튼튼한 동아줄이 있어 좀 나았다. 낙엽을 미끄럼 타듯 밟으며 내려왔다. 절 앞까지 오니, 흑백이 아주 귀여운 고양이가 맞았다. 절 앞에서 약수를 마셨다.

 출발지로 오니 줄서서 악수하며 작별인사다. 주최한 산악회에서 도열했고  서서 일일이 인사하며 보내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600여명의 최초의 전국적 등산대회는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한국의 산하’ 우산 아래 모였고 빛깔고운 밤 막걸리 한 통 비우고 5시에 출발했다. 서울에 12시 넘어 도착했고,  김성중 운영자님, 이남주 관리자님, 산초스 님과 작별했다. 좌석버스, 일반버스타고 돈암동 집에 오니 새벽 한 시다.  

 

o. 네이버 블로그 ‘정갑용의 직업여행’; http://blog.naver.com/doloomul/

o. 다음 블로그 ‘GRM’ http://blog.daum.net/cnilter/

o. 한국의 산하.http://www.koreasanh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