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2006.04.16
-어디를: 진안의 마이산
-누구와: H산악회에서 나 홀로
마이산의 봄




마이산의 봄
  
<마이산의 신비한 전설>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이르기를
"우리가 登天(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납시다"
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는 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 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것을 듣고
登天(등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 이 꼴이 되었구나"
하고 여신으로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 버리고는
그 자리에 선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다 한다.



타포니지형의 마이산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기는 하지만 마이산을 진안 북쪽에서 보면
아닌 게 아니라, 동편 아빠봉에 새끼봉이 둘 붙어 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러워서인지 수치심에서인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라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러한 전설을 안고 있는 마이산의 모습은 아랑곳없이
오늘도 많은 산 객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올 들어 벚꽃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로써도
어쩌면 파스텔을 뿌려 놓은듯한 흐드러진 벚꽃 길을 걸을
행운을 누려볼까 하여 산행 길에 나섭니다.
요 며칠 전부터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집 밖을 나서고 보니 불어 닥치는 찬 바람은
마침 초겨울 수준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무척 맑아 보였기에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월운마을 들판과 가야 할 광대봉을 향하여

10시에 함미산성 입구인 강정리에 도착 합니다.
우선 바람을 막아 볼 요량으로 잽싸게 몸을 산 속으로 숨깁니다.
그러나 웬걸 앞서가는 수 많은 산객들의 인파 속에 언제 이곳을 헤쳐나갈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좀처럼 길을 열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아 그냥 여유 있게
주변의 월운마을 들판과 야생화 그리고 진달래가 만개한 정감 있는 산속을 걸어 갑니다.
포근한 미소와 향긋한 꽃 내음 속에 취하는 사이 어느덧 광대봉에 닿습니다.






광대봉 정상에서 바라 본 마아이산

<광대봉에서>
몇 개의 암봉을 오르내리는 사이 11시가 다 되어 광대봉에 닿습니다.
주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하여 땀을 식혀줄 수 있어 좋았지만
그래도 산행다운 산행이 되어야 할 텐데 좀처럼 땀이 맺힐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곳 광대봉에 올라서니 마이산의 신비가 베일을 벗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의 모습이
청명한 하늘 아래에 유난히도 나의 시야를 자극 합니다.
여태까지 사진으로나마 안위를 삼았던 마이산이 출렁이는
산 너울을 따라 내게로 다가오는 강렬한 인상에 도취되어 숨겨놓은 보물이라도 찾은 양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마음 같아서는 훌쩍 달려가
껴안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주위의 조망에 넋을 놓습니다.






광대봉 릿지길/ 고금당 가는 길에서

잠시 세상의 모든 체념을 버리고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의 산그리메를 바라봅니다.
출렁이며 요동치는 산 너울에 도도히 흐르는 우람한 자태를 뽐내면서
神만이 만들 수 있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나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찬사를 던집니다.
사방 아름다움의 조망을 즐기는 사이 내려가야 할 곳을 보니 까마 득 합니다.
약간의 스릴감을 느끼면서 내려가겠지 하였는데 의외로 쉽게 내려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겨울 등반 시는 조심을 해야 할 구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마이산의 가는 봄길에서

엘리엇의 시인이 말했듯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지만
나에게는 산을 좋아한 뒤부터는 4월의 초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계절마다 자신의 모습을 뽐낼 수는 있겠지만
만물이 소생 할 수 있는 4월이야말로 희망의 계절이요.
초록의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산 행로의 주위로 만개한 진달래와 이름 모를 야생화
그리고 겨우내 얼어있었던 파란 새싹의 움 들이 어찌 잔인한 4월이겠습니까마는
아마도 그 시절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계절과는 무관한 잔인한 4월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흥사와 동촌들판/진달래와 조망/마이산을 바라보며

<고금당 가는 길>
보흥사 갈림길을 지나서 무명 봉우리에 닿습니다.
몇 번의 오르내림을 하는 동안 이윽고 고금당 가는 길은 의외로 순탄해지기 시작 합니다.
이따금씩 이어지는 오솔길은 차분한 산책길 수준이었습니다.
하늘로 시원스럽게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을 지나고
또 다른 낙엽 쌓인 길들이 마냥 유순하기만 합니다.
남부주차장 갈림길을 지나 아래의 고금당을 가 볼까 하다가
그냥 그곳을 지나치기로 합니다.
저 아래의 주차장에서 들려오는 스피커의 향락 음 소리와 고금당에서 들려오는 불경소리의
뒤범벅된 음이 영 내 마음을 내키게 하지 않게 하고 있었습니다.





비룡대 가는 길과 비룡대와 하늘

<가자 비룡대를 향하여>
작은 암봉을 우회하며 가파른 오르막은 시작됩니다.
오르막이래야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다 보니……
가야 할 눈 앞에 펼쳐진 정자가 보입니다.
신선이 머물다 가라는 정자인가 싶기도 하지만 일단은 올라가서 확인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느 산행기에서 봐서 일부러 계단을 셀 필요는 없어 보였지만
꼭 100개를 고집한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잠시 내가 들여 논 흔적의 행로를 따라 뒤 돌아 보기도 합니다만
벌써 이만큼 왔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이곳 비룡대에서 머물기로 합니다.

비룡대에서 바라 본 북동쪽의 남덕유산의 조망


바로 앞 부귀산과 저 멀리 운장산이 보인다


동남쪽의 덕태산

<최고의 전망대 비룡대에서>
비룡대 팔각정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깁니다. 우뚝 솟은 자연의 신비와
전설 속의 기이한 쌍봉.암마이산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북쪽으로 가깝게 부귀산과 멀리는 운장산의 우람한 모습과
북동쪽으로 남덕유의 모습이 시야에 잡혀 들어 옵니다.
가깝게는 5개의 암봉이 기둥을 세워놓은 듯한 삿갓봉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자신이 신선이 된 착각의 환상에서 한참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불어 닥친 심한 봄바람에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이 사이비 신선은 황급히 비룡대를 빠져 나옵니다.



삿갓봉과 탁영제의 모습

무덤 뒤로 삿갓봉의 등로는 이어져 있었습니다만 뒤 따라 오는 산객께서
그곳은 폐쇄 됐다는 말씀에 정확한 내용인지 어떤지는 더 이상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제 2쉼터로 오르기로 합니다. 이곳이 봉두봉인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조망을 즐기기로 합니다.
벤치에 걸터앉아 바로 아래의 탑영제의 푸른 물빛이 어우러져 색감이
하늘색만큼이나 짙푸르게 보입니다.
멀리에서 본 주변의 벚나무는 아직도 만개를 하지 않은듯싶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암마이봉과 탑사

갑자기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여 주변을 둘러봅니다.
함께할 사람들이 있나 싶어서였지요.
아침에 급히 이곳으로 오는 바람에 김밥 2덩이만 달랑 갖고 이곳에 왔으니
산행중에 자신은 원래 김밥을 좋아하지 않아 혹시나 김치를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하였으나
다행이 일행으로 보이는 회원 몇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후식으로 얻어먹은 과일 맛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암마이봉을 향하기 위해 좌측의 등로를 따라가기 전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쪽으로 가 보니 산객들의
무리들이 어울려 야외놀이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내 남자, 다시 태어나도 내 여자'를
외치며 노래하는 축하의 모습에 넋을 놓습니다.
아마 결혼 23주년을 기념하는 어느 부부의 축하연이었습니다.
참말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내 마음 진심으로 그 부부의 결혼 기념일을 축하 드리면서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아뿔싸 이런 경우가……>
마음의 미소를 머금고 내가 가야 할 암마이봉을 올려봅니다.
마천루 같이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의 모습에 바싹 움추려드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저 거대한 바위를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되기 전에 내가 가야 할 그곳은 금기의 출입금지로 박혀있었습니다.
2004년부터 앞으로 10년간 자연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지 한다는 내용을 보고
어찌 감히 침범 할 수 있으리오. 아쉬움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허전한 발걸음을 탑사로 옮깁니다.





탑사에서

<塔寺(탑사)에서>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은 마이산의 塔群(탑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탑사에 들어서니 이곳에서 돌탑을 구경하는 것인지 사람 구경하는 것인지……
일행을 찾아 외치는 고함소리와 어린애들의 울부짖음과
향락객들의 노래소리에 정신이 없었습니다만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는 과정에서도
볼 것은 다 보고 가겠다는 심리입니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차곡차곡 쌓아 올린 수 많은 탑들을 쌓는 과정에서 여갑용처사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 많은 돌탑을 쌓았을까?
신비를 간직한 채 폭풍을 견디며 남아있는 80여기의 탑군을
우리가 어떻게 보존해야 할까 하는 무거운 책임의식을 느끼며 은수사로 발길을 옮깁니다.





코끼리상을 띄고 있는 숫마이봉과 은수사에서

<은수사에서>
은수사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오르면서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진 마이산의
타포니지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은수사 주변에 울려
퍼진 북소리가 요란스럽기도 합니다.
3번을 치고 소원을 빈다는데 어느 누구는 3번 이상 法鼓(법고)를 두드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천원의 본전 생각이 간절했던 모양이지요.





탑영제의 벚꽃은 아직도....../내려 오면서 금당사의 대웅전을

마침 14~18일까지 마이산 벚꽃 축제기간입니다.
해발 400m가 넘는 이곳의 벚꽃은 전국에서 가장 늦게 피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시기를 이곳 사람들도 좀처럼 맞추기 어렵다는데
아직도 만개하지 않은 벚꽃을 바라보며탑영제의 푸른 물결 위에 한가로이 떠 도는
오리기구의 놀이모형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며 주변 포장도로 양쪽으로 늘어 선
진안 흑돼지의 바비큐 먹거리가 우리의 후각을 자극 시키는 동안에
오늘의 산행이 끝나는가 싶습니다.




<에필로그>
내가 탑사를 처음 찾았을 때가 7년 전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겨울 해질 무렵 아내와 두 손을 꼭 잡고 탑사를 거닐면서
처음 본 비경에 그만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마치 말의 두 귀를 닮은듯한 봉우리 사이에 숨어있는 奇景(기경)이……
가히 신선이 소일이라도 한듯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바로 신선이 아니었나
했을 그때의 감흥은 투영되지 않습니다만.
마치 인공으로 만들어진 콘크리트처럼 보이는 마이산을 보고
어느 외국인의 말을 음미 해 봅니다.
’한국인들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게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쌓을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니……
이 기묘한 산이 있어 흥미로운 곳.
불가사의한 탑이 있어 신비스러운 곳.
신령스런 영험이 깃 들어 있으며 외경감을 품게 하는 마이산 탑사.
이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으로 돌아 왔습니다.
신비의 자연을 보존 해 가며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말씀을 남기면서 이만 글을 마칩니다.

2006.04.19.
청 산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