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 본 인

날    짜 : 2 0 1 0년 3월 14일    날 씨 : 맑음. 스모그 시계 불량 전망

행 선 지 : 마이산(馬耳山 685m) 종주

산행취지 : 요산요수산행방 25차 정기산행 시산제

참가인원 : 37명

글 쓴 이 : 요산요수 (류 인 호)

산행시점, 종점 : 전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원강정마을)→진안군 진안읍 단양리(북부주차장)  

산행코스 : 원강정마을~보흥사~광대봉~고금당~비룡대~삿갓봉~봉두봉~암마이봉~탑사~북부주차장

산의 특성: 광대봉에서부터 조망이 시원하며 특히 비룡대와 삿갓봉의 조망이 환상적이다.

 

지점별 통과시간 및 특징 : 

-09 : 28~33 원강정마을(버스승강장)(느티나무 아래 버스승강장에서 마을안으로 경모당을 지난다.)

-09 : 36~49 포장도로(홍삼정다원에서 포장길을 따라 개울 우로,좌로,우로 건너자 널다란 주차장)

-09 : 50 주차장(다리를 좌측으로 건너서서 이정표를 지나 산모퉁이를 돌자 보흥사가 보인다.)

-09 : 55 보흥사(대웅전 좌측 길에 있는 밭에서 광대봉을 가기 위해 좌측 골짜기로 접어든다.)  

-10 : 16 능선진입(골짜기에서 좌측으로 산비탈을 개척하며 힘들여 능선에 오르자 길을 있다.)

-10 : 24 능선길만남(능선을 따르자 잠시 후에 함미상성 길이 합쳐지는 삼거리에서 우측행 .)

-10 : 27~31 전망바위(사방이 확트인 전망바위에 올라 휴식을 한 후 출발, 봉우리를 넘자 삼거리)

-10 : 36 이정표삼거리(좌측에 우회로가 있지만 철조망이 쳐진 직진길로 잠시 오르자 삼거리)

-10 : 39 태자굴갈림길(좌측에 태자굴. 덕천교 갈림길 이정표에서 직진 바위 난간을 오른다.)

-10 : 46~52 광대봉(정상석.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 전망을 즐긴 후 급경사 밧줄지대를 내려간다.)

-11 : 02 ㅏ삼거리(우측 우회로와 합쳐진 후 잠시후 다시 우측에 보흥사길 삼거리서 직진한다.)

-11 : 08 전망봉(좌측 샛길을 무시 직진 철난간을 오르자 전망이 좋은 봉우리,10시방향 직진)

-11 : 22 ↱길진행(봉우리 2개를 지나 능선을 우측으로 벗어나 우측 90도 꺾어 산허리 돌아감)

-11 : 31 전망암봉(능선을 바꾸어 철난간을 오르자 마이산을 조망 후 철계단을 2번 내려선다.)

-11 : 48 ㅏ삼거리(삼거리안부에서 직진,우측으로 돌아가자 이정표삼거리서 11시방향으로 진행)

-11:52~12:22점심식사(Y자삼거리에서 점심식사 후 직진하지 않고 2시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간다.)

-12 : 28 이정표사거리(좌측에 묘3기가 있는 사거리서 금당사를 보기위해 우측으로 넘어간다.)

-12 : 31 고금당(좌측에 큰묘와 우측에 사리탑을 지나자 고금당터에 새로 지은 고금당을 관람)

-12 : 35~51 다시사거리(다시 묘지사거리로 돌아와서 524.5봉에서 내려오는 선두를 기다린다.)

-12 : 52 감로수(우측으로 진행, 지붕과 뚜껑까지 씌워놓은 감로수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13 : 03 오거리안부(능선에서 우측으로 500m봉을 넘어 내려가지 이정표5거리서 11시방향 진행)

-13 : 14 철계단(능선을 따라 비룡대를 쳐다보며 폐침목계단길과 철계단, 폐침목계단이 반복)

-13 : 30 비룡대(나봉암)(철계단을 오르자 팔각정전망대인 비룡대, 나봉암 표석이 있는 봉우리)

-13 : 38 금당사갈림길(비룡대를 내려가 능선을 따르다 또 하나의 금당사 갈림길에서 탑사방향)

-13 : 50 삼거리(‘⟶탑사’길에서 직진하자 이정표사거리안부에서 직진하여 오르막을 오른다.)

-14 : 03 쉼터사거리안부(전.후에 묘와 의자가 있는 사거리에서 5시뱡향으로 삿갓봉을 오른다.)

-14 : 10 삿갓봉(532m)(암봉 우측을 돌아올라 전망 좋은 바위인 삿갓봉을 구경한 후 되돌간다.)

-14 : 17 다시사거리(전방 묘1기 쪽으로 직진하여 각목계단길을 오르자 소나무가 우거진 쉼터)

-14 : 26 제2쉼터(쉼터(의자 있음)에서 9시방향으로 우회 암봉하단부를 돌아 안부에서 오른다)

-14 : 35~36 봉두봉(이갑룡묘)(헬기장이 있고 좌측에 이갑룡처사 묘를 본 후 긴 계단길을 내려감)

-14 : 43 삼거리(10방향은 북부주차장길이지만 통제되어 있어 3시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간다.)

-14 : 46 암마이봉전망터(급경사 철난간길을 내려가다 전망터에서 엄청난 암마이봉을 조망한다)

-14 : 50 주차장(급경사 철난간길을 내려서자 남부주차장에서 오는 포장도로가 있는 주차장.)

-15 : 55~58 탑사(주차장에서 북쪽 골짜기에 자리잡은 탑사와 돌탑들을 구경 후 은수사로 오른다.)

-15 : 05~12 은수사(시멘트도로를 따라 골짜기를 오르자 숫마이봉 앞에 있는 은수사를 관람한다.)

-15 : 13~18 나무계단길(매점옆에서 나무계단길을 따라 골짜기를 올라가니 암.수마이봉 사이 고개)

-15 : 18~22 천황문(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 고개로 좌측엔 암마이봉,우측엔 화엄굴 길이 있음)

-15 : 20 화엄굴(고개에서 우측 숫마이봉쪽으로 오르자 출입을 통제하는 화엄굴을 보고 돌아섬)

-15 : 29 매표소(나무계단중 2군데 쉼터를 지나내려가 계단끝 포장길을 따르다 우측에 매표소)

-15 : 31 마이사(매표소를 내려가다 좌측에 나지막한 절 마이사를 앞을 지나자 우측엔 상가들)

-15 : 35 북부주차장(산행종료)(도로 우측에 소형주차장을 지나자 대형주차장에 도착 산행 끝)

-15 : 40~ 시산제행사(시기는 늦었지만 1년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지내고 음복을 한다.)

 

참 고 지 도 : 월간‘산’ 특집지도, 진안.임실(鎭安.任實 국립지리정보원 5만분의 1지형도)

예 상 시  간 : 5시간 30분   

실제등산시간 : 6시간 02분(09 : 33 ~ 15 : 35) 산행시간 4시간 38분, 정지시간 1시간 27분

실제산행거리 : 11.764km(GPS 측정 수평거리) 총거리 12.493km(제자리서 왔다갔다 한 거리포함)

구간거리:원강정마을(1.69km)-보흥사(0.79km)-합미산성길합류(0.422km)-광대봉(0.486km)-전망봉(0.907km)-전망암봉(0.59km)-남부주차장갈림(0.61km)-신금당사(0.19km)-나옹샘(0.50km)-오거리(0.67km)-비룡대(1.06km)-묘사거리(0.18km)-삿갓봉(0.50km)-제2쉼터(0.28km)-봉두봉(0.72km)-주차장(0.15km)-탑사(0.47km)-은수사(0.59km)-화엄굴(0.54km)-매표소(0.11km)-마이사(0.31km)-북부주차장

 

산행한 동기와 개요

마이산하면 대개가 탑사 주변을 뱀돌다 내려오는 관광코스를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늘 종주코스를 생각해오다가 이번 

정기산행은 매월 2번째 일요일에 있는 우리산악회가 금년은 2월 정기 산행일인 2번째 일요일이 설날이여서 상당히 늦은 시산제 산행이 3월달에 시행되었다. 마이산의 유명한 탑사를 정기를 받아 이름을 바꾸어 새로 출발하는 ‘요산요수산행방’의 건승과 발전을 기원하려고 마이산으로 산행지를 정하였다. 마이산 종주코스가 다소 길어 시작부분을 줄이고자 합미산성은 빼놓고 중간지점인 보흥사에서 오르는 코스를 택하게 되었는데 원강정마을에 도착해보니 마을을 통과하는 큰 길이 없어 보흥사까지는 승용차가 아닌 큰 버스는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마을만 통과하면 보흥사까지 아스팔트로 포장이 잘 된 넓은 길이 이어지고 보흥사 200미터 직전에 넓은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광대봉을 거치려면 주차장에서 보흥사쪽으로 산모퉁이를 돌기 직전에 왼쪽 산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보흥사에 들렸다가 대웅전 좌측에 난 길을 따라 오르다 길도 희미한 좌측으로 올라서는 바람에 급경사 산비탈을 개척산행을 해야만 했었고 광대봉부터는 산행내내 마이산을 계속 바라보면서 산행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다만 날씨가 멀리까지 볼 수 없는 연무로 선명하게 바라 볼 수 없었던 것이 옥에 티였다. 이번 산행에 꼭 들려보리라고 마음먹었던 삿갓봉을 나 혼자만 올라서 좋은 조망을 즐기고 왔으며 산행을 마친 후 시산제도 무사히 잘 마치게 되어 참석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산행 후에야 마이산에 금당사가 2곳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마이산(馬耳山 685m) 소개와 전설

 

 ▲ 삿갓봉에서 본 암.마이산 전경 

산행지소개 : 동경 127˚25" 북위 35˚45"에 위치하며 진안읍에서 남서쪽으로 4km, 전주에서는 동쪽으로 30km되는 지점에 있는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상의 영취산(1,075.6m)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치는 산줄기가 금남호남정맥이다. 이 금남호남정맥이 무령고개~장안산(1,236.9m)~팔공산(1,157m)에 이른 다음, 마이산을 지나 북으로 방향을 틀어 나가다가 진안에 이르러 산릉을 북쪽 금남정맥과 남쪽 호남정맥으로 나뉘어진다. 호남이 평안하려면 마이산 지역이 진정되고 편안해야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진안(鎭安)’은 호남의 지붕이라고 불릴 만큼 평균해발이 290m인 고원지대인데 이 고원지대의 상징이 마이산이다. 685m인 암마이봉과 678m인 숫마이봉이 마치 말귀처럼 보여 생긴 이름으로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며, 산 전체가 지방기념물 제66호로, 그리고 마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한 탑사는 지방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령방면 합미산성 일원까지 포함한 면적 16.9㎢가 1979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은 가까이서 보면 군데군데 크고 작은 구멍들이 벌집같이 뚫려 있고, 산 덩어리 전체가 마치 시멘트 콘크리트를 버무려 놓은 것 같은 뻐끔뻐끔한 수성암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옛날 이 지역은 호수였다고 합니다. 그 증거로 바위에서 쏘가리 형태의 민물고기 화석과 고동, 조개화석 등이 발견되어 바위의 형질이 담수성 역암으로 판명됐고, 지각변동에 의해 바닥이 솟아올라 봉우리가 된 것이다. 벌집같이 뚫여 있는 바위를 타포니(Tafoni) 지형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바위가 형성될 때 밖에서 안으로 폐여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비눗방울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표면으로 터지듯이 생긴 것을 말한다.

마이산 이름은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바뀌어 왔다. 서다(立)산" 또는 "솟다(聳)산"에서 한자음을 빌려 신라 때에는 西多山(서다산), 고려시대에는 공중으로 솟았다고 龍(聳)出山(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이 지방사람들은 속금산이라 곧잘 불렀다. 이 이름은 조선 태조가 명명하였다고도 전해진다. 한편 솟았다는 뜻인 "솟굼산"에서 유래하여 한자의 음을 빌려 "束金山"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 태종 때 비로소 馬耳山(마이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또 마이산은 음과 양을 갖춘 부부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이한 모습과 계절에 따라 이름도 여러 가지로 불리웠는데, 배의 돛과 같다 해서 돛대봉, 용의 뿔과 같다 해서 龍角峰(용각봉), 붓처럼 보인다고 해서 文筆峰(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하며, 계절별로는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산, 겨울에는 문필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마이산 전설 :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지금처럼 모양새를 갖게 된 전설도 전해지는데 아주 먼 옛날 산신부부가 자식들과 함께 살다가 하늘로 되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남자산신은 사람이 보면 안되니 밤에 오르려고 했으나, 여신은 밤에는 무서우니 새벽에 일찍 오르자고 하여 여자산신의 말대로 새벽에 하늘로 오르는 찰라, 공교롭게도 새벽에 물을 길러 나온 어느 아낙네가 산신부부가 자식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승천에 실패하고 굳어서 돌이 되었답니다. 떨어져 주저앉는 순간 화가 잔뜩 난 남신이 여편네 말을 듣다가 이 꼴이 됐다며 두 아이를 빼앗고는 여신을 발로 차버렸기 때문에 지금처럼 두 봉우리가 거리를 두게 됐고, 숫마이봉은 아이들이 붙어 있는 모습이고, 암마이봉은 죄스러운 마음에 돌아앉아 머리를 숙인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찾아간 길: 성서나들목-화원나들목-88고속국도-함양나들목 지곡.대전쪽-대통고속국도-장수나들목 익산진안쪽-진안나들목 진안.임실방면 우회전-마령사거리에서 전주쪽 우회전-원강정마을 하차

 

산행을 하기전

05:30~09:28 산행지로 이동 맑게 흐린 날씨 새벽에 고속도로를 2번을 갈아 타며 산행지로 향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 일찍 산행준비를 한 후 유진수 사장님을 태우고 늘 기다리던 반고개 행복주우소 앞에서 기다렸다가 승차한 후(06:32), 광장코아와 홈플러스러스 도착하여 약간 늦게 오는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하니 만차(40인승)로 걱정하였더니 37명 참석하였다고 한다. 성서나들목으로 들어간 버스는 화원요금소를 거쳐 옥포분기점에서 오른쪽 88고속국도로 접어들어 신나게 새벽길을 달리다가 거창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07:42~08:09) 출발한 버스는 거창나들목을 지나고 나오는 함양나들목에서 우측으로 지곡.대전쪽으로 나가 대통고속국도에 접어들어 대전을 향해 달리다가 장수분기점에서(08:54) 익산.장수쪽으로 새로 생긴 익산~포항간고속국도로 환승하여 달린지 12분후(09:06)에 나오는 진안나들목을 나가자 나오는 T자삼거리에서 남원.임실쪽으로 좌회전한 후 30번국도를 달리면서 갈림길이 나올 때 마다 마이산 이정표를 무시하고 직진하여 달리다가 좌측에 마령면소재지를 지나자 나오는 마령사거리에서(09:14) 직진하여 강정교를 건너자 도로가 좌측으로 굽어지며 우측에 마을쪽에 원강정마을이란 표시가 보여 차를 세우고 내려서 주민들에게 위치를 확인한다.   

▲ 광재봉을 오르면서 우측으로 내려다 본 보흥사가 있는 북수골과 원강정마을 

09 : 28~33 산행준비(원강정마을) 유도선수 전병관의 고향이자 영계서원이 있는 원강정마을

농촌에는 모두가 들과 밭, 또는 하우스로 일을 나고 빈 집이여서 물어볼 곳도 없어 하우스 안으로 찾아가서 겨우 보흥사 올라가는 길을 확인하고 큰길까지 나가 차를 부르니 동구나무인 커다란 느티나무가 섰는 버스승강장이다. GPS고도 289m인 원강정마을은 고려말 문신인 전주최(全州崔)씨의 忠翼公(충익공) 崔晩六(瀁)(최만육(양)의 서원인 靈溪書院(영계서원)과 1995년도 아시안게임 역도선수권대회 금대달 리스트인 전병관 선수 고향으로 유명한 곳이다.

 

산행을 하면서  

 ▲ 산행을 시작한 원강정마을 조감도

 

 ▲  타고온 버스에서리 내린 마을 앞 도로

 

 ▲ 버스승강장과 동구나무가 있는 마을 어귀

 

 ▲  동구마무 옆 길로 동네 안으로 들어거고 있다. 

 

 ▲  동네 중간에 있는 노인정(경노당이 아니고 경모당이란 간판이 이색적이다.)

 

  ▲ 동네를 통과하여  넓은  도로에 접어든다. 

 

 ▲ 홍삼제품을 생산하는 곳인가? 간판이 새롭다.

09 : 33 원강정마을(버스승강장) 느티나무 아래 버스승강장에서 마을안으로 경모당을 지난다.

원래 입구는 마령사거리에서 직진하여 강정교를 건너자마자 도로가 좌측으로 굽어지는 곳에서 마을 동쪽언저리 개울가를 따라 오르면 큰길로 들어서야 했었는데, 우리는 버스승강장에서 산행준비를 한 후 ‘원강정2길’을 따라 마을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 좌측에 ‘마령면강정경모당’를 지나자(09:35) 다시 좌측에 ‘홍삼정다원(홍삼정다원)’바라보면서 올라서자 널따란 포장도로다.  

 ▲ 뽀족한 광대봉을 바라보며 버스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도로를 걸어 올라간다.

 

 ▲ 노상 주차장도 있다.

 

 ▲ 북수골 계곡의 맑고 깨끗한 믈이 시원하다.

 

  ▲ 다리를 건너서 산모퉁이를 돌아 간다.

09 : 36~49 포장도로 홍삼정다원에서 포장길을 따라 개울 우로,좌로,우로 건너자 널다란 주차장

동네속의 좁은 길만 아니라면 버스가 충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골짜기 안쪽으로 광대봉을 바라보면서 차선도 없는 포장도로를 따라 한 동안 개울을 우측에 끼고 북수골을 거슬러 오르다 노상에 마련한 소형주차장을 지나고(09:46) 산모퉁이를 돌아서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건너서더니(09:46) 다시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서고(09:48) 이내 다시 우측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서서(09:49) 조금 오르자 주차장이다.  

 ▲ 대형버스도 몇대 세울 수 있는 주차장

 

 ▲ 주차장을 지나 좌측에 있는 이정표

 

 ▲ 역시 주차장 부근에 있는 안내문

 

 ▲ 주차장을 지나 오르다 뒤돌아 보고 찍은 사진(우측 시멘트포장 된곳으로 올라야 광대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 보흥사로 들어 가는 산모퉁이(우측 아래에 계곡엔 숨은 작은 폭포도 있다.

09 : 50 주차장 다리를 좌측으로 건너서서 이정표를 지나 산모퉁이를 돌자 보흥사가 보인다.

골자기 안에 상당히 규모가 큰 공터와 주차장이 있다. 여기까지 버스가 올라 왔더라면 발품은 덜 팔았을 것을... 다시 좌측으로 건너서자 이정표(보흥사0.3km→,광대봉1.2km⟶,함미산성3.5km⟶,고금당2.9km⟶)와 진안군수의 안내문을 지나 오르며 좌측에 능선으로 진입하는 길(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이 있는 두 전봇대 사이)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무심코 지나자 산모퉁이를 한 곳 더 돌아가자 보흥사가 보인다. 

 ▲ 천년고찰답게 단청도 않은 소박한 보흥사 전경

 

 ▲ 보흥사 유래와 계획서

 

  ▲ 대웅전 전경(좌측 검은 덮개를 씌운 하우스 옆으로 등로가 있다.)

 

  ▲ 녹슬은 함석 지붕을 덮은 북

 

 ▲ 절 마당 중간에 자리잡은 오층석탑

 

 ▲ 이길로 연등 줄을 따라 오른다.

 

 ▲ 산신각으로 가지 말고 좌측 밭쪽으로 올라선다.

 

 ▲ 표시가  많이 달린 곳은 광대봉 다음 갈림길로 가는 길이므로 좌측골짜기로 접어들어 간다.

09 : 55 보흥사 대웅전 좌측 길에 있는 밭에서 광대봉을 가기 위해 좌측 골짜기로 접어든다.  

고도 340m의 골짜기 안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보흥사는 광대봉을 등지고 있는 평화스러워 보이는 곳이다. 들어서자 좌측에는 간단한 안내문과 북과 정면에 대웅전과 마당 중간에 오층석탑이 돋보인다. 

寶興寺(보흥사, 북수사)는 : 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고 대한불교조계종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때 창건되어 광덕사(廣德寺)라 하였으나 그 뒤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448년(세종 30년)에 중창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폐사되었다. 1914년에는 불교신자인 민(閔)씨가 옛 절터에 법당과 산신각을 세우고 절 이름을 북수사(北水寺)라 하였다. 현재의 명칭은 1948년 중수할 때 1448년 중창 당시의 기록을 담은 상량문이 발견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이 상량문에 보흥사라는 이름이 나온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높이 3.97m의 오층석탑이 전한다. 이 오층석탑은 단층 기단에 재질은 화강암이고 사각형지대석 위에 4장의 판석을 얹어 만들었다. 신라 또는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강정리오층석탑이라는 명칭으로 1973년 3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절 입구의 용소와 육탕폭포에는 옛날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하고, 절 앞 북수골에서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때 5인의 공(公)이 왜병을 크게 물리쳤다는 설화가 남아 있다. 절 뒤쪽에는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는 약수와 귀를 밝게 해 준다는 이명천(耳明泉)이 있다. 

절을 살펴보고 나서 대웅전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서서 비닐하우스 좌측을 지나자 우측에 있는 칠성각으로 가는 길을 지나자 일행 일부 는 표시기가 많이 달려 있고 훤히 뚫인 길을 따라 직진하지만 직진길은 광대봉을 지난 삼거리로 오르는 길이므로 우리는 광대봉을 거치기 위하여 나무가 심겨진 밭에서 좌측 골짜기로 들어서서 희미한 길을 따른다.  

 ▲ 처음에는 희미한 길이나마 있다.

 

  ▲ 고개를 젖치고 광대봉을 바라 본다.

 

 ▲ 길도 없는 골짜기 좌측 가시밭길 산비탈을 치고 올라간다.

 

 ▲ 산능선에 올라서자 좌측 주차장부근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 반가운 대구 등산아카데미 표시기가 보인다.

10 : 16 능선진입 골짜기에서 좌측으로 산비탈을 개척하며 힘들여 능선에 오르자 길을 있다.

숲이 우거지고 바위가 약간씩 나오는 지점에서 더 이상 확실한 길은 없어 좌측으로 개울을 건너서서 능선쪽으로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숨은 헐떡이고 땀은 비오듯 한다. 10여분을 치고 오르자 지능선에 올라서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대구등산아카데미의 표시기도 달려 있는 길이다. 보흥사주차장에서 산모퉁이를 돌기 직전에서 오르는 길인 듯하다.  

  ▲ 주능선에 올라서자 좌측 함미산성에 오는 길과 합쳐지며 우측으로 진행

10 : 24 능선길만남 능선을 따르자 잠시 후에 함미상성 길이 합쳐지는 삼거리에서 우측행 .

허리를 펴지 잠시 쉬었다가 능선길을 따라 8분정도 오르자 다시 주능선삼거리길을 만난다. 이정표는 없지만 좌측은 함미산성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2~3분을 오르자 사방이 훤한 바위에 올라선다. 

 ▲ 철제난간까지 설치되어 있는 전망바위

 

 ▲ 전망바위에서 본 태자봉으로 연결된 능선

 

 ▲ 태자봉능선과 함미산성 사이 골짜기

 

  ▲ 나무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보흥사와 북수골

10 : 27~31 전망바위 사방이 확트인 전망바위에 올라 휴식을 한 후 출발,봉우리를 넘자 삼거리

좌측으로 철제 난간이 설치된 바위에 올라서니 마령면 일대가 훤히 눈에 들어오고 보흥사도 나뭇가지사이로 내려다보이고 북서쪽을 바라보니 덕천교에서 태자굴을 거쳐 오르는 능선이 보이며 함미산성쪽으로도 능선이 길게 늘어져 있다. 전망바위를 지나 소나무 숲길 오르막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더니 봉우리(529m)을 넘어서 1분정만에 삼거리 나온다. 

 ▲ 우측으로  광대봉을 거치지 않고 우회하는 길이 있는 이정표삼거리

 

 ▲ 우측 우회로에도 표시기가 많이 달려 있다.

 

 ▲ 광대봉으로 오르는 직진길에는 철조망까지 설치되어 있지만 직진한다.

 

  ▲ 직진하여 지그재그 산길을 오른다.

10 : 36 이정표삼거리 좌측에 우회로가 있지만 철조망이 쳐진 직진길로 잠시 오르자 삼거리

칠이 벗겨진 이정표(광대봉0.2km↑/고금당2.6km↗/함미산성2.3km↓)가 섰는 삼거리에서 우측길은 광대봉을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길인데 통행이 많은 듯 길이 잘 나 있고 광대봉으로 오르는 길엔 철조망으로 막혀있다. 철조망을 넘어 잠시 더 오르자 다시 삼거리 길이다. 

 ▲ 광대봉 직전에 있는 태자굴 갈림길 이정표

 

  ▲ 좌측 태자굴로 가는 길은 낙엽만 쌓여 있고 희미하다.

 

 ▲ 광대봉을 오르기위에 바위날등을 오른다.

 

  ▲ 철난간을 잡고 올라야 광대봉 정상이다.

10 : 39 태자굴갈림길 좌측에 태자굴. 덕천교 갈림길 이정표에서 직진 바위 난간을 오른다.

요란한 이정표(↓함미산성3.0km/←태자굴1.1km, 덕천교3.1km/↑북부주차장5.0km,탑사 5.5km,암마이봉(천황문)6.1km)에서 좌측 태자굴로 가는 길은 낙엽이 쌓여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진하여 오르자 좌우가 확트인 바위암반에 설치된 철제파이프 난간을 잡고 고래등 같은 바위날등을 올라서자 커다란 암봉위인 광대봉이다. 

 ▲ 원강정마을에서 보흥사로 오르며 바라 본 광대봉

 

 ▲ 광대봉을 내려지나 와서 바라본 광대봉 모습

 

  ▲ 삼각점과 정상석이 있는 광대봉 정상

 

 ▲ 광대봉 정상의 삼각점(임실304)

 

 ▲ 광대봉 정상에서 좌측에도 길이 있는듯 하지만 확인 못 했다.

 

 ▲ 당겨 본 마이산쪽의 풍경

 

 ▲ 원래 보습대로 본 마이산쪽 풍경

 

 ▲ 마이산 좌측 북부주차장쪽 모습

 

 ▲ 광대봉에서 마이산쪽으로 하산하는 철난간과 밧줄이 매여진 길(보흥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 광대봉을 내려와서 철난간 구간을 뒤돌아 본다.

 

 ▲  이곳 오른쪽이 광대봉 우회로와 만나는 삼거리다.

10 : 46~52 광대봉 정상석.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 전망을 즐긴 후 급경사 밧줄지대를 내려간다.

아! 저 멀리 마이산이 보이는군! 동으로는 손톱만하게 쫑긋 돋아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두 봉우리로 이어지는 서릉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암마이봉 오른쪽 뒤로 숫마이봉이 숨은 듯이 보인다. 그리고 마이봉 왼쪽 멀리로는 운장산과 구봉산 줄기도 보인다. 정상 중간에 삼각점(임실304.1984년 복구)이 있고 ‘광대봉609m'란 정상석도 서있는 5평정도의 공터로 되어 있고 좌측에 길은 있는 듯 하지만 확인하지는 못했다. 멀리 마이봉으로 가는 능선이 모두 보이고 우측 발아래는 보흥사와 그 아래 북수골로 난 포장길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늘 산행을 시작한 원강정마을도 아련히 보이며 보흥사에서 직진하여 오르는 암릉에 철난간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속이 시원하도록 조망이 좋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보다 더 경사가 심한 절벽날등에 철제가이드와 밧줄을 잡고 조심스레 내려서니(10:54~58) 우측 5시방향에 산허리를 돌아오는 우회로와 합쳐지는 삼거리에서(10:59) 능선을 따라 직진한지 2분만에 삼거리에 다다른다. 

 ▲ 오르쪽 보흥사로 내려가는 삼거리

 

 ▲ 보흥사가 0.7km라는 삼거리 이정표

 

 ▲ 전망봉을 오르는 철난간길

11 : 02 ㅏ삼거리 우측 우회로와 합쳐진 후 잠시후 다시 우측에 보흥사길 삼거리서 직진한다.

마치 바위무덤같이 생긴 바위덩어리 2개가 있는 곳에 이정표(↓함미산성 3.8km,광대봉 0.5km/↑고금당 2.2km,탑사 /보흥사 0.7km⟶)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길은 보흥사에서 직진하여 올라오는 암벽길의 끝머리에 합류되는 곳이다. 길은 11시방향으로 진행하여 좌측에 난 샛길을 무시하고(11:03) 직진하여 철제난길을 지나(11:06) 오르자 전망이 좋은 봉우리 정상이다.  

 ▲ 나무도 없는 공터로 된 전망붕우리(마이산과 광대봉이 모두 보인다.)

 

  ▲ 동남쪽을 바라 본다.

 

 ▲ 서쪽으로 가야할 길과  비룡대.산갓봉능선.마이산쪽을 조망한다.(진행방향 내려가는 철난간도 보인다.)

 

 ▲ 마이산쪽을 자세히 바라 본다.

 

 ▲ 이 봉우리는 좌측으로 돌아간다.

 

 ▲ 마이산이 좀 더 자세히 보인다.

 

  ▲ 올망졸망한 능선 중에 있는 570m봉

11 : 08 전망봉 좌측 샛길을 무시 직진 철난간을 오르자 전망이 좋은 봉우리,10시방향 직진

GPS고도가 579m인 전망봉은 길목에서 우측으로 5미터정도 빗겨 있는 잡목도 별로 없는 공터 봉우리로 뒤로는 광대봉일대와 가야할 비룡대. 마이산 부근이 모두 보이는 전망이 시원한 곳으로 광대봉보다도 더 시원스러운 조망처다. 한동안 조망을 즐긴 후 10시방향으로 방향이 꺾여서 철난간을 따라 내려가 완만한 능선을 따라 진행 570봉을 지나자 주능선에서 희미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꺾어 진행해야 하는 지점(길 주의)

 

 ▲ 우측으로 산허리를 돌아간다.

 

 ▲ 다른 능선으로 들어선 후 완만한 길이 잠시 이어진다. 

 

  ▲ 타이어 고무그물망 계단길을 오른다.

 

 ▲ 철난간 길이 이어진다.

 

 ▲ 후방 전망이 좋은 바위공터

 

 ▲ 금방 90도 꺾어 내려온 능선을 바라본다.(사진 중앙에서 좌측으로 내려 왔다.)

 

 ▲ 직진한다면 이 능선으로 내려가야 한다.

11 : 22 길진행 봉우리 2개를 지나 능선을 우측으로 벗어나 우측 90도 꺾어 산허리 돌아감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에서 1분만에 다시 우측으로 직각으로 꺾어 산허리를 돌아가 아예 다른 능선줄기로 바꾸어 타고 진행하여 잠시 완만하고 호젓한 능선길을 가는가 싶더니 타이어 그물망을 덮어 미끄러움을 방지한 계단길을 오르더니 철난길로 바뀌면서 후방전망이 좋은 암반지대를 지나 봉우리에 올라선다.  

 ▲ 들어서는  바위전망터

 

 ▲ 뒤돌아 본 바위전망터

 

 ▲ 암마이봉과 삿갓봉 능선이 더 가까이 보인다.

 

 ▲ 철난간 길을 내려간다.

 

 ▲ 다시 철난간 길을 한 번 더 내려 간다.

 

 ▲ 철계단을 내려선다.

 

  ▲ 안부에 있는 이정표

 

 ▲ 타이어 고무그물망 계단길을 오른다.

 

 ▲ 산우사면에 있는 철난간길

 

 ▲ 산줄기를 타고 오르리라는 예상을 깨고 산 우사면으로 돌아 간다.

11 : 31 전망암봉 능선을 바꾸어 철난간을 오르자 마이산을 조망 후 철계단을 2번 내려선다.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전방 조망이 좋은 봉우리는 GPS고도계를 보니 520m로 표시된다. 길은 능선 우측으로 급경사 철난길을 2번이나 통과하고(11:36) 철제계단을 내려서자 안부에 탑사쪽으로 직진하며 타이어 그물망 계단길을 오르다 길은 능선이 아닌 우사면으로 산허리를 돌아가니 삼거리 길이 나온다.  

 ▲ 낙엽이 쌓인 등로

 

  ▲ 우측이 남부주차장 길인 삼거리(고금당쪽으로 진행한다.)

11 : 48 ㅏ삼거리 삼거리안부에서 직진,우측으로 돌아가자 이정표삼거리서 11시방향으로 진행

이정표(↖탑사.고금당 0.6km/↙광대봉 1.9km/남부주차장 0.6km→)가 섰는 오늘 처음 만나는 남부주차장길림길이다. 11시방향 탑사.고금당길로 완만한 능선으로 접어들더니 선두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안부에 도착한다.  

  ▲ 아무런 표시도 없는 삼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 직진길이 아닌 우사면길로 혼자 진행한다.(직진길은 524.5봉을 거쳐서 오른쪽이나 직진하는 길)

 

  ▲ 산허리를 돌아 가는 길

 

 ▲ 골짜기를 지나 오른다.

 

  ▲ 524.5봉과 금당서(고금당) 사이에 있는 사거리 안부

11:52~12:22점심식사 Y자삼거리에서 점심식사 후 직진하지 않고 2시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간다.

Y자갈림길이 있는 안부에서 선두들을 따라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는데 빗방울 떨어진다.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는데... 하기야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하니... 금새 비는 그치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일행들은 직진하는 능선길은 524.5m봉으로 가는 길로 가도록 하고, 나만 혼자서 오른쪽 산비탈로 돌아가길 6분만에 사거리안부에 올라선다.  

 ▲ 묘 몇기와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

 

 ▲ 사거리에 새로 세운 이정표와 약도(약도는 보기가 약간 어렵다.)

 

  ▲ 이 언덕을오르면 좌측에 큰 묘, 우측엔 세존진신사리탑,전방엔 새로 지은 금당사

12 : 28 이정표사거리 좌측에 묘3기가 있는 사거리서 금당사를 보기위해 우측으로 넘어간다.

묘3기가 있는 안부사거리는 524.5봉에서 우측으로 직각으로 꺾어 내려오는 길목으로 나는 혼자서 지름길로 온 샘이다. 새로 만들어 세운 이정표는 요란하게(↑비룡대.북부주차장(2.4km)봉두봉.탑사.은수사/↓광대봉.보흥사.합미성(5.5km)/고금당.남부주차장(0.6km)→) 개념도와 함께 적혀 있는 사거리에서 고금당을 보기위에 우측으로 언덕을 올라선다.  

  ▲ 길 좌측에 누구의 묘인지 상당히 큰 묘

 

  ▲ 길 우측엔 바위위에 세운 세존진신사리탑

 

  ▲ 사진에는 멀리에 또 하나의 금당사가 보이고 새로 지은 금당사 지붕 꼭대기만 보인다.

 

  ▲ 멀리 보이는 금당사를 당겨 본다.

 

 ▲ 새로 지은 금당사지만 옛 금당사 터라고 고금당이라고 한다나...

 

 ▲ 고금당에서  마이산을 조망한다.(역시 숫마이봉은 안 보인다.)

 

 ▲ 남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이 계단으로 내려가서 좌측으로 돌아 가야 했는데 사거리 까지 되돌아 간다,) 

12 : 31 고금당 좌측에 큰묘와 우측에 사리탑을 지나자 고금당자리에 새로 지은 고금당를 관람

올라선 길 좌측에는 커다란 묘지가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고 길 좌측바위위에는 세존진신사리탑이 오뚝하게 서있고 그 앞에는 둥그런 암벽에 새로 짓고 금색기와를 올린 아름답고 화려한 절이 보인다. 이 곳이 그 유명한 고금당 이구나! 요사이 새로 지어 단청을 한 모습이 다른 절과는 색다른 모습이다. 또 다른 금당사와 남부주차장에 바로 내려다보이고 마이산의 암마이봉이 더욱 가까워 보인다.

 

懶翁岩(나옹암)과 金塘寺(금당사):마이산 주능선 상 비룡대 서쪽 500m 거리에 있는 자연 암굴로, 고려 말 고승 나옹 선사가 수도한 곳이라서 나옹암이라 한다. 원래 금당사가 터를 잡았던 곳이기 때문에 고금당(古金塘)이라는 이름과 함께 쓰고 있고 남부주차장에서 탑사를 오르다 좌측에 또 금당사가 있어 마이산 공원안에 금당사가 2곳이 있다. 

 

懶翁禪師(나옹선사)는 고려 말기의 고승으로 휘는 혜근(慧勤), 호는 나옹(懶翁),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속성은 아(牙)씨인데 고려 말 예주부(지금의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원나라 유학을 했고 인도의 고승 지공스님의 제자로서 인도불교를 한국불교로 승화시킨 역사적 인물로서 조선태조(朝鮮太祖)의 왕사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스승 이었다. 경기도 양주군 회암사 절터가 있는데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로 중창했고, 그의 출생지 부근 경북 영덕군 창수면 운서산(雲捿山) (해발520m)기슭에 장육사(莊陸寺)를 창건 하고 오랫동안 머물며 참선했다고 전하며, 나옹선사가 입적한 뒤에는 많은 승려들이 모여들어 수도한 수도 사찰로 유명했다 한다. 회암사 터의 뒤쪽에는 나옹, 지공, 무학, 세분의 부도와 비석이 현존하고 있는데, 비석은 조선왕조 유학사상의 지주였던 목은 이색이 찬하여 지금도 비문이 남아있다. 장육사(莊陸寺)에는 고려 공민왕 때 건물과 건물 내벽에 그의 초상화가 남아있다. 그가 입적한 남한강변 여주 신륵사에도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비문이 남아 있다. 그의 가송집과 비문을 한글로 해석한 서적으로 나옹록이 있고 연구서도 있다.

 

  나옹선사의 토굴가 

나옹선사가 그 옛날 이 자리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며 이 토굴가(土窟歌)를 읊었을지도 모른다.

靑山兮여 要我以無語하고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여 要我以無垢로다.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여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로다 (여수여풍이종아)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여 要我以無語하고 (청산혜요아이무어)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 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여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로다.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산행을 끝나고야 안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새로 지은 금당사 우측 계단을 내려서서 나옹토굴을 구경하고 좌측으로 산허리를 돌아가야 본래 코스로 나옹샘까지 볼 수 있었는데 다시 조금 전 묘3기가 있는 사거리로 되돌아온다.

 

  ▲ 다시 사거리로 돌아오며 올려다 본 524.5봉

 

 ▲ 돌아온 사거리에서 북부주차장.비룡대쪽으로 진행한다.

12 : 35~51 다시사거리 다시 묘지사거리로 돌아와서 524.5봉에서 내려오는 선두를 기다린다.

묘지사거리에서 배낭까지 내려놓고 524.5봉으로 간 사람들에게 우측으로 직각으로 꺾어서 내려오라고 전하고 잠시 기다리자 내려오는 일행들에게 금당사를 구경하고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거의 우리일행이 다 왔지 싶은데 아마 524.5봉에서 직진한 일행들도 있는가 보다. 길을 나서서 묘 있는 사거리에 탑사쪽으로 진행하자 1분도 안되어 우측에 샘이 있다.

 

 ▲ 금당사 식수원인지 지붕과 뚜껑까지 덮어 놓은 감로수(나옹샘으로 알았다.)

 

  ▲ 샘물 뚜껭에 감로수란 글씨가 선명하다.

 

 ▲ 샘터 우측에 있는 길을 따라 골짜기를 오른다.

 

  ▲ 능선에 올라 선다.

 

  ▲ 능선은 T자 삼거리로 우측으로 진행(좌측길은 524.5봉에서 내려 오는 길) 

 

 ▲ 올라선 높이 500미터인 작은 언덕 봉우리 

 

  ▲ 봉우리위엔 무슨 표시인지 표목이 밖혀 있다.

12 : 52 감로수 우측으로 진행, 지붕과 뚜껑까지 씌워놓은 감로수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나옹샘은 사진을 보나 지붕이 없었는데 지붕과 뚜껑(甘露水 佛紀 2551년 金堂寺 住持 性虎合掌 이란 글씨가 있음)까지 만들어 놓고 모터펌프까지 설치해 놓아 빗물을 막아 놓은걸 보면 이곳은 금당사 식수원이고 같고 나옹샘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우물을 지나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자 이내 능선에 올라서며 T자삼거리로(12:56) 우회전(좌측길은 524.4봉으로 가는 길)하여 전망도 없는 작은 봉우리(500m)를 넘어서(12:58) 5분정도 내려가자 5거리안부에 내려선다.  

 ▲ 내려서 5거리 이정표(진행은 비룡대.북부주차장으로..)

 

  ▲ 직진한 능선에는 철난길로 이어 진다.

 

  ▲ 중간에 있는 전망터

 

  ▲ 우측으로 남부주차장이 내려다보인다.

 

 ▲ 지나 온 능선들...

 

  ▲ 비룡대가 오똑하게 보인다.

 

 ▲ 좌측으로 26번국도와 부귀면 일대가 훤히 보인다.

 

 ▲ 다시 내려선 안부에는 오른쪽으로 남부주차장으로 하산길이 있다.

 

  ▲ 중간에 있는 암봉

 

  ▲ 암봉에 올라서 본다.

 

  ▲ 비룡대가 한껏 높다랗게 보인다.

13 : 03 오거리안부 능선에서 우측으로 500m봉을 넘어 내려가지 이정표5거리서 11시방향 진행

이정표(↖(2.1km)북부주차장.비룡대.은수사.탑사.봉두봉/(0.4km)남부주차장↗/고금당.광대봉.보흥사.합미성(5.2km)↘)가 있지만 우리가 내려온 길과 좌측으로 난 길은 표시가 없다. 11시방향인 비룡대쪽으로 길을 재촉 뒤쳐저서 힘들어 하는 우향님을 채근하여 철난간길을 지나 작은 바위암봉(467m)을 넘어선다.(13:07) 

 ▲ 철계단을 오르고 우측으로 돌아가

 

 ▲ 이정표가 있는 곳이서 직진능선을 버리고 좌측 철계단으로 접어든다.

 

 ▲ 91계단의 철계단을 오른다.

 

 ▲ 돌아보니 직진능선 넘어로 남부주차장 일대가 보인다.

13 : 14 철계단 능선을 따라 비룡대를 쳐다보며 폐침목계단길과 철계단, 폐침목계단이 반복

폐침목을 깔아 만든 계단길을 오르다 우측에 남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샛길을 한 곳 더 지나고나니(13:11) 한껏 가까워져서 우람하게 보이는 비룡대를 바라보면서 바위봉을 지나(13:12) 철계단을 오른 후(13:14) 침목계단길을 오르고 나서 우측으로 산허리를 돌아간다.   

 ▲ 비룡대의 웅장한(?) 모습

 

  ▲ 비룡대의 바닥은 나무가 아닌 대리석 이여서 주위 정서와 어울리지 않다. 

 

  ▲ 비룡대 안에 있는 비룡대를 설명하는 기문

 

 ▲ 뒤돌아 본 금당사와 광대봉

 

 ▲ 좌측 넘어에 부귀면에 있는 진안농공단지도  보인다.

 

  ▲ 비룡대에서 본 마이산(숫마이봉이 보임)과 삿갓봉 능선

 

  ▲우측으로 보이는 산으로 첩첩이 둘러 쌓인 남부주차장

 

 ▲ 동쪽으로 보이는 제2쉼터와 봉두봉과 나도산

 

  ▲ 비룡대를 내려서자 '나봉암'이란 표석이 섰다.

 

  ▲ 내려서는 길은 역시 철난간을 잡고 내려선다.

13 : 30~32 비룡대(나봉암) 철계단을 오르자 팔각정전망대인 비룡대, 나봉암 표석이 있는 봉우리

좌측(직진하는 능선도 있음)으로 직각으로 꺾어서(13:28) 91개의 철계단을 오르자 청룡이 등천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이산 최고의 전망대인 산봉우리에 우뚝하게 솟은 비룡대다. 정상석을 보면 실제는 나봉암(527m)인데 전망팔각정을 지어 놓고 飛龍臺(비룡대)란 초서체의 현판의 글씨역시 하늘을 나를 듯 하고 전망대 바닥은 대리석을 깔아 놓았다. 비룡대에 오르면 암마이봉 왼쪽으로 숫마이봉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다섯 개의 공기돌 같은 암봉이 연이어진 삿갓봉 암릉도 아름답게 펼쳐진다. 우측으로 뻗은 암릉넘어로 남부주차장 일대의 모습도 무수한 산속에 숨겨진 보석같이 보이며 뒤돌아보니 새로 지은 고금당(금당사)가 산중턱에 샛노란 색깔의 지붕이 돋보이고 그 뒤로 뾰족한 광대봉과 이어지는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좌측에 가로지르는 26번국도와 부귀면 연장리에 있는 진안농공단지도 시원한 풍광을 제공한다. 飛龍臺記文(비룡대기문)이 있으니

여기 나봉암에 올라 馬耳 山麓을 굽어보니 마치 靑龍이 登天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라. 龍潭湖에 물이 차면 힘차게 솟아오를 氣魄이 완연하다. 우리 鎭安의 氣가 이와 和合하여 날아오르는 龍과 같이 뛰어난 사람이 나고 그리고 비약적인 개발이 이루어져 잘사는 고장. 자랑스러운 진안으로 탈바꿈을 所願하며 이곳에 精誠을 다하여 八角亭을 세우고 飛龍臺라 이름한다. 이에는 柳鐘根 전라북도 지사의 支援에 힘입어 林守鎭 진안군수의 所望과 精誠이 결실을 본 것이다. 일천구백구십팔년 사월 십팔일 副郡守 潘尙錫 글. 曉峰 余泰明 懸板書. 南村 宋錫五 懸額書. 

 ▲ 순한 능선을 따르다 만나는 이정표 삼거리

 

  ▲ 삼거리에 섰는 예전 이정표

 

  ▲ 다시 순한 능선이 이어지다 철난간을 잡고 올라서는 길

 

  ▲ 소나무가 어울린 502봉

 

  ▲ 돌아보니 비룡대가 높다랐다.

 

  ▲ 우측으로 타이어 그물망 계단길을 내려간다.

13 : 38 금당사갈림길 비룡대를 내려가 능선을 따르다 또 하나의 금당사 갈림길에서 탑사방향

비룡대를 내려서서 나봉암 표석을 지나 철난간을 잡고 내려서서 잠시 순한 능선길에 금당사갈림길을 만난다. 요란하지만 페인트가 벗겨진 이정표(↑북부주차장1.4km,탑사2.0km,부부시비(탑영제)1.3km/ ↓남부주차장1.6km,광대봉/금당사0.7km→)가 섰다. 북부주차장. 탑사쪽으로 직진하여 능선길을 따르다 철난길을 따라 오르자 소나무가 어울린 봉우리(502m)을 넘어서(13:42) 2시방향으로 그물망계단길(13:44) 내려가다 바위덩어리 2개가 있는 곳에‘탑사→’란 표시판이 있다.  

 ▲ 잠시 발길을 망서리게 하는 삼거리.

 

 ▲ '탑사→'란 이정푝가 있지만 직진해도 같은 길로 합쳐진다.

 

 ▲ 다시 길이 합쳐지는 오거리 안부

 

 ▲ 오거리 안부에 새로 세운 이정표가 요란하다.

 

  ▲ ㅈㄱ진하여 다시 그물망계단길을 오른다.

13 : 50 삼거리 ‘⟶탑사’길에서 직진하자 이정표사거리안부에서 직진하여 오르막을 오른다.

통행이 많은 우측길이 아닌 직진하여(13:50) 능선을 따르자 잠시 후에 우회로와 만나는 안부엔 새로 세운 이정표(↑성황당.북부주차장0.9km.봉두봉.탑사.은수사1.5km/↓고금당.전망대1.6km/부부시비(탑영제)0.8km→)에 개념도가 함께 세워져 있지만 좌측 관암제로 내려가는 길엔 표시기만 하나 달려 있을 뿐 아무런 표시도 없다. 탑사쪽으로 직진하여 우향님을 재촉하여 그물망계단길을 오르며 우측으로 비스듬이 돌아가 넘어서는 길 좌편에 묘1기를 지나자 쉼터의자가 있는 안부에 닿는다.  

 ▲ 우사면을 돌아가  휴식용 의자까지 있는 쉼터4거리

 

  ▲ 앞.뒤로 묘가 있는 안부이정표엔 세군데 이정표만 설명되어 있다.

 

 ▲ 삿갓봉을 가기 위해 뒤쪽 묘를 지나 능선을 따라 오른다.

 

 ▲ 이 갓갓봉 첫번째 바위는 오르지 못하고 우측으로 돌아 오른다.

 

  ▲ 우측으로 우회하여 오르는 곳

14 : 03 쉼터사거리안부 전.후에 묘와 의자가 있는 사거리에서 5시뱡향으로 삿갓봉을 오른다.

전방 우측에 묘1기가 보이는 안부사거리에는 일행들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고 새로 세운 이정표(←북부주차장0.6km/↑은수사1.2km.탑사.봉두봉/고금당1.9km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우향님은 쉬고 있는 일행등과 함께 좌측 북부주차장으로 내려가라고 당부하고 나는 삿갓봉을 가기 위해 뒤쪽 5시방향에 있는 묘지를 지나 능선을 따라 잡목 숲속으로 오르다가 삿갓처럼 생긴 돌이 얹힌 큰 바위를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니 너럭바위가 있는 삿갓봉이다.   

 ▲  비룡대에서 바라본 삿갓봉 위치와 전경(산초스님 사진)

 

 ▲ 삿갓봉 능선 끝머리에 있는 이구아나바위. 본인은 미어캣바위라고 부르고 싶다.(산초스님 사진)

 

  ▲ 전망을 즐길 수 있는 너럭바위

 

 ▲ 오르기가 까다로워 포기한 첫번쨰 바위봉 나무에 가려져 있있다.

 

 ▲  마이산이 정확하게 모두 보인다.

 

 ▲ 북부주차장쪽이 약간 보인다.

 

 ▲ 비룡대와 금당사, 그뒤로 오늘 온 능선과 광대봉까지 모두 보인다.

 

 ▲ 농공단지와 부귀산 줄기가 보인다.

 

 ▲ 남부주차장쪽의 모습

 

 ▲ 탑사 골짜기와 우측의 봉두봉

 

 ▲ 비룡대를 지난 능선길

 

  ▲ 사거리로 돌아와 삿갓봉 가는 길을 다시 돌아본다.

14 : 10 삿갓봉(532m) 암봉 우측을 돌아올라 전망 좋은 바위인 삿갓봉을 구경한 후 되돌간다.

삿갓봉암릉 멀리서 보면(비룡대) 북쪽에서 남쪽으로 줄기를 치며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암릉으로 북쪽의 삿갓봉과 끝에 이구아나(혹은 미어캣) 닮은 봉우리가 제일 좋아 보인다. 첫 번째 봉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면 오를 수가 없고 두 번째 너럭바위에 올라서자 더욱 가까워진 마이산은 암마이봉 좌측에 숫마이봉까지 고개를 내밀어 보이고 북부주차장도 끝머리가 보이며 비룡대와 금당사가 하나도 빠짐없이 보인다. 암릉 끝까지 갔다가 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선두와 시간차이가 너무 많이 났고, 또 오늘 시산제가 있는 날이므로 다음을 기약하고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로 내려간다.  

 ▲ 사거리에서 직진 묘를 지나 계단길을 오른다.

 

  ▲ 제2쉼터 부근 능선길 

14 : 17 다시사거리 전방 묘1기 쪽으로 직진하여 각목계단길을 오르자 소나무가 우거진 쉼터

의자가 있는 사거리에서 직진하자 묘를 지나 각목계단길을 한차례 오르자(14:18) 소나무가 잘 어울린 봉우리에 올라선다. 

 ▲ 의자들이 있는 '제2쉼터' (이 앞쪽이 암벽 훈련장이라지...)

 

 ▲ 제2쉼터에서 바라 본 비룡대

 

  ▲ 제2쉼터에서 본 삿갓봉

 

  ▲ 제2쉼터에서 본 남부주차장 일대

 

 ▲ 남부주차장과 탑사 사이에 있는 탑영제(저수지)

 

  ▲ 탑영제와 남부주차장을 한꺼번에 조망한다.

 

  ▲ 하산길은 좌측으로 내려섰다 제2쉼터 좌측편 사허리를 돌아간다.

 

  ▲ 봉두봉을 오르기 위해 다시 계단길을 오른다.

14 : 26 제2쉼터 쉼터(의자 있음)에서 9시방향으로 우회 암봉하단부를 돌아 안부에서 오른다

고도계가 544m를 가르치는 공터 나무엔 ‘제2쉼터’란 팻찰이 달려 있고 주변에는 휴식용 의자가 5개가 놓여 있다. 이곳 우측 아래는 절벽인데 암벽훈련장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이어 지는 길은 9시방향인 좌측으로 90도 꺾어서 내려가더니 이내 우측으로 굽어져서 제2쉼터 봉우리 우측에 끼고 내려선 후 삼거리안부에서 좌측길은 무시하고 다시 각목계단과 줄을 잡고 올라서니(14:32) 봉우리에 올라선다.  

 ▲ 정상에 헬기장 때문에 길가에 서있는 봉두봉 정상석

 

 ▲ 봉두봉 정상의 헬기장

 

 ▲ 탑사에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의 묘소 

 

 ▲ 효령대군의 17세 후손이라고 표시된 비석

 

 ▲ 봉두봉에서 내려가는 그물망 계단길 

14 : 35~36 봉두봉(이갑룡묘) 헬기장이 있고 좌측에 이갑룡처사 묘를 본 후 긴 계단길을 내려감

길가에 봉두봉(해발 540m)표석이 섰는데 우측으로 올라서자 사방이 숲에 가려 전망이 별로인 제법 큰 헬기장이 있고 헬기장 좌측모서리를 넘어서니 묘1기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마이산 탑사에 80여기의 돌탑을 쌓은 이갑용처사의 묘다. 비석에는 ‘全州李公處士李甲龍之墓 孝寧大君十七世 壬坐’란 글씨가 이끼에 가리고 돌이 퇴락하여 희미하다.

이갑룡(李甲龍)처사는 1860년 3월 25일 임실 둔덕에서 효령대군 15대손 이성우씨 차남으로 탄생하시었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했는데 부모의 상을 당함에 묘 옆에 움막을 치고 3년간 시묘살이를 마친 뒤 인생의 허무 무상함을 통탄, 전국 명산을 전전하며 수양을 쌓다가, 25세 때 마이산에 들려 솔잎을 먹고 생식을 하면서 수도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만불탑을 축석했다. 이 탑은 천지 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으로 축석하여 용화세계 억조창생의 구제와 만인이 짓는 죄업을 대신 속죄하는 기도를 성업으로 일생을 보내시다 1957년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치셨다. 이처사가 남긴 유물로는 탑 외에도 신의 계시를 받아 쓰신 30여권의 신서와 모든 재난과 재앙을 막아 주는 부적 등이 있다. 특히 흔들리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만불탑의 신비 오묘함은 중생 구제의 상징으로 영원히 빛날 것이다.

묘지앞에 난 길을 따라 원 길로 돌아와 타이어고무그물망 계단길을 한동안 내려가자 T자 삼거리에 닿는다. 

 ▲ T자삼거리에 있는 옛날 이정표

 

 ▲ 11시방향 암마이봉과 북부주차장으로 가는 직진길은 통행금한다는 안내문이 있다.

 

 ▲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 

14 : 43 삼거리 10방향은 북부주차장길이지만 통제되어 있어 3시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간다.

낡은 이정표(↓광대봉4.9km.고금당3.6km/탑사0.3km→)가 섰는 T자삼거리에 10시방향 길은 암마이봉 좌측을 돌아 암마이봉 정상을 오르거나 북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등산로폐쇄공고’안내문을 설치해 놓고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우측 3시 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가 능선을 따라 철난간을 잡고 내려가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잠시 머문다.

 

 ▲ 전망터에서 바라 본 암마이봉의 우람한 모습

 

 ▲ 전망대를 떠나오며 뒤돌아 본 비탈진 철난간 길

 

  ▲ 비로소 큰 길이 보이며 행락객들도 많이 보인다.

14 : 46 암마이봉전망터 급경사 철난간길을 내려가다 전망터에서 엄청난 암마이봉을 조망한다.

먼저 간 임회장님이 탑사에서 기다린다고 하지만 암마이봉 전모를 제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으랴? 우람한 모양에다 독특한 생김새에 표면 군데군데에 난 타포니현상의 구멍이 신기에 가깝다. 

 ▲ 붉은 보도블록을 깔아 만든 주차장

 

  ▲ 주차장에서 탑사경내로 들어서는 대문(?)

 

  ▲ 탑사 경내에 들어서서 우측에 있는 기념품 매점

14 : 50 주차장 급경사 철난간길을 내려서자 남부주차장에서 오는 포장도로가 있는 주차장.

꼭대기에서 아래 부분까지 모두 살펴 본 후에 다시 급경사내리막에 설치된 철난간을 잡고 내려서니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에 내려선다. 우측에 남부주차장에서 금당사와 탑영제를 지나 올라온 도로 끝머리 빨간 보도블록을 깔아서 만든 주차장으로 여기에서 더 이상 찻길은 끝이 나고 자연석 입석사이를 통과하자 기념품매점만 몇 있다. 

 ▲ 탑사는 이 암바이봉 우측 골짜기에 있다.

 

  ▲ 들어서면서 본 탑사 전경

 

  ▲ 법고와 범종이 있는 사물각

 

 ▲ 대웅전 전후에 나열된 돌탑들...(좌측에 영신각도 돋 보인다.)

 

 ▲ 이갑룡 처사의  생애를 적은 비석

 

 ▲ 마이산 돌탑에 대한 설명문

 

 ▲ 탑사의 안내도

  

 ▲ 탑사 대웅전과 전 후 석탑들...

 

 ▲ 이갑룡처사의 사적비

 

 ▲ 암마이봉 하단부에 바짝 붙은 영신각

 

 ▲ 이갑룡처사 사적비 뒤면

 

 ▲ 양각되어 있는 부처님

 

 ▲ 탑사에서 은수사로 올라가는 길

 

 ▲ 은수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정표

 

 ▲ 암마이봉 상단부에 패인 굴에도 부처님상이 나열되어 있다. 

 

  ▲ 뿐만 아니라 암마이봉 하단부 중간에도 금색불상을  안치하여 놓았네!

 

 ▲ 은수사로 오르는 길

 

 ▲ 은수사를 오르며 좌측으로 본 탑사 대웅전

15 : 55~58 탑사 주차장에서 북쪽 골짜기에 자리잡은 탑사와 돌탑들을 구경 후 은수사로 오른다.

거대한 암마이봉 우측(동쪽)에 남북으로 난 협곡속에 자리잡은 탑사를 바라보며 들어서니 우측에 요사채와 종각(사물각)을 지나 안내문을 살펴보고 커다란 돌탑인 월광탑(좌)과 일광탑(탑) 사이로 들어거자 좌측엔 영신각이 암마이봉 하단부에 자리 잡고 있고 중앙에 있는 여기 탑들을 쌓은 이갑룡처사의 좌상을 바라보고 약수터를 지나 기다리는 임회장을 만나서 작은 여러개 탑들로 이루어진 중앙탑과 대웅전 앞까지 올라가면서 대웅전 뒤에 웅장하게 서있는 천지탑을 바라보면서 구경하면서 이갑룡처사(1860生~1957亡)님 대원을 품은 집념으로 쌓아낸 탑들의 정성이 마음속으로 전해 오는 것을 느낀다. 지금부터 6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놀랄 수밖에 없구나.

塔寺(탑사)는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8번지에 있으며 1885년 이갑룡(李甲龍 1860~1957)이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을 생식하며 수도하다가 1900년 무렵부터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1920년대 초에 초가 암자를 지어 돌 미륵불을 안치하고 불공을 드리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목조함석지붕의 인법당과 산신각을 지어 부처님을 모셨다. 당시에는 절 이름도 없었으나 그가 평생 동안 만불탑을 축성했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탑사(塔寺)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갑용은 1957년에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평생 동안 108기의 탑을 완성시켰으며 현재 80여 기의 탑이 남아 있다. 이 탑들은 ‘마이산탑(馬耳山塔)’이라는 이름으로 전라북도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갑용의 손자 이왕선이 한국불교태고종에 사찰등록을 하면서 정식으로 탑사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으며, 1986년 인법당을 대웅전으로 고쳐 짓고, 1996년 나한전(현재의 영신각)을 지었으며, 1997년 종각과 요사채를 지어 오늘에 이른다. 사찰 한가운데 자리한 대웅전은 정면 3칸·측면 3칸에 오른쪽 옆으로 1칸을 덧붙인 팔작지붕 목조건물이다. 공포형식은 다포이고, 정면과 측면에 모두 4분합문을 달았으며, 외부 벽에는 보상화를 비롯한 초화가 그려져 있다. 내부 천장은 우물반자,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수미단 위에 석가삼존상이 배치되었는데 본존불로는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 좌우 협시보살로는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모셨다. 불화로는 후불탱과 1976년 조성한 신중탱, 1988년 조성한 칠성탱이 있으며, 범종과 법고도 있다. 사찰 입구에 정면 4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요사 겸 종무소, 정면 2칸·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사물각(범종각)이 자리한다. 사물각에는 범종·법고·운판·목어가 모셔져 있는데 이곳의 법고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윤덕징이 제작한 길이 1.95m에 이르는 대형 법고이다. 대웅전에 이르기 전의 왼쪽 절벽으로 정면 3칸·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영신각이 있고, 대웅전 뒤쪽의 절벽을 따라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면 1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산신각이 있다. 그밖에 미륵불, 관음보살석조입상과 처사 이갑용 생애비, 도사 이갑용선생 사적비, 이처사 화상 등의 조형물이 있다. 사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갑용이 평생을 바쳐 쌓은 탑들이다. 대웅전 앞으로 월광탑·일광탑·중앙탑이, 대웅전 뒤의 절벽 쪽으로 오방탑·천지탑 등이 조성되어 있다. 

약수 한 바가지 마시고 마이산탑사 표석과 안내문이 있는 사이 길가에 섰는 이정표(↑은수사0.3km.천황문0.5km.북부주차장1.1km/남부주차장1.6km→)에서 은수사쪽으로 오르막 길로 접어들자 잠시후 T자길에서 좌측으로 꺾어 올라가면서(14:59) 암마이봉을 바라보니 거대한 암벽 중간에 움푹 파인 구멍에도 작은 탑들을 쌓은 것을 보니 탑사라는 명성이 새삼스럽다.  

 ▲ 들머리에 있는 은수사 안내판(은수사 역시 태고종 사찰이란다.)

 

 ▲ 들머리에 새로 지은 기념품 매점

 

 ▲ 들어서면서 본 은수사 전체모습(대적광전만 안 보인다.)

 

  ▲ 은수사의 이태조를 모시고 몽금척과 왕실의 자취를 보관한다는 태극전(다른 사찰과는 색다르다.)

 

 ▲ 숫마이봉을 배경으로 좌로부터 대적광전, 법고,무량광전, 그 앞에 줄사철나무군락, 또 그 앞에 멋진 와송

 

 ▲ 크기는 암마이봉보다 작지만 우람한 숫마이봉 전체 모습(은수사를 안고 있다.) 

15 : 05~12 은수사 시멘트도로를 따라 골짜기를 오르자 숫마이봉 앞에 있는 은수사를 관람한다.

숲속 옛날 시멘트길을 따라 5분정도 오르자 우측에 있는‘한국불교태고종 은수사’란 간판을 지나 새로 지은 기념품 판매소를 지나서 1분정도 가자 땅바닥에 달라붙은 와송이 길을 막는다 우측으로 우회하자 이성계가 운봉의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하는 길에 마이산에 지나게 되었다. 그 때 마이산의 들렀을 때, 이전의 꿈에 나타난 신인(神人)에게 금척(金尺)을 받았던 곳과 마이산이 같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은수사에는 불교와 무관한 태극전(太極殿)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 태극전에는 불교와는 무관하고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그림이 그려지거나 의물(儀物)이 놓여지게 되는데, 몽금척이라든지, 금척 복원품이 보관되어 있다는 太極殿(태극전)이 있고 태극전 좌편을 지나자 천연기념물 제380호‘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지’ 안내문이 있다. 

 ▲ 줄사철나무 군락

줄사철나무 :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나는 뿌리가 나무나 바위에 붙어서 기어오르는 습성을 갖고 있다. 꽃은 5∼6월에 연한 녹색으로 피고 열매는 10월에 연한 홍색으로 익는다. 사시사철 잎이 푸르러 낙엽이 진 겨울철이면 삭막한 주위환경과 대조를 보이며 장관을 이룬다.

마이산의 줄사철나무군락지는 마이산 절벽에 붙어 자라고 있으며 다 자란 줄사철나무와 어린 줄사철나무들이 한데 모여 있다. 마이산의 줄사철나무군락지는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 줄사철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한계선이 되고, 나무들이 무리를 이루어 자라고 있어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돌계단을 올라서자 맨 우측에는 천연기념물제 386호인 청실배나무가 가지만 앙상하게 솟아있다. 

 ▲ 은수사 무량광전 우측에 있는 청실배나무

은수사 청실배나무 : 나이가 약 640살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5m, 가슴높이의 둘레는 2.48m이다. 나무의 모습은 커다란 줄기 하나가 위에서 네 줄기로 갈라져 윗부분을 떠받치는 듯한 특이한 모습을 하다가, 다시 두 줄기가 서로 붙은 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은수사의 청실배나무는 조선 태조(재위 1392∼1398)가 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하고 그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것이 싹터 자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이곳 주민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곳은 지형과 지세의 영향으로 바람이 불면 청실배나무의 단단한 잎이 흔들리면서 서로 마찰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가 난다고 한다. 또한 겨울철에는 청실배나무 밑동 옆에 물을 담아두면 나무가지 끝을 향해 거꾸로 고드름이 생기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마이산의 은수사를 중심으로 태조의 업적을 기리고, 명산기도에 얽힌 전설을 기리기 위해 현재에도 해마다 마이산제와 몽금척(궁중의 잔치 때 부르던 노래와 춤의 한 가지)을 시연하고 있다. 청실배나무는 한국 재래종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가 많지 않고 큰 나무는 더욱 귀하다. 따라서 학술적 가치 및 종(種)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미륵의 모습을 한 숫마이봉의 턱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은수사는 좌측에 大寂光殿(대적광전) 우측엔 無量光殿(무량광전)이 자리하고 중간에는 국내에서 최대크기인 법고가 자리하고 있는 마치 마이산 안뜰과 같은 이곳은 매년 마이산신제가 거행되는 곳이다.

銀水寺(은수사)는 은수사는 현재 조계종단 소속인데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사지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다. 은수사 황혜수 주지스님에 의하면 "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은수사란 이름은 한글학회의 <지명총람> 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바햐흐로 대가람으로 도약을 기약하고 있다. 이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 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다. 한편,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이다. 

 ▲ 은수사 좌측에서 북부주차장으로 가는 나무계단길

 

  ▲ 나무계단길은 암마이봉 하단을 따라 한참을 오른다.

15 : 13~18 나무계단길 매점옆에서 나무계단길을 따라 골짜기를 올라가니 암.수마이봉 사이 고개

매점옆에서 북쪽으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 협곡을 따라 난 넓은 나무판자계단을 5분정도 오르자 쉼터가 있는 고개에 도착한다.  

 ▲ 양 마이봉사이 고개인 천황문에 설치된 휴식시설

 

 ▲ 좌측엔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건만 언제나 개방되려는지 ?

 

 ▲ 천황문우측에는 화엄굴로 오르는 계단길 

15 : 18~22 천황문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 고개로 좌측엔 암마이봉, 우측엔 화엄굴 길이 있음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쉼터가 있는 이곳은 천황문이라고 부른단다. 좌측으로는 길을 통제하여 놓은 암마이봉 오르는 길이 보인다. 이곳은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며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이며 산태극·수태극의 중심지이다. 물이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이고, 남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되는 분수령이다. 우측에 '화엄굴0.15km'이란 표지판을 보고 우측으로 올라가 본다. 

 ▲ 화엄굴 설명문

 

  ▲ 그물에 가려진 화엄굴

 

 ▲ 그물 안으로 카메라를 넣어 찍어 본다.

 

 ▲ 천황문에서 북부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긴 나무계단길

 

  ▲ 계단길 중간에는 쉼터도 있다.

 

  ▲ 긴 계단길은 이어진다.

 

 ▲ 나무계단길이 끝나자 아스팔트 길이 이어진다.

15 : 20 화엄굴 고개에서 우측 숫마이봉쪽으로 오르자 출입을 통제하는 화엄굴을 보고 돌아섬

우측으로 돌계단을 올라가 보지만 화엄굴을 몇 십미터 앞에 두곤 그물망으로 막고 통제를 하여 멀리서만 바라보고 뒤돌아선다.

華嚴窟(화엄굴):숫마이봉 쪽으로 150m 올라가면 바위가 떨어져 나가 생겼다는 하나의 작은 동굴이 나오는데 이곳을 화엄굴이라 하는데 옛날 어느 異僧(이승)이 이 굴에서 蓮花經(연화경)과 華嚴經(화엄경)을 얻었다고 화엄굴이라고 하며 사시사철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와 이 약수를 마시고 치성을 드리면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으나, 최근에는 조류(비둘기등)의 서식지로 오염되어 음용수로는 사용할 수 없음에 찾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천황문으로 돌아오며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길을 언제나 한 번 올라보려나 생각하면서 우측으로 넘어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좌측에 가로등과 식수대, 4개의 의자까지 있는 쉼터를 지나(15:24)나 3분정도 더 내려가니 나무계단은 끝이 나고(15:27) 아스팔트길이 이어진다. 

 ▲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매표소

 

   ▲ 유리창에 붙은 이정표

15 : 29 매표소 나무계단중 2군데 쉼터를 지나내려가 계단끝 포장길을 따르다 우측에 매표소

2분정도 내려가자 좌측엔 마이산설명문이 섰고, 우측에 있는 문화재관람료 매표소(어른 2,000원 청소년 1,800원 단체어른 1,800원 단체청소년 1,200원)를 지나자 좌측에 마이사가 보인다.

 

 ▲ 매표소를 지나자 좌측에 있는 마이사

 

 ▲ 마이사를 다가서서 촬영

 

 ▲ 좌측은 상가지역이지만 길을 따라 내려간다.

15 : 31 마이사 매표소를 내려가다 좌측에 나지막한 절 마이사를 앞을 지나자 우측엔 상가들

나지막한 지붕에 민가를 고쳐 절로 고쳤는지 낮은 지붕에다 단청도 없는 馬耳寺(마이사)다. 주련은 있지만.... 슬쩍 쳐다보고 길을 따라 내려가니 우측은 즐비한 상가지대로 소형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 소형주차장이 보이지만 좌측으로 내려간다. 

 

 ▲ 드디어 도착한 대형주차장에서 미광님이 손을 흔들며 환영한다.

 

 ▲ 대형주차장 삿갓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날머리

  ▲ 북부주차장에서 뒤돌아 본 숫마이봉

 

  ▲ 우리 버스가 주차해 있다.

 

 ▲ 주차장 끝머리에 한창 공사중인 사양제 못

15 : 35 북부주차장(산행종료) 도로 우측에 소형주차장을 지나자 대형주차장에 도착 산행 끝

좌측에 표고버섯 재배장을 지나 좌측 길도 있지만 직진하여 내려가니 좌측에 대형주차장에 도착한다. 상당히 넓은 대형주차장에 도착하니 미광님이 기다렸다가 반긴다. 모두들 시산제 준비를 하고 내가 오기만 기다린다. 배낭을 내려놓고 시산제에 참석한다.  

 ▲ 시산제 제물 진설을 마치고 기다린다.

 

 ▲ 시산제는무사히 마친다.

15 : 40~ 시산제행사 시기는 늦었지만 1년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지내고 음복을 한다.

미광님의 집례(사회)로 시작한 시산제는 엄숙하게 진행한다. 이인석 교수님 분향에 이어 모두들 참신을 한 후에 초헌, 독축, 아헌, 종헌, 헌작 순서로 시산제도 무사히 마차고 성대한 음복으로 이어진다. 참석자 모두가 환한 웃음속에 복이 오나 보다. 우리 일년산행도 무사 안녕할 것을 기원해 본다.

 

산행을 하고나서

이번에 삿갓봉 암릉전체를 갔다오지 못해 아쉬웠고 암마이봉을 바라만 보고 정상을 오르지 못해 또 하나의 숙제로 남았고 이태조의 유몽금척이 있는 태극전을 살펴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樂山樂水(요산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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