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4월26일 오전6시 출발

 

참 가: 미림산악회원

 

A코스: 함미산성-광대봉-고금당-비룡대-제2쉼터-봉두봉-탑사-은수사-남부주차장

 

B코스: 남부주차장-고금당-비룡대-제2쉼터-탑사-은수사-남부주차장

 

 

                                    


4월은, 가슴 아픈 기억을 새삼 생각나게 하는 라일락은 해마다 피어나, 어느 시인이

 

4월을가장 잔인한 달이라  읊었었지만, 죽음 같은 언땅에서 새로운 생명을 숨쉬게

 

하고 꽃을 피워 싱그러운 삶의 하모니를 울려 퍼지게해 삼라만상이 생동하는 계절

 

이다.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千山鳥飛絶 萬逕人蹤滅 (柳宗原의 江雪)이라 읊조려

 

야 했온통 꽁꽁 얼어 유폐된듯하던 대지에도 따뜻한 피가 돌아 이젠 눈이 부시

 

다.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이 와락 몰려오

 

는 4 매월 한두번 사바의 티끌을  훌훌 털고 자연과 더불어, 물아일체의 경을 맛

 

보고명산을 찾은지도 여러 해가 되었지만, 배낭을 꾸려 현관을 나설 때마다 설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오늘도 신선 부부의 애틋한 전설이 깃든 마이산을 향해

 

떠난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반가운 얼굴들이 더러 보이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모처럼 나온 분들과 새로 오신 산우들이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해 오히려 생동감이

 

더하는것 같았다. 어제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마저 말끔히 개었다. 

 


 

6시 좀 지나 출발한 버스는 올림픽대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강바람이 폐부를

 

시원하게 했다.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이른 시간이어서 차들이 많지 않아

 

막힘이 없었다. 지난번 선운사를 향해 달릴 때보다 차창으로 스치는 산야가

 

한결 다른 느낌이었다. 


 

               휘파람 같은 나들이의 목숨

 

             맑은 바람 앞에서

 

             잎잎이 피가 돌아

 

             피가 돌아

 

             눈이 부시다

 

             살아 있는 것만이

 

             눈이 부시다.

 

                         -이 근배-

 

두껍게 덮인 눈 속에서 고적에 젖어있는 뿌리, 태동의 아픔으로 시름거리며

 

앓는 잎사귀, 끓어오르는 여읜 가지에 뜨거운 입김이 돌아 새로운 생명의

 

용트림을 읽어 낸 시인의 예지가 아니더라도 이젠 완연 봄이 무르익는 걸

 

알겠다. 대전인가  했는데 어느덧  논산을 지나고 있었다. 황토  먼지 속에

 

뒹굴면서 신병훈련을 받던 일이, 아련한 추억이 새삼 그리움으로 돋아난다.

 

정안 휴게소에 잠시 내렸다. 아침 공기가 여간 싱그럽지 않았다. 

 

 


 

진안IC를 나와 30번국도로 들어섰다. 연도엔 그 화사하던 벚꽃을 찾을 수

 

없었고 외려 싱그러운 잎들만이 여름을 연상케 했다. 차창으로 멀리 마이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산이 변한다고  한 십여 년 전에 보았던 진안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처음 보는 듯 낯선 풍경들이다.  들머리를 놓쳐 차를 되돌려야

 

 

 

했다. 산성은 퇴락해 이젠 돌서들 길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인 함미산성,

 

 

산성 입구 표지판이 우릴 반겨주어 모두 내렸다. 등산로를 폐쇄하지나 않았을까

 

내심 불안했으나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산꾼들이 있어 안심했다. 시계는 10시30분

 

 

서둘러 일진을 올려 보내고 나니 B코스를 택한 인원들만이 남았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 모두들 몸을 풀지도 못하고 산행대장들의 인솔에 따라

 

이름 모를  산소 옆길로  오르는 걸 보면서 남부주차장으로 향했다. 


 

마이산 금당사 일주문을 들어섰다. 여기서도 좌우엔  가게들이 늘어서

 

승속을 분간키 어렵다. 고금당으로 오르는 길목을 물어 오솔길로 들어섰다.

 

 

 

맞은 편 숲속에 산벚 한 그루가 화사한 꽃으로 그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고,

 

 

 

오솔길 언덕을 오르다 보니 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는 듯 여인네를 만났다

 

 고금당을 물으니 숨이 턱에 닿을 듯 가파른 길을 한참 가야한다 했다. 거의

 

풀숲을 헤치다 싶이 하면서 한참을 오르다 보니 이름모를 야생화가 수줍은듯

 

 여기저기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개 하나를 올라서니 조금은 하늘이 트이고

 

저 위 황금빛 고금당이 위용을 나타내었다. 어느새 젊은 산꾼들이 무리 지어

 

왁자지껄 우릴 앞질러 간다. 역시 젊음은 아름다웠다. 싱그러웠다. 

 

 


 

몇 번씩 쉬어가면서 오르는데도 김박사가 오늘은 자꾸만 뒤로 쳐지는게

 

아닌가. 일행은 걸음을 늦춰가면서 기다려야 했다. 쇠난간을 잡고 오르는

 

 

매천선생의 손놀림이 부드러워 진걸 보니 수술한 자리가 이젠 많이 나아진것

 

같아 한 마디 했다. 이젠 밧줄도 탈 수 있겠다고... 나옹암을 비교적 수월하게

 

올랐다. 암자를 둘러보고 불상 앞에 머릴 조아리고 바로 위 고금당으로 올랐다.

 

이곳이 려말 고승인 나옹선사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동굴이었는데 

 

나옹암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 깔끔하게 신축된  터는 원래 금당사 (金塘寺)

 

 

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라 고금당 (古金塘)이라 한다고 했다. 보수 중인것

 

같아 법당 내부를 자세히 살피진 못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탑영제의 파란 물이, 금빛으로 단장을 한 금당사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고금당 뒤로 올라서니 청룡백호가 호위하는 듯한

 

자리에 산소 두 기가 나란히 앉아 있다. 석물이 없으나 누군가 잘 돌본

 

듯하다. 등로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교행하기엔 불편한 오솔길을

 

 

 

오르고 내린 끝에 비룡대가 아스라이 올려다 보인다. 비룡대 오르는

 

가파른 철난간을 잡고 올라 정상에서니 진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론 고속도로가 지나는 게 보였다. 제1쉼터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다른 산꾼들과 섞여서 다음 고개로 향했다. 표지판은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할텐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다. 능선을 오를 때까진

 

여느 산과 별로 다르지 않았었는데 비로봉에서 봉두봉으로 가는 중간

 

중간에 마치 시멘트를 모래와 자갈을 한데 섞어 쏟아부어놓은 것 같은

 

수성암의 흔적이 뚜렷했다. 펀펀한 곳을 골라 자릴 잡았다. 쾌청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간지럼 태우듯 옷깃을 파고드니 너무 시원했다.

 

 

준비한 음식을 펴놓고 정상주 한 잔씩으로 마음에 점을 찍었다.

 

김용남 부회장 익살 섞인 입담에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언제나 산에 들면, 산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무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허덕이면서 앞 사람의 발뒤축 따라가기에 급급한 건

 

산행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산에서, 우리 인간이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주어에도 목적어에도 속하지 않고, 행간에 떨어진 낱알

 

같은, 어떤 틀에도 어떤 어휘에도 담기지 않고, 어떤 문맥에도 기속되지

 

않는, 그런 무존재의  자유를 누리는 그런 시간으로 남을 순 없을까.

 

 그저 바람처럼, 구름처럼 산에 기댈 순 없는 것일까. 능선 따라가다

 

바라보이는 마이봉은 또 다른 감상에 젖게 한다. 마이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릴 맞이한다.

 

 

 마이산은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위치 하여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산태극, 수태극의 중심지로

 

 

국가지 정 제12호(2003,10,31)로 세계적인 명산이다. 마이산은 시대별로

 

 

신라 때는 서다산,고려때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 조선 태종

 

 

때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왔으며, 계절에 따라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하여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여 용각봉, 가을에는단풍든 모습이 말의귀 같다

 

 

해서 마이봉, 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 부른다.  약 1억 년 전인 중생대의 백악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산의 자리는 거대한 담수호였으며, 이 담수호에 굴러들어온 자갈들이 쌓여,

 

 

역암이라는 퇴적암을 만들었고 이 퇴적암이 습곡운동으로 횡압력을 받아

 

 

 

 

 

융기해 거대한 암수 두 암봉으로변성되었다. 융기한 두 암봉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받아 모암에 박혀있던자갈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 작은 구멍이

 

 

생겼고(타포니 현상) 이 구멍들도세월에 떼밀려 그 크기를 늘려가 오늘날의

 

 

마이산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일반적인 견해이다. 우리 선조들은 마이산의

 

 

복잡한 생성비밀을 밝혀 과학자들보다 훨씬 앞서 나름대로 이 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발견했고 그것이 바로 이산에 얽어 엮어낸 전설과 설화가 아닐까.

 

 

아득한 옛날에신선부부가 두 자식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자 하였으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위산이 되었다는 간단한 전설에서 퇴적암의 융기를

 

 

신선의 승천으로 패러디해 하늘나라에 오르지 않고 바위산으로 머무는

 

것으로 끝맺음해, 비경의 마이산을 하늘나라로 여기고 이 곳에서 머물러

 

살겠다 는 조상들의 신화적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봉두봉을 향해 가다 그만 오른 쪽으로 길머릴 틀었다. 몸이 불편한분이

 

 리하지 않도록 함이다. 탑사로 직행했다. 경내가 온통 시정을 방불케

 

 

 

할 정도로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산 속에서 고즈넉하게

 

들려왔던 목탁 과 독경 소리와는 사뭇 다른 세상이었다. 은은한 독경 소리에

 

세속의 번뇌가 씻겨나가는 듯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열반을 염원하는 불가의

 

 

 

세계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승속이 혼연 일체인가. 거대한 바위산 사이에

 

탑사가 자리하고 곳곳에 여래와 보살을 모셨다. 피안은 어디쯤일까. 과연, 거기

 

도달하는 길이 이런 곳에 있음일까.

 

 


 

마이산 바로 아래 천불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의 원력은 무었이었을까.

 

 

떨어져나간 자갈들을 다시 붙이지는 못해도 팔도에서 주워 모아 공들여

 

 

쌓은 저 탑들이 중생들의 염원을 영글게 하리라. 지극한 적선에 감동해

 

 

거센 바람 에도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결코 무너지지 않았으리라.

 

 

 

 

 

처사의 상 앞에서 기념 으로 한 컷했다. 보름전에만 왔더라면 진입로에

 

 

늘어선 벚꽃의 향연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낙화의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높은 산에 자리했던 옛 금당사는 이제 아래 마을로

 

 

내려와 중생과 호흡을 같이 하는가 보다. 그래도 하산을 했으니 그럴 듯한

 

 

식당가로 들어 늦은 점심겸 동동주로 목을 추겼다. 뜻밖에도 박천순부회장

 

 

후의에 감읍.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산행 중 길을 놓쳐 몇몇 산우들이 고생을 하였 지만  그래도 안전 산행으로

 

 

마감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술 한 잔씩하고는  다음 번

 

 

지리산 바래봉산행을 기약하면서 귀경 길에 올랐다.

 

 

                                             - 목 어  백 찬기 -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