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07년 03월31일 (음력:02/13) 날씨: 흐리고 비
산행지: 마니산
산행자: 백두대간종주대와 귀연산악회
산행코스: 정수사입구~기도터~안부~중수비~참성단(우회)~마니산관광지
산행거리:4.9km, 산행시간:03시간30분
개요
마니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제주도.거제도.진도.강화도.남해도)로 큰 섬의 하나인 강화도에 있는 산으로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민족의 성지인 참성단이 있으며 백두산의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산이다.
이 산은 지구의 중심부에 점 하나 있고 주변에 실오라기 같은 흔적이 있어 확인 해 보니 점은 마니산이고, 실오라기는 만리장성으로 밝혀졌다고 1974년 여의도 전도대회에서 빌리그레이엄 목사가 마니산의 중요성을 거론하였다.(미국항공우주국이 달에서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판독을 근거로 하여 여의도에서 설교한 내용이다)
마니산의 본 래 이름은 마리산 또는 머리산으로 불렸지만 마니산으로 바뀌게 된 것에 대한 확실한 고증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왜정 때 마니산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조선중기 승병들에게 참성단의 보수를 맡기자 이들이 보고서를 쓸 때 불교용어 "마니"를 쓰면서 마니산이 되었다고 하는 설 등이 있다.
주: 마리는 머리(頭)를 뜻하고 여러 산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에 속하는 산으로 보아 "머리산"이라 하였고 "마니"는 범어로 탁한 것을 맑게 하여 재앙을 물리치는 여의주를 뜻 한다고 한다.
한반도(호랑이)의 심장부에 위치한 마니산(마리산이나 머리산)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신성시 되는 산 중의 하나이고 한반도에서 가장 기(氣)가 강한 산으로 탐방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산이다.
산행은 정수사와 함허동천에서 시작하여 참성단까지는 외길로 여러개의 등로가 거미줄처럼 엉켜 있지만 어떤 길을 택하든 참성단으로 향하는 길이다.
참성단에서 세 코스의 등로로 나누어지는데 일명 개미허리라 불리는 918개 계단을 내려가는 길과 참성단을 좌측으로 돌아가는 단군로를 이용하여 마니산국민관광지로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이지만 선수리방향으로 마니산을 종주하는 코스가 있다.
산행시간을 개미허리와 단군로코스는 3~4시간 소요되며 선수리 종주코스는 5~6시간이 소요된다.
진행도(정수사~마니산관광지)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입체도
산행글
대간길에서 벗어나 모처럼 근거리 산행을 나서는 날!
새벽부터 짙게 깔린 운무는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으시시하다.
한 바탕 홍역을 앓듯이 가슴앓이 후 가볍게 나서보는 산행길에 달갑지 않은 날씨인데도 많은 회원님들 나와 주시고...
봉고차를 이용 해 정수사로 향하는길목에 웃음 꽃 피어 난다.
오늘 산행은 바위낙서 지우기로 유명하신 산사랑님의 벙개로 이루어진 밴뎅이회
먹기를 위한 산행이라 모두가 여유만만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산행들머리인 정수사 입구에 도착한다.
차 에서 내리면서 비 오지 말기를 빌었는데 산행길 내내 운무속을 헤메였고 비 대신에
세찬 바람과 맞서야 하는 산행이 되었다.
함허동천계류로 알바도 있었고.....
정수사 가기 전 우측의 산길로 접어들자
현호색이 반겨준다.
참으로 오랫만에 찾아 오는 마니산이다.
97년도부터 삼년 간 줄 곳 마니산만 다녔었는데 그 것은 순전히 초지진포구에 있는 금진호(정자네)횟집에서
소주잔을 즐기기 위 한 것이었다.
기도터
묘지까지 깔아 놓은 융단길을 따라서 도착 한 이 곳은!
언제나 조용히 찾던 곳인데 3년만에 다시 이 곳에 서니 감회가 새롭네~~
그 때는 한적하였으나 ....
지금은 유격장으로 변해 버렸구나!
버섯바위도 지나고...
마니산의 여근석도 지나고....
석문도 지나서....
새집도 만나본다.
바위채송화
철계단 길 시작되는데...
암릉사이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진달래의 화무는 시작되고 있다.
비에 젖은 암릉길 미끄럽기는 하지만 오랫만에 밟아 보는 촉감은 남다르다.
함허동천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서 있기에 힘들게 불어오는 해풍은 봄 바람이련가!
악어바위도 지나고 나니..
469.4봉
마니산의 최고봉이다.
예전에 없던 칠선녀교 놓여 있지만 ...
참으로 기발한 발상인 것 같다.
암릉에 박아놓은 철심과 함께 마니산을 망쳐 놓은 것 같은 씁쓸함은 나 만의 생각이 아닌 전 대원의 마음이었다.
참성단 중수비(음각문)
우리나라 국도 수천여리를 통틀어 강화는 나라의 방패가 되는 중요한 곳이며, 강화 수백리에서도 마니산은 나라에서 제사를 드리는 명산이다. 이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든곳이 있으니 이곳이 참성단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리 한다.돌이켜 보건데 연대가 오래되어 비바람에 씻기고 깍여 서쪽과 북쪽 양면이 반쯤 무너졌으며.동편계단 또 한 많이 기울려져 이 고을 여러 어른들이 서로 더불어 개탄한지 오래되었다. 부족한 내가 이곳의 유수로 와 이 고을을 지키게 되어, 올 봄에 고을을 두루 살피면서 시험삼아 한 번 올라가 보았는데 분연히 이곳을 중수할 뜻이 생겨 선두포 별장 김덕하.전등사 총섭승 신목에게 그 일을 주관하게 하여 다시 쌓게하니 열흘이 채 아니되어 공역을 다 마쳤다.아! 무너진 곳을 일으키고 고치어 옛 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은 고을을 지키는 어나시어. 실로 우리 동국 백성의 조상이 되시는데(손수)단을 쌓아 하늘에 청결하게 제사를 지내던 곳 임이라! 수 천년이 지나도록 우손들이 우러러보며 공경할 곳이니 고쳐서 완전하게 하는 일을 어찌 아니할 수 있겠는가? 신목의 일의 시말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이를 알리기를 청함으로 이를 써서 기록하는 바이다.
정유(1717.숙종43)단양월 5월에 (강화)유수 최석항이 기록하다
-이상은 설명문 내용이다-
참성단중수비
이 비는 참성단을 개축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암벽에 정남향으로 가로50cm세로105cm의 음각 테두리를 마련하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겨 넣었다.명문은 1행부터 7행까지는 각30자 8행은 28자 9행은 12자로 모두 250자이다.
-이하생략-
헬기장 주변
참성단을 알리는 안내판!
이정목
여기를 지나면 참성단이지만..
철문으로 굳게 닫힌 그 곳을 볼 수 없기에 ....
우리는 선수리와 개미허리 갈림길에서
종로5가까지 출타하여 준비 해 온 빈대떡..
출발직전까지 장만하여 택시로 공수한 도토리묵과 부침!
족발과 김밥은 물론이고..
발렌타이는 내일인데...
918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은
산내음 물씬 풍기는 생강나무의 향취와 오리떼의 춘색에 줄거움 배가 되더라...
운무를 쫒아 버리려는 바람의 몸부림이 고마운 건지는 몰라도..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멈춘 후 찾아오는 주변의 조망은 좋았지만..
다음날 찾아 온 황사바람은 왼 종일 우리를 괴롭이더라.
남한의 산 중에서 가장 氣가 세다는 마니산이다.
태초에 단군이 참성단을 쌓아 제사를 지냈다는 마니산은 우리의 성전이다.
계류
노랗게 피어 난 생강나무의 꽃과 조화를 이루어 흐르는 물은 봄 소식의 전령이다.
오리떼의 유영을 끝으로 산행 완료하고
초지진 포구로 향 한다.
갈매기의 비상!
산행 후 초지진 포구에서 벌어진 뒷풀이는
도다리.우럭.숭어회와 매운탕을 곁 드려 인천으로 이어지고....
유산객 되어 하루를 줄기는 산행이었다.
함께 한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정리한다. | | |
모처럼 힘든 대간길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즐산 하신 것 같습니다.
마니산에도 역시 기암이 많군요.
즐감하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즐산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