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 산행기


 

               *산행일자:2006. 2. 11일

               *소재지  :인천 강화

               *산높이  :469미터

               *산행코스:화도마니산입구-단군로-첨성단-정상-함허동천계곡

                               -매표소

               *산행시간:11시12분-14시42분(3시간30분)


 

  강화도는 황해 바다에 박혀 있는 그저 그런 섬이 아닙니다.

육지와 아무런 연을 갖고 있지 못한 다른 섬들과는 달리 강화도는 육지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들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관전평을 써도 좋을 만큼 한가한 섬이 아니었습니다.  북으로부터 외침을 받을 때마다 조정을 이 곳으로 옮겼거나 옮기고자 했던 이 나라 제1의 피난처였고 19세기 들어 외세의 압력에 못 이겨 빗장을 풀은 개국의 전초기지였습니다. 그러기에 강화도는 육지의 어느 도시에도 빠지지 않는 이 나라의 몇 안 되는 역사박물관 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63년 가을 수학여행 차 처음으로 이 곳에 발을 들인 것도 또  1986년 초등학교를 다니는 애들을 데리고 이 섬을 찾은 것도 이 섬 어느 곳을 가도 이 땅이 시련으로 점철된 역사의 현장임을  증언하는 선조들의 체취를 쉽게 맡을 수 있어서였습니다. 지금도 조강을 경계로 남으로는 남한의 김포군과 북으로는 북한의 개풍군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의 현장을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강화도입니다.


 

  마니산도 그냥 보통 산이 아닙니다.

이 땅에다 하늘을 연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께서 이 산에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마니산은 그 높이가 해발 469미터로 5백 미터도 채 안되는 낮은 산이지만 한반도 최고봉의 백두산이나 강원도의 영산 태백산과 함께 단군의 체취가 전해지는 성산으로 BC 2283년에 세워진 참성단에서 매년 가을 단군께 제를 올리고 전국체전의 성화를 채화해왔습니다. 뿐더러 마니산은 한라산과 백두산의 한 가운데 솟아 있어 남과 북 최고의 두 산을 어우르는 명산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강화도의 명산 마니산을 찾았습니다.

1997년 함허동천에서 시작해  정상에 올랐으나 잔설로 길이 미끄러워 참성단을 가보지 못하고 되 내려갔기에 이번에는 정상과 참성단을 모두 오르고자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8시 조금 넘어 산본 집을 나서 강화도 화도의 마니산 입구 정류장에 도착하기 까지 3시간가량 걸렸습니다.


 

  오전 11시 12분 마니산 입구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입구 근처 큰 건물에 단군과 관련된 한 문화원의 간판이 걸려있어 마니산의 상징이 단군임을 일찌감치 일러주었습니다. 매표소에서 4-5분을 걸어 918개의 계단을 오르는 지름길을 버리고 오른 쪽의 단군로로 접어든 것은 무릎을 보호하고 전망이 좋은 능선 길을 걷고 싶어서였습니다. 단군로를 따라 올라 다다른 참성단 전방2키로 지점에서 시작된 능선 길은 선수로로 갈리는 삼거리 갈림길까지 경사가 완만한 흙길이어서 비록 눈이 덮였지만 걷기에 편했습니다. 이 지점에 세워진 안내판에 따르면 마니산에 서생 하는 대표적인 동물들은 고라니, 족제비, 구렁이와 날개와 꼬리에 큰 얼룩무늬가 있는 후투티 새라고 하는데 이 중 후투티 새를 제외하고는 육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동물들이어서 강화도는 심해에 떨어져 있는 무인도와는 생태계가 전혀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시 정각 참성단과 선수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올랐습니다.

남쪽으로 바다와  직선으로 된 해안선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여말 목은 이색 선생의 주유천하는 이곳에서도 이어져 그가 남긴 “참상단”이라는 시 한수가 나무에 걸려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왼쪽의 참성단으로 이어지는 암릉 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참상단에 가까이 갈수록 안개가 가시고 바다가 제 모습을 드러내  곳곳의 전망바위에서 바다풍경을 한껏 관조할 수 있었습니다.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섬들과 직선의 해안선에 맞닿아 있는 염전들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12시39분 해발 468미터의 참성단 바로 밑에 도착했습니다.

철망으로 울타리를 쳐 출입이 막힌 참성단을 가까이서 몇 커트 사진 찍고 나서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암봉으로 옮기자 몇 십 미터 떨어진 참성단의 제단이 훨씬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분명 정상은 동쪽으로 가까이 보이는 암봉 임에 틀림없는데 이곳에 해발468미터라는 정상목이 세워져 있어 조금은 헛갈렸습니다. 먼저 오른 많은 산객들이 이 암봉을 점하고 있어 쉴 자리를 찾아 동쪽의 마니산 정상을 향해 암릉길을 걸었습니다. 산불감시 초소 출발 십수분후에 1716년 강화유수 최석항이 고쳐 세웠다는 참성단중수비를 지났습니다. 


 

  13시7분 바람이 피해가는 양지바른 바위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오른 쪽 바다 한 가운데 여기 저기 박혀 있는 섬들이 빚어내는 정경이 마냥 한가로워 저 섬에는 세속의 아귀다툼이 발붙일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십 수분을 쉬는 동안 눈이 사르르 감겨와 춘광의 따사로움이 봄이 실고 와있음을 분명하게 느꼈는데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것은 북사면을 덮고 있는 냉랭한 흰눈이 주였습니다.  간간이 응달진 눈길을 지나야 해  아이젠을 벗지 않고 암릉길을 걸었는데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정상으로 향하는 중 암릉 길에 소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13시38분 해발469미터의 마니산 정상에 섰습니다.

정작 있어야 할 이 곳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지 않아 국립지리원의 안내판을 보고 여기가 해발 469미터의 정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성단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 길을 뒤돌아보고 선명하게 보이는 그 길을 카메라에 실었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정수사로 하산하겠다는 애당초 생각을 접고 버스 편이 조금 더 편리한 왼쪽의 함허동천 행 하산 길을 택했습니다. 정상에서 몇 분간은 하산 길이 급경사여서 고됐습니다. 이 섬에서도 제주도처럼 까치는 없고 까마귀만 살고 있는지 산등성을 날고 있는 까마귀가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14시17분 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서 함허동천의 계곡을 만났습니다.

계곡을 덮고 있는 빙판이 유수와 같은 세월을 감금해 흐르는 물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니산에서 유일하게 경관이 좋다는 이 계곡에서 함허대사가 수도를 했음에 착안하여 계곡입구에 청소년 시범 야영장을 설치한 것은 역사와 오늘을 함께 되살린 잘한 일로 생각되었습니다. 계곡을 덮은 얼음장은 시멘트 길과 만나는 계곡입구까지 계속되었고 가느다란 밧줄이 장대한 빙판을 가로지르고 계곡 곳곳에 쳐져 있어 안전사고를 대비한 듯싶었습니다.


 

  14시42분 함허동천 매표소를 지나 3시간 반 동안의 마니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주초에 내린 눈이 산 중턱 넘어서는 그대로 남아 있어  아이젠을 차고 산행을 하느라 암릉길 걷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정수사행  암릉길을 마다하고 함허동천계곡으로 하산했습니다. 암릉 길 중간 중간에서 자주 쉬었기에 등에 땀이 제대로 나지 않아 산행코스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인데 버스는 16시 넘어 있으며 여기저기를 거쳐 17시가 되어야 강화읍에 도착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난감해 하는 중 젊은 산객 한 분이 전등사까지 걸어가자고 제의해와 서슴없이 일어섰습니다. 15시 버스정류장을 출발하여 결국은 전등사 입구를 지나 온수까지 7키로를 걸어가 16시10분에 신촌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송정에서 전철을 갈아타서 잠시 조는 동안 뵙고 싶었던 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놓치어 모처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모처럼 짬을 내어 가볍게 다녀온 이번의 마니산 산행은 강화도 역사탐방의 시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기왕에 시작한 역사탐방을 이어가기 위해 보다 자주 강화도를 찾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산행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