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위봉 산행기


 

                 *산행일자:2007. 6. 3일

                 *소재지  :강원 정선/영월

                 *산높이  :1,466m

                 *산행코스:단곡천주차장-감로수샘터-두위봉-큰도사고개

                           -주목군락지-탄전기념탑

                 *산행시간:10시34분-17시7분(6시간33분)

                 *동행    :과천시산악연맹회원

 


  강원도가 내륙 깊숙이 숨겨놓은 정선의 두위봉은 문자 그대로 산상의 화원이었습니다.

올 한 해 한반도 남녘땅에서 열리는 철쭉제 중 마지막 축제인 “제17회 두위봉 철쭉축제”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말소리에  함몰되어 야생화들이 들려주는 꽃의 속삭임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여기 야생화들이 산객들을 맞기에 분주한 철쭉들에 꽃의 화사함을 다 넘겨준 후 수더분한 모습으로 다소곳이 자리를 지켜왔기에 두위봉이 방태산에 버금가는 산상의 화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도감에서도 확인하지 못한  이름모르는 여러 종의 야생화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산을 오르다 정상 가까이에서 키를 살짝 넘는 철쭉나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엮어놓은 연분홍색 철쭉꽃 터널을 지나서야 두위봉 산 전체가 초여름 최고의 봄꽃 화원임을 실감했습니다.


 

  어제는 과천시산악연맹과 함께 강원도의 정선과 영월을 어우르는 해발1,466m의 두위봉을 올랐습니다. 두 달 만에 이 산악회의 정기산행에 기꺼이 따라나선 것은 소백산보다도 수 십m 더 높은 두위봉을 처음으로 오르는데다 그동안 만나 뵙고 싶었던 많은 분들과 오랜 시간 같이 산행할 수 있어서였습니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서 먼저 오른 어느 한 분의 산행기를 읽은 터라 6월초면 철쭉꽃이 만개했으리라 예상했지만 다른 야생화들이 서로 도와 이 산을 산상의 화원으로 꾸며놓았으리라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정선아리랑에 녹아 있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적 애환이 한으로 승화되어 이 산에 꽃을 피웠다면 선조들이 겪었을 애환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철쭉꽃 한가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산 두위봉이 철쭉꽃으로 다 풀지 못한 한들을 모아 이런저런 야생화들을 꽃피웠을 것입니다. 두위봉의 또 다른 이름인 두리봉이 정선아리랑에 “두리봉 겉이두야 두텁던 정이 이슬 겉이두 다 떨어지네”하고 이름을 들인 것도 여기 화원이 단순한 꽃밭이 아니고 우리네 선조들의 애환이 한으로 승화해 만들어진 산상의 화원임을 일러주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10시34분 단곡계곡 주차장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7시20분에 군포를 떠나 10시 반 조금 못되어 하차하기까지 옆자리의 한 분과 이야기꽃을 피우다 한숨 자느라 주변 절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철쭉축제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두위봉을 오르는 산객들이 많았고 이들에 한 가지라도 더 팔고자 애쓰는 이 곳 상인들도 분주했습니다. 주차장을 출발해 임도로 접어들기까지 반시간가까이 단곡계곡을 따라 땡볕을 쪼여가며 동쪽으로 난 시멘트블록 차길을 걷느라 등에 땀이 났지만 아직은 초여름이어서 견딜 만 했습니다. 임도 길을 20분 걸어 다다른 계곡을 건너자 두위봉 정상이 2.75K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목이 서 있었습니다. 훤칠한 낙엽송들이 들어선 좁은 산길로 들어선 후 비알 길을 올라 임도를 다시 만났습니다.


 

  11시54분 감로수샘터에서 약수물을 퍼마시며 10분을 쉬었습니다.

다시 만난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2-3분을 걷다가 다시 오른 쪽 산등성을 올랐습니다. 얼마 후 임도를 건너 계속해 오르다 또 다시 만난 임도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좁아진 임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고 커다란 활엽수들이 그늘을 만들어준 편안한 임도 길을 걷는 동안 길섶에 피어있는 이런저런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산행이 조금 더뎠습니다. 임도가 끝나고 돌길이 시작됐습니다만 길은 여전히 넓었습니다. 감로수샘터의 약수는 이름그대로 감로수였습니다. 목 줄기를 넘어가는 약수는 시원함을 넘어 달콤했고 소주를 즐겨 마셨던 옛날이었다면 그 당기는 맛이 참이슬을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두위봉에 오르는 산객들이 모두가 쉬어가는 곳이라 사람들로 북적대고 라디오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와 오래 쉬지 못하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산죽 길을 지나고 돌계단 길을 오르기 시작한지 한참 후 아라리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아라리고개는 말만 고개이지 어디에도 고개 마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았던 옛날에는 저밑에서 걸어서 여기쯤 오르면 배가 고파왔고 발병도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숨고를 만한 곳이면 어디라도 쉬어가며 고개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고개 마루나 말안장처럼 푹 들어간 안부만 골라서 고개라고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산 두위봉이 여기저기에 야생화를 꽃피운 것도 옛날에는 가는 곳마다 정선아리랑이요, 오르는 곳마다 아라리고개였기 때문이다 싶었습니다.


 

  13시13분 두위봉철쭉비가 세워진1464봉 바로 밑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아라리고개를 지나 길가 왼쪽에 밧줄을 쳐놓은 돌계단을 올랐는데 이 길이 이번산행에서 가장 힘든 깔딱  고개 길이었습니다. 더덕향기가 감미롭게 느껴졌고 이런저런 꽃들이 눈길을 보내왔지만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수많은 산객들에 밀리다시피 올라가 산마루고개에 올라섰습니다. 넓은 잎파랑이들이 받쳐주어 더욱 고귀하게 보이는 연푸른 꽃들은 이 산에서 처음 보는 꽃으로 산마루고개 부근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상의 화원에서 단연 돋보였습니다. 고개마루에서 일행분이 건네준 과일을 받아먹은 후 오른 쪽 정상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밟았습니다. 얼마 후 눈앞에 전개된 철쭉꽃 터널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항상 곁을 같이할 사람과 같이 왔다면 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꽃길이었습니다. 연분홍 꽃 터널을 지났어도 철쭉꽃길은 계속 됐습니다. 규모나 꽃의 화사함에서 여기 철쭉꽃이 이 나라 남단의 제암산이나 일림산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지만 이들 산보다 훨씬 높고 또 고위도에 위치한 두위봉은 철쭉꽃을 보러 올라온 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철쭉비가 세워진 1464봉도 발 딛을 틈조차 없어 오른 쪽 밑으로 조금 내려가 넓은 바위에 빙 둘러 앉아 맛있게 점심을 들었습니다.


 

  14시14분 해발1,465.8m의 두위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철쭉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자 대기하고 있어 그냥 1464봉을 지났습니다. 백두대간의 만항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계속해 동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산림청에서 정상석을 세워놓은1465봉에 올라 일행 몇 분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정작 정상봉은 이 봉우리가 아니었고 조금 더 가 오른 1465.8봉이었습니다. 1464봉, 1465봉과 1465.8봉이 나란히 솟아있어 어느 봉이 정상봉인지 말들이 많습니다만 국립지리원에서 펴낸 지형도를 따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에서 이 산행기에는 표지석은 따로 없지만 삼각점이 세워진 1,465.8봉을 정상봉으로 적어놓았습니다. 물론 노추산이나 주흘산처럼 주봉과 상봉이 따로 있어 최고봉이 정상봉이 아닌 산도 더러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지형도에는 주봉에 산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지형도에 산 이름이 적혀 있는 주봉을 정상봉으로 삼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 1465봉에서  동쪽으로 내닫는 주능선은 남북으로 뻗어나가는 백두대간을 만항재에서 만나고, 이 주능선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작은 산줄기들에 드리워진 산그리메가 숨겨놓은 전설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남쪽 멀리 민둥산은 고랭지채소단지로 눈에 거슬렸지만 그 곳도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삶의 현장인지라 외면할 수만은 없어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15시26분 큰도사고개에서 나무의자에 앉아 편히 쉬었습니다. 

정상봉인 1465.8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헬기장 몇 곳을 지나 다시 오른 봉우리삼거리는 북쪽 증산으로 지맥이 갈리는 1462봉으로 이 봉우리에 올라서기까지 이름모르는 새로운 야생화 몇 종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야생화의 아름다움은 청아함과 수수함에 있기에 집에다 옮겨 심으면 청아함이 사라지고 화사한 집 꽃에 밀려 수수함이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져 그 매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야생화는 그 것이 풀꽃이든 나무 꽃이든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꽃이지 집에다 또는 자기 땅에 옮겨 심어 소유하는 꽃이 아닙니다. 새로 짓는 집의 울타리와 뜰을 부분적으로 야생화풀꽃과 나무 꽃으로 꾸며나가고 있다는 어느 한 분의 말씀을 귀동냥으로 듣고서 아니다 라고 생각한 것은 야생화들도 그들 고유의 삶의 터전이 따로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462봉에서 20여분을 오르내려 전망바위에 오르자 함백산(?)의 통신기지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꽃대 중간에서 꽃을 피워 위에서보면 잎파랑이에 가려  꽃이 잘 보이지 않는 하얀 꽃을 근접촬영 했습니다. 큰도사고개에 내려서 쉬는 동안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의를 꺼내 입고 왼쪽 길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16시10분 첫 번째 계곡을 건넜습니다.

큰도사고개에서 3백m를 내려가서 초록색철망으로 울타리를 한 주목 군락지에 들어섰습니다. 4천만 원을 들여 1,400년 된 8그루의 노쇠한 주목들을 외과수술을 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안내문이 부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이 1400년을 살았으면 천수를 다한 것인데 시멘트로 빈 공간을 채워 넣어 수명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모든 생명체가 순응해야 할 생로병사를 거부하는 것 같아 부질없는 짓으로 생각됐습니다. 제2샘터와 제1샘터가 감로수샘터처럼 수량이 풍부해 이 길로 올라서면 물 걱정은 아니 해도 좋겠지만 돌가닥 길이 계속 되어 그리 쉬운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오른 쪽 산위에서 흘러내리는 지류계곡물을 건너서도 돌가닥 길이 계속됐습니다. 제법 굵은 빗줄기를 뿌렸던 먹구름이 가시고 하늘이 밝음을 되찾아 우의를 벗었습니다. 두 번째 큰 계곡을 건넌 후 한참을 더 걸어 만난 오른 쪽 계곡의 접근을 막고자(?) 쳐 놓은 초록색철망펜스를 막 지나 잠시 의자에 앉아 쉬었습니다.


 

  17시7분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탄전기념탑에서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펜스를 지나자 흙길이 시작되어 발바닥이 즐거워했습니다. 산길을 20분 가까이 더 두원교 다리를 건넜습니다. 방가로가 한가롭게 보이는 계곡 가 시멘트블록 찻길을 20분 걸어 내려가 도착한 탄전기념탑 앞 다리 아래서 산악회에서 정성들여 준비한 차디찬 맥주와 찌개를 맛있게 들었습니다. 하산주로 마신 맥주 여러 잔이 맥주 한 캔보다 점점 맛이 떨어지는 것은 한계효용의 법칙이 들어맞는 좋은 실례입니다. 산위에서 정상주를 들고  내려와서 하산주를 또 마시는 것이 오래 참았다가 하산주만 마시는 것보다 훨씬 맛이 떨어짐에도 계속해서 정상주를 드는 것은 비경제적 행위임에 틀림없지만 술꾼들이 술을  드는 것도 경제적 목적에서가 아님 또한 분명합니다. 어차피 술을 마시는 것이 효용을 따지는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면 술을 드시지 않는 분들도 생각을 바꿔 이 분들이 입산주를 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긍히 여기는 것이 한결 마음 편할 것입니다.


 

  현존하는 산상의 화원이 화려했다면 탄전기념탑은 철지난 옷 같아서 초라해보였습니다.

정선군에서도 탑 하단에 새겨진 “희망찬 석탄가족”을 오늘에 되살릴 방법이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대신에 해마다 이맘때면 철쭉 꽃 축제를 여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메가트렌드를 막을 수 없고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음이 이렇게 자명한데 제 명을 다 살고 죽어가는 생명체에 무리하게 생명을 늘리고자 연연해하는 것은 환경보존과도 아무 관련 없는 일로 미련하다 못해 추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물며 그 생명체가 사람이 아니고 나무에 이르러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