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행기는 지난 봄(2006. 6.11), 두위봉산행기입니다.

신경수님의  두위봉 산행기(정선 영월의산)-전국제일의 철쭉군락지와 최고령의 주목군락지에 두위봉 정상에 대해서 댓글을 부탁하신바, 산하에는 올리지 않았던 산행기를 댓글에는 이미지가 올라가지 않아 산행기로 올립니다.

  

  

 금요일부터 계속되는 비는 토요일 오후로 접어들어도 그칠 줄 모른다. 비가 많이 오지는 않으나 뇌성까지 끊이지 않으니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이 된다. 산행 여부의 마지노선인 15명은 될런지, 심란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안되면 날이 새도록 술이나 퍼야지, 오랜만에.” 이런저런 생각하다 동대문역 밖으로 올라오니 비는 그쳐있다.


 

 형제정육점에서는 언제나처럼 총무님과 주형준님이 산행준비에 여념이 없다. 야채를 씻고 있던 주형준님이 나에게 묻는다.

“운동장앞에서 출발할 땐 어떻게 야채를 씻었어?”

“씻긴 뭘 씻어요? 흙이나 털고 먹으면 다행이지.”

“???”

“흐흐흐”


 

 걱정과는 달리 10시를 넘기면서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 늘더니 윤형원님을 마지막으로 23명. 만족스런 숫자는 아니지만 이날씨에 이인원이면 다행이지 싶다. 22:45 출발. 16강이니, 8강이니, 예선 탈락이니하는 월드컵 축구 얘기에 한참 열을 올리다 무심코 밖을 내다보니 동대문이 보인다. 어찌된 일인가? 시간을 보니, 22:59. 후라이팬을 책임지고 있는 윤형원님이 그만 깜박하는 바람에 이리 되었다고 한다.


 

 빵집소녀님이 내놓은 부침개로 술추렴이 시작된다. 매실주가 보이더니 족발도 보이고, 오늘은 이상하게 들뜨면서 다들 평상시보다 거나해진다. 김도권고문님이 박스채 가져오신 군용건빵을 총무님의 배식으로 마무리가 되고.


 

 03:20. 예전과는 달리 요즘에는 버스에서 잠도 잘 잔다. 눈을 떠보니 자미원에 도착했고 대장님이 안보이는 걸 보니 벌써 지형정찰을 나간 모양이다. 버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본다. 별도 달도 보이진 않으나 비는 오지 않는다. 버스가 세워진 곳은 기차길 옆 버스 정류장 앞인데, 첩첩산골 버스정류장이 종로6가 정류장 못지않게 깔끔하다. 그런데 정류장에 큼직한 대형 사진이 걸려 있는데 철쭉의 두위봉이 아니라 억새가 만발한 민둥산의 모습이다. 정선군이 민둥산을 적극 미는 모양인데 그래도 그렇지 두위봉이 코앞이고 또 정류장 바로 옆에는 두위봉등산안내판까지 버젓이 세워놓고, 설사 기차를 이용한 민둥산행을 하더라도 자미원역이 아닌 증산역을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04:19. 대장님과 양재모님과 같이 확인해 두었던 철길 건너 간이매점 우측길로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저기 그럴듯하게 등산안내판은 내로라하게 잘 세워 놨는데 막상 산행 들머리는 여긴지 저긴지 헛갈린다. 그 흔한 리본표식기도 보이질 않아 자꾸만 지도를 들여다본다. 처음 와보는 산이지만 충분한 사전점검을 했기 때문에 별로 걱정은 안하지만, 매사에 조심하고 확인할 일이다. 매점 우측 길로 조그마한 동네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다시 ‘두위봉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이 길은 우리 버스가 세워진 도로와 연결된 길로 이 부분이 거의 끝부분이다. 남동방면으로 연결되는 좁은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고시원이라는 작은 간판을 보면서 지도를 다시 한번 꺼내본다. 애초에 내 의도는 폐광을 지나 묘를 지나가는 능선길을 염두에 뒀는데 이길은 능선 우측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임도길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점 우측길로 100m 진행하면 우측의 다리가 나오는 지점에서, 좌측의 집 뒤를 살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능선상에서 등로가 만난다는 걸 사전에 알고 있었기에 별 문제없이 진행한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다리를 공사하느라 길을 파헤쳐 놓아서 잠시 살피는데 공사중인 다리밑에 텐트가 보이더니 인기척에 깨었는지 남자가 나와 우리를 살핀다. 쌓여진 흙더미를 넘어 남동쪽으로 곧장 올라가니 임도가 다시 보이고, 주로 좌측 부분의 급사면에 사태를 대비해 부분부분에 축대같은 것을 쌓아 놨다. 아마도 좌측 사면의 윗부분에는 폐광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며 한층 가파라진 경사길에 다리에 힘을 준다. 조금 더 진행을 하면 임도가 어느새 좁아지면서 등로로 이어지는데, 줄 곧 동남쪽이었던 진행 방향이 동쪽으로 휘어져 연결된다.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툭 터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숲속으로 나뭇가지를 헤치며 진행해야하며 작은 물길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04:57. 나무의 질이 좋아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는 자작나무 설명판을 만나고 나면 좌측 사면으로 오르면서 쭉쭉 뻗은 자작나무 군락을 올라 서면, 폐광을 지나온 능선길과 만난다. 이곳에는 “하산길→" 이라고 씌어진 아크릴 안내판이 폐광쪽 능선길을 가르키고 있고, 내가 빠져나온 자작나무 군락쪽은 긴나무로 엇비스듬하게 막아져 있다. 이곳에서 뒷사람을 기다릴 심산으로 배낭을 벗어 헤드렌턴을 집어 넣는다. 울창한 숲속에서 넓은 능선길로 나오니 날이 많이 환해졌다. 흐린 날씨로 잠시 쉬는데도 그새 쌀쌀해진다. 방풍상의를 꺼내 입기가 귀찮아서 그냥 진행한다. 없어도 될 것 같은 하산길 안내판 두 개를 지나면, 05:07. “두위봉등산로(해발900m) 정상2km, 소요시간100분”이라고 씌어진 받침목이 부러져 땅에 걸쳐 놓은 이정표가 있는 샘터에 당도한다. 그런데 소요시간100분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 이곳에서 뒷사람을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배낭을 내려 물통을 꺼내 물을 담으려고 샘터를 살펴보니 땅에서 나오는 물이 아니고 그 위쪽 숲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망설이다 연못에서 뜨기로 하고 손바가지를 만들어 한모금 들이킨다. 물을 마시며 고개를 드니 앞쪽 - 그러니까 진행방향으로 보면 좌측이 되겠다.- 잡목 사이로 좁긴 하지만 뚜렸한 길이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지도에는 길이 없지만 흥미롭다. 어차피 기다리기도 심심하니 연구나 해보자. 제일 좋은 방법은 가보면 되겠지만 혼자 온 것도 아니니 그럴 순 없고 가능성 하나, 그냥 사람들이 쉬다가 볼 일 보느라 들락날락 하다 보니 길이 생겼음. 가능성 둘, 오늘 산행코스인 자미원에서 도사골 그 중간에 민둥산 열차산행하기 용이한 증산역으로 하산할 수 있는 절터골이 있는데 바로 그 코스와 연결되는 길. 가능성 셋, 오늘 산행 들머리인 간이매점 북쪽으로 자미원역 우측의 은곡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1,121봉에서 정남향으로 두위봉과 연결되는 능선과 만나는 길. 그건 그렇고, 이러는 사이 10여분 남짓 지났을텐데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 방풍상의를 입지 않고 버티고 있는데 안되겠다. 슬슬 올라가기로 한다. 얼마 되지 않아 “두위봉등산로(해발900m) 정상1.9km.소요시간40분”이라고 씌어진 이정표를 만난다. 해발은 뭐, 워낙 경사가 완만하니 그렇다 치고 샘터에서 출발한지 10분도 안되었는데 100분에서 금방 40분으로 줄다니 내가 축지법이라도 했나보다. 이정표 건너편으로 길이 있는데 이곳은 지도에 나와 있는 절터골로 빠지는 등산로로 짐작된다. 간간이 산죽을 만나면서 완만한, 오름인지 평지인지 의심스런 등로가 계속된다.


 

 05:30 연못에 도착했다. 대장님의 산행후기에 이 연못 때문에 자미원코스로 들머리로 잡았다고 했는데, 나 역시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이 연못이 흥미로웠다. 해발 1,225m에 연못이란, 그 넓이로 보아 연못이라고 하기엔 작고 웅덩이라고 하기엔 크다. 자세히 살펴보니 진행방향 좌측에서 물이 졸졸 나온다. 오늘 날이 흐리고 어두워 조망이 어렵다보니 등로가 능선인것 같으나, 지도를 자세히 살피면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곳이 계곡에 가깝다. 이 지역 사람들은 두위봉을 두리봉이라 부른다는데 그 의미는 두루뭉실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두위봉이 된 것이리라. 워낙 두루뭉실하다보니 능선뿐만이 아니라 계곡도 두루뭉실하고. 올라온 길을 자세히 살폈다면 물길은 보이지 않았으나 길이 질척거리는 지역이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제 온 비로 그럴 수도 있으나, 산행 전에 인터넷에서 년중 질퍽거린다고 보았는데 그때는 그냥 넘겼으나 이 연못에 와보니 지금까지 온 길이 워낙 두루뭉실하다보니 그 중간에 계곡같지 않은 계곡이 형성이 되고 이 연못이 발원점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이곳에서 물을 뜨겠다고 샘터에서 그냥 왔는데 흐린 물을 보니 후회가 된다. 오늘 날이 물을 안마셔도 ?I찮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 흙탕이 일지 않게 조심해서 물을 담는다. 연못에서 출발한지 5분도 안되어서 없어도 될 위치에 이정표가 또 있다. “현위치 해발1,300m 쉼터(0.9km,30분) ↔ (1.2km,40분)정상” 해발이나 쉼터(샘터로 짐작됨)까지의 시간은 이해가 되는데 정상까지의 시간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절터골과 연결되는 삼거리에서의 이정표에 정상이 40분이었는데, 그때 시간이 05:18이었고 지금 시간이 05:37이다. 40분 남은 거리에서 20분을 왔는데, 다시 40분이 남았다는 얘기다. 오지 않는 뒷사람들 때문에 천천히 오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엉터리 이정표 때문에 골탕을 먹을 때가 간혹 있는데 오늘 조심해야겠다. 그런데 그때는 이정표가 엉터리라고 흉을 봤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둘 다 맞는 이정표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05:41. 산마루길이다. 이곳은 유인물에는 갈림길로 나와 있고, 내가 따로 준비해온 월간〈산〉2003년 10월호 부록 1:50,000 지도에는 아라리고개로 나와 있다. 오늘 산행코스는 아니지만 이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단곡계곡을 지나 함백역으로 가는 길이다. 이 단곡계곡을 지나 421번 지방도로를 못 미쳐서 좌측으로 새비재가 있는데 이곳이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유명해진 소나무가 있으니 바로 ‘엽기소나무’이다. 아래 내용은 월간〈산〉2005년 6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2001년에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젊은 세대의 사랑방식과 그에 걸맞는 유머를 절묘하게 포착해 관객 420만이라는 흥행기록과 함께 엽기를 신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부상시켰다. 이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영화 내내 웃음을 터트리는 엽기스런 유머도 있지만, 영화 후반부의 가슴 찡한 러브스토리도 한몫하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이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타임캡슐을 묻었던 새비재의 소나무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고랭지 채소밭에 외롭게 서 있던 이 소나무는 '엽기소나무'란 이름과 함께 순식간에 스타가 되어버렸다. 영화는 차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지만 엽기소나무의 인기는 여전하다. 지금도 매년 수많은 관광객과 연인들이 엽기소나무를 보기 위해 새비재를 찾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서로에게 쓴 편지를 타임캡슐에 담아 소나무 밑에 묻는 사람들이 많아 타임캡슐을 묻기 위해 땅을 파니 다른 타임캡슐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새비재는 강원도 정선군 방제리에 있는 고개로, 고개를 이룬 산의 형세가 새와 같다고 하여 새비재, 혹은 조비치로 불린다. 고랭지 채소재배단지로 배추가 가득 심어진 여름의 시원스런 풍경과 눈 덮인 겨울철의 풍경은 굳이 엽기소나무가 없더라도 입이 다물어지기 힘든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끝없이 펼쳐진 산과, 운이 좋아 멀리 동강에서 뿜어져 새비재로 밀려들어오는 물안개를 감상할 수 있다면 그 감동과 여운은 오랫동안 가슴 속에서 맴돌 것이다. 그런데 왜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 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영화촬영 장소가 됐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취재 중 우연히 만난 유윤수 신동읍장에게서 그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그 일대는 몇십년 전만해도 소나무가 우거진 숲이었다. 식량증산의 일환으로 소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개간작업을 해서 지금의 고랭지 채소밭이 된 것이다. 그런데 농사일을 하다가 잠시 쉬기도 하고 새참을 먹을 수 있는, 햇빛을 그어줄 공간이 필요해 군데군데 남겨둔 소나무가 전국에서 연인들이 모여드는 사랑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05:57. 산마루길에서 좌회전을 하며 오르면 처음으로 온통 툭 트인 철쭉군락이 나온다. 아쉽게도 불과 일주일 전에 철쭉축제를 벌였나 의심할 정도로 그야말로 철쭉만 있고 꽃은 전혀 안보인다. 전혀. 짙은 운무속에서 눈이 가는 곳 끝까지 온통 철쭉이라, 절정에 왔더라면 이곳은 천상의 화원이라 불렸으리라. 철쭉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며 내 키를 훌쩍 넘는 실한 철쭉과 무성한 잎을 보며 다시 한 번 아쉬워한다.


 

 06:07. 숲길을 오르다 나뭇가지를 젖히면 갑자기 툭 터진 곳이 나온다. 약간의 공터가 있고  한켠에는 두위봉철쭉비가 보인다. 지금까지는 육산의 형태였는데 여기에서부터는 암릉이 왼쪽의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암릉 넘어 남쪽 방면은 가파른 절벽이다. 짙은 운무 때문에 신비로운 느낌만 들뿐 조망은 기대할 수가 없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도 없다. 비만 안오길 빌었으면서 이제는 조망이 실망스럽다고 투정을 부리다니......

 오늘, 날이 흐려서 전혀 조망이 없지만 날이 좋았더라면 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21km 거리인 선달산(1,236m)에서 남동으로 구룡산(1,345.7m)을 지나 신선봉에서 북서로 치면서 태백산(1,560.6m)을 지나 북으로 함백산(1,572.9m. 두위봉에서 직선거리로 약 16km)과 은대봉을 지나 8월 정기산행 예정산인 금대봉(1,418.1m)으로 연결되는 1,000m급 준봉들이 연결되는 장쾌한 백두대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백두대간이라고 해도 이런 고봉들의 연결된 조망은 남쪽에서는(북한쪽을 제외한) 흔하지 않기 때문에 기대가 많았는데, 철쭉도 그렇고 두루두루 아쉽다. 철쭉만 아니라면 이 산은 겨울에 오는게 좋겠다. 방풍의를 입으면서 두위봉철쭉비를 살핀다.


 

斗 圍 奉 철 쭉 碑

철쭉. 작은 사랑을 위해

                         時 진용선

막 피어나는 사랑

꽃샘바람에 움추리다가

살랑이듯

작은 몸짓으로 부르면


 

가까이 와

수줍은 햇살이 되고

설렘이 된다.


 

두리둥실 두리봉에

연분홍 물결

짱짱한 몸짓이 된다.


 

 짱짱한 몸짓은 어떤 뜻일까? 두루뭉실한 두위봉이 철쭉을 제외한 이렇다할 특징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으로도 들린다. 두위봉 철쭉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어 지역 발전을 바라는 지역민들의 염원이 아닐런지. 자, 이번엔 철쭉비의 뒷면을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두위봉철쭉축제기념비

백두대간 함백에서 올곧게 뻗어내린 산세가 불끈 솟아올라 형성된 두위봉은 해발 1465.8미터의 산으로 어느 명산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두위봉의 매력은 때묻지 않은 자연생태계가 주는 아름다움이다. 늦은 봄 정상의 장군바위 아래 수만평의 산자락으로는 철쭉화원이 펼쳐진다. 늦게 피어나 수줍은듯 연분홍 색깔의 철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군락을 이룬다.

이에 오늘 함백청년회의소(JC)에서 주관하는 철쭉축제를 계기로 온산이 철쭉으로 물결치는 두위봉에 기념비를 세운다.

비록 이곳이 정상은 아니지만 우뚝 봉우리로 솟아 산자락으로 아득한 계곡으로 이어지는 철쭉과 이에 감동해 산의 품에 든 이들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함이다.

1999년 5월 30일


 

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여러분이나 산행후기에 기념비의 뒷면까지 옮기는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굳이 여기에 옮긴 이유는, 인터넷에 올려진 많은 두위봉 산행후기에서 이곳이, 이 비가 있음으로써 두위봉 정상으로 되어가는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함이다. 이 기념비 끝부분에 ‘비록 이곳이 정상은 아니지만’ 이라고 분명히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늘상 일상에 쫒기는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이곳에까지 와서도 이 비의 뒷면을 읽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집에 가서는 산행후기에 죄다 정상이라고 써대는 바람에 정상이 되어버렸다. 대장님도 분명히 알고 있을텐데, 대장님의 산행후기에도 이곳이 두위봉 정상이라고 잘못 소개하고 있다. 설명하기 복잡해서, 대장님의 귀찮이즘때문이 아닐런지. 이곳은 1448봉이다. 07:05. 후미가 올라온다. 1시간을 이곳서 기다리다보니 춥기도 하고 지겹기도 해서 혼자서 막걸리 한병과 떡 두접시까지 먹어 치웠다.


 진행한지 3분이나 되었을까? 삼거리가 나오면서 좌측으로 떨어지는데 뒤에서 우측길이 아니냐고 물어온다. 되돌아가 우측길로 들어서니 암릉봉이 있고 입구, 땅에 이정표가 놓여있는데 1,465.5m라고 써있다. 이른바 세군데 정상 중에 두 번째이다. 되돌아 나와 다시 진행한다. 3,4분 간격으로 잡목이 무성한 헬기장 두 곳을 지나서 07:24. 역시 땅에 놓여진 이정표에 1,466m라고 써있고 우측으로 들어가니 안쪽(남쪽)은 툭 터진 절벽이고 이십여명이 살을 맞대고 서있을 만한 공간이 있고 그 중간에는 삼각점이 보인다. 짙은 운무속의 두위봉 정상이다. 실소가 나온다. 철쭉비가 있는 1,448봉에서 이곳 삼각점 정상까지의 도상 거리는 800m가 채 안되고, 소요시간도 20분 남짓 걸렸을 뿐인데 정상이 세 곳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안쪽을 살피니 샘터 위, 절터골 입구 삼거리에서 보았던 같은 형태의 이정표가 내용이 지워지고 파손되어 있다. 나무가 아닌 쇠파이프와 철판으로 만들어진 안내판인데 인위적이 아니고서야 저꼴이 될 수가 없다. 산행 도중 이정표들의 시간이 맞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정상을 1448봉 철쭉비로 보느냐, 그 중간의 1,465.5봉으로 하느냐, 삼각점이 있는 1,465.9봉인 이곳으로 보느냐의 거리 차이인 것이다. 이런식으로 정상을 만든다면, 지리산에는 얼마나 많은 정상이 필요할까? 일찍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지방자치제가 되기 이전이라 오늘 같은 모습이지, 않그랬다면 수십개의 산으로 찢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신력있는 월간지에서 제작한 위의 지도도 문제가 많다. 신동정상, 사북정상으로 지방정부의 이해관계에 놀아난 것도 그렇거니와, 지도상에 노란 점선으로 보기 쉽게 행정구역을 나눠 보았는데 중동면만 영월군이고 나머지는 정선군이다. 신동읍이나 사북읍에 비해 행정 단위가 작은 남면이 완전히 소외되고 있다. 남쪽인 중동면은 경계지역이 절벽으로 접근이 어려워 애초에 제외한다 하더라도, 산의 정상을 포함한 핵심부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면은 정작 왕따당하고 있다. 신동정상이라고 표기한 1448봉은 그나마 신동읍과 경계지역이니까 그려러니 해도 해발에서나 삼각점으로 보나 정상이 명백한 1465.9봉은 행정구역이 남면에 있는데도 엉뚱하게 사북정상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니 황당하기가 이를데 없다. 카지노의 위세가 산위까지 떨치나보다. 멀쩡한 남의 섬을 자기것이라고 빡빡 우기는 인간들하고 다를게 뭔가? 두위봉은 이래저래 그 이름부터 우울하다. 해발 1,465.9m나 되는데 어째서 두위산이 아닌 두위봉이어야 하는가? 물론 그 발원이 되는 산인 함백산이 1,572.9m로 더 높아서라지만, 두위봉과 함백산 중간에 있는 1,426.2봉은 백운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고, 두위봉을 지나 서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상에는 1,171.8m의 질운산이 있고 심지어는, 그 다음 산은 1,000m도 안되는 989.2m의 예미산도 있다. 이산들은 독립적인 산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함백산에서 발원한다하여 ‘함백산 서부능선’이라고 불리운다. 에초에 두루뭉실하니 특색도 마땅한 볼거리도 없다보니 높이에 걸맞는 대접도 못받다가 지방자치 시대에 접어들어 관광사업의 효용에 눈뜬 지역민들이 철쭉과 우리나라 최고령의 주목의 가치를  알아보면서, 지역이기주의와 맞물려 이지경이 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