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의 남근석을 보고✦

언제 : 2005년 3월 26일

누구랑 : 나와 직장동료 아홉

어디로: 성내리 주차장--대망 세트--무위사 갈림길---남근석--능선안부--성봉--중봉--동산(896m)--중봉-- 성봉-- 능선안부 --무봉 -- 대망 세트장-- 성내리주차장(5시간)


 

 

3월초쯤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서 제천에 있는 동산의 사진 산행기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누가 조각이라도 해놓은 듯한 남근석을 보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민망하기도 하고 누구에게 보여 줄 수도 없어 인쇄를 해가지고 집으로 왔다.

그림 2) 남근석을 보며

그날부터 슬슬 몸살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동산 남근석을 볼 수 있을까?

묘안을 짜내다 주 5일제을 이용하기로 하고 맴버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우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남근석 사진을 보여주며 등산을 가지 않겠느냐고 꼬시기 시작 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아 10명의 회원이 모집되었다.

26일 새벽  우리를 태운 자동차는 꼭 발정기 접어든 암소마냥 식식대며 달리기 시작 했다.

손살같이 서울을 빠져나간 자동차는 영동 고속도로를 접어들면서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차안은 온통 화재(話題) 가 남근석에 대한 얘기로 가득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얘기같지만 자연이 만들어 놓은 기묘한 바위 형상에 불혹을 넘긴 남자들이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뭘까?


 

중앙고속도로를 접어들자 산들은 희끗희끗 눈을 이고 있었다.

며칠전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겨울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혹 추워서 작아져 있으면 어쩔까 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봄이라 생각하고 아이젠 마져 두고 온 터라 괜히 걱정이 되었다.

남제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동산가는 길은 충주호를 우측에 끼고 굽이굽이 돌고 돌았다.

금성면 성내리에 동산의 입구에 도착하니 동산은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시치미 뚝떼고 있는 바람둥이 같았다.

무암저수지를 지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산행 게시판이 있고 커다란 대리석에 무릉도원이라 적혀 있다.

무엇 때문에! 무엇이 무릉도원을 만들어 낼까?

그렇다고 어디 도화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넓직한 임도를 따라 오르니 ‘대망의 촬영장’세트가 우리를 맞는다.

시대를 거슬어 올라간 듯한 느낌에 눈은 즐겁기만 했다.

세트장을 지나니 왼쪽 산행 표시가가 잔뜩 붙은 등산로가 나온다.

절까지는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있었지만 일부러 산길로 들어선다.

무암사 오를때까지 좌측에 펼쳐지는 작성산(770.9m)의 암릉에 연신 감탄사만 자아낼뿐이었다.

무암사를 기점을 오른쪽은 새목재와 남근석으로 오르는 길이고 왼쪽은 작성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한바퀴 돌려면 작성산 세목재--동산으로 해 남근석으로 내여 와야 했지만 발정이난 암소처럼 돌아서 갈시간이 없었다.

무암사를 지나 왼쪽으로 남근석 표지판을 보고 들머리로 접어드니 산이 갑자기  경사가 가파르다.

하얗게 눈을 뿌려놓고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듯한 산길을 오르려는데 왠 아낙의 목소리에 발길을 멈춘다.

“아저씨 남근석이 어디 있어요”

60이 넘어 보이는 두쌍의 노부부가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 길로 가면 나오겠죠”

아주머니가 우리를 따라 올라 오려는데 아저씨가 말린다. 무엇때문까?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은 더욱 거칠어졌다.

격정의 시간뒤에 흘리는 땀같이 이마와 등줄기에는 땀이 흘려 내렸다. 길은 미끄러웠고, 곳곳에 설치된 밧줄은 체위를 바꿔가며 클라이막스로  내닫는 것 같았다.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여자는 감히 근접을 못 할 정도였다.

하기야 여자가 함부로 그곳에 오른다 말인가? 민망하게

우리와 동행한 여직원은 몇 번이나 주저앉으며 못가겠다고 엄살을 떨었다. 정말 힘들어서 였을까? 아니면 내숭일까?

여자들은 영화를 보면서도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은 ‘어머나’하면서 두손으로 눈을 가리는 것 같지만 손가락 사이로 오히려 더 똑똑히 본다는 걸 익히 아는 터.

마지막 밧줄을 잡고 올라 섯을 때 불끈 성이 난 남근석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릴적 우리집 마당에서 누렁이가 사랑을 나눌 때 본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먼저 올라온 산꾼들이 손으로 더듬어보며 기념 촬영에 여염이 없다.

조물주는 왜 이런 조화를 부렸을까?

도봉산 여성봉을 데려와 결혼이라고 시켜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건너편 장군봉이 우뚝 솟아 있다.

장군의 물건일까?

한 산꾼이 말을 꺼낸다.

“저 건너 능선에 여근석이 있다고”

왜! 조물주는 남근석과 여근석을 같이 한자리에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산의 기운이 문란해지는 것을 염려해서 일까?

이렇게 힘있는 남근석에 여근석을 붙여 놓으면 산기운이 모두 쇠해져 암릉에 소나무가 자라지 못함을 염려했을까?

동네 처녀총각이 바람이 날까 두려웠을까?

동산은 작지만 아름다웠다.

산행내내 소나무와 암릉, 암봉은 동산의 이름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내려올때는 무봉을 거쳐 능선 길 따라 내려 왔다.

하산길에 마주한 괴암과 애기바위 장군봉의 조망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경치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