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봉 산행기


 

            *산행일자:2008. 8. 28일(목)

            *소재지  :경기양평

            *산높이  :중원산800m, 도일봉864m

            *산행코스:용문사주차장-용계골/조달골합수점-중원산-815봉-싸리봉

                      -도일봉-중원폭포-상현리주차장

            *산행시간:9시3분-19시16분(10시간13분)

            *동행    :쌍용제지사우 1명

 

  

  이런 저런 인연을 맺어가며 살아가는 현장을 장(場, field)이라 한다면 저도 그동안 숱하게 많은 장을 만났습니다. 만 60년 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첫 번째 만난 장은 가족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것이지만 형님과 누님은 가족이라는 새로운 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다음에 만난 장은 다른 사람들과 이웃이라는 관계를 맺어 가며 같이 살아간 고향마을입니다.  고향마을은 나이 어린 애들에는 함께 뛰어노는 놀이터였지만 어른들에는 함께 일하는 삶터였기에 오늘날의 직장이기도 했습니다. 마을의 놀이터에서 보다 큰 운동장으로 나가고자 학교라는 새로운 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교육의 장은 더불어 사는 지혜와 뒤쳐지지 않게 사는 능력을 키워준 것 외에도 평생을 벗할 수 있는 동창들을 만나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들 장의 공통점은 만남 자체를 중시하기에 한 번 맺은 인연을 없던 것으로 지워버리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한 마디가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오래 머물러야 하는 아주 소중한 장이 하나있습니다.

힘껏 일하고 한껏 능력을 펴 보이고, 그래서 꿈을 이뤄보고 싶은 바로 직장입니다. 그런데 직장은 본질적으로 계약의 장이라는데 앞서 말한 인연의 장들과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 들어간다 해서 직장을 계약의 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동료들과도 좋게 말해 선의의 경쟁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했던 직장에서 맺은 모든 관계는 계약에 기초한 것이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계약이 해지되면 그동안 맺어온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도 같이 끝나는 것이 상례인 듯합니다.  


 

  중력장에는 중력이 작용하고 자기장에는 자기력이 작용하듯이 이들 장에서도 서로를 묶어주는 이런저런 힘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장에는 사랑이, 학교에는 우정이, 군대에는 전우애가, 종교라는 장에는 믿음이라는 힘이 작용해 서로 간의 관계를 강화시켜줍니다. 그런데 이익이라는 힘이 작용하는 장이 있습니다. 바로 계약에 의해 맺어지는 직장입니다. 이런 장에서는 만남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만남이 결실하는 이익입니다. 이익관계인 직장을 내 집같이 생각한다거나 종업원을 내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말은 구호로는 멋질지 모르지만 실제 실천에 옮기기는 말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직장동료들과 함께한 시간이 학교동창들과 같이한 시간보다 훨씬 길어도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은 그들과의 관계가 사랑과 우정 또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대부분 계약의 장인 직장에서 같이 일하며 주고받는 이익에 뿌리 두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 산행은 계약의 장을 인연의 장으로 바꾼 옛 직장동료와 함께 했습니다.

함께 일한 직장을 그만 두고도 10년 넘도록 만남을 이어온 이 친구와 함께 산에 오르는 것은 2년만으로, 양평 용문산의 동쪽 말산인 도일봉을 오르기로 하고 아침 일찍 청량리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집 나서서 버스에 오르기 바로 전에 충전기에 꽂아둔 카메라용 바테리가 생각나 다시 돌아가 가지고 나오느라 아침부터 허둥댔습니다. 청량리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헐레벌떡 계단 길을 뛰어 지상철의 기차에 오르기까지 5분 동안이 이번 산 나들이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역 대합실에서 6시50분에 만나기로 한 약속은 정확하게 지키지 못한다 해도 다음 기차가 한 시간 후에나 있어 7시 기차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타야했습니다. 아침 일찍 두물머리인 양수리를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넓은 유역을 가득채운 강물과 자리에서 막 일어나 눈 부비고 기지개를 켜는 아침햇살이 조우해 빚어내는 강변정경이 참으로 목가적이고 평화롭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실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함께 해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진작부터 부지런을 떨어댄 아침햇살에 밀려서인지 이른 아침이면 두물머리를 몽환적 분위기로 몰아가던 물안개는 그새 자리를 옮겨 산속 깊은 곳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9시3분 용문사버스종점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청량리 출발 1시간 10분 남짓 지나 도착한 용문역에서 인근 버스정류장으로 옮겨 8시40분발 용문사행 군내버스에 올랐습니다. 20분가량 달려 도착한 용문사종점에서 오른 쪽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솟을대문 집을 지나 조계골과 용계골의 합수점에 이르기까지 길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멘트길이 끝나는 데서 오른 쪽 공터를 지나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차도로 내려선 후 왼쪽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가 조계골 주차장에 조금 못 미쳐 용문산보령건강원 앞에 이르렀습니다. 오른쪽으로 난 시멘트 골목길을 따라 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데 길을 가로 막고 대문을 낸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어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 계곡 앞 돌다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정작 민망해 할 사람은 멀쩡한 도로를 점하고(?) 있는 이집의 주인이겠는데 집주인은 미안해서인지 대문을 무단으로 넘어 들어가 자기 집 한 가운데를 지나는 저희들에 얼굴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돌다리를 건너 지형을 살핀 즉 길이 아닌 것이 분명해 다시 건너왔습니다. 계곡 위쪽으로 먼저 다녀간 분의 산행기에 나오는 간이 화장실이 보여 그곳으로 다가가 처음으로 "중원산3.3Km"라고 적힌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이정표가 세워진 이곳이 조계골과 용계골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일단 들머리를 찾는데 성공했다 싶어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새 시간은 반시간 가까이 지났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다리건너 용계골 위로 난 오른쪽의 산등성 길로 올라갔습니다.


 

  9시58분 용계골과 조달골의 합수점 앞 갈림길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조계골/용계골 합수점에서 오른쪽으로 올라선 산등성 길은 이내 계곡으로 바짝 붙어 이어졌습니다. 날씨가 선선해져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난 지 며칠 되어서인지 후끈거리던 지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데다 나뭇잎이 햇살을 가려 산 오름 내내 그리 더운 줄 몰랐습니다. 용계골의 크고 작은 소에 잠시 몸을 맡겨 쉬어가는 계곡물은 과연 명경지수였습니다. 이 명경지수의 소에 덤벙 뛰어들어 알탕을 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오른 쪽 조달골로 들어섰습니다. 잠시 너덜겅 길을 지나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길바닥에 떨어진 다래가 꽤 달다는 친구는 이번 산행에 흡족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봉선, 큰도둑놈의 갈고리(?), 꿩의 다리(?) 등 여름풀꽃들과 인사를 나눈 후 오른 쪽 산등성으로 붙어 밧줄이 길게 늘어진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해발600m대의 능선 갈림길에 올라선 시각이 10시58분으로 10분 가까이 머무르며 과일을 든 후 왼쪽으로 꺾어 중원산으로 향했습니다.


 

  11시42분 해발800m의 중원산에 올라섰습니다.

해발600m대의 능선으로 올라선 시각이 10시58분으로 이곳에서 10분 가까이 머무르며 과일을 들었습니다. 능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중원산으로 오르는 길이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로프를 잡고 오르기도 하고 우회 길로 에돌아 암릉을 오르는 중 전망 좋은 바위에서 잠시 멈춰 서쪽 맞은편의 용문산 정상과 그 오른 쪽의 폭산을 조망했습니다. 정상에서 한국의 마터호른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서쪽의 산줄기도 웅장하고 호쾌해 보였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하는데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용문산이 숨겨놓은 용계골도 엄청 깊어 보였습니다. 중원산에 올라서자 사방이 탁 트여 시원했습니다.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도일봉이 오른쪽의 중원계곡 건너로 아주 가깝게 보이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것은 오랜만에 다리품을 파는 친구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한 여름 맑은 날씨에 날 하늘을 그대로 이고 있는 것이 위험천만한 것은 목덜미를 뜨겁게 달구는 적외선이 아니라 가시광선보다 파장의 길이가 훨씬 짧아 피부에 닿으면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자외선 때문입니다. 태양이 머리 위로 남중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정오경에 자외선위험도가 최고치를 기록한다기에 마냥 주위의 비경에 넋을 잃고 머무를 수만은 없었습니다. 후딱 정상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은 후 정상에서 물러났는데 피부전문가들은 그림자가 자신의 키보다 길어지기까지는 자외선이 강해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12시34분 도일봉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암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진행해 왼쪽 신점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타나기까지 암릉길이 계속되어 오름 길이 아기자기했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10분 남짓 걸어 오른 바위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밤새도록 얼린 맥주가 딱 알맞게 녹아 그 술맛이 신선주(신선주)에 버금갔습니다. 저녁 6시40분 안에 상현리주차장에 내려가기만 하면 용문으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에 오를 수 있어 이번 산행은 모처럼 느긋했습니다. 무리하게 서두르다 너무 빨리 지치면 목적한 도일봉을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탈출해야 하기에 천천히 그리고 조심해서 진행했습니다. 점심을 들면서 50분여 푹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도일봉으로 향했습니다. 바위 길은 반시간 가까이 걸어 다다른 신점리로 갈리는 또 다른 안부삼거리에서 끝났습니다.


 

  14시43분 중원계곡으로 길이 갈리는 안부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바위 길이 끝나는 갈림길에서 815봉으로 오르는 길이 보기보다 한결 완만하게 느껴진 것은 부드러운 흙 길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27분을 걸어 오른 815봉(?)에 이정표가 서 있었는데 어인 일인지 지금까지 빼놓지 않고 안내해온 도일봉이 빠져 있어 당혹스러웠습니다. 잠시 멈춰 진행방향을 체크 한 후 똑바로 진행하다 낮은 봉우리를 우회해 관중이 가득히 들어선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조금 전에 지나온 이정표에는 “도일봉2.55Km"라고 적혀 있었고, 22분을 걸어 다다른 공터의 이정표에 ”도일봉3.21Km"로 표시되어 있어 혼란스러웠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중원계곡 길이 갈리는 여기 안부삼거리가 싸리재라고 누군가가 표지목에 적어 넣어 벌써 한강기맥길에 들어섰다 했는데 이는 틀린 것이었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한참을 올라 다다른 770봉이 한강기맥과 만나는 접점으로 기맥 길은 이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싸리봉까지 이어졌습니다. 


 

  15시52분 해발812m의 싸리봉을 올랐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바로 위 770봉에 오르는 전망바위에서 잠시 쉬며 한눈에 들어오는 봉미산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770봉(?)에 오르자 뜬금없이 “등산로코스 1.15Km”라고 적힌 새로운 이정표가 나타나 헷갈렸습니다. 멀쩡한 등산로에 세워진 이정표에 등산로코스1.15Km라고 써 넣은 것을 보고 탁상행정의 표본 같아서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770봉에서 북동쪽의 718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대체로 평탄해 걷기에 편안했습니다. 718봉에서 관중 길을 따라 내려가 다다른 안부가 도일봉을 1.57Km 남겨놓은 싸리재였습니다. 물봉선이 활짝 핀 싸리재 공터는 중원계곡 행 길이 갈리는 안부삼거리로 이곳에서 7-8분을 쉰 후 20분 남짓 걸어올라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 812m의 싸리봉에 도착했습니다. 나무의자가 놓여있는 싸리봉에서 북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오대산의 두로봉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이고 0.9Km 떨어진 도일봉으로 가는 길은 남진 길이었습니다.


 

  16시34분 해발864m의 도일봉에 올라섰습니다.

싸리재에서 20분을 걸어 5년 전 여름에 고교친구와 함께 도일봉을 올랐다가 내려선 안부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그 때는 상현리에서 중원계곡을 따라 오르다 오른쪽 산등성으로 붙어 도일봉에 오르기까지가 전날 밤 과음을 해 엄청 힘들었습니다. 별 수 없이 한 바퀴 삥 돌아 중원산을 들르겠다는 욕심을 접고 여기 안부삼거리에서 중원계곡으로 내려가 상현리로 돌아가는 원점회귀산행을 마치면서 언제고 다시 와 이어가겠다고 별러 온 것을 5년 만에 해내는 셈입니다. 안부삼거리에서 도일봉까지 남은 거리는 0.21km로 매우 짧았지만 가파른 암릉 길이어서 로프를 잡고 아슬아슬한 몇 곳을 오르느라 무려 15분이 걸렸습니다. 오전에 오른 중원산이 지척에 보여도 중원산에서 여기 도일봉에 이르는 지름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크게 반원을 그리며 산줄기를 따라 도는 길이어서 중원산 출발 후 5시간이 거의 다 걸려 도일봉에 올라섰습니다.


 

  용문(龍門)이란 본래 중국 황하강 상류의 물살이 센 여울을 이름 하는 것으로 잉어가 이 여울을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등용문이 이 용문에서 유래됐음은 물론입니다. 용문산을 여울을 뛰어넘은 용에 비유한다면 용의 머리는 당연 용문산 정상이고 동쪽 의 도일봉과 서쪽의 백운봉이 이 용의 양 어깨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반듯하게 솟아오른 넓적한 바위 위에 정상석이 세워진 도일봉에 오르면 이 높은 곳에 이 정도 넓은 공간이 확보된 것은 이 봉우리가 과연 용의 어깨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싶어 절로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오랜만에 장거리산행을 하는 친구가 걱정되어 너무 지치면  몇 군데 안부삼거리에서 중원계곡으로 바로 빠질 것도 생각해두었습니다만, 워낙이 평소에 몸 관리를 잘해온 친구라서 혼자 산행할 때보다 자주 쉬기는 했어도 무탈하게 도일봉을 올랐습니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방씩 박은 후 사방을 휘둘러보자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용문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림자 길이가 제 키보다 훨씬 길어졌는데도 여름햇살은 여전히 따가웠습니다. 햇빛을 피하고자 바로 옆 통신탑으로 옮겨 얼마고 쉬면서 정상에 오른 기쁨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18시 정각에 먹뱅이골 계류가 중원계곡에 합류하는 합수점 삼거리로 내려섰습니다.

조금만 서두르면 18시40분에 용문으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에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데도 택시를 타기로 마음먹은 것은 장시간 산행 끝에 힘들게 정상에 오르면 다리가 풀려 하산 길이 늦어질 수도 있다 싶어서였습니다. 저녁5시가 지나자 숲속 길을 지날 때는 어둠이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로프를 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가 한참 후 한 번 쉰 다음 계속 내려가다 먹뱅이골을 만났고 조금 더 내려가 중원계곡 등산로입구를 1.72Km 남겨놓은 합수점에 이르렀습니다. 싸리봉을 오르는 중 인사를 나눈 몇 분들이 싸리재를 거쳐 이 계곡으로 먼저 내려와 쉬고 있었습니다. 시끌벅적한 도봉산을 주로 오른 친구에게는 하루 종일 걸어도 세 팀밖에 못 만난 것이 이번 산행코스가 청정코스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해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알탕을 하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어서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중원계곡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19시16분 상현리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5년 전 7월에 비를 맞고 이 계곡을 지났을 때보다 계곡 물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 맑기는 여전해 알탕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치마폭포를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쳤지만 표지석이 세워진 중원폭포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폭포의 높이는 10m도 안된다는데 이 폭포가 중원계곡을 대표하는 폭포로 자리매김한 것은 옆에서 깎아지른 암벽이 받쳐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지막 다리 옆에서 20분 기량 알탕을 한 후 10분도 더 못 걸어 상현리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용문의 콜택시보다 더 빨리 달려온 것은 어둠이었습니다. 하루 피로를 어둠속에 떨쳐버리고 용문으로 나가 동서울터미널행 버스를 탔습니다.


 

  장장 10시간의 힘든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저희들을 축하해주는 조촐한 자리는 같은 직장동료였던 손 사장이 마련했습니다. 모처럼 청정코스로 잘 이끌어주었다며 고마워하는 산행을 같이 한 친구가 되레 고마운 것은 오랜만의 산 나들이여서 엄청 길게 느껴졌을 산행코스를 무탈하게 마쳐주었다는 것입니다. 퇴직 후 정기적인 모임을 주선해 계약의 장을 인연의 장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손사장이 이번에도 축하자리를 만들어주어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한 직장에서 젊음을 다 보낸 직장인이라면 자주 직장을 옮겨 다닌 사람들처럼 직장을 계약의 장으로만 묻어두기는 아까울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나누었던 동료들과는 계속 만나 인연의 장을 이어가고 싶은 것이 보통사람들의 상정입니다. 이분들에 함께 산행을 해보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것은 산에 오르면 남을 돕고 보살피는 등 자기도 모르게 어질어지기  때문입니다. 서로 돕고 보살핌이 없이 옛 직장동료와의 만남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장보다 오래 인연을 맺어온 장이 제게는 산입니다. 이 산이 어떤 다른 장과 다른 점은 가족이나 학교처럼 한번 만났다고 인연이 자동적으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고, 또 직장처럼 계약에 의해 관계가 지속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과의 인연은 지속적으로 올라야 이어지는 것이며 특정한 이익에 매달려 하는 산행은 오래 계속될 수 없습니다. 산이 그저 좋아서 오르는 산행만이 산과의 인연을 지속시켜주고 산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인연도 이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