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한 번 정기적으로 하는 산행이지만, 나른한 일상에서의 일탈이 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이 때쯤 육사의 고장에선 전설처럼 청포도가 익어가고  먼데 하늘이 알알이 들어와 박히는 시절이라고 했는데, 소서와 대서 중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장마철로 접어든 7월이라 날씨가 마음을 쓰이게 했다. 예보엔 갠다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토요일 오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내일 출발인데 심란하다. 제발 날씨가 말썽부리지 말아야 할 텐데... 산행할 때마다 마음껏 정성을 들이기도 했으니까.

13일 아침 일찍 일어나자 서둘러 하늘부터 살폈다. 다행이다. 간간히 뿌리던 비는 멎어 있어 안도, 출발지에 도착하니 버스가 먼저와 기다리고 있고 몇몇 산우들이 반긴다. 예정했던 산우들이 도착하는 대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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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는 여주를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접어들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에 폐부가 다 시원했다. 들판엔  파랗게 뿌리 내린 모 포기들이 마음을 풍성하게 해 준다. 그동안의 노고가 이렇게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넉넉하고 여유롭게 만들다니...

  

    보리밥과 찬국에   고치장 쌈을

      식구를 헤아리되   넉넉히 두소

      샐 때에 문에 나니  개울넘는다

      메나리 화답하니  격양가가 아니던가

                                           -농가월령가-

 

 

 들밥으로 논두렁 밭두렁을 누비며 흘린 땀이 이런 보람으로 자랐으리라

생각하니 농심을 알 것도 같았다.


 차는 금방 청풍명월의 고장 중원 들판을 시원스레 지나 충주에서 잠시 휴게소에 들렸다. 역시 충청은 아름다운 고장이란 생각을 하면서 괴산에서 국도로 접어들었다. 산자수명한 고장, 굽이굽이 돌아갈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여기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낭만적이란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창송취죽(蒼松翠竹)은 창창울울(蒼蒼鬱鬱)한데,

 

  기화요초 난만중(琪花瑤草爛漫中)에 

 

  꽃 속에 잠든 나비 자취 없이 날아 난다.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

 

  삼춘가절(三春佳節)이 좋을씨고

 

  도화만발 점점홍(桃花滿發點點紅)이로구나.

 

  어주축수 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이라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예 아니냐.

 


 

 삼춘가절은 지났지만 울울창창한 창송삼림을 바라보니 무릉은 바

로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예정보다 30분 이상 늦게 화양계곡에 도착, 들머리로 잡은 학소대

쪽으로 차를 돌려 자연 학습장에서 단체 사진촬영 후 산행을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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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산행 할 사람은 화양 2교 쪽 주차장으로 회차, 충청도에 접어

들면서 간헐적으로 뿌리던 빗줄기가 멎는 듯하더니 계곡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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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동안 산행엔 지장이 없이 비가 멎었다. 20분 쯤 지나

계곡을 건너지른 흔들다리를 넘었다. 다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곧장 산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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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로는 비교적 어렵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더운 날씨 탓에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오늘 따라 다리가 천근의 무게로 걸음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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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과 매천선생 그리고 잠수정은 걸음을 내게 맞추느라 꽤나

지루했을 것이다. 제 페이스로  가지 않고 배려해주는 마음씨에

새삼 고마움을 금할 수 없었다.


 

  머언 산 굽이굽이 돌아갔기로

  산 굽이마다 굽이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 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 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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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낱같은 산길을 이리 넘고 저리 돌면서 마애불이 있는 곳까지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중간 중간 주차장 쪽에서 넘어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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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들과 마주하면서 정상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공연히 물

어보면서... 산이란, 높은 산이건 낮은 산이건 다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천

선생 따라 몇 해를 산행하면서 터득한 것이 산은 어느 산이나

외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등산도 어렵고 하산

은 더구나 조심해야 한다. 오른 만큼 또 내려가야 한다. 마애불

이 있는 곳까지 구절양장의 등로를 오르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정상 근처에서 다 같이 모여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너무 지체되었다. 642m밖에 안되는 도명산

쯤이야 했더니 역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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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히 정상에 도착하니 기다리다 대부분은 먼저 점심을 하고 우

리는 전국구님과 또 몇 분이 함께 그늘진 곳을 골라 자릴 잡았다.

정상주가 없을 순 없어 내 배낭에서 이슬 두 병으로 신선놀일 했

다. 정상에 우뚝 서서 그제야 사방을 조망할 여유가 생겼다. 동

남쪽으로 군자산이, 그 뒤로 속리산이 아련히 보이고 동으론 칠

보산과 대야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마치 내가 동양화 화폭

속에 한 점으로 동화된 듯해, 물아일체의 경지가 이런 것이 아닐까.


 

 점심을 하곤 곧바로 일어섰다.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서둘 수밖에

없었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안내 표지가 몇 군데만

있음을 알았기에 별 생각 없이 걸음을 빨리해 하산하는 데만 정신

을 쏟았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끝이 보이질 않아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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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생각했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돌고 있었다. 어쩌

다 만난 산행객에 물으니 사뭇 다른 길로 돌았다 한다. 내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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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군부대 철조망에 길이 막히고 할 수 없이 울타리 밑을 잠시

빌릴 수밖에... 아무리 추워도 양반은 곁불을 쬐지 않는다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자위하면서. 그런데 부대 안엔  군인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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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먹고 내려왔던 길 거슬러 올라갔더라면 문제 없었을 텐데,

모두들 착각을 했기에 이 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고행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왕지사 수도승의 마음가짐이 될

수밖에... 3시 반 출발 예정이 시간 반이나 지났다. 화양1교와

청안 사이로 나왔으니 차를 부를 수밖에 없다. 차를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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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길을 잘못 든 다른 산악회원들 10여 명이 길 잃은 양이

된 듯 차를 기다리는 걸 보면서 동병상련의 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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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오다 맑은 계류에 발을 잠시 담근 것 말고는 퇴계 선생이 그

토록 상찬했던 금사담, 운영담, 읍궁암 같은 화양구곡은 다음 기

회로 미루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5시 경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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