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산 등산을 기록한 조봉산·낙영산·도명산

 

 

                     (낙영산 지나 전망대에서 바라본 속리산 서북능)

 

 


  조봉산·낙영산·도명산 개요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조봉산(685m)은 낙영산과 이웃해 있으며 각종 기암괴석으로 조각된 듯한 바위만물상들이 마치 새의 부리처럼 뾰족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하여 산 이름을 조봉산(鳥鳳山)이라 지었다고 합니다.

 

  산자락에는 신비스러운 자연석굴인 굴바위를 비롯하여 거대한 벽돌처럼 보이는 마당바위, 행상바위, 맷돌바위, 베틀바위, 코뿔소바위, 구멍바위, 북바위 등 바위 군락지가 있어 산행인들의 눈을 쉬지 않게 해 줍니다. 특히 이 산 남쪽으로는 용대천 계곡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도 그만입니다(자료 : 산림청).


  화양구곡 남쪽에 위치한 낙영산(落影山, 684m)은 동북쪽으로 가령산(642m)을 거느리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조봉산(685m)과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북서쪽으로는 도명산(643m)이 한눈에 보이고, 남쪽으로는 속리산의 산줄기를 마주하고 있는데, 속리산 주변의 산들이 수려한 것처럼 낙영산의 산줄기도 갖가지 형상을 한 기암들이 솟구쳐 있어 마치 선계(仙界)에 와있는 같은 느낌을 주면서,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아름다운 산입니다.


  도명산(道明山, 643m)은 국립공원 속리산에 속해 있으며 그 중 예로부터 천하 절승지로 이름난 화양동계곡 남쪽을 가로막고 서 있는 명산으로 화강암의 바위봉과 기암석벽이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자료 : 한국의 산하).

 

 


  버스에까지 진출한 의약품 판촉활동

 

  2005년 9월 10일 토요일 20명의 등산객을 태운 등산버스(M산악회 주최)가 중부고속도로 음성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후 다시 출발하자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낯선 젊은 신사가 마이크를 잡습니다.


  산악회 측이나 등산객들도 차내에서 이방인이 홍보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 할 리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이 사람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등산용품인 수건을 한 개씩 나누어줍니다. 등산객들도 잠깐 동안 선전하는 것을 참는 대신 공짜수건을 한 개씩 챙겼으니 이런 소음은 견딜 만 합니다.


  이 친구는 자신을 유명제약회사의 홍보팀장이라고 소개한 후 "스쿠알렌"에 대하여 그 효능을 신문기사와 관련차트를 보여주며 열을 올립니다. 그리고 언론에 홍보하는 대신 직접 소비자들을 접촉하여 판매함으로써 거품을 없애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몇 명이나 구매의사를 표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다 해도 유명제약회사가 자사의 제품을 길거리에서까지 나와 특별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기에 이 친구도 제약회사를 사칭하는 지 어쩐지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인터넷을 검색해 스쿠알렌(squalene)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았습니다.


  『희박한 빛과 산소 그리고 높은 수압으로 생물체가 살기 힘든 바닷속 500∼1,000m의 심해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심해상어의 강인한 생존력의 비밀은 체중의 25%의 무게와 신장의 1.5배의 길이를 가진 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쿠알렌 때문입니다.


  스쿠알렌은 인체내에서도 소량이 생성되는 불포화탄화수소로서 사람의 간이나 피부에도 존재하며 생체내의 여러 대사에 관여합니다. 이러한 스쿠알렌은 특히 심해상어의 간유에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여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피부건강을 유지시켜 주며 체질개선과 건강증진에 좋습니다.』

 

 

 

  상신리(새대마을)∼조봉산

 

  충북 괴산군 청천면 상신리 용대천변에 버스가 정차합니다(09:45). 새대마을 등산로 입구에는 마을 이정표가 서 있는 데 이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자 그 아래 앉아있던 할머니 두 분이 손사래를 치며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합니다. 누구나 늙은 자신의 모습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모양입니다. 실제로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정표이지 할머니들이 아님에도 말입니다. 

 

                          (조봉산 등산로 안내도)

 


  조봉산등산 안내도를 뒤로하고 안쪽으로 들어서니 향긋한 냄새가 나는 들깨 밭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이어서 나타나는 몇 기의 묘지에는 후손들이 깔끔하게 벌초를 해 놓아 보기에도 좋습니다. 계절은 어느 듯 9월이지만 바람 한 점 없는 산 속은 무척 덥습니다. 첫 번째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능선을 타고 오르니 이윽고 두 번째로 높은 곳인데 잡풀로 무성한 헬기장 한쪽에 조봉산 표석이 놓여 있습니다(10:43). 당초 산악회에서 예상한 데로 약 1시간만에 오른 것입니다.

 

                   (조봉산 정상 표석)

 


  조봉산 정상의 높이도 자료마다 달라 헷갈립니다. 산행들머리의 안내문에는 685m, 정상의 표석에는 642m, 그리고 '한국의 산하'에는 684m, '월간 산' 8월호에는 680m로 되어 있어 모두 다르지만  필자는 산행들머리안내판을 따라 685m로 표기합니다.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굴참나무들이 담장을 친 듯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어 전혀 조망을 할 수 없으므로 기념 사진 한 장을 찍고는 서둘러 낙영산으로 진행합니다.

 

 


  조봉산∼낙영산

 

  정상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조금 내려가니 비로소 전망이 트이는 바위에 이릅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지만 가야할 능선과 멀리 펼쳐지는 산세가 비교적 잘 조망됩니다. 전망대 밑의 직벽에는 하강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맞은 맞은편의 오르막 직벽에는 엄청나게 긴 로프가 매달려 있어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능선)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망(1))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망(2))

 

             (왼쪽은 긴 로프가 걸려 있는 바위(우회하여 가면서 굴바위를 만남))

 

      (방금 잡고 내려온 로프)

 

  로프를 잡고 내려서서 맞은편으로 올라갈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고 있는 데 옆을 보니 산악회 선두가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표시를 해 놓았기에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우회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런데 하산 한 후 선두에게 물어보니 선두그룹은 직벽의 바위를 타고 넘었다고 합니다. 로프의 생긴 모습이 대야산 정상 오르막의 그것과 비슷했으므로 시도했더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인데 매우 아쉽습니다. 그러나 우회하는 길에 자연석굴인 굴바위를 만난 것은 천만다행입니다(10:55).

 

 

                  (자연 석굴입구)

 

 

       (석굴안에서 밖을 본 모습)

 

 

  굴바위는 북쪽 바위 속으로 10m이상 깊이로 파여져 있는 데 마침 일행이 3명이어서 안으로 조금 들어가 보니 무서울 정도입니다. 어떻게 바위 중턱에 이런 형태의 석굴이 자연적으로 조성됐는지 참으로 신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굴바위에서 나와 다소 까다로운 비탈면을 기어올라 능선에 서니 주변이 잘 조망됩니다. 이어지는 내리막에는 이른바 산부인과 바위가 길을 막습니다. 배낭을 메고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어 배낭을 벗고 겨우 통과하니 그 아래의 직벽에는 또 로프가 걸려 있습니다.     

 

    (산부인과 바위를 통과 한 후 되돌아본 모습)

 

        (산부인과 바위 밑의 로프를 타고 내려옴)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며 뒤돌아보니 방금 통과한 산부인과 바위가 있는 곳이 온통 바위투성이입니다. 능선을 지나가는 길에는 '미륵산성'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낍니다. 사거리 안부에 서 있는 안내문을 잠깐 보겠습니다.

 

 

                (뒤돌아본 산부인과 바위 능선(중앙의 바위부근))

 

           (미륵산성에서 보이는 가야할 능선의 오른쪽 바위군) 

 

      (미륵산성)

 

   (미륵산성의 노송)

 


  "이 성은 낙영산과 도명산의 정상을 남북으로 하여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고 두 산의 정상부분에는 자연암벽을 이용하였다.  전체 둘레는 5.1km에 이르며, 석축부분만도 3.7km에 이르는 대규모 성으로 고려시대 방어용 산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성이다.


  성벽은 자연석을 깨서 쐐기돌을 많이 사용하여 쌓고, 성벽 안쪽으로는 2-3개의 계단모양으로 쌓아 고려후기에서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축조기술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안에는 여러 개의 건물터가 있고 화양계곡과 사담계곡 그리고 도명골 계곡 쪽으로 문을 내었다.  


  이 성은 성이 있는 산 이름을 따라 '도명산성'이라고도 불리며, 전설에 의하면 홀어머니를 서로 모시려던 남매가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고 누이는 성을 빨리 쌓아, 먼저 끝내는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는 내기를 하였다하여 '남매성'이라고도 한다."


  노송과 어우러져 있는 산성터를 지나 사거리 안부에는 공림사 1.3km, 도명산 1.4km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11:45). 이곳에서 산성을 따라 오르니 오른쪽에는 "암벽하강"이라는 안내판에 서 있는 데 아마도 산성터에 오기 직전에 소나무 사이로 보았던 거대한 암벽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능선에서 간간이 보이는 노송과 고사목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니 드디어 낙영산정상입니다(12.02). 흰색의 화강암으로 된 정상표석에는 낙영산 684m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낙영산에서도 사방이 막혀 조망은 전혀 할 수 없습니다.

 

     (안부 사거리 이정표)

 

 

 

   (낙영산 정상 표석)

 


  낙영산에 얽힌 전설

 

  낙영산(落影山)이란 뜻은 산의 그림자가 비추다 혹은 그림자가 떨어지다라는 뜻으로 신라 진평왕 때 당 고조가 세수를 하기 위하여 세숫물을 받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비친지라 이상하게 여겨 신하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이산을 찾도록 하였으나 당나라 안에서는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동자승이 나타나 이 산은 동방 신라국에 있다고 알려줘 신라에까지 사신을 보내 찾아보았으나 신라에서도 찾지 못해 걱정하던 중 한 도승이 나타나 이산의 위치를 알려주니 그 산을 찾아 산의 이름을 낙영산이라 지었다고 전해집니다(자료 : 한국의 산하).

 

 


  낙영산∼도명산

 

  조망을 할 수 없는 낙영산 정상에서 북쪽의 도명산으로 가기 위해 동쪽으로 진행하는 데 고사목을 지난 후 특이한 모양의 두 개의 바위봉에 도착합니다. 이름하여 거북바위와 토끼바위입니다. 그런데 바위를 아무리 관찰하여 보아도 거북이와 토끼는 어디에 꼭꼭 숨었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두 개의 바위가 포개진 것의 앞부분은 꼭 물고기의 머리부분을 닮아 차라리 '물고기바위'라고 이름을 붙여야 적절할 것 같습니다. 

 

               (낙영산 정상 지나 서 있는 고사목)

 

       (오른쪽 모습이 꼭 물고기 머리같은 포갠바위)

 

        (포갠 바위)

 

   (포갠바위에서 바라본 속리산 서북능선) 

 

    (큰 바위사이로 보이는 조망)

 


  비록 거북이와 토끼는 찾자 못할 지라도 이곳에서의 조망은 정말 볼만 할 뿐만 아니라 또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시원한 바람이 양쪽의 큰바위 사이로 불어옵니다. 그 가운데 서 있는 큰 고사목 한 그루도 이곳의 풍경을 아름답게 하는 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남쪽으로는 속리산 서북능선의 상학봉과 묘봉이 잘 보입니다.


  M산악회의 동료 등산객 2명과 함께 간식을 들면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데 어느새 후미가이드인 A대장이 나타납니다. M산악회에 참가하면 등산객이 언제나 거의 만차였는데 오늘은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좌석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20명입니다. 등산객의 수가 적으니 선두 아니면 후미그룹으로 나뉘어 지고 맙니다. 필자는 후미그룹을 벗어나려고 부지런히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꼬리가 잡혔으니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런데 비록 후미가이드를 맡고는 있지만 A대장은 역시 베테랑 산악인입니다. 앞쪽에 있는 큰 바위에 성큼 성큼 올라 폼을 잡더니 곧 바로 뒤쪽의 포갠 바위에 올라가 간식을 먹고 있습니다. 지나가면서 이 모습을 뒤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바위의 형태는 꼭 주전자 같고 마침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배경으로 붉은 색 상의를 입은 A대장의 모습이 한편의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포갠바위 위에 올라가 있는 산악회 A대장)

 

     (뒤로 가면서 뒤돌아본 A대장의 모습-바위가 주전자를 닮았음)

 


  이 길을 따라 계속 동쪽방향으로 진행하면 무영봉(740m)으로 가지만 우리들은 사거리안부에서 좌측으로 들어섭니다. 또다시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지나 아름다운 노송 한 그루를 감상한 후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가니 헬기장입니다.  이곳에서는 방금 지나온 낙영산, 아침에 오른 조봉산, 그리고 가야할 도명산이 잘 조망됩니다.

 

      (첩첩한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는 산세) (1)

 

  (첩첩한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는 산세) (2)

 

          (능선의 아름다운 노송)

 

  (헬기장에서 바라본 지나온 낙영산 )

 

    (헬기장에서 바라본 지나온 조봉산(뒤))

 

    (헬기장에서 바라본 가야할 도명산)

 


  넓은 공터의 가운데 석축을 쌓은 곳에 있는 '관람대'라는 이정표를 지나자 암벽이 길을 가로막습니다. 오른쪽으로 우회하라는 표시를 보고 부드러운 길을 한참 돌아가니 삼거리에 도명산 0.2km라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왼편에 조성되어 있는 정겨운 통나무계단을 지나 가파른 철 계단을 오르니 도명산 정상입니다(13:16).

 

 


  도명산 정상

 

 

   (정상 오름길의 소나무)

 

      (도명산 정상 표석)

 

   (도명산 정상의 바위군)

 

   (도명산 정상의 노송)

 

    (도명산 정상의 북쪽 조망(멀리 보이는 것은 군자산인듯)

 

   (도명산 정상의 조망)

 

       (도명산 정상과 흰 뭉게구름)

 

 

  도명산은 낙영산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화양계곡에 그 맥을 가라앉히기 전 바위로 불끈 일으켜 세운 산으로 정상은 거대한 바위로 된 암봉인데, 주변의 노송과 조화를 이루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이고, 특히 사방 팔방으로 조망이 터지니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 100명산에 이 산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동으로는 백악산에서 뻗은 산줄기, 남으로는 낙영산 너머 속리산의 서북능선, 북으로는 화양계곡 너머 군자산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정상의 바위꼭대기에도 몇 명의 등산객이 올라가 있는데 그 밑에는 노란색 글씨로 쓴 정상표석(643m)이 저리잡고 있습니다. 급히 복숭아 한 개를 깎아 먹고는 하산을 서두릅니다(13:25).

 

 


  어떤 동행(同行)  

 

  하산 길의 급경사에 설치되어 있는 철 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구멍바위 안으로 로프가 놓여 있습니다. 그 옆에는 돌아가는 길이 있어 이쪽으로 통과합니다. 철 계단과 쇠 난간을 연속으로 잡고 내려오니 제법 넓고 평탄한 길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산악회에서는 좌측의 오르막으로 안내표시를 해 놓아 그 쪽으로 접어듭니다.   

 

            (하산길 능선의 노송)

 

 필자는 첨성대 방향으로 진행해 유명한 화양계곡을 따라 하산하기를 원했지만 산악회의 안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위로 올라서니 등산로가 희미합니다. 아무래도 능선을 따라 갈미봉으로 가는 길인 것 같지만 이제는 뒤로 되돌아 갈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성 등산객 1명(편의상 'K씨'라고 부릅니다)과 한 조가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노라니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진행할수록 길은 점점 더 희미해지는 데 선두그룹에서는 아무런 표시도 해 두지 않아 정확한 길을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마침 또 한 명의 등산객을 만나 길을 가는 데, 이 사람은 얼마나 걸음이 빠른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K씨가 앞서고 필자는 그 뒤에 따라 가다가 희미한 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길이 능선을 향해 연결되지 않고 아무리 보아도 능선의 왼쪽계곡으로 빠지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능선을 향해 가다가 갈미봉(560m)을 지나 오른쪽 계곡으로 빠져야 정상인데 이제 보니 길을 잘못 든 것입니다. 갈미봉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희미한 계곡에 잘 보이지 않는 발자국의 흔적을 찾아서 바삐 움직입니다. 겨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로 나와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이 길로 가면 고성리에 도달하며, 국립공원 화양분소 매표소까지는 상당히 멀다고 합니다(14:37).


  길옆의 계곡에는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맑은 물에서 마지막 가는 피서를 즐기고 있지만 하산시간인 오후 3시가 가까워 오니 맑은 물에 세수를 할 여유도 없습니다. 흡사 경보경기를 하는 것처럼 발걸음을 빨리 하여 약 30분을 걸어오니 군부대 막사 같은 시설물이 보이고 조금 더 가니 차량이 다니는 도로입니다(15:10). 도로 옆에는 산악극복훈련장(특수전사령부)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산악극복 훈련장 입간판)


  그런데 문제는 매표소로 가는 것입니다. 송이버섯을 캔 자루를 들고 있는 두 남자에게 매표소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니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걱정을 하고 있으니 자신들은 충주에서 차를 가지고 왔는데 담배 값이라도 주면 태워다 주겠다고 하네요. 얼른 지갑에서 만원(1인당 5천원)을 꺼내 주면서 부탁하고는 RV차량에 오릅니다.


  한참을 달려 매표소에 왔는데 안쪽의 주차장에 들어가려면 국립공원 입장료(1,600원)를 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K씨는 주머니에서 경노우대증을 꺼내 보여주며 무료입장대상임을 알립니다. 필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K씨는 필자보다는 연장자이지만 아마도 환갑을 갓 지났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경노우대증 소지자라니 정말 이외입니다. 연세를 물어보니 금년에 음력으로 68세라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이러한 나이에도 필자보다 오르막을 더 잘 오르니 나이는 정말로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에도 후미그룹이 하산하지 않아 화양계곡에 내려가 세수를 합니다.
  오늘 산행에 5시간 25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산행코스는 상신리(새내마을)/조봉산/굴바위/산부인과바위/미륵산성/낙영산/헬기장/도명산/갈미봉능선/고성리(산악극복훈련장)입니다.

 

 


  200산 등산 기념 산행
                 
  필자가 본격적으로 매 주말마다 산행을 시작한 것은 2002년 초입니다. 그전에도 물론 산에 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등산을 싫어하는 아내를 데리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가는 것도 한심스럽게 생각되어 산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동네 인근 야산에 가서 안내산악회를 알게된 후부터 부지런히 산악회를 따라 다니며 홀로 하는 산행에 취미를 붙여 이제는 죽을 때까지 500개의 산을 정복하겠다는 야무진 목표까지 세워 놓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정말 열심히 산에 다닌 결과 오늘 드디어 200개의 산에 올랐습니다. 사실 하루만에 3개의 산(조봉산과 낙영산 그리고 도명산)에 올랐으니 이런 경우는 흔치 않는 일석삼조(一石三鳥)입니다. 정확하게는 낙영산 오름이 200번째 산이고 도명산은 201번째 산입니다. 그러나 500개의 산행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유명하고 큰산은 계절별로 코스별로 올라야 하니 산행회수는 증가할 지라도 정복한 산의 숫자는 변동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는 명언도 있지만 도심의 찌든 공해와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새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걷는 산행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살찌우는 보약이라고 생각하기에 필자는 죽을 때까지 산행을 계속할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