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이름들을 거느린 덕항산 - 환선굴

 

새벽6시에 날 태운 버스는 25번1번35번 고속국도를 타고 청주에서 CNG를 양껏 퍼마시고,

36번38번35번 국도를 신물 나게 누비다 (어째 힘을 못쓰데요) 11시 반을 넘겨서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에 멎습니다.

 

새벽에서 정오까지 좁은 버스공간에서 징글징글하기도 했으나 태백시를 벗어나서 가냘픈 하얀 몸뚱이로 갓길에서 인사하던 자작나무가 점차 떼거리로 산에 모여 영접하는데 얼마나 기분 좋았던지!

 

 

한 십년 후면 눈부신 자작나무숲은 어떤 장관을 펼칠 텐가!? 상상만으로도 신이 났습니다.

 

 

하사미다리를 건너 무성한 숲의 외나무골에 들어서면 삼나무들이 좁은 골을 촘촘히 막아서고,

훈습한 열기에 흐르는 땀 훔치다보면 꼬부랑할매가 된 참나무들이 듬성듬성 지켜서서 낯선 이들을 맞는 새메기골이 나타납니다.

 

몇 백 년씩을 살았기에 저리 구부정한 채 너덜너덜 때껍옷 걸치고 있을까?

오죽하면 팔 몇 개는 시목으로 만들고도 당당하려 할까!

하늘을 가린 활엽 떡잎이 무성합니다.

 

그런 녹색의 터널을 반시간쯤 오르면 구부시령에 오르고,

숨 몰아쉬며 1007새메기고개를 향하는데 우람한 적송과 웅장한 참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그 아래 중 나무들이 다시 초록 차일을 처 햇빛을 탐합니다.

 

 

활엽에 잘리고 침엽에 찔려 부서진 햇살이 어두컴컴한 숲 바닥에 닿기까진 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마저도 햇빛이 안 닿으면 숲은 바람을 일으켜 흐트러진 공간으로 햇살이 삐집고 들게 합니다.

 

푸나무는 그렇게 배려하고 양보하며 살아갑니다.

 

 

자연의 위대함이지요. 성스런 순환의 질서입니다.

 

 

산은 그 위대한 포퍼먼스를 산님들에게 펼쳐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1시가 넘어 덕항산정상에 올라 점심자릴 폅니다.

 

정상에서 마주하는 세계는 딱 두 개입니다.

초록산릉이 파도처럼 너울대며 사방으로 달려가다 파란 하늘과 포개지는 - 초록과 파랑의 조우지요.

 

어쩜, 하얀 구름만 없다면 초록이 바다인지 파랑이 하늘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일테면 산에 있음을 잊은 게지요.

산님만이 향유하는 또 다른 세계인 게지요.

 

 

저기 구릉 아래엔 아름답고 살가운 순 우리말의 이름(地名)들이 즐비하여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행복해집니다.

 

이제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가면 ‘사거리쉼터’가 나오고,

아래골짝들은 ‘터골’‘물골’‘동산고댕이’‘촛대봉’‘안부’‘설패바위’‘산신당’‘골말’‘환선굴’에 멀리 ‘구수골’‘대기리골’‘대이리골’‘귀네미골’이란 감칠맛 나는 이름들이 말이지요.

 

지각산을 향합니다.

 

 

 

해바라기하는 모든 푸나무들이 오순도순 햇빛을 나눕니다.

 

초록융단처럼 깔린 숲 바닥엔 후 불면 우수수 날아갈 것만 같은 마타리와 취나물꽃과 수많은 야생화가 지천이고,

물봉선화는 산자락 한 군데를 완전 전세 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야생화공부를 한다면서도 그때뿐인 닭대가리입니다.

답답하지요. 무릇 아는 것만큼 눈에 보인다고 하지요.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예찬>에서

“걷기는 생명이고 자연스런 리듬이며, 생각하는 훈련이다. 걷기는 수많은 이름들을 통과하는 과정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오늘 걸으며 지나온 수많은 푸나무와 꽃과 땅이름들!

그것들을 음미하고 알아보려는 것만으로 삶은 즐겁고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각산(1079m)을 찍고 장암재까지의 백두대간능선길은 사람의 냄새가 덜 베여선지,

더는 울창한 숲과 수백 년을 묵은 거목들-적송과 참나무들의 때깔 탓인지 태곳적 분위가 물씬 거렸습니다.

 

 

육산이나 자갈이 깔려 발마사지도 좋았는데 환선굴을 향한 급경사 하산길엔 바위들이 깊은 골산을 만들어 공룡능선 한 쪽을 옮겼나 싶었슴다.

 

4시가지 하산 완료하라 했는데 시간은 늘 앞에서 득달하고 궁뎅인 처집니다요.

환선굴에 닿았을 때가 3시20분,

잰걸음으로 훑어도 40분이 소요된다지만 예까지 와서 그냥 갈 순 없었지요.

 

주춤대는 정남국선생과 달봉님 앞에서 몇 분간이라도 들다 나오겠다고 방향을 틀어 때를 써봤습니다.

 

그런 내가 영 딱했던지 마지못해 따라나선 두 분과 환선굴에 들었는데 쬠만 보고 나오자고 했던 나의 무책임한 이빨이 말짱 허구가 됐습니다.

 

 

홀로 걷기만 허용한 철재길은 (꼬리 무는 입장객으로)빠꾸는 없고 오직 전진일 뿐입니다.

 

컴컴한 동굴 속엔 뭔가 형체가 됨 성싶은 곳에 서치라이틀 설치했기에 그나마 더듬이 전진이었지요.

 

5~8km나 된다는 환선굴을 제대로 답사하려면 하는 생각은 생각도 못하고 번갯불 지나듯 튀려는 데 앞의 관람객들 땜에 갈 수도 없었지요.

 

기왕 굼뜰거면 스냅사진도 찍고 구석구석 들여다보는데 오살맞게 캄캄합니다.

 

 

아차, 미첬지요.

호랑이 앞에서 제 정신 차리라 했는디~! 저는 선글라스를 여태 끼고 다녔습니다.

컴컴동굴 속에서 선글라스라!? 나 뿐 일겁니다.

 

오후 4시 좀 전까지 환선굴에 든 관광객들 이상한 동물 한 마리 구경한 셈이지요.

 

4시10분, 시간 없어 모노레일 탔습니다.

 

정선생이 전활 받습디다.

변회장이 궁금하여 번홀 찍어댔겠지요.

쬠 있응께 달봉님이 전활 받는데 어째 감이 떨더름하데요.

 

 

버스 앞에 만수산님들이 모두 나와서 손박수와 말박수를 치며 환대(?)를 합니다.

겨우(?)반시간 늦었는데~?

 

내 여태 산행에서 약속시간에 반시간 늦었다고 환영(?)받기는 첨이라!

 

하긴 아침에 담 여정 탓에 오후4시까지 하산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 했었지요.

그 주인공이 정(남국)선생이니 입이 열 개라도 쥐구멍 파야 옳습지요.

 

 

 

사실 쥐구멍 팔 놈은 난데~.

나 땜에 반시간씩 허송세월(?) 한 게지요.

 

44명이 반시간씩 하품만 했으니 총합 무려 22시간을 대이리골짝에다 입냄새 쏟아낸 셈이지요.

 

그래놓고 동해시내로 나와서 메밀막국수를 먹을 때도 난 목구멍에 걸리지도 않고 잘도 넘어가데요.

 

 

 

아니 오늘 무척 행복했습니다. 산도 넘 좋았구요.

다만 10시간 넘게 차를 타고 산행은 고작 4시간이라 아쉽긴 했습니다.

 

집행부 고생이야 뼈 빠지겠지만 저녁식사 챙겨오면 밥 먹으러 식당엘 오가는 시간을 산행에 보태 산에 파묻혀 되지라고 꿔 주면 안 되겠능교?

 

만수님들, 저 땜에 반시간 뺏겨 평생 억울하실 것 같음 말씀하시라요.

그 억울함을 고대로 써서 카페에 옮겨 놓겠습니다.

 

즐산 하세요.                             20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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