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항산


 

                                                    *산행일자:2008. 9. 16일(화)

                                                    *소재지  :강원삼척/태백

                                                    *산높이  :덕항산1,071m, 지각산(환선봉)1,080m

                                                    *산행코스:대이리주차장-동산고뎅이-덕항산-지각산-자암재

                                                                   -환선굴-대이리주차장

                                                    *산행시간:11시20분-16시55분(5시간35분)

                                                    *동행    :은하수산악회 회원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100산 중 백두대간 종주 길에 처음 오른 명산이 몇 곳 있습니다.

김천의 황악산, 문경의 희양산, 황장산과 대야산, 삼척의 덕항산과 두타산, 인제의 점봉산이 그런 산들입니다. 마루금을 따라 능선 길을 걷는 종주 산행으로는 이러한 명산들을 개관할 수는 있으나 이 산들이 품고 있는 사찰이나 계곡에 다가설 수 없기에 이 산들의 속살을 어루만지며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어제 다시 찾은 덕항산만 해도 그렇습니다. 3년 전 대간 종주 시 처음 올랐을 때는 능선 길을 그냥 지나간 것이어서 전설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환선굴이나 촛대봉은 물론 몇 채 안남은 너와집이나 굴피집 등을 직접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어제 안내산악회를 따라 강원도 삼척의 덕항산을 다시 오른 것은 이 산의 속살인 석회동굴을 찾아 고생대에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였습니다. 가장 보고 싶었고 또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환선굴을 하산 길에 들르느라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볼 수밖에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오며가며 바라다 본 일망무제의 동해바다가 참으로 광활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 동해바다에 환선굴과 대금굴을 한데 엮어 다시 찾아볼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가슴이 뛰었습니다.


 

  오전11시20분 대이리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산본을 떠난 지 거의 5시간이 다 되어 도착한 대이리주차장에서 박쥐모양의 매표소를 거쳐 왼쪽 계곡을 가로 지르는 작은 다리 앞에 다다랐습니다. 환선굴은 바로 가려면 직진하면 되지만 이번산행에서는 하산 길에 들르도록 되어 있어 다리를 건너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숲속에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섭씨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더위를 피할 수 있었기에 가파른 길을 걸어 능선삼거리에 올랐어도 평탄한 차도를 걷는 것보다 한결 난 듯했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의 동산고뎅이로 이어지는 오름길이 가팔랐습니다. 두 발로 걸어올라 고도를 800m 이상 높이지 않고는 해발 1,071m의 덕항산을 오를 수 없기에 된비알 길이라고 투덜대 보았자 부질없는 일이다 싶어 그저 묵묵히 능선 길을 올랐습니다.


 

  12시25분 동산고뎅이를 지났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20여분을 걸어 쇠 계단을 만나기까지 해발고도를 150m 가량 높였을 정도로 오름길이 가팔랐지만, 길옆으로 밧줄을 쳐 놓아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7-8계단으로 끝나는 아주 짧은 쇠 계단을 올라서자 오른 쪽 아래 계곡 건너로 환선굴 입구가 보였습니다. 철봉 가드가 설치된 길옆에 “위험 급경사” 안내판이 놓여 있을 정도로 길이 더 가팔라졌습니다. 첫 번째 철판 계단을 걸어올라 만난 동산고뎅이의 안내판에 출발지인 골말까지의 거리를 4km로 표기된 것은 이제껏 걸어온 산행시간으로 보아 아무래도 과장된 것 같았습니다. 석회암이 대부분인 이 산에서 규암인 차돌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일어 해맑은 차돌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동산고뎅이에서 0.5Km 떨어진 장암목을 오르는데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협곡은 깊어가고 깎아지른 암봉은 높아지는 것 같아 환선굴이 아니더라도 오른 쪽 아래 지암골은 역시 비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30분 해발1,071m의 덕항산을 올랐습니다.

앞서 지나온 두 번의 가파른 철판계단은 맛보기였고 본격적인 계단 길은 장암목에서 시작됐습니다. “장암목 926계단”의 이정표를 보고 무릎에 무리가 갈까 염려되어 아주 천천히 올랐습니다. 총 계단 수는 830개 정도였고 이 중 300개 정도가 평평하거나 내려가는 것이어서 오름길의 계단은 다 해봐야 500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다 길도 아름답고 주변 경관도 빼어나서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계단 길이 끝나고 조금 더 올라 다다른 터골재 안부에서 왼쪽으로 10분 가까이 걸어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동쪽 방향으로만 시야가 트인 좁은 공터의 정상에 오르자 머리 위로 남중한 태양이 목덜미를 내리쬐어 후딱 삼각점을 사진 찍은 후 곧바로 그늘 길로 옮겼습니다. 점심을 들면서 20분여 쉬는 동안 투구 꽃등 야생화 몇 종을 보았습니다.


 

  15시10분 안부삼거리 자암재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10분을 걸어 터골재로 되 내려갔습니다. 왼쪽 아래로 예수원 길이 갈리는 안부 사거리 터골재 쉼터에서 봉우리를 넘어 해발1,080m의 지각산을 오른 시각이 14시35분이었습니다. 길 가에 로프 줄을 쳐 놓아 안전사고를 막아야 할 만큼 오른 쪽 사면이 절애의 낭떠러지인 것은 이 산줄기가 바다가 융기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안부와 봉우리의 고도차가 70-80m에 불과해 오르내리기는 힘들지 않았으나 저 아래 환선굴에서 환생했다는 선녀가 이름이 지각산으로 바뀐 것을 모르고 여기 환선봉을 찾아 오르다가 헤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덕항산에서 1.4 Km를 걸어 다다른 지각산에서 다시 1.6Km를 걸으면 자암재에 닿게 되는데 덕항산에서 자암재에 이르는 3Km의 백두대간 길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편안하고 푸근했습니다. 덕항산 정상에서 표지석 뒤에 숨어 꽃을 피운 구절초가 환선봉에 오르기 직전의 풀밭에도 만개했고 환선봉 너머 헬기장도 환히 밝혔습니다. 낙엽송림 숲길을 걸으며 바닷바람에 시원해 했는데, 이 숲속의 새들은 감미로운 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오수에 빠졌는지 입을 다물고 있어 온 산이 조용했습니다. 북동쪽 멀리로 간간히 보이는 동해바다와 동해시,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선명한 모습의 고랭지채소 밭 모두가 대간 종주 시에 보았던 풍경이어서 반갑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덕항산-환선봉-자암재의 백두대간 길을 걸은 1시간10분 동안 내친 김에 저는 아주 먼 옛날로 시간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저를 태운 타임머신이 기착한 곳은 5억-4억 년 전 고생대의 바다로 산호와 조류 및 패류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껍질이나 골격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석회암이 세월의 힘을 빌려 덕항산을 비롯한 강원도 남부와 충북의 단양과 제천, 그리고 경북의 문경 등지에 석회동굴을 만든 것은 그 한참 후의 일로 저 아래 환선굴도 수백만 년 -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것이 동굴지질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인 듯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반도가 고생대에는 적도부근에 위치했고 약 2억 년 전인 중생대 쥐라기에 현재의 북반구 중위도로 자리를 잡았다 합니다. 바다에서 수 천만 년 동안 퇴적된 석회암층이 육지로 융기된 것은 2억-1.5억 년 전의 일이고 약2,500만 년 전인 신생대 때 경동성요곡운동으로 강원도 남부와 충북 북동부지역이 높이 솟아올라 석회암 산지가 형성되었다 하니 이번에 걸은 대간의 산줄기도 이 때 만들어 진 것입니다. 지하로 스며든 지하수가 석회암을 녹여 동굴을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저 아래 환선굴이 만들어 진 것은 당연이 이 후의 일로 안내판에 적힌 대로 5.3억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은 환선굴이 아니고 환선굴을 배태하고 있는 석회암층이라는 것을 이번 시간여행을 통해 배웠습니다. ( 이 부분 이우평님이 지은 “한국지형산책”에서 많이 따왔습니다.)


 

  15시46분 천연동굴을 지났습니다.  

자암재에서 왼쪽으로 꺾어 환선굴로 내려가는 1.4Km의 내림 길은 경사가 너무 가팔라 거의 다가 지그재그로 이어졌습니다. 15분을 채 못 걸어 오른 쪽으로 조금 떨어진 약수터를 들렀습니다. 수량도 풍부했고 물도 엄청 차가워 우선 한껏 들이 마신 후 가져간 물을 버리고 이 샘물로 페트병을 가득 채웠습니다. 원위치한 삼거리에서 4-5분을 내려가 만난 첫 번째 만난 전망대가 제2전망대로 깊숙한 협곡과 절애의 암벽에다 홀로 송곳처럼 곧추선 암봉이 더해져 이 정도의 비경이라면 명을 다한 선녀도 환생할 만하다는 찬사가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제1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이 제 2전망대보다 못하다고 느껴진 것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때문이라 생각한 것은 통천문(?)을 지나는 의식이 없었다면 천연동굴 전망대의 조망도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송곳처럼 곧추선 암봉이 촛대봉이고 암굴을 지나 통과한 문이 금강문이라는 것은 하산 후에 알았습니다.


 

  16시55분 대이리주차장으로 돌아와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천연동굴 전망대에서 촛대봉이 보이지 않아 혹시 이 동굴 위 암봉이 촛대봉이 아닌 가 생각했는데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너덜 길을 지나고 지계곡을 가로 지르는 철제다리를 건너 다다른 삼거리에서 시간이 촉박한데도 환선굴로 향한 것은 지상의 산들과는 또 다른 지하세계를 보여주는 동굴을 탐방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주차장에서 식사하는 일행들에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어 1시간 걸린다는 코스를 뛰어가며 관람해 20분 만에 마쳤습니다. 동굴 안에서 발했던 찬탄을 기록으로 남기려하면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찾아와야 할 것 같았고 그 때 대금굴도 같이 들러 석회동굴탐방기를 별도로 써 볼 생각입니다. 다시 돌아온 삼거리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정신없이 내달려 17시 전에 주차장에 도착해 그나마 다른 분들에 미안함을 얼마고 덜 수 있었습니다.


 

  매초 30만 Km로 내달리는 빛에게는 눈 깜박할 사이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이 시간이면 빛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아주 먼 곳으로 옮겨 갑니다. 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결과보다 원인을 먼저 볼 수 있어 과거에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할 것입니다. 공룡을 화석으로 만나보는 것이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실체로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스토리가 있는 여행이어서 단순히 하늘을 나는 우주여행보다 훨씬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상상을 꽃 필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상상은 생각하는 동물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입니다. 시간에 쫓겨 동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래서 고생대에로의 시간여행을 떠나지 못했지만 이 굴의 일생을 머릿속에 그리며 상상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귀가 길 버스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