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검푸른 산맥의 숨결이 하늘을 이고 있다. 깊고 맑게 탁 트인 구름바다의 아름다움에

탄성이 흘려진다. 정지된 겨울의 영혼이 그 바다 위를 가쁘게 날개 짓하며 날고 있다.

  그 길을 쫓아가다 달빛에 놀라 멈칫한다. 온통 백색으로 치장한 광활한 구름 속에 솟은

  고고한 섬의 형상은 고결한 겨울속의 그림자다. 찬연한 길, 외로운 길, 흘러나오는 길의

      부표에서 제하의 마음속을 기댄다. 무심결에 지껄이는 자연의 원숙미? 시간이 정지되는…

조용하다.

 

 


세속적 이야기로 물든 겨울 시간 [남덕유산]







2013. 1. 20 [일]



평택 FM 45명






영각사 - 영각재 - 전망대 - 남덕유산 상봉 - 월성치 - 황점  [5시간]

 

 

 

 

 

 

 

 

 

 






                [1]



  산정의 오전 빛이 더없이 맑고 차다. 겨울의 흰 숨결이 몸속으로 차오르며 막혀있던

영역을 넓혀가려 하고 있다. 웅숭깊이 서려있던 산정의 맥박이 우리에게 심연처럼

  묵직하게 전달되어온다. 이 시간 속 이어지는 산정의 큰 존재가 될 수밖에…. 차분히

열려지는 산문이 투명한 빛에 쌓여 오름을 계속하고 있다.

 

 

 

 

 

 

 

 

 



 

    엷게 퍼져오는 냉기가 빛에 머금으며 촉촉한 감빛으로 순환되기 시작한다. 고요히

산 둘레를 벗어나며 상봉의 밑 부분까지 들어차고 있다. 흰 눈에 반사되는 빛의

    촉수가 벌겋게 물들어가며 쐐기처럼 박힌 협곡으로 하강하기 시작한다. 은은하다.

 

 

 

 

 

 

 

 

 

 

 

 

 

 




세상을 뚫고 나오는 각 바람이 무척이나 세다. 마주하는 숨결이 막힐 정도다. 날처럼

    서 있는 바람결을 갑자기 튀어나오는 산봉에다 붙잡아 맬 태세를 하며 절벽을 부지런히

     넘는다. 눈가루의 심술도 만만치 않다. 큰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는 듯한 북풍처럼 장대한

연봉들을 쉽사리 손아귀에 넣고 있다.

 



 “조심하세요. 한 눈 팔지 마시고 앞 사람만 보고 가세요.


        “장봉처럼 길게 뻗은 봉우리로만 천천히 가시면 안전합니다.”

 

 



 고문님과 대장님이 회원님들을 챙긴다.

 

 

 

 

 

 

 

 

 

 

 

 

 

 

 

 

 

 

 

 

 

 

 

 

 

 

 

 

 

 

 

 

 


 

 

흑백이 신선한 채 움츠려있는 산맥들의 모습이 서서히 떠오른다. 세월의 흔적 같은

   검은 길들이 등짝의 줄기처럼 뻗쳐있다. 거칠고 투박한 것이 세태속의 시련인 것처럼

   빛 속으로 빠르게 스러지는 듯하다. …헛것을 보았는가? 시린 공기가 콧속을 뚫는다.

  그것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사념에 잠긴다. 저 깊은 산길에 눈이라도

한 사날 내려주었으면….

 

 

 

 

 

 

 

 

 

 

 

 

 

 

 


 

 


                  [2] 【전망대 - 남덕유산 상봉】

 

 



    망망하게 펼쳐진 덕유산정의 풍경이 막 핀 오름 꽃처럼 싱그럽고 선명하다. 능선

속으로 점점 흩날리는 빛자락이 유영을 하며 산봉들을 가리고 있지만, 조용히

    겹쳐있는 산맥들의 무원한 외침이 이 산정을 깨운다. 그 빛자락이 한데 모아지며

긴 겨울시간의 터울로 여울져간다. 조용히 가슴 속으로 들어오며 힘찬 흐름이

이어진다.

 


“가슴 벅차오르는 숨소리가 이 산정을 부르는 듯합니다.”

                       “무색의 삭풍과 은색의 소란이 상봉을 타며 덕유산정의 고삐를 바짝 쥐고

있습니다.”

     “세월에 씻긴 산정의 풍모가 안개 속으로 기울어져 갑니다.”

                       “검은 살 속에 박힌 하얀 뭉설이 시간의 상념을 계속 이어가는 듯합니다.”

"그 모든 것이 癸巳年의 행보이겠지요.“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대화에 시간이 물러선다.

 

 

 

 

 

 

 

 

 

 

 

 

 

 

 

 

 

 

 

 

 

 




  찬바람이 잦아든다. 은백색의 도화지에는 구름 속 같은 세상이 잠들어 있다. 빛에

    물들어 붉은 화염을 토해내는 잔설의 향연에 산정은 금세 밀감 빛으로 물들어간다.

훅한 산맥의 입김에 겨울의 무늬가 아스라이 드러나는 듯하다. 정초의 남덕유는

그렇게 또 한세월을 먹고 있다.

 

 

 

 

 

 

 

 

 

 


 

 

 

 장대하게 펼쳐진 덕유산정의 고즈넉한 아늑함에 시간이 멈춰 선다. 발품과 발품이 만나

 주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이어져 신성한 덕유를 만들었다. 백화 속에서 피어나는 깊은

   은빛은 산맥의 긴 행렬을 따라 무리 없이 출렁인다. 덕유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진다.

 

 

 

 

 

 

 

 

 



   가슴이 뛴다. 그러나 이내 사그라진다. 비워지는 산정의 그림자가 자꾸 지워지는

 것이다. 백빛 속에 머무는 산정의 침묵은 너른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안달이다.

 숨어있는 시간이 푸석거리며 들어차고 있는 안개에 집착한다. 차가운 울타리를

 쳐 놓는 듯…. 차츰 쌓이는 세속적인 빛살이 서걱대면서 물결치듯 차 들어온다.

 

 

 

 

 

 

 

 

 

 

 


                    [3]


   검게 그을려 있는 산면을 눈앞에 그리고 무수한 시간이 몰려드는 이 산정을 골똘히

      따라가면, 잠시 마음속에 느껴지는 짧은 순간이 찾아든다. 상기되는 산정의 메마름과

떠도는 공허함이다. 그 속에 깊숙이 퍼져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둠이

가득 차 있다.

 



   “물빛 안개사이로 비쳐드는 광대한 설경의 실체, 그 무엇으로 표현하리오.”

“시간 속 주름을 앗아가는 산줄기 사이로 무성한 하얀 그늘이 감돕니다.”

“차분한 흐름을 이어주는 적막한 시간이 날고 있습니다.”

 “空 같은 덕유의 공기가 휩싸이는 긴 시간의 연속입니다.”

 


   짧게나마 주고받는 님들의 얘기 속엔 어딘가 모를 슬픈 호흡이 내재돼 있는 듯이

보여진다.

 

 

 

 

 



 

 


 

고독한 승부사. 무리에 휩쓸리지 않는 둔탁한 멋스러움. 심유하게 발췌 내는

              자신만의 향. 소멸해가는 순간의 창을 진솔하게 표현해내는 두려움. 덕유의 관점이다.

              이 산정에서 느끼는 응축된 구어들이다. 이윽고 빛이 환하게 내 몸을 비추니 목마름이

조여 온다.

 

 

 

 

 


차가운 산정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그 무엇과도 혼동되지 않는, 가슴을 조이는

   소리다. 맑고 흐림이 분명하다. 때로는 비장한 소리처럼, 때로는 도도한 흐름을 이루는

물길처럼, 유연하게 솟구치는 통성 같은 소리다. 모든 감각이 없다. 바위에 걸터앉아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비벼댄다.

 


 


                       [에필로그]


   환영… 무한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남덕유의 주재이던가. 우묵하게 버텨내는

  산길은 이 산정의 백미다. 비루한 현실을 뒤로하고, 남루한 세월을 멀리하며, 오직 이

   중심의 시선에 닿았다. 아득히 멀어졌으면 하는 … 흰 눈빛이 쏟아지는 무한한 공간의

           끝에 서서 허공을 불렀다. 침묵이 다가온다. 불현듯 스치는  ‘일(一)묵(黙)여(如)뢰(雷)’ …   

  침묵이 곧 우레와 같다. 음, 소리 없는 바람에게 묻는다. 반쯤 감기는 눈을 뜨면서 ….

행여, 이 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