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11년6월5일 08시 잠실역

*산행코스 : 둔리1구-능선-덕숭산-청혜사-진영각-향운각(관세음보살입상)-소림초당

          -사면석불상-수덕사-주차장

*소요시간 : 서울늘벗산악회 15명 4시간

 

 

모처럼만에 일요일을 휴무로 맞이한 기념으로 휴일을 만끽해보고자 몇 번 다녀왔던 수덕사도 구경할겸 미답의 산인 호서의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덕숭산을 가기위해 잠실역으로 나가 차에 타니 산악대장과 운영부장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하지만 황금연휴중간의 일요일이여서인지 산님들의 수가 15명밖에 되지않는데도 산행을 한다니 안내산악회에 미안하고 고마울따름이다.

 

대형버스에 15명밖에 타지않아 마치 가족나들이하는기분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행담도휴게소에 들리니 서교대교가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휴게소는 황금연휴여서인지 주차공간이 없을정도로 주차장은 빈틈이 없다. 화장실에 잠간 들리니 붉게 타는듯한 화사한 붉은장미꽃이 탐스럽게 피어 산님들을 유혹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한다.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둔리1리입석이 있는 둔리교앞에 하차하여(11:16) 마을로 들어서니 인삼밭이 산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동네에는 구제역의 피해가 없었는지 소를 기르는 축사가 곳곳에 있어 축사에서 품어나오는 소똥냄새가 역겹게 느껴진다. 하지만 길가에 화초들이 꽃망울을 터트려 모처럼 동네를 찾아온 산님들에게 미안하다면서 화사한 미소를 보내면서 용서를 구한다.

 

마을입구에는 高25m 나무둘레2.5m인 수령150년된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인양 웅장하게 버티고 마을을 지키고있다. 마을길을 가다보니 마을종합복지센타있는곳에 솟대가 있는 수덕사너미마을(둔지미마을 안내) 안내판이 산님들에게 길을 인도해준다.

 

 

솟대는 마을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洞祭)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운다. 홀로 세워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장승·선돌·탑·신목 등과 함께 세우기도 한다.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라고 불리며 일부지방에서는 까마귀·기러기·갈매기·따오기·까치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솟대신앙은 물을 상징하는 물새들을 장대 위에 세움으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보장하는 마을신의 하나로 삼았다.

 

 

 

수덕사너미마을 안내판을 지나니 익어가고 있는 청보리밭이 나타나면서 어린시절 고향의 보리밭에서 깨복쟁이 친구들과 뛰놀던 향수를 느끼게 만들어주고 아름답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화초들의 모습을 보고가다보면 주택입구에 익살스런 항아리작품과 어우려진 솟대의 모습이 산님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둔지미2길은 걷노라면 미리내농장입석이 길을 인도해주고 콘크리트 포장이된 마을길 주위에는 찔레꽃이 만발하여 향기를 발산하면서 산님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담장에 수국이 만발해있는 멋스런 별장인듯한 주택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11:45)

 

덕숭산은 호서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는 예쁘장하고 아담한 산으로 기슭에 수덕사를 품고 있으며 예산읍에서 서쪽으로 20㎞, 덕산면 사천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방 현인들이 모여 수양을하다 산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하여 수덕산이라고도 한다. 1973년 3월 6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발 580m의 덕숭산은 기암괴석이 풍부하여 바위들이 사람의 두개골이나 노적가리, 사나운 짐승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지닌 절묘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절경으로는 원효봉과 석문봉, 덕숭산과 해태바위등이 있다. 또한 수덕사를 비롯하여 정혜사, 만공탑, 여승당, 보덕사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충의사와 덕산온천 등 명소가 있다. 수덕산은 수덕사 등 사찰산행과 온천산행을 겸할 수 있지만 등산코스로는 가족나들이 코스 정도로 짧아 다소 아쉽다.

 

 

성황당 자리인듯한 터를 지나면 산길은 된비알길로 이어지면서 뙤약볕이 내리쬐지만 숲길이여서인지 무더위를 느낄겨룰이 없이 시원하기그지없고 낙엽송군락지를 지나면 주위에서 들려오는 산새의 지저귐이 고요한 산능선으로 펴져나간다. 산길은 숲길이지만 무더위 때문에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히면서 비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나뭇가지사이로 둔리1리와 국도의 모습이 조망되기 시작하면서 돌계단을 지나 잠시 된비알길을 올라서면 봉우리가 없어져버린 초라한 묘가 나타나고 송림숲을 지나 깔딱고개를 올라서 바위전망대에 도착하면 바람이 시원스럽게 불어오면서 지친산님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주위의 능선과 둔리1리의 전경 그리고 덕산면의 전경이 한폭의 그림처럼 멋스럽게 조망된다.

 

 

땅비싸리꽃의 아름다움모습을 구경하면서 가다보면 바위안부에 도착을 하고 안부를 지나 오봇한 산길을 걷다보면 용봉저수지와 큰잘록이, 용봉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회원님들이 가지고온 과일로 갈증을 달랜후 산길을 이어가다 다시 된비알길을 올라서면 많은 산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덕숭산 고스락에 도착을 한다. 고스락은 정상석과 ‘불법이 온 천하에 두루 펼치니 봄바람에 꽃이 만개하다’라고 써있는 ‘현위치 번호 덕숭01-07’의 표시목이 산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눈아래는 수덕사의 전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12:44)

 

 

 

고스락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주말만 이곳에 올라 용돈을 벌기위해 아이스케익을 팔고 있다는 멋진 아저씨을 만날수가 있다. 고스락주위의 아담한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회원님들이 가지고온 홍어무침, 산나물, 도토리묵 그리고 회원따님이 아버지를 위해 정성껏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안주삼아 복분자술로 목을 축이면서 가족적인 분위기속에 정담을 나누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식사를 끝낸후 정상석을 배경으로 단체기념사진을 찍은후 하산을 한다.(13:44)

 

하산하다보면 멋스런 노송들이 자태를 뽐내고 눈아래 펼쳐지는 수덕사의 전경을 구경하면서 가다보면 소원을 빌기위해 산님들이 하나 둘 던져놓은 돌들이 돌무덤을 만들어 산님들의 발길을 잠시 붙잡으면서 돌하나 얹져놓고 소원을 빌어보란다. ‘현위치 덕숭01-0’6의 지점을 지나면 멋스런 전망바위에 도착을 한다.(13:55)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수덕사와 사천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로프가 설치된 암반길을 내려서면 송림숲길이 이어지고 ‘수덕사1km, 덕숭산정상0.8km'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곧 이어

바위위에 소원을 빌기위해 돌을 얻어놓은곳의 바위위에 뿌리를 내리고 삶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가 생명의 끈질김을 암시해주면서 산님들의 발길을 붙잡고 험난한 세상에서 굳건히 살아가라고 일러준다. 감자꽃이 피고있는 감자밭을 지나면 마치 하나의 작품인듯한 기왓장으로 담장을 만들어놓은 곳에 도착을 하고 운치있는 해우소가 산님들에게 불일을 보고 시원스럽게 하산하라고 발길을 붙잡는다.

해우소를 지나면 문을 굳게 닫고 ‘스님들이 수행중이니 출입을 금합니다’의 표말을 붙쳐놓은 청해사에 도착을 한다담장너무로 살며시 청해사를 모습을 훔쳐본후 내려가다보면 진영각입구의 운치있고 마치 하나의 작품을 보는듯한 석문이 산님들에게 사진촬영장소를 제공해준다. 진영각도 문은 굳게 닫쳐있어 볼수가 없다. 석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후 하산하다보면 웅장한 노송한그루가 자태를 뽐내면서 멋스럼을 자랑한다.

산길에는 노송과 어우러진 산을 기어오르는듯한 기암이 자태를 뽐내고 송림숲이 어우러진 돌계단길을 내려서면 문이 굳게 닫쳐있는 해우소가 나타나고 이곳을 지나면 담쟁이 넝굴이 담을 덮고 있는 향운각에 도착을 한다. 향운각 또한 문이 굳게 닫쳐있다.(14:16) 이곳에는 중생의 8가지 고통을 덜어준다는 관세음보살입상과 대나무숲이 우거진곳에 약수터가 있다. 관세음보살입상앞에서 잠시 기도를 한후 시원한 약수물로 갈증을 달랜후 하산을 한다.

 

 

‘현위치 번호 덕숭01-02’ 지점을 지나 돌계단길을 내려서면 문이 굳게 닫친 소림초당앞에 도착을 한다. 소림초당의 모습을 멀리서 카메라에 담은후 소림초당을 지나면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흐르는 계곡이 나타나면서 이곳이 청정지역임을 알리기라도 하듯 바위위에는 샛파란 이끼가 자라고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멋스런 고목이 있는곳을 지나 ‘현위치 번호 덕숭01-01,지점를 지나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가 족욕을 하면서 발의 피로를 풀어주니 기분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족욕을 끝내고 내려오다보면 돌축대위의 바위가 하나의 작품이라도 된듯 멋스럼을 자랑하고 시원스런 숲길을 지나면 봉안해놓은 사면석불이 산님들의 발길을 붙잡으면서 잠시 쉬어가란다. 멋스런 사면석불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찍은후 송림숲이 우거진 산길을 내려오다보면 수덕사의 담장이 나타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위해 던져놓은 동전이 수북이 쌓인계곡이 나타난다.

 

 

수덕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절이다. 백제15대 침류왕 2년(358년)에 수덕각시라는 관음 화

 

신이 중생 제도를 위해 창건했다는 전설을 지닌 고찰이다. 국보 제49호인 대웅전은 형태가 장중하고 세부 구조가 견실

 

하고 치밀한 우수한 건축물이다.

 

고려 25대 충렬왕 34년(1308년)의 건물임이 815광복 전 수리공사 때 밝혀졌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중 혜현

이 이곳에서 삼론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쳐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바위, 미륵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  

 

수덕사 창건에 관한 실화로는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1.덕산향토지(德山鄕土誌)에 실려있는 것으로 내용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고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2.대웅전 서쪽 백련당 뒤편에 있는 바위가 관세음보살이 헌신하신 성역으로 내역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람은 극히 퇴락이 심해 대중창불사를 하여야 했으나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 여인의 미모가 빼어난 지라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니, 심상궁곡인 수덕사에 이 여인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중 신라의 대부호요 재상의 아들인 '정혜(定慧)'라는 사람이 청혼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여인의 말을 듣고 이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만에 원만히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다.

 

낙성식에 대공덕주로서 참석한 이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독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 입을 말미를 주소서'하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다. 이에 청년이 방문을 열고들어가려하자 여인은 급히 다른 방으로 사라지려 하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 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짝만 남기고 사라지니, 갑자기 사람도 방문도 없어지고 크게 틈이 벌어진 바위 하나만 나타나 있었다.

 

이후 그 바위가 갈라진 사이에서는 봄이면 기이하게 버선모양의 버선꽃이 지금까지 피고 있으며 그로부터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광경을 본 정혜라는 청년은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때부터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여 절을 크게 중창하고 바위속으로 사라진 이 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경향각지에 퍼지자 소원을 비는 인적이 끊이지 않았으나, 수덕사는 근대한국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만공스님의 가풍을 간직한 선찰로서 자칫 기복에 치우칠 우려가 있어 이를 더이상 구전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많은 불자들의 심원(心願)에 따라 수덕사에서는 이 성역에 참배 기도하는 이에게 관음의 신통묘용(神通妙用)한 가피(加被)가 얻어지기를 기원하며 근래에 관음상을 봉조하게 되었다

 

수덕사 경내에 들어와 관음전을 돌아본후 대웅전으로 가다보면 관세음보살상앞의 바위에 동전을 붙치면서 소원을 비는 산님들과 관광객의 모습이 눈에 띄고, 현존하는 백제적 곡선을 보여주는 유일한 목조건축물이며 국보제49호인 대웅전과 명부전을 구경한후 어두운 중생의 마음 깨우치는 거룩한 불음인 종이 있는 범종각,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펴져서 모든이에게 언제나 참다운 이치를 전해준다는 뜻이 있으며. 짐승세계의 중생들을 위하는 소리를 낸다고 하는 북이 놓여있는 범고각을 둘러본후 2층누각인 황하정루를 거쳐 사천왕문, 환희대,금강문, 이응로화백의 고택인 수덕여관에 들려 이응로화백의 양각화작품을 구경한후 일주문에 도착을 한다.

 

사찰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지나게 되는 일주문은 바로 여기서부터 사찰의 경내가 시작됨을 일깨워주는 알림의 문이다. 일주문이라는 것은 “부처님을 향한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있다. 수덕사 일주문은 기둥사이에 공포가 짜여있는 다포계형식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소전 손재형이쓴 “덕숭산 수덕사”와 “동방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을 사찰의 격을 나타내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수덕사선미술관, 그리고 최근에 만들어진것같은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통과 상가를 거쳐 주차장에 도착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달랜후 차에 오르므로 즐거웠던 수덕사 덕숭산 산행을 추억의 한켠에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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