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9. 20일

                   *소재지  :충남예산

                   *산높이  :495m

                   *산행코스:둔리1리 팔각정-덕숭산-수덕사-주차장

                   *산행시간:14시50분-18시38분(3시간40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충남의 명찰 수덕사가 자리한 예산의 덕숭산을 올랐습니다.

꽤나 긴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면서 새삼 느낀 점은 같은 거리라면 교통수단별로 소요시간에 반비례해 요금을 책정한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업무상 떠나는 출장이라면 당연 요금이 좀 비싸더라도 가장 빠른 것을 골라 타야겠지만 그리 급할 것이 없는 산 나들이에 번번이 보다 빠른 고급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slow and steady)"를 본질로 하는 산 나들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비용도 부담스러워 저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열차 무궁화호로 오르고자 하는 산과 가까운 도시로 이동해서 그 지역 군내버스를 이용해 산 들머리에 닿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이른 새벽 집을 나서기가 일쑤이고 종종 전날 밤에 떠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기도 합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컴퓨터에 익숙지 못한 제 경우 인터넷에 들어가 필요한 교통관련 자료들을 검색해내는 데도 적지 아니 시간이 걸립니다. 이래저래 드는 그 많은 시간에 비례해 비용이 계산된다면 매달 두 차례 2박3일로 다녀오는 호남정맥종주를 꾸준히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곧바로 돈으로 환산되는 바쁜 분들은 좀 비싸더라도 빠른 교통편을 이용하고 저처럼 시간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좀 늦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소요시간에 반비례하는 요금 덕분입니다. 


 

  어제 오른 덕숭산은 작년 5월 금북정맥을 종주 할 때 지났던 산입니다.

가야산 아래 나분들 고개를 출발해 덕숭산을 오른 후 수덕고개로 내려서는 데 길을 잘 못 들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다시 덕숭산을 찾은 것은 이 산보다 더 이름이 알려진 수덕사를 둘러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산줄기만을 오르내리는 선의 산행만으로는 밋밋하기 이를 데 없는 덕숭산이 명산 100산의 반열에 이름이 오른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는데 어제 둔리1리 궁마을 입구에서 369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다음 정혜사를 들렀다가 계곡아래 수덕사에 다다라 경내를 둘러보는 점의 산행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 6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된 이 절을 만나 당대 명승들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면 이 절을 품고 있는 덕숭산을 명산으로 부른다고 어느 누구도 감히 시비를 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 시간이 걸리는 백제시대로의 시간여행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공간여행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반비례하는 요금체계 덕분이라는 뚱딴지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10시 넘어 산본 집을 출발해 전철로 천안까지 간 다음 터미널로 옮겨 12시반경에 예산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겠다는 시외버스가 14시가 다 되어 예산에 도착한 것은 천안-아산 사이의 도로가 교통사고로 한동안 길이 막혔기 때문이었는데 곧이어 14시에 수덕사행 버스가 출발해 다행이었습니다. 삽교를 거쳐 덕산에 이르자 덕숭산이 용봉산 및 가야산과 더불어 아주 가까이 보였습니다.


 

  14시50분 둔리1리 팔각정을 출발했습니다.

궁마을로 들어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누런 벼들을 보고 가을이 완연하다 했는데 벌써 이 들판을 떠나버린 여름이 깜박 잊고 두고 간 것이라도 있는지 다시 돌아와 내리쬐는 햇볕에 목덜미가 후끈거렸습니다. 콸콸 물이 흐르는 수로를 따라 마을을 막 지나자 공사장이 나타났고 이 공사장에서 길이 잘 나있는 왼쪽으로 꺾어 들어선 것이 반시간이상 엉뚱한 길에서 헤매게 된 단초였습니다. 풀들을 다 깎아 시원한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서 별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집 한 채를 지나는 중 별안간 여러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어 깜짝 놀랐습니다. 이내 묘지가 나타났고 오른 쪽 위로 이어지는 길을 조금 더 걸어 올라가자 다른 묘지가 나타났는데 길은 다시 마을로 내려서는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혹시라도 능선으로 올라서는 제 길이 있을까해 몇 곳을 숲 속안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길이 없어 첫 번째 묘지로 돌아가다가 중간에 오른 쪽 위로 희미한 길이 보여 이 길로 올라섰는데 이 길 또한 또 다른 묘지에서 끝나버려 헛걸음만 계속했습니다.


 

  15시40분 세 번째 만난 묘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천안과 예산에서 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버스가 연결되어 점심을 거른 채 반시간 넘게 이 길 저 길을 찾아 헤맸더니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준비해간 떡을 꺼내 들어 요기를 하고나자 이제는 길 찾을 일이 난감했습니다. 묘수가 나오지 않아 별 수 없이 머리 위로 빤히 보이는 봉우리까지 풀 숲길을 헤치고 나가기로 작정하고 가시들과 쐬기의 공격을 막고자 상의 비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무지막지한 오름 길은 계속 되었습니다. 비옷이 통풍을 막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간벌 후 버려진 나무들과 잡목들이 길을 막아 20분 남짓한 산 오름이 엄청 고통스러웠습니다. 덕을 숭상하는 덕숭산(德崇山)도 깝죽대다 엉뚱한 길로 들어선 제게는 손톱만치도 덕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16시14분에 오른 쪽 아래에서 올라오는 넓은 제 길을 제 길을 찾은 후 왼쪽으로 4-5분을 더 걸어올라 묘지가 들어선 무명봉의 소나무 그늘아래에서 사과를 들며 12분 동안 땀을 식혔습니다. 무명봉에서 조금 내려가다 이내 돌계단을 따라 걸어 395봉에 올라서자 시야가 확 트여 좌우로 용봉산과 가야산이, 바로 앞에 정상봉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정상을 오르는 중 벌초를 하고 내려가는 한 분을 만나 정상 길을 물었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본 후 건너고 아는 길도 물어가는 신중함이 있었다면 생 풀 숲길을 죽기 살기로 헤치고 길을 내는 못난 짓은 아니 했을 것을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빤한 길을 물었더니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17시6분 해발495m의 덕숭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395봉을 출발해 평탄한 솔밭 길을 잠시 걸은 후 완만한 비알 길을 올라 밋밋한 암반의 정상에 다다르자 현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목은 나뒹굴고 있었지만 해발고도를 알려주는 표지석은 제 위치를 지키고 있어 반가웠습니다. 표지석보다 더욱 반가운 것은 정남쪽 오서산에서 천안 쪽으로 뻗어 올라가는 장대한 금북정맥의 산줄기였습니다. 작년에 이 산에 올랐을 때는 저 산줄기를 미쳐 밟기 전이어서 금북정맥이 한눈에 잡히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작년 여름에 진땀을 흘리며 이미 오르내린 터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남서쪽으로 바다가 흐릿하게 보였고 용봉산과 홍성시내도, 가야산과 이 산 너머 먼발치로 비껴선 서산 시내도 눈에 잡혔습니다. 하늘은 영락없는 여름의 형세를 하고 있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먹구름 사이로 하얀 뭉게구름이 얼굴을 빠끔히 내보이곤 했습니다. 덕숭산은 그 정상이 하도 밋밋해 홍주마을의 수덕도령이 건너 마을 덕숭낭자와 어렵사리 연을 맺었다는 애절한 전설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나분들 방향으로 몇 분을 걸어 만난 철조망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나무계단으로 내려섰습니다.

                                                  

  18시10분 수덕사에 도착해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정상 출발 25분 후에 정혜사를 들러 수덕사 일원으로 들어섰습니다. 누가 이 깊은 산 중에 이리 넓은 채소밭을 일구는 가 궁금했는데 바로 아래 정혜사가 자리하고 있어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경내로 들어서자 과연 명 선원이다 싶었습니다. 넓은 경내에 정적이 감돌아 숨소리를 크게 내기도 민망스러울 정도인 정혜사 능인선원은 앞이 탁 트인 데다 절 마당이 꽤 넓었으며 마당 거의 끝머리 바위 위에 올려 있는 두 개의 탑이 몇 그루의 큰 나무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있어 선원 전체가 밝으면서도 평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 근대불교를 개창한 경허 스님이 무던히도 아꼈던 제자 만공스님을 기리는 만공탑을 지나서 직접 바위를 깎고 다듬어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미륵불의 조금은 익살스러워 보이는 용안을 만나 보았습니다. 만공스님이 선을 하셨다는 금선대 바위 중간쯤에 자리한 초가집 소림초당은 정진중이라서 출입이 금해져 바로 앞 이뭐꼬 다리에서 잠시 멈춰 서서 태풍으로 물이 불어난 계곡물이 낭떠러지를 지나며 만든 바로 위 폭포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정혜사에서 시작된 돌계단 길을 계속 내려가 관음바위 옆을 지나 수덕사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대웅전은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같이 기둥의 중앙부가 가늘 게 보이는 착시현상을 막고자 밑동에서 1/3이 되는 점을 굵게 하는 배흘림 공법으로 지어졌다 합니다. 대웅전 바로 앞의 수덕사 3층 석탑과 탑 꼭대기를 금분으로 바른 금강보탑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나이차보다 훨씬 더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대웅전의 안녕을 비는 데는 그 역할이 같아 서로 어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천왕을 만나본 후 일주문을 지나면서 정혜사 능인선원에서 느꼈던 여유로움을 수덕사 가람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은 너무 비좁게 들어선 건축물 때문일 것입니다.


 

  18시30분 수덕사 주차장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며 덕숭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일주문을 빠져나가 얼마 후 만난 상가는 1978년 1월에 집사람과 함께 찾았던 그 때와는 영 딴 판이어서 번화가로 변했습니다. 둘 다 교직에 몸담고 있었던 저희들은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은 겨울방학을 그냥 보내기가 아까워 수덕산과 대천해수욕장을 찾아 나섰습니다만 첫날부터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려 일엽보살님이 머무셨다는 수덕사는 들러보지도 않고 그 앞의 허름한 여관에서 죽치고 앉아 한수산님의 소설집 부평초 책 한 권을 다 읽은 후 그 이튿날 대천 해수욕장으로 자리를 옮긴 기억이 났습니다. 어둠이 나래를 폈는데도 번화한 상가 몇 점포가 불을 켜지 않아 아직도 관광경기가 제대로 살아난 것은 아니다 했습니다. 


 

  정상을 올라선 후에도 초반에 길을 잘 못 드는 해프닝이 없었다면 참으로 싱겁고 단조로운 산행이 될 뻔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혜사를 시작으로 일주문을 빠져나오기까지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가며 수덕사 일원을 둘러보고 나자 덕숭산도 이만하면 명산100산에 들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능선을 종주하는 선의 산행만으로 명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역시 2%가 부족했던 가 봅니다. 그 부족한  2%를 점의 산행으로 채우고 나자 가슴이 뿌듯해져 역시 명산탐방에는 점의 산행이 제 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