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헥 거리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드니, 하늘이 노랗게 맴을돌고 무었에라도
걸린듯  두다리는 자발없이 휘청인다.
푸른 하늘 바다에 공중 부양술의 도술에 걸린듯, 아득한 바위 사이로 통좁은
철계단이 아슴아슴 걸려있다.
통천문 마냥 천장이나 치솟은 삼선교에 넋을 잃고는, 기가 꺾이어 개호주 앞의
워리새끼 짝으로 우두망찰 몸둘바를 모르는데, 같이온 장조카(그 무서운 재종
형님의 장남) 와 곁은 대둔의 오묘한 필치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고, 겁많은
객은 속으로 사시나무 떨듯 이빨을 딱딱거리니 한겨울이 따로 없더라.


제발 겁많은 곁이 돌아서 우회하자고 사정하길, 천지신명께 축원했건만 보람
없이 곁은 입을 봉하고 있고, 무정한 장조카눔은 그여히 좁다란 철난간에
선손을 걸어 한발짝을 먼저 떼어 놓는다.
아니 갈수가 없어 천궁(도살장)에 드는 황소마냥, 설사를 질질거리며, 참아
떨어지지 않은 천근의 발길을 겨우 옮긴다.
아래를 보지 않으려,  토끼를 포촉하러 나선 용궁의 별주부같이 목을 쏙 집어
넣고는, 두손을 해동청 날선 갈고리 처럼 난간을 쥐고는, 후들후들  불불거리는
두다리를 수습해 한발한발 간신히 오른다.


흰창많은 고리눈을 부릅뜨고는, 목이 부러져라 위를 쳐다 보았건만 어느새 숭숭
뚫린 철계단 사이로, 깜득히 내려선 풍경이 시퍼런 깊은 소처럼 무섭게 솟구쳐
올라, 낙담상혼, 혼비백산해 허공을 밟고 섰는듯, 제천대성 손오공의 근두운을
빌린듯해 한출첨배의 식은땀이 온몸을 서늘히 적신다.
통영의 도제조 수영이 형님이래두 계시다면, 청심환 몇첩이나마 어찌 해보련만
수백리 상거한 성님이,객의 환란을 알리 없으니 이 또한 낭패인지라, 곧추선 삼선교
중간에 붙박혀 조자룡의 월강하던 청총마가 없음을 한탄하며 떨고 섰더라.


대둔을 한번 보고쟈 곁과 장조카눔을 조발해 동틀 기미도 보이지 않은 새벽길을
나선다.
너무 이른 노정 탓인지 뒷좌석의 곁은, 얇은 차렵 이불에 베개까지 구처해 한밤중
이고 조수석의 장조카는 코까지 탈탈거리며 새벽잠에 신명을 낸다.
'옘병할 ... 누군 잠이 안오나..'
색허기든 과부, 송곳으로 무릎찌르디끼 팔뚝을 꼬집으며 가는데, 나중에 보니
마마를 걸판지게 앓은듯 온팔에 매화꽃이 만발하더라.


추부 나들목에서 길게 팔을 두르며 왼편으로 나서니 높지않은 베티재가 나서고
두어발짝을 더놓으니 대둔산 관광지로 들어선다
이른탓에 매표소 직원과는 초인사도 나눌 기회가 없어, 곧바로 로시난테 묶어
두고 상가가 길게 늘어선 대로로 들어선다.
아직은 조반참이 이르건만, 된장독에 풋고추 마냥 박아놓은 발쇠꾼들이 어느틈에
나불댔는지, 쥔장인지 여리꾼인지 모를 체수 부대한 목자가 쭈르르 내달아
허리가 부러져라 문안을 개어 올리며 쉬어 가기를 당부한다.


관광 호텔을 지나며 조카눔은,
"여기 지마누라 데불고 오는눔은 한놈도 없을끼구마 .." 하니
곁이 되받아,
"남이래두 좋으니 한번 와 봤으면 좋겠다." 며 
은근히 지서방을 겨냥해 오금을 박는다.
무능한 서방은 고개를 박고 걸음을 빨리해 궁지를 피하는 도리외엔 상책이 따로
없더라.


계곡을 한가로이 따르는 길은, 왼산의 돌을 모조리 거두어 가슴 에이는 염원담아
돌계단으로 끝없이 이어 놓았다.
하늘에 차고 땅에 넘치는, 수미산을 덮을 만큼의 끝없는 죄를 한계단 한계단 턱을
넘을때마다 용서합소, 용서합시라고 빌며 올라서지만,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웠으면
걸음이 이리도 더디고 힘들까 ...
전생의 죄갚음은 커녕, 이승의 죄마저 무간지옥을 면하기 어려우니, 인간의 허울을
뒤집어 쓰고 세상에 나옴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라.


동심바위가 우람히 뵈는 낮으막한 정자에서 장조카눔은 행동식을 우물거리며 땀을
훔치고 곁도 다리쉼으로 한숨을 돌린다.
놈이 장거리 산행은 죽어도 못한다며 앙팡지게 포달을 떨었으나 말과는 달리
대둔산 다람쥐가 무색하리만치 날렵해 객의 얼을 빼놓는다,
저놈은 필경 죄도 짓지않고 사나부다.
뼈가 으스러지듯 치솟은 돌비알을 꺼꾸러지듯 오르니 오른편으로 금강 구름다리
길이 고즈넉히 열린다.


바짓 가랭이 모양있게 걷어 부치고 곁을 흘깃보니 곁도 치맛자락 거두어 허리에
가뿐히 죄고는 깡총거리며 따라 붙는다.
구름다리에 서니 오금이 저려 갈피를 잡을수가 없더라.
밤새 술퍼먹고 새벽에 자리끼 찾는놈 마냥 어질어질한 정신을 수습하기가
도대체 난당이더라.
어지럼병이 지랄병 될까봐 서둘러 지나치려는데, 조카눔은 와중에도 뭐가 좋은지
"아재, 아지매하고 김치.."
어쩌구 디카로 밉살스런 주접을 떤다.


언능 한장을 박고는 서둘러 건너편으로 줄행랑을 놓았으나, 조카와 아지매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한참이나 더 노닥거리다 건너온다.
거참 뚝배기 보단 장맛일세 ..
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이르 사방을 훑으니, 필설로 형용못할 장관이 시선을 가득
채워 즐거움을 금할길 없더라 .
철계단을 휘돌아 한바탕 내려서니, 아까 헤여졌던 길이 반갑게 재장구치고, 고비를
넘기니 삼선교를 왼편으로 따라선다.


삼선교를 한번보매 주장군이 아릿아릿 졸아 드는게, 평소 통큰체하던 호언장담은
어디가고, 장부의 중한 체통에 똥칠이나 아니할까 제일로 걱정이더라.
구사에 일생을 얻어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올라서니, 조카눔은 계단수까지 헤는
여유가 넉넉했고 곁또한 별거 아니란듯 가볍게 올라선다.
범골 호랭이 여시골서 개피 본다더니 객이 이토록 무골호인 일줄이야 꿈에나
짐작 했으리요 .  에라, 썩을눔의 ...


이후 정상까지는 정신이 하나두 없어 뭣에 홀린, 넋빠진 등신이 되어 무언산행
으로 오른다.
석봉의 용사비등, 평사낙안 기러기격의 유려한 필치로 개척탑이라 새긴 구조물이
정상석을 대신하는 으뜸머리에는 절경의 조망이 한눈에 들지만, 더위먹은 소가
달보고 헐떡이고, 고슴도치에 놀란가슴 밤송이에 질겁한다고, 그 좋은 경치는
어데가고 집으로 장달음 놓을 생각만 간절하더라.
저아래 허둔봉을 넘나드는 구름에, 대둔의 시린 속살이 은어의 뱃때기 마냥
하얗게 번뜩이며 올쑥불쑥 자맥질하고, 서늘한 바람은 구절초 향기를 사방으로
실어 나르며 가을을 전령하기에 바쁘더라.


                     2005년 9월22일.   진맹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