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의 오지에 위치한 노추산과 사달산

 

 


  노추산과 사달산의 개요

 

  강원도 정선군 북면과 강릉시 왕산면의 경계에 위치한 노추산(魯鄒山, 1,322m)은 태백산맥의 고산준봉들이 무수히 버티고 선 강원도 산골 중에서도 매우 깊숙이 자리한 산입니다. 신라시대 설총과 조선시대 이율곡이 입산 수학한 곳으로, 설총이 중국의 노(魯)나라에서 태어난 공자와 추(鄒)나라에서 태어난 맹자를 기려 노추산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산세는 동북쪽으로는 완만한 구릉이지만 남쪽 정선 방면의 경사면은 심한 굴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노추산과 동일한 행정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사달산(四達山, 1,187m)은 노추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사통팔달 길이 사방으로 통한다는 이 사달산에서 공부를 하면 학문에 통달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설총, 율곡 같은 이가 학문을 닦았다고 합니다.

    

 


  오대천변의 명물인 백석폭포

 

  2005년 8월 27일 토요일, 약 70여명의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2대, G산악회 주관)가 영동고속도로 진부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59번 국도변을 달립니다.


  산악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산행안내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집니다. 산악회장의 말하는 억양과 표정이 참으로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 개인적으로는 모두 훌륭한 분이지만 단체생활을 하게되면 꼭 고문관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정된 등산로 이외에는 다른 곳으로 빠지지 말고 정해진 시각에 하산하기 바랍니다. 제가 오래 전 고급장교들과 함께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대령 한 분이 언제나 늦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령이 되었는지 궁금했지요. 세월이 그 사람을 대령으로 진급시켰지 실력으로 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새 버스가 아리랑의 고장인 정선으로 접어들어 오대천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데 갑자기 높은 산에서 떨어지는 큰 물줄기에 눈을 크게 뜹니다. 바로 '백석폭포'입니다.


  숙암샘터 관광안내소에서 500m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폭포는 백석봉(1,170m)에서 떨어지며 폭포의 높이가 116m이고 수량이 많아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일반적으로 폭포는 계곡의 골짜기에서 형성되는 데 반해 이 폭포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폭포답게 계곡이 아닌 산 중턱에서 급사면의 비탈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장관을 연출합니다.  

                                 버스를 타고 귀경하면서 창문으로 바라본 백석폭포

 

           귀경길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창문을 통해 찍은 백석폭포

 

 


  '아우라지'의 고장-정선  

 

  버스가 42번 국도와 합쳐지는 지점에서 좌회전을 해 415번 지방도로를 타고 "아우라지"를 지나 송천을 따라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정선군 북면 구절리 절골에 도착합니다(11:07).


  지나가는 길에 아우라지에 대해 잠깐 살려보기로 하겠습니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의 송천과 삼척시 중봉산에서 흐르는 골지천이 이곳 '여량'에서 합류해 어우러진다고 하여 '아우라지'라 하는데, 여기서 만난 강줄기는 조양강(朝陽江)을 이루고, 영월의 동강을 거쳐 단양땅을 가로지르는 남한강으로 이어집니다.

 

  이곳에서부터 물길을 따라 서울까지 목재를 운반하던 뗏목이 띄워져 몰려온 뱃사공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바로『정선아리랑』의 발상지입니다. 정선아리랑 가락에는 처녀 총각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처럼 흘러 전해지고 있습니다.
 
 
  절골∼너덜지대

 

  절골에서 왼쪽에 서 있는 노추산 등산안내도를 뒤로하고 임도를 따라 오르기 시작합니다. 더위를 물러가게 한다는 처서(處暑)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로 인하여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립니다. 왼쪽의 대성사 갈림길을 지나서도 지루한 임도가 계속 이어지더니 드디어 오솔길로 접어듭니다(11:55).

 

                                            등산로 입구의 안내도

 


  다른 산악회와 비교해서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어 동료의식을 느낄 정도로 반가울 따름입니다. 특히 한 여성은 기다란 망원렌즈를 끼운 큰 카메라를 들고 야생화 사진을 찍고 있어 산행을 하는 데 매우 불편해 보여 안쓰럽기조차 합니다.  

     
  호젓한 등산로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바람은 불지 않고 무더위가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등산로의 중간에 옹달샘을 만난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격입니다(12:16).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물바가지 하나 놓여 있지 않아 쳐다만 보다가 그냥 지나칩니다. 옹달샘을 지나 조금 더 오르자 이제부터는 거의 오르내림이 없는 평탄한 길이 한 동안 계속되더니 다음에는 너덜지대에 도착합니다(12:32).


  너덜지대에 서니 가야할 이성대가 산 중턱에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데 짙은 안개로 인하여 조망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옹달샘 안내문

 

                                    옹달샘(물이 워낙 맑아 바닥이 훤히 보임)

 

                                                        너덜지대 이정표

 

                                         너덜지대을 통과하는 등산객들

 

                                              고사목 뒤로 보이는 이성대

 

 


  이성대(二聖臺)-두 성현의 위패를 모신 곳

 

  두 번째 너덜지대를 벗어나 등산로를 따라 가니 이성대입니다(12:45). 이성대는 노추산 자락의 8부 능선쯤 남쪽의 햇살을 받기에 안성맞춤인 곳에 위치한 2층의 목조누각으로 공자와 맹자의 두 성인을 흠모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설총과 율곡의 두 성인이 수학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두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어 매년 제(祭)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성대 입구에는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적인 샘터가 조성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줍니다.

 

                                                             이성대

 

                                                 이성대 입구의 샘터

 

                                                   이성대 옆의 바위봉


  이성대∼노추산

 

  이성대에서 되돌아와 삼거리 갈림길에서 노추산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가는 데 뒤에서 같이 온 일행을 부르는 한 여성의 높은 목소리가 산 속을 울립니다. 그러자 앞서 오르던 사람이 이에 대답을 하는 데 잘 들리지 않는 지 그 여성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댑니다.


  이성대는 성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라 정숙(靜肅)을 유지하라는 안내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설사 성스러운 장소가 아닐지라도 산에서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리를 질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고함소리에 정신이 빠져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노추산 주능선에 이르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니 헬기장이며, 바로 옆은 노추산 정상입니다(13:07). 정상에는 두 개의 정상 표석이 세워져 있는 데 공교롭게도 한 젊은이가 삼각점을 측정하는 기구를 설치해 두고 있어 사진을 찍기가 매우 불편합니다.  

  
  정상에서 주변을 둘러보지만 희뿌연 연무(煙霧)가 드리워져 있어 제대로 조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맑은 날 노추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발왕산(1,458m), 서쪽으로 가리왕산(1,560m), 동쪽으로는 석병산(1,055m)등 1천 미터 급 준봉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성대에서 주능선에 오르자 맞이하는 등산 안내도

 

                            헬기장 옆의 노추산 안내도

 

                                    노추산 설명문

 

                                                노추산 정상표석

 

                                                정상에서 바라본 동남쪽 경관

 

                           가야할 사달산 줄기(하루살이떼가 가득히 카메라에 포착)


  노추산∼사달산

 

  사달산(四達山, 1,187m)으로 가기 위해 노추산 정상을 내려서는 길은 상당한 내리막입니다. 한참을 가니 늑막골입구 4.4km, 고담(삼목재) 4.4km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이정표를 지나 고도를 크게 낮추니 부드러운 능선안부에 도착하는 데 주변의 땅이 온통 파헤쳐져 있어 보기에도 섬뜩합니다. 틀림없이 수많은 멧돼지가 약초의 뿌리를 캐 먹으려고 저질렀을 것입니다.


  노추산을 출발한지 약 1시간만에 사달산에 도착합니다(14:12). 그러나 정상의 모습은 한마디로 실망스럽습니다. 먼저 올랐다가 내려오는 사람이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라고 했지만 그래도 한가지는 볼 것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막상 올라보니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달산 정상의 북쪽 조망

 

                                            사달산 정상의 야생화


  정상은 오래된 헬기장인데 잡풀이 무성할 뿐만 아니라 정상의 이정표는 물론 그 흔한 산악회의 리본도 보이지 않고 조망은 더욱 할 것이 없습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행정당국은 물론 지역 산악회에서조차 사달산을 방치해 두고 있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뿐입니다.


  사달산은 네 명의 도를 통한 달인이 나올 것이라고 예정된 산인데, 지금까지 설총과 이율곡 선생이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의 반열에 올랐으니 앞으로도 두 분의 성현(聖賢)이 더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사달산∼사달골∼중동    
     
  산악회에서 표시해둔 이정표를 따라 남쪽방면으로 하산을 재촉합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길로 이어지던 등산로가 순식간에 급경사 내리막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내리막길은 그냥 일반적인 등산로가 아닙니다. 비탈면이 물기가 촉촉한 흙으로 되어 있어 발걸음을 옮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한 손에는 스틱을 단단히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무와 잡풀을 잡으며 다리에 용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내려옵니다. 사실 이런 길은 로프가 걸려 있는 바윗길보다도 훨씬 더 어렵습니다.


  가만히 보니 이 길은 최근에 등산객들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어 산악회 측에서 등산로를 잘 못 안내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정상에서 출발한지 약 25분만에 계곡에 도착했는데 아주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고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14:45). 가는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에 도착해 희미한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점점 계곡도 넓어지고 수량도 많아집니다. 사달골에서 수시로 세수를 하며 더위를 식히면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니 드디어 임도와 만납니다(15:20).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뒤돌아본 사달골 

 

                                                               가야할 사달골

 

                                사달골의 맑은 물 

 

  임도를 따라 가는 길의 왼편에는 매우 큰 규모의 폭포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엄청난 량의 물을 아래로 내리 쏟고 있습니다. 잡풀에 가려 그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양폭포와 천당폭포보다도 오히려 규모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폭포를 볼 수 있는 시설이 전혀 없어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림의 떡이고 잡목으로 인해 사진도 찍을 수 없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이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철계단이라도 설치한다면 정선의 명물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엄청나게 규모가 큰 무명폭포(잡목뒤로 보이는 물줄기)


  정선에는 앞에서 소개한 백석폭포 이외에도 노추산 서남쪽 줄기인 오장산에서 떨어지는 높이 209m의 "오장폭포"가 있는데,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답게 가파른 암벽을 타고 흐르는 은빛 물줄기가 장관이라고 합니다. 정선에는 이와 같이 아름다운 폭포가 두 개나 있기에 당국에서는 필자가 지적한 폭포를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장폭포(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임도에도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고 잡풀만이 무성해 이 산을 찾는 사람이 매우 적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열려진 철문을 빠져나와 도로에 섭니다. 그런데 철문 옆을 돌아본 순간 그만 가느다란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아뿔사!"


  이 곳에는 자연휴식년제(2006년 말까지)기간이라 출입을 통제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달산 정상에서 이곳으로 하산하는 길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있어야 하는 데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제야 사달골주변의 등산로(임도포함)에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이유를 알게 됩니다. 또 노추산 등산로 안내판에 사달산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는 것도 기억이 납니다.


  사달산은 위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정상은 잡풀이 무성하고 표석도 없으며, 또 정상에서 사달골로 하산하는 길도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출입통제지역이므로 출입이 해제될 때까지는 방문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선군에서 제작한 관광안내도에도 사달산이라는 이름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주차장 옆 계곡의 맑은 물

 

                                                  보기만 해도 시원한 맑은 물

 


  중동교를 지나 시퍼렇게 푸른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땀을 씻고는(16:00) 주차장에 도착하니 먼저 하산한 사람들이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필자도 배가 고프지만 버스 두 대중 먼저 출발하는 차를 타고 가기 위해 식사를 포기하고는 자리를 잡습니다.

 

  그런데 곧 떠난다는 버스가 무려 30분을 지나서야 출발하니 그동안 밥을 먹어도 몇 그릇을 먹을 시간이지만 고지식한 필자는 버스에 앉아 배낭에 든 행동식만 꺼내 요기를 하였으니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은 이를 두고 이름입니다.


  오늘 산행에 4시간 53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산행코스는 절골/대성사갈림길/옹달샘/너덜지대/이성대/노추산/사달산/사달골/중동입니다. 

 


  레일 바이크 승강장

 

  강원도 정선군 북면 구절리는 길이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워낙 꼬불꼬불해서 붙여진 동네이름이라고 합니다. 산업화에 힘입어 강원도 내륙의 석탄을 수도권으로 운반하기 위해 개설한 정선선은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인하여 통근열차 역할을 하였으나 비둘기호열차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철로를 이용해 자전거 길로 이용하고 있는 레일 바이크(Rail Bike)승강장이 이곳 구절역에 있습니다.


  정선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 사이 7.2㎞를 달리는 철로자전거(레일바이크)가 주5일 근무제가 확대실시 된 금년 7월부터 운행을 시작했는데 시속 15∼20㎞의 속도로 운행할 수 있도록 제작된 철로자전거는 송천계곡을 따라 전개되는 기암절벽과 여울 및 3개의 기차터널을 지난다고 하며, 하루 평균 탑승객은 무려 500여 명 선으로 일일 7회 운행하는 만큼 탑승권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합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라보니 승강장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데 몇 그룹의 관광객들이 레일 바이크를 타고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앞으로 철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틀림없이 정선의 효자상품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온다면 백석폭포와 오장폭포도 둘러보고 레일 바이크도 한번 타 보리라고 다짐하면서 흔들리는 귀경버스에 몸을 내 맡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