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단풍산행을 통한 소고

 

 

 

1.

참으로 오랜만에 여럿이 함께 하는 산행을 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베낭메고 돌아다니는 것이 멋있어 보여서 산엘 갔었다.

이후에는 세상살이가 괴로움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위해서아니면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뼈속깊이 실감하기 위한 고행 같은 산행을 했었다.

 

2.

어느 한겨울 동안 사람의 친구가 있어 산행을 위한 준비도, 그리고 과정도 얼마든지 즐거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제는 다시는 혼자 산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혼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와 같은 친구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3.

내장산! 첨으로 가보는 산이다. 이놈의 성격이 워낙 까탈스럽다 보니 사람 많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순전히 베낭이 무거운 산행을 좋아해서 주로 겨울 일박 산행을 다니다 보니 이쪽으로 코스를 잡을 일이 없었다.

11 4 이때면 새로 열게되는 사무실도 정리가 같고 해서 미리 한참전에 약속을 했었다. 한번 약속은 어지간하면 지키고 싶어 겸사겸사 가까스로 참석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장소까지 문자 메시지로 알려주는 친구가 있어 차마 불참할 없었다.

 

4.

걷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들이 밀려 들어왔다.

대체 이런 산행을 하는 걸까? 아니 단풍 좋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즐겁게 노닐다 가면 될걸 이렇게 봉우리 봉우리를 밟으면 힘들게 다니는 걸까?

이런 생각들에 대한 답을 내보기도 하고 이유도 만들다 보면 생각들이 다른 곳으로 번져 나간다.

그럼 과연 어케 사는게 좋은걸까?

 

5.

한참때부터 이런 생각들이 많다 보니 철학과를 두번이나 입학했었고 한곳은 무사히 졸업도 했다. 고향은 이곳 여수다. 중학교 까진 이곳에서 마치고 고등학교는 순천에서 다녔었다. 그리고 대학 이후로는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내다 이곳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다. 여수.순천.광양은 지금 발전해 나가는 곳이고 또한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기초를 다진 것이라면 이곳에서 기초위에 폼나는 것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혹자가 말하지 않던가?  - 인생은 이라고.  

 

6.

집안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보니 세상사에 대한 회의도 많아지고 또한 반대로 욕망도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법을 전공한 동생은 속세를 떠나 욕망을 버리는 쪽으로 가고 그와는 거꾸로 철학을 전공한 나는 속세로 나와 욕망을 추구하게 되었다. 욕망을 추구하는 만큼 삶도 회한 투성이다. 어쩌면 막내 여동생은 오빠들의 중간쯤을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7.

밑에서 단풍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않아서 술도 즐기는 사람들은 아마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거나 적어도 가슴 한구석에서 마구 분출하는 욕망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둥굴둥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거창한 종주라는 이름을 내세워 기를 쓰고 고생을 자초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처럼 한쪽은 뭔지 모를 욕망이 불타오르거나 아니면 타오르는 욕망을 채우지도, 꺽어 없애지도 못해서 고생을 하는 사람 틀림없을 거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같은 것을 가지고 일정량 만족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하면 틀림없을거 같다.

 

8.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종족은 똑같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점을 많이 가지고 있을 거다. 좁혀서 보자면 이번 산행친구들도 산에 같이 걸로 봐서는 분명 함께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을 거고 각자 삶이 다르다 보니 그렇지 않은 점들도 있을 거다. 산행친구들도 내게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함께 봤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좋은 시간을 같게 해준데 감사한다.

 

9.

능선길에서 벗어나면서부터는 나도 이제 산행의 패턴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조지훈 시인이 술에 급수를 매기면서 밥맛을 돋구기 위해 마시는 술은 2급이라 했다. 정도 수준이겠지. 보면 절정의 고수들은 이미 술을 마실 없는 경지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고 보면 산행도 멋진 애인과 좋은 가족들과 아니면 친구들과 이렇게 좋은 계곡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담소를 즐기는 것이 산행의 급수를 높이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쩌면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진정 추구해야 길이 희말라야 14좌가 아니고 빙벽. 암벽이 아니고 흐르는 계곡물에서 탁족과 함께하는 탁주가 아닐까? 하는 이런 생각 말이다.

 

10.

물론 사람마다 가고자 하는 바가 다르니 뭐라 말하기는 어렵다. 암벽을 한다는 산행친구들과 진작부터 미친짓은 안한다는 친구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들이 들었었다.

히말라야을 추구하면 가족과 생업을 멀리하게 될거고 가족과 생업을 가까이 하자면 히말라야는 멀어지겠지. 물론 두가지의 절충점도 있겠지. 월출산 암벽이나 설악의 빙벽도 있을거고. 절충점들이야 하도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도 뭐하지만. 어쨋건 한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쪽은 올라가는 시소게임 같다.

 

11.

그러고 보면 원하는 것만 묶어서 한세트 정말 없다. 돈많고 인물좋고 학력좋고 성격좋고 집안좋고 권력있고 말잘하고 생각깊고 아는것많고 거기다가 평생 나만 죽도록 사랑하며 다른 여자들한테는 한번 안돌리는 남자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젠장 어째 세상은 불공평하기도 하지.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남자. 여자하고 사는 같은데 나만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12.

오늘 술자리에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리차드 도킨스 이야기를 했다.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지금껏 나이드는 모르고 살았다. 서울서는 친구들도 사람들도 별로 만나지 않았으니까. 이번 산행에서도 서른부근의 친구들과 나는 차이 없는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말투나 행동등에서 나와 그들은 한참의 세월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게 느꼈다. 슬프기고 하다.

 

13.

이제 나도 현실을 끌어올려 욕망에다 맞추려는 것보다

욕망을 현실로 끌어내려 맞춰야 하는 때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혀 그러고 싶지 않다.

언젠가 묘비에 이렇게 적고 싶다고 했다.

- 언제나 두칸 높은 곳을 바라보며 애쓰다 애쓰다 죽다 -

 

14.

하루의 산행이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을까?

아니 고향에 내려와 이것저것 생각들이 모여서겠지.    

하루가 가고 해가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