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내장산 7개봉 종주  

 


  내장산 개요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정읍 내장산(內藏山)은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내변산(능가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히는 산입니다. 최고봉인 신선봉(763m)을 비롯하여 장군봉(696m), 연자봉(675m), 까치봉(717m), 연지봉(671m), 망해봉679m), 불출봉(622m), 서래봉(624m), 월영봉(427m) 등 '내장9봉'이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 솟은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내장산은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을 달리하지만 아무래도 가을 단풍의 매력을 으뜸으로 치며, 꽃불을 지핀 듯 활활 타오르는 내장의 단풍은 말할 수 없이 환상적입니다. 그래서 늦가을(11월 초순경)이면 수많은 인파가 황홀경과 손잡기 위해 몰려드는 국립공원입니다.

 

 


  추령∼장군봉∼연자봉∼신선봉

 

  2005년 11월 6일 일요일, 20여명의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D산악회 주관)가 천안-논산간 고속국도 상의 '정안휴게소'에 진입합니다. 수 십대 아니 백 여대는 넘을 것 같은 전세버스가 줄지어 서 있는데 대부분의 차량 앞쪽에는 내장산으로 간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오늘도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 모양입니다.


  호남고속국도 백양사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장성호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1번 국도를 달리다가 49번 지방도로 갈아탄 후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추령에 도착합니다(11:10).


  추령에는 전북산림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입구에는 동물 및 곤충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왼쪽의 호젓한 등산로로 접어드니 밤새 내린 비로 인하여 등산로가 젖어 있어 굉장히 미끄럽습니다. 새벽에 서울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우산이 필요했지만 산행을 시작할 때는 이미 비가 그친 뒤여서 안도합니다. 그러나 능선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입동을 하루 앞두고 겨울을 재촉하는 동장군의 전령입니다.


  우리 팀의 등산객 이외에는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산악회에서 정말로 한적한 코스를 선택했다고 좋아한 순간도 잠시 오른쪽 계곡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과 한 무리가 되니 금방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부산과 울산 등 영남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능선을 따라 가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 매표소가 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니 이제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서 추월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오르막의 조릿대 숲을 지나 통나무계단을 오르니 온 사방이 안개가 자욱한 장군봉(696m)입니다(12:05). 장군봉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한 승병장이 이곳에서 왜구와 싸웠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정상 주변에는 얼마나 짙은 안개가 끼였는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가운데 한쪽에는 서너 명의 등산객들이 모두 담배를 입에 물고 버너로 라면을 끓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비록 비가 내린 후여서 낙엽이 젖어 있기는 해도 수북히 쌓인 낙엽 위에서 취사를 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해야 할 것입니다. 국립공단 측에서는 입장료 징수에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몰상식한 등산객들을 감시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군봉에서 경사가 급한 내리막으로 이어집니다. 내리막에서 기다리던 여인네 두 명이 이야기를 합니다.
  "밀리더라도 쉬고 있으니 우선은 좋다."


  또 뒤따라오는 한 젊은이가 말합니다.
  "어제 먹은 소주가 원수로군."


  한 중년의 아주머니도 한마디 거듭니다.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 왔을꼬!"


  철 계단과 기암 능선을 통과하여 오르니 연자봉(675m)입니다(12:38). 공단에서 세운 연자봉 안내도를 카메라에 담고는 나무계단을 내려오니 조릿대 숲이 반겨줍니다. 연자봉에서 신선봉까지는 1.2km 거리인데 주능선의 좌우가 짙은 안개에 쌓여 조망을 전혀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가면 갈수록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그만 내장사 방면으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연자봉에서 출발한지 33분만에 내장산의 최고봉인 신선봉(763m)에 도착합니다(13:11). 순천 조계산의 최고봉은 '장군봉'이지만 내장산의 경우 '신선봉'이 최고봉이니 봉우리 이름만 듣고는 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추령의 산행들머리

 


 

                                    전북 산림박물관 앞의 동물 및 곤충 모형


 

                                         능선에서 내려다본 내장사 계곡 


 

                                        장군봉 안내문

 


 

                                안개 자욱한 능선길


 

                                  연자봉 안내문

 



 

                                 신선봉 안내문



 


  신선봉∼까치봉∼연지봉∼망해봉∼불출봉∼버스주차장

 

  신선봉을 내려가다가 능선의 바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을 먹습니다. 바지 가랑이는 전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논매기를 한 농부의 옷차림 그대로입니다.


  북한산만 다니다가 안내산악회를 따라 처음 왔다는 두 여성이 중간대장과 함께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산행실력도 상당합니다. 약 1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 이들 보다 앞서 다시금 길을 재촉합니다.    

  
  상당히 가파른 오르내림을 반복한 후 헬기장을 지나니 까치봉(717m)입니다(14:14). 2년 전 10월에는 먼저 서래봉에 올랐다가 오늘 진행하는 방향의 역순인 불출봉∼망해봉∼연지봉∼까치봉을 거쳐 금선계곡으로 하산한 적이 있어 까치봉은 두 번째 오름이지만 주변을 조망할 수 없으니 전혀 낯설게 느껴집니다. 


  다행히 처음 D산악회를 따라 산행을 왔다는 한 남성을 만나 동행합니다. 까다로운 까치봉 내리막을 통과하여 연지봉(671m)을 넘은 후(14:32) 망해봉을 향하여 길을 가는데 직벽의 오르막에 철 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교행(交行)을 할 수 없는 좁은 철 계단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줄을 이으니 오를 수가 없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한숨짓고 있는데 일단의 사람들이 왼쪽 바위사면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등산로가 어떤지 물어보니 굉장히 위험하다면서 철 계단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그렇게 산을 잘 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라 이들도 이용하는 길을 내가 가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오기로 기어오르니 약간 미끄럽기는 해도 크게 위험한 길은 아닙니다.     


  망해봉(679m)에서 뒤따라 온 산악회 C회장을 만납니다(14:52). 뒤에 오던 사람들은 거의 중간에 탈출하여 내장사방면으로 하산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종주를 하는 사람은 선두대장과 산악회장 및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 다섯 명에 불과합니다. 산악회장은 등산로 상태가 미끄러워 당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에 서래봉 오름은 포기하고 하산해야 된다고 하니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서래봉 오름 길은 공포의 철 계단이 설치된 재미없는 구간입니다. 안개가 자욱한 날 서래봉을 오르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환상적인 조망을 보지 못하니 오를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요.  


  까치봉에서 북쪽으로 향하던 등산로는 망해봉에서 오른쪽으로 거의 직각으로 꺾여져 동쪽으로 이어집니다. 내리막 철 계단의 발 디딤 폭이 너무 좁아 발을 잘 못 헛디디면 하산 길이 아니라 황천길로 직행할 것 같습니다.    
  바위 능선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도 짙은 안개에 파 묻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거의 직벽의 철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불출봉(619m)을 넘은 후(15:35) 몇 차례의 철 계단을 오르내리고서야 서래약수에 도착합니다. 서래봉으로 가는 갈림길(삼거리)에 이르러 서래봉으로 가는 대신 하산을 시도합니다.


  앞쪽에 느린 걸음으로 내려가는 몇 명의 아주머니들을 추월하려하자 이들이 웃으려 묻습니다.
  "아저씨들, 불났어요? 불 끄러 가세요?"
  "예, 불났습니다. 사타구니에 불이 붙었습니다."


  내려가는 길도 무척 미끄럽습니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오솔길로 접어든 산행 대장을 부지런히 따라가니 무료셔틀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16:30). 버스를 타고 거꾸로 들어오니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는 제1주차장입니다. 오늘 산행에 5시간 2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까치봉 안내문

 


 

                                             안개낀 바위봉

 


 

                                 망해봉 안내문

 


 

                                 안개낀 능선의 노송(1)

 


 

                                 안개낀 능선의 노송(2)



                                    불출봉 안내문

 


 

                                          가파른 철 계단


 

                               서래약수를 지나 하산하면서 바라본 내장저수지



  아쉬운 산행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상의를 갈아입고 나니 할 일이 없습니다. 단풍터널은 매표소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다시 입장 할 수도 없고 또 산악회장은 사람들이 거의 모두 하산했으니 곧 떠난다고 하여 주변을 어슬렁거릴 여유도 없습니다. 차라리 중간에 탈출하여 내장사와 단풍터널을 구경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단풍의 명산인 내장산에 와서 단풍구경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합니다. 


  다만 2년 전에는 단풍터널을 걸어 보았고 또 다른 사람의 산행기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단풍구경을 한 것으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두 택시기사의 험악한 욕설
 
  당초 출발하기로 약속한 시각(17:30)이 되어서야 버스가 출발합니다. 그런데 정읍 방면으로 가는 차량은 전혀 움직일 줄 모릅니다. 운전기사는 정읍과는 반대 방향으로 차 머리를 돌려 49번 지방도로를 따라 백양사 입구를 지나갑니다. 맞은편 차선의 도로에는 차량들이 주차장처럼 수 킬로미터의 거리에 늘어서 있는데 밤을 세워도 소통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여서 측은한 생각마저 듭니다. 


  호남고속도로상의 상습적인 정체지역인 전주시구간을 통과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버스가 서울지하철 사당역에 도착하니 자정(子正)입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보니 운전기사가 얼마나 과속을 하는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목숨이 붙어있을지 모를 지경입니다.


  택시가 도림천 복개구간을 신나게 달리다가 교차로에 도착합니다. 편도 3차선 도로 오른쪽(3차로)에는 택시 한 대(A택시)가 좌측방향신호를 넣은 채 차 머리를 약간 내밀고 서 있습니다. 필자가 탄 택시(B택시)가 2차로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니 더 나오지 못하고 대기 중인데 붉은 신호로 바뀌자 머리를 내밉니다. 그런데 B택시는 A택시가 나오지 못하게 머리를 들이미니 잘못하면 접촉사고가 일어날 순간입니다.


  A택시 운전자가 창문 유리를 내리고 왜 양보하지 않느냐고 항의합니다. 그러자 B택시 운전자는 왜 진행방향을 막느냐고 하면서 욕을 합니다. 그러자 둘이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설을 내 뱉습니다. A택시는 빈차였지만 B택시에는 필자가 타고 있는데 운전자는 승객은 안중에도 없이 택시에서 내려 싸울 자세입니다. 필자는 하는 수 없이 그냥 가자고 사정합니다. 손님이 운전기사에게 사정을 하다니 주객이 전도되었지요. 그러나 이 양반의 심기를 거슬렸다가는 다시 총알택시로 돌변해 필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A택시에게도 분명히 잘못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편도 3차선 도로의 3차로에서 좌회전을 시도했으니까요. 그러나 밤중에 다른 차량이 없었으므로 B택시가 붉은 신호를 따라 멈춤을 하였다면 A택시는 보행자 구역을 이용해 안전하게(?) 좌회전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환상적인 단풍과 내장산 여러 봉우리를 조망하려 갔다가 단풍대신 하루종일 안개만 보았고, 총알 택시를 타고 비싼 택시요금(13,700원)을 물며 귀가하면서 택시기사의 욕설만 들었기에 이래저래 피곤한 하루였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