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산행기(15) 


 


 

- 꿈에도 그리던 내장산 단풍 -


 


 

‘10년간 100군데 산 찾아다니기’  그 열다섯 번째.


 


 

1. 사회교과서에서 본 단풍 사진. 


 


 

 내장산은 어릴 때부터 가보고 싶었다. 중학교 때인지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사회 교과서에 실린 단풍사진이 너무 곱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단풍을 본다는 설렘은 나이 들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 2층 매표소 앞에 섰다.

11시 버스를 타려면 10분 밖에 안 남았다.

“정읍 가는 심야버스표 주세요.”

나는 주저 없이 당연하게 말했다.

“정읍 가는 심야버스는 없어요.”

“예? 11시에 있는 건 뭐에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있어요.”


 

 순간 당황했고, 어차피 늦은 것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주 가는 심야버스는 있어요?”

“11시에 심야버스가 있어요.”

“그걸로 주세요.”

 잠깐 동안에 교통비가 2만원 부근에서 3만원 부근으로 늘었다.

 나는 심야에 잠을 자는 동안, 이동하는 멋에 심야버스를 즐겨 탔다.

 이렇게 서두를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방송은 다음 주에는 그 아름다운 단풍을 보는 것도 끝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영향을 받았다. 나도 지난 달 말부터 부산 한상대회에 갔다가 오늘 올라왔기 때문에 좀 피곤하긴 했으나, 지난달 목표대로 산행을 빨리 하지 않으면 이번 달과 함께 몰리는데다가 내장산만은 꼭 제철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행지를 고르는 데도 전처럼 골치 아프지는 않았다. 정읍까지 가야 한다는 것도 내가 쓴 ‘내변산 산행기’를 참고하면 쉬웠기 때문에 그걸로 출력했다. 다만, 내변산 갔을 때는 열차를 이용했고 지금은 심야버스를 이용한다는 점이 달랐다. 


 


 

2. 심야버스. 


 


 

 심야버스 좌석에 앉아 잠이 들었는데, 위성 TV를 틀어놓아 차가 흔들릴 때마다 화면이 흔들렸고, 내 곁 버스 천장에 있는 스피커는 소리가 컸다. 나는 자리를 옮겨 앉았다. 외국 영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참 가는데 잠이 들면 괴성이 들렸고, 다시 잠잠해졌다가 또 들리곤 했다. 더구나, 여성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계속돼 눈을 떴다. 칠흑 같은 밤에 화면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가 서성거리고 환자복을 입은 성인 여성이 마치 생체 실험직전의 겁먹은 모습처럼 울면서 비명을 지르니 정신이 튕겨져 떨어질 것 같다. 심야에 들리는 여인의 울음소리에 기분을 잡친 내가 주위를 둘러보니 그 걸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끄라고 짜증냈다.  

  

 그런데, 음침한 울음소리가 사라지자 이제는 여태까지 잘 자고 있던 내가 앉은 좌석 옆 통로 건너편에 앉은 두 중년 남녀 중 남자가 계속 떠들었다. 여자는 그래도 중간 중간 남을 의식해서 목소리를 작게 드문드문 대답하는데 남자는 벌건 대낮에 막걸리라도 마신 것처럼 거리낌 없이 떠들고 있다.


 

 다시, 서서히 화가 났고 한 마디 던졌다.

“목소리가 커서 잠을 못자겠네요. 조용히...”

 그 말을 듣자마자 말소리가 뚝 그쳤다. 한 동안의 정적은 남자가 분노를 삭이느라고 있음을 열기로 느끼게 했다. 그러더니 한 마디 하는 거다.

“이 시끄러운 속에서 잠을 자다니 이해가 안가네요.”

나는 쳐다보다가 한 마디 했다.

“개구리나 맹꽁이가 울어도 잘 자요.”

 그리고 힐끗 보고 아무 말을 안했다.

 아주 조용해졌다.


 


 

3. 찜질방


 


 

 광주에 내리니 2시 45분이 됐다.


 

 밀양에서처럼 동틀 때가지 밖에서 떨 생각은 없었다. 가격이 적당하면 모텔에 가 있기로 했는데, 많아야 세 시간 남짓한데 비싸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텔마다 사람들이 다 찼고, 어쩌다 있어도 하룻밤 숙박비 전체를 달라는 것이다. 굼벵이 씹는 얼굴로 돌아다니는데 다행이 찜질방이 보였다.


 

 거기 가서 서너 시간 보내면 되겠구나.


 

 하룻밤 통째로 쉬는 것은 모텔이 낫지만 세 시간 정도 보내는 것은 이게 낫다 싶었다.

남녀가 여기저기 쓰러져 자는 것이 이채롭다. 밖에서 보면 그렇게들 커보였는데 여기 누워있는 사람들은 전부 고만고만했다. 거기다가 핸드폰이라도 끄거나 진동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모두가 기초 예절을 잊었는지 여기저기 갖가지 멜로디를 울려가며 숙면을 방해했다.

 또, 베개도 모자라 남는 것 찾느라고 헤맸다. 


 

 그래도 고맙게 인정해야할 찜질방의 가치는 추위를 느끼지 않게 해준다는 점이다. 잠은 고속버스에서 실컷 자고 남은 시간은 여기에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심야버스를 주로 이용하되 대도시까지 이동해서 찜질방을 활용하면 거점으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운 날 찜질방 없는 소도시나 읍에 내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은 전국의 경로당이나 마을 회관을 활용토록 하지 않는 한, 또 심야버스가 대도시에만 있는 한 도청소재지가 거점이 될 수 밖에 없다.


 


 

4. ‘빛과 풍경의 조화’


 


 

 6시 10분에 정읍으로 해서 내장산 가는 버스를 탔다.

 한참을 걸었다. 산행하면서 길에서 힘 빼지 말라는 것이 스스로 정한 원칙인데 방법이 없었다. 7시 20분경부터 걸었다고 생각되는데, 8시 40분경은 배가 몹시 고팠다. 그래서 식당이라기보다 간이식당에서 옛날 기분 내듯 팔고 있어 국밥을 시켰는데 그렇게 맛이 없을 수 없다. 우거짓국 식단을 보고 시켜 없어서 시켰더니, 소가 먹는 구정물에 먹다 남은 고기 몇 첨 얹어주는 식이다.

 그리고, 5천원을 받았다.

 손님이 많으니 나처럼 모두 불쾌했을 것이다.


 

‘뜨내기’라고 그렇게 하다니.


 

 9시 10분경 우화정을 지나는데 물속에 비친 풍경이 놀랍다. 물속에서도 멋있는 칼라임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팔각정의 흰 모서리 기둥들도 거꾸로 꽉 박히고, 주차해둔 차량들도 거꾸로 박혀 미끈하고, 단풍나무들도 물속에 박혀 빛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빛과 풍경의 조화’라고 생각했다.


 

 나는 관광안내도를 보면서 6.6km, 4시간 코스를 골랐다.


 

 이때가 9시 40분경이었다.


 


 

5. 산행


 


 

 고른 코스대로 간다면 신선봉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었다.

먼저 그리로 가기로 했다.

 유년 시절 사회교과서에서 본 단풍은 별로 없다.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것이 느껴졌다.


 

    아침 단풍은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났고


 

    저녁 단풍은 노을 속이 더 아름답고


 

    초록 나뭇잎은 이슬 속에 빛났다.


 

딸각 고개를 연상시키는 오르막길을 꽤 오래 걸었다.


 

11시 20분에 763.2m의 신선봉에 올랐다.


 

 평소 너무 먹는 것 같아 먹을 것을 커다란 사과 두 개만 준비했던 터라 그것을 먹으면서 걸었다. 워낙 유명한 산인데다가 단풍을 놓칠까봐 나선 사람이 많아 북적북적했다. 그 속을 다시 한참 걸었다.


 

12시 10분에 717m의 까치봉에 올랐다.

 

 산악인들 틈에 무척 고운 얼굴이 보여 어디서 본 얼굴 같다고 생각했다.

한참 생각하니 그 여자인 것 같다.

아닐 거야.

개롱역 부근에서 붕어빵 팔던 아줌마와 너무 똑같다.

생각났다면 물어봤을 텐데. 


 

 산 정상이 가까워지면 단풍은 낙엽 됐고 그것마저 다 떨어져 발에 밟혔다. 앙상한 가지만

꼿꼿했다. 


 

12시 50분에 671m의 연지봉.


 

13시 10분에는 645m의 망해봉에 올랐다.


 

 단풍은 더 크지 못하고 말라가니 서러워 죽겠는데 사람들은 속 모르고  아름답다고 쫓아다니다니.


 

14시 10분에 610m의 불출봉


 

 을 마지막으로 3시 30분에 내장사 쪽으로 내려왔다. 분지 위에 봉우리를 솟아나게 하고 고리로 연결한 것 같다.


 


 

6. 귀경


 


 

 비자나무의 군락을 보면서 나무의 우람함에 놀랐다.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못지않았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비자나무 군락의 아름다움을 시로 써서 남겼다.


 

 공상하기 좋아하는 나는 이런 걸 볼 때마다 아쉬움이 컸다.

 유전자 조작을 해서라도 진달래, 무궁화, 매화나무가 느티나무처럼 무성해 접시만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은 망령된 기대일까.

 참깨, 들깨, 잣도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는 돼야지.


 

 한참 내려와서 점심을 비빔밥으로 먹었다.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차량은 움직이지 못했다.

 멀리 내려가 어렵던 시절을 생각하며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린 후 입석으로 정읍까지 나왔다. 다행히, 정읍에서는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올라가는 버스가 바로 있었다.


 

 6시 50분 버스를 탔고 서울에는 11시 돼서 내렸다.


 

 그래서, 그렇게 기대했던 내장산 산행이 끝났다.


 

(07.11.04. 네이버 블로그 ‘정갑용의 직업여행’  http://blog.naver.com/doloomul/)

(07.11.04. 다음 블로그 ‘GRM’ http://blog.daum.net/cnil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