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산에서 조망한 두물머리, 제대로 설치한 이정목- 

 

 

 

 

검단, 용마, 남한산<休戰 60주년, 출생 60년> 같은 날 우연일까? 

 

2013037037호              2013-07-27()

 

자리한 곳 : 경기 하남, 광주, 서울 송파

지나온 길 : 애니메이션-유길중묘-검담산-고추봉-용마산-엄미1리-은고개-벌봉(남한산성)-고골계곡-고골종점

시간및거리: (09:58 ~17:40) 7시간 42분(애니메이션-고골종점) 이정표 표시거리 17.4km <도상거리:14.0km>

함께한 이 : 계백혼자

날       씨 : 대체로 맑은 날이나 박무가 심하고 습도 높음 서울 최고기온 32도 육박 더운 날

 

60회 생일(환갑)에 오랜만에 함께한 가족 조반상

오늘이 특별한 날임을 감지했는지 뇌파의 움직임이 활발해 평소보다 10여분 일찍 일어나 조간신문을 훑어보고 컴퓨터로 날씨를 확인하고 있는 동안에 집식구는 조반준비를 끝내, 정말 오랜만에 정상시간(06:20)에 조반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食口들 온정에 감개무량한 가운데 군인나간 아들놈의 빈자리가 크고 아쉬움으로 다가옴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컴퓨터가 악성파일의 공격을 받았는지 작동이 원활하지 못해 지난 일요일 다녀온 산행기록을 정리하다 여의치 않아 접어두고 산행이나 다녀 오려고 배낭을 꾸리는 도중에, 사소한 일로 집식구와 이견이 있어 확대를 피하려고 서둘러 집을 나서느라 차분하게 필요한 것을 챙겨오지 못해 약간의 불편은 있었지만 산행이 불가한 것은 아니어서 불편을 감수해야만 산행이 가능하겠다.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행을 위해 복잡한 대중교통 환승

4년전에 종주한 검단지맥 구간일부를 답사하려는 생각으로 전철(6호선 3호선 5호선)환승해 강동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서울애니메이션고등학교 정류장에 하차해 그늘진 곳에서 산행복장을 갖추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노모와 형제자매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전화기를 무음으로 설정하고 배낭 깊숙이 쑤셔 넣어 사실상의 통화사절 의지를 다지고 서울애니메이션고등학교 정문을 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한다.(09:58)

 

 

-이길은 처음이다 그래서 좋은 길을 따르기로 한다-

 

 

성공한 삶을 살다간 유길준 선생묘지에서

스틱을 빠트려 전해온 허전함을 양손에서 떨쳐 버리고자 빠른걸음으로 월남전참전기념탑 앞 3거리에서 이정표(해발26m)의 잘 정비된 등산로를 착실하게 따라 오르며 장마철이라 수량이 풍족해 물흐르는 소리마져도 경쾌하여 장단이라도 맞춘듯 흥겨운 기분으로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오르느라 많은 땀을 쏟아내며 당대에도 자랑스러운 조선의 황민이었고 10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버린 오늘까지도 후손들이 번창하도록 다양하고 기름진 토양을 가꿔나가도록 자식교육에 성공하신 유길준 묘지에서 공손하고 부러움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진심으로 표한다.(10:27)

 

 

 

 

-대장부로 태어나 이정도면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기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나 습도가 높아 엄청나게 흐르는 땀으로 등산복이 흥건히 젖어 무릎과 발목에 감겨 성가신 바지를 손으로 잡아당겨 올리며 조망이 트이는 바위능선에 올라 서니 시원한 바람과 탁트인 조망을 즐겨봄은 다음으로 미루고 심한 박무 때문에 시계가 불량해 한강건너 예봉산이 흐릿하게 윤곽만 드러난 능선을 바라보며 검단산 정상의 넓은 안부에 닿는다.(11:32)

 

 

 

 

-검단산에서 조망한 예봉산, 용마산으로 이어진 검단지맥-

 

 

오늘 화두는 마음을 비우기라 가능하면 잡념을 버리고 무념상태를 가능한 오래시간 지속하게 하는데 골돌하며 고추봉을 지나 용마산 직전에서 얼마전까지 엉터리 이정목이 자리를 지키며 혼란시켰는데 언제 정비했는지 깔끔하고 산뜻함은 기본이고 정확하게 벌봉(남한산성)까지 이정목을 정비해준 광주시장의 아름다운 배려에 지역민이 아니기 때문에 지지표와는 무관하지만 박수를 보내며 용마산 이등삼각점과 마주한다.(12:55)

 

 

-고추봉과 용마산의 2등 삼각점-

 

 

 

同族相殘 6.25 休戰 60년, 나의 삶도 60년 같은 날 우연일까?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는 7월27일(음6월20일)도 수많은 날들중 평범한 하루일뿐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만은 특별한 생일(환갑)날로 기억된다면 쓸쓸히 기억에서 사라져야 당연하겠지만 6.25 동족상잔(同族相殘:1950년 6월 25일~ 1953년 7월 27일)을 멈추기로 약속한 지 60년이 되는 정전(停戰)이라 공식으로 부르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정전(停戰)이 아닌 휴전(休戰)60주년 주장하는 7,000천만 단군의 자손 대한민국 휴전(休戰) 60주년六十甲子의 환갑(還甲) 을 함께하고 있으니 어찌 길일중의 대길일(大吉日)이라 아닐 수 있겠는가? 갑자기 老母의 주름진 얼굴이 스쳐지나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三伏 더위쯤 자식 위한 母情에 不孝子 엎드려 비 옵니다.

삼복더위 한가운데 가마솥더위에 아들을 생산하시느라 모진 고통을 감내하신 노모께 不孝子 엎드렸습니다.

꽃다운 어린(19세)나이에 기울어진 가문종부로 시집와 층층조시부모(시할머니, 시부모님)을 봉양하시고 식솔(미혼의 시누이 3명, 시동생 1명)을 출가시키고 교육시키시며, 8남매를 낳아 기르시고, 선영봉양은 기본중의 기본이요, 모든 농사일에 집안의 잡다한 잡일처리도 모자라 시부모님껜 삼시세끼 더운 식사를 올리시고, 날이 어두워지면 매일같이 소죽은 물론이고 길쌈에 흰 한복만을 고집하신 시부모님 의복바느질에 공동우물에서 두레박과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물 길어오느라 늘 잠이 부족하셔도 내색하지 못한 조선 아낙의 거룩한 희생을 어찌 다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땡볕에 고된 농사일하시려 들에 나가셨다가 산통이 시작되자 귀가, 산고의 고통보다는 오로지 고추달린 아들을 낳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절박함은 세 번째 산출이기에 더했다(위로 딸 둘 이미 출산) 자손귀한 가문에서 대를 잇게 해야 한다는 압박과 당당히 아들을 낳으셨으니 삼복더위 정도가 무슨 문제였고 산후조리가 다 무엇이랴!!!

분만하신 다음날 밤 쑥을 달인 물로 몸을 씻고 삼신상에 올렸던 쌀과 미역으로 3일째 되는 날 의식을 준비하신 후 밤이 깊기를 기다려 공동우물(당시 마을규모 500여호 3500주민) 3곳중에서 가장 높은 우물을 찾아(이때 사람을 만나지 않아야함) 조심스럽게 두레박질해 정갈한 샘물이 가득담긴 동이를 머리에이고 오신다음 가족들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용하게 정한 수 한 그릇과 볏짚 한 움큼을 받들고 제각에 끊어 선영에 종손이 세상에 나왔음을 고하며,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발원하는 기도를 끝내고 아궁이에 볏짚으로 불을 지펴 밥을 지어 탄생삼일을 선영에 올리고 검줄 쳐서 동네에 득남을 알리신 후 60년을 하루같이 지내주신 내 어머님!!! 은혜의 만분의 일도 보담하지 못한 송구함으로 오늘따라 무섭게만 느껴진 老母께서 건강하신 모습으로 米壽를 넘어天壽를 누리시길 발원 드립니다.

 

박무가 심해 조망 매우 불량한 날

두물머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 조망명소가 분명한 용마산 정상이지만 오늘만은 아니었고 작업인부들이 쉬고 있어 자리를 비켜주는데 라디오에서 서울의 최고기온이 31도라 알리고 적당한 바위그늘에 배낭을 내러놓고 빵으로 점심을 때우며 너무 많이 부려먹어 미안한 발에게도 20여분간의 휴식을 제공한 후 등산화 끈을 졸라매고 아직 답하지 못한 희망봉에서 광지원리가 흥미를 끓었으나 소요시간 부담 때문에 엄미1리로 방향을 정한다.(13:30)

 

 

-남한산성 사적지 보수가 시급하다, 남한산성 최고(벌)봉-

 

 

신설한 이정목(엄미1리로 갈림길) 엄미1리-은고개-벌봉까지 6.73km / 희망봉-광지원리-벌봉까지 10.39km라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이정표로서의 가치와 역할이 충분해 기분이 좋아 발걸음도 가볍게 낚시터를 지나 중부고속도로와 국도를 안전하게 횡단하도록 건설된 지하차도를 건너 은고개에서 산객을 만나 보조를 맞추느라 진행속도가 늘어지고 가파르게 이어지는 검단지맥 능선으로 올라선 길목에 설치된 의자에서 두어 번 쉬어가며 허물어진 남한산성 성벽을 따라 벌봉에 도착한다.(16:32)

 

치욕의 역사에 자신을 비쳐보고 싶다

허물어진 성벽역사 문화재와 마주하니 이우지자(犁牛之子) 글이 떠오르며 조선이란 나라와 국왕은 과연 민초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생각해본다. 해동(海東)의 요순(堯舜)인 세종대왕이 안계셨다면 조선의 평가는????

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이다 따라서 논란이 대상이 아니지만, 조선의 15대왕 광해군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제조명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리역사상 나라가 망하지는 않으면서 임금이 외국의 임금에게 '무조건 항복'을 한 적이 두 차례다. 고려 때 원나라, 조선 때 청나라”에게다.

 

 

-관리가 소홀하다 생각된 남한산성, 고굴계곡으로 하산길 잡으며-

 

명나라와 신생국인 청(후금)의 전쟁에 끼지 않는 중립외교를 펼쳤으며 도원수 강홍립에게 내린 정세를 보아 행동하라는 재량권을 주어 참전시켰고, 대동법으로 백성의 고단함을 어루만졌다.

반정의 명분으론 존명사대(尊名事大), 폐모살제(廢母殺弟)로, 인조反正은 엄밀하게 표현하면 쿠데타다. 명분부족한 쿠데타는 성공했으나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없고 ㅊ철학의 부재로 내치와 외치의 실패한 인조와 쿠데다 세력은 역취순수(逆取順守)도 못했을뿐더러, 국가에 환란만을 자초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쟁하다 패전해 결과적으로 굴욕적인 국치를 당했고 삼전도비를 세웠다.

반상의 신분을 따지고 있을 한가한 시기가 결코 아니였다. 이우지자(犁牛之子) 신분의 귀천을 따질게 아니라 능력에 따라 국가에 봉사하도록 균등한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중국에 비해 그러지 않아도 인구숫자가 작은 현실 생각해, 천민이라도 능력과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중용했다면 반드시 역사는 조선을 버리지 않았다 확신한다.

조선국에 백성을 위한 군주다운이가 과연 계셨던가????

마음을 다잡으려고 코스를 길게 잡고도 식수준비가 허술해 습도는 높은 31도의 무더위로 땀은 비오듯 쏟아지는데, 식수 부족으로 한모금의 물을 비축해 비상사태에 대비하느라, 입술이 타들어가고 오그라들어 말을 못하는 고통을 감내한다.

귀가시간을 생각해 단거리 하산로인 고골마을으로 정하고 계곡으로 내려서 만난 도랑물은 최고의 감로수다, 마음껏 들이마시자 오그라든 입술이 풀리며 말문이 트여 정신을 가다듬고, 피서객으로 가득한 계곡을 눈요기하며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린다.(17:40)

 

 

-시원하게 물이 흐르는 고굴계곡, 고굴버스종점-

 

 

산행외 숨겨진 이야기

단독노선인 마을버스 100번을 타고 하남시내로 들어와 112번으로 환승 지하철(5호선 종로3가, 3호선 연신내역, 6호선 응암역)환승해 귀가하는 동안에 많은 일들이 스쳐간다. 산행전 배낭 깊숙이 처박아둔 전화통을 꺼내보니 부재중전화 14통, 문자 4통을 확인하려는데, 누님께서 전화를 안받아 걱정했던지 다급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고, 여벌옷을 준비하지 못해 8시간 가까이 땀에 찌들어 땀냄새가 걱정되어 행동을 조심했는데도 생각보다 심했던가 보다. 광나루역에서 빈자리가 생겨 조심스럽게 자리하자 악취 때문인지 좌석좌우 여자승객이 코를 벌름거리고 주위를 돌아보며 멀리 피해간다. 악취를 풍겨 불편을 드려 미안하지만 도리가 없던 순간에 전화벨이 울려와 민망한 분위기를 탈출한다. 저녁식사는 무엇으로 준비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삼겹살을 부탁하는 것으로 아침에 이었던 집식구와의 이견이 깔끔하게 해소된 60회(還甲:환갑)를 기분 좋은 소주 잔으로 정갈하게 마감한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13-07-30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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