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남덕유산 

2006년 1월8일 개년? 들어 첫 산행이라 그런지 고속도로 덕유산휴게소를 지나자 설레이는 마음으로 달리는 차창의 성에를 닦아내며 밖을내다보니 차갑고 쾌청한 겨울풍경들이 얼굴을 스치듯 뒤로뒤로 흘러간다.

 

저멀리 하얀눈을덮은 남덕유산 정상에는 한무리의 구름이 숨을 헐떡이며 넘지못하고 서성이고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기나긴 육십령터널을 빠져 나와 서상IC를 진입하여 영각사 매표소에 도착하니 거의 10시경이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영각매표소(경남 함양군 상면)를 출발해서 남동릉을 타고 남덕유 정상에 오른 뒤, 월성재-토옥동방향의 길고도 지루한 계곡을 지나 토옥동(장수군 계북면)으로 내려서는 코스로 잡았다.

 

매표소를 지나 한동안 제법 평탄한 길로 이어지던 산길은 적당한 쉼터가 있는 돌탑을 만나면서부터 경사가 급해진다. 몇 주전 많은 눈이 내린 뒤라 아직 녹지 않고 쌓여있는 눈들이 제법 미끄럽다.

잠시 다리쉼을 하며 아이젠을 착용하고 윗옷을 벗어 배낭에 걸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남덕유산

남덕유산은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과 전라북도 장수군 경계에 솟아 있다. 향적봉과 두 산봉 사이의 약 20㎞ 구간에는 해발고도 1,300∼1,400m의 소백산맥 주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으면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 경계를 이룬다.

주봉우리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무풍면(茂豊面)의 삼봉산(三峰山:1,254m)에서 시작하여 대봉(1,300m)·덕유평전(1,480m)·중봉(1,594m)·무룡산(1,492m)·삿갓봉(1,410m) 등 해발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줄 지어 솟아 있어 일명 덕유산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바탕 땀을 쏟으면서 오르다 어느덧 능선에 이르니 왼쪽으로 방향이 꺾인다. 오른쪽은 길은 있는데 등산로가 아니라는 출입통제팻말이 있다. 능선에 접어들어 약 100m정도 오르면 이곳의 아래 계곡이 ‘남강의 발원지’인 참샘이 있는곳임을 알리는 말뚝과 정상까지 800m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제야 비로소 시계가 트이며 절경의 전망지대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조망들은 가히 일품이다.

 

남동방향으로는 지난달 잊지 못할 조망산행을 하였던 곳 수도산과 단지봉을 지나 웅장한 가야산이 우뚝 솟아있고, 북동방향으로는 삿갓봉에서 무룡산을지나 중봉까지의 우람한 남성의 근육질 같은 덕유산의 능선이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시야를 유혹하고, 가까이로는 정상주위의 웅장하게 솟아있는 암봉을 따라 가파르고 아슬아슬하게 드리워져 있는 철계단에 붙어 오르고있는 행객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남덕유산을 타고 흐르는 할미봉-육십령-깃대봉-영취산을 지나 백운산너머 맑은 하늘 태양이 흘러가는 길목아래로는 아름다운 지리산 능선의 허리아래 운무인 듯 안개인 듯 하얀 안개가 깔려 마치 선계의 신비감을 연출하고 있다.

 

멀리, 또는 가까이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오르다 보니 올해 들어 첫 산행 이라서 인지 각지의 수많은 행객들로 좁은 철계단을 오르느라 갑자기 극심한 정체가 시작된다.

 

넉넉잡아 30여분 이내 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거리를 많은 시간을 지체하고 정상에 도착한다. 남덕유산 1,507m 정상석에 서서 사방을 조망하여본다.

이곳 남덕유산 정상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분수령이다. 서남쪽으로는 할미봉과 육십령, 남쪽 저 멀리로 웅장한 지리산이 모습을 보이고 북동방향으로는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을 위시한 연봉들이 장쾌하게 이어진다.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남덕유산 방향은 넉넉하고 부드러운 능선들이, 아름다운 여성의 둔부를 연상케 하는데 반해 이곳 남덕유산에서 바라보는 향적봉 방향의 능선은 날카롭고 힘차게 솟아오른 능선의 봉우리들이 마치 우람한 남성의 힘줄을 닮았다.

 

남쪽으로 힘찬 산줄기를 이루는 함양의 산들도 눈부신 모습이다. 정상 서쪽에 우뚝 서있는 봉우리는 서봉으로 장수 덕유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영원히 간직할 주변 조망들을 카메라에 담고 내려서니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식사를 막 시작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정상에서 하산길인 서봉 갈림길을 지나 주능선 쪽으로 내려서는 음지인 이곳은 아직도 녹지 않은 많은 눈으로 인하여 구상나무와 덤불들이 만들어놓은 하얀 눈꽃들이 함양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신비로운 세상을 만들어놓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마음도 함께 센치멘탈(sentimental)해 지는것일가? 사방 순백의 눈꽃 속에 묻혀있노라니 불현듯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주변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무심한 행동 하나에도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아마도 많은 상처를 주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많은 눈이 쌓인 가파른 내리막길은 아이젠을 착용하여도 미끄럽다. 좁게 형성된 눈길따라 올라오는 행객들과 길을 틔우며, 서로 인사를 나누며 내려오는데 중년을 넘어 초로에 들어선 듯한 아름다운 여성행객 한분과 마주치게 된다. 내 뒤를 따라 오던 어떤 분이

패션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하고 인사를 붙인다.

네! 고맙습니다” 초로의 행객이 답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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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육신을 세척하기는 하지만 습관적으로 영혼을 세척하지는 않아요.

습관적으로 손발을 씻거나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거나 샤워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영혼이 얼마나 탁해져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신을 세척하는 일에 주력하는 것만큼 영혼을 세척하는 일에 주력하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워 질까요.)

- 이외수 <장외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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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에 묻혀, 사색에 잠겨 내려오다 행객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정신을 가다듬어보니 사거리를 이루는 월성재 안부에 닿는다. 진행방향에서 오른쪽 길은 월성계곡을 거쳐 황점으로 가는길, 왼쪽 길은 전북 장수 계북면 토옥동 계곡길이다. 계속 직진하면 향적봉으로 향하는 주 능선이다

 

월성재 안부에서 토옥동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내려선다.

이곳은 행객들의 발길이 뜸 한곳인지 등산로가 썩 잘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다.

약 6~70m정도 내려오니 계곡이 시작되고 바닥은 눈 밑에 빙판을 이루어 상당히 미끄럽다.

이곳에서 토옥동까지 약 6~7km의 길고 지루한 계곡을지나 마지막 다리를 지나면 꽁꽁 얼은 저수지위에서 낚시꾼들이 얼음낚시가 한창인 이곳, 여기가 토옥동이라는 표시석이 세워져있는 주차장에 버스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도착시간 15시20분경(약 5시간3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