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봉

 

 

                                *산행일자:2010.10. 17일(일)

                                *소재지 :전남신안

                                *산높이 :깃대봉367m

                                *산행코스:홍도탐방쎈터-홍도분교-전망대-깃대봉-347m봉

                                               -내연발전소길 전망대-홍도분교-광성모텔

                                *산행시간:16시1분-18시18분(2시간17분)

                                *동행 :나홀로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100산에 첫발을 들인 것이 한라산을 처음 오른 1969년 여름이었으니 그새 41년이 지났습니다. 어려서 땔감을 구하러 동네 뒷산을 오른 것을 뺀다면 외지의 산으로 처음 오른 산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인 한라산입니다. 이렇듯 저의 산행역사는 명산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산림청에서 2002년 명산100산을 선정해 발표할 당시 대략 40여개의 명산을 올랐지만, 그때까지는 거의 사진도 찍지 않고 산행기도 한 두산을 빼놓고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듬해 디지털카메라를 마련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로는 꼬박 꼬박 사진을 찍고 산행기를 작성했으며 전에 오른 산들도 다시 올라 모두 산행기를 남겼습니다.

 

  명산100산중 99번째 오른 산이 지난 4월에 오른 충북 단양의 도락산입니다. 그 후 홍도의 깃대봉을 마지막 미등의 산으로 반년 이상 남겨놓은 것은 이 산을 오른다면 더 이상 오를 목표가 없어져 왠지 허망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다른 명산들을 우정 찾아 오르면서도 깃대봉 탐방을 애써 미뤄오다가 어차피 오를 산인데 졸고 섬진강 둘레산줄기 환주기를 책으로 내기 전에 마저 오르는 것도 좋겠다싶어 깃대봉 산행 길에 나섰습니다. 이번에 서울 청송여행사의 홍도/흑산도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 깃대봉 산행을 마치고 나자 명산100산을 모두 올랐다는 기쁨에 가슴 뿌듯하면서도 한 편으로 더 이상 오를 명산이 남아 있지 않아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명산100산의 탐방산행은 제게는 매우 중요한 점(点)의 산행입니다. 2004년 이후 저는 백두대간과 정맥, 그리고 지맥 등의 산줄기를 이어가는 선(線)의 산행에 심취해 어느 한 산을 정해놓고 오르내리는 점의 산행을 비교적 등한히 했습니다. 선의 산행에서는 장대하게 뻗어나가는 산줄기에 감탄하기는 해도 선현들의 발자취를 찾거나 전설을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선조들은 산을 서양 사람들처럼 험난한 산의 정상을 오르는 등산(登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망산(望山)이나 계곡을 찾아 세월을 낚는 입산(入山)의 대상으로 여겼기에 높은 봉우리에 올라 산줄기를 따라 걸을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산에서 선현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계곡이나 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 또는 고개 마루 정도인데 선의 산행에서는 안부로 불리는 고개 마루를 제외하고는 계곡이나 사찰을 만날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나마 간간이 명산100산을 찾아 오르며 점의 산행을 해왔기에 산에서 사람들의 체취를 맡고 흔적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산행의 양축인 선의 산행과 점의 산행을 적절히 바꿔가며 산행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명산100산 덕분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침9시10분 용산역에서 KTX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12시30분경 목포역에 도착해 마중 나온 여행사 차로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로 옮겼습니다. 김밥 두 줄을 사들고 뉴골드스타 여객선에 승선해 13시 정각에 목포항을 출발했습니다. 비금도와 흑산도를 경유해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15Km 떨어진 홍도에 다다른 시각이 15시 반 경이었습니다. 홍도 동쪽 연안의 홍도1구마을 선착장은 생각보다 좁았고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조금은 어수선했습니다. 배에서 내려 하루 묵어갈 광성모텔을 들렀다가 이틀 전에 전화로 입산신고를 한 홍도관리사무소를 찾아가 깃대봉출입증을 받았습니다.

 

 

  16시1분 홍도선착장의 탐방센터를 출발해 깃대봉으로 향했습니다. 탐방센터에서 몇 걸음 옮겨 골목길에 들어섰습니다. 3-4분 걸어올라 다다른 홍도분교는 북쪽의 깃대봉과 남쪽의 양산봉 사이의 안부인 고개 마루에 자리 잡았는데 이 학교 운동장 바로 옆에 호텔이 서있는 것을 보고 이 섬이 참으로 비좁은 작은 섬임을 실감했습니다. 교문 앞에서 오른쪽으로 몇 걸음 옮겨 깃대봉/내연발전소 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왼쪽 데크 길로 들어서 전망대로 올라가며 몇 번이고 왼쪽아래 몽돌해수욕장과 바다를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산행시작 20분이 지나 데크 길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됐습니다. 산허리를 에도는 흙길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늘푸른넓은잎나무들로 위가 가려 밝지 않았습니다. 이산에서 만난 연리지(蓮理枝)는 뿌리가 다른 두 나무들이 서로 엉켜 한 나무처럼 자란 구실잣밤나무였습니다.

 

 

  16시34분 데크 길이 끝나는 곳의 전망대에 올라섰습니다. 흙길이 끊기고 다시 만난 데크 길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홍도 서쪽 바다와 남쪽 양산봉이 한눈에 잡히는 전망대에서 바다를 조망하며 잠시 숨을 돌린 후 북쪽으로 이어지는 연인길로 들어섰습니다. 선착장이 들어선 홍도1구마을과 그 너머 몽돌해수욕장, 그리고 등대가 서있는 홍도2구마을을 빼놓고는 홍도 연안은 거의 다가 삥 둘러 기암절벽이어서 능선 길도 바위가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연인길은 낙엽이 깔린 흙길이어서 서울의 청계산 길보다 더 포근했습니다. 더러 더러 상록침엽수인 소나무가 보였지만 이 섬의 주 수종이 상록활엽수여서 바닥에 깔려 있는 몇 년 묵은 낙엽은 보였지만 곱게 물들은 단풍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깃대봉/내연발전소 갈림길에서 1차 데크 길이 끝나는 곳까지 왼쪽 옆으로 누런 풀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이 섬에서 가을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17시8분 해발367m의 깃대봉에 올라섰습니다. 347봉을 바로 밑으로 지나며 이제는 다 올라왔다 했는데 깃대봉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며 바다 밑으로 뚫려 있다는 숨골재굴과 숯가마터를 지나 깃대봉에 올라서자 박무가 희뿌옇게 끼어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 가까이로 암봉이 잘 보였습니다. 먼저 오른 한 분에 부탁해 365m로 표기된 정상석을 배경삼아 사진 한 방을 찍고 나자 드디어 명산100산 탐방을 모두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주보이는 봉우리를 넘어 왼쪽으로 내려가면 홍도2구마을일 텐데 시간이 없어 다녀가지를 못해 아쉬웠습니다.

 

 

  여기 홍도의 깃대봉에는 덕유산의 깃대봉과는 달리 깃대가 세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깃봉도 보이지 않았고 펄럭이는 깃발도 없었으며 둥글 넙적한 이산봉우리에서 깃대를 연상할만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안가의 기암절벽처럼 그럴 듯한 전설도 갖고 있지 못한 이 낮은 봉우리를 깃대봉으로 부르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새삼 궁금했습니다. 한참동안 궁리하다 명산100산 탐방의 마침표를 이 산에서 찍는 것이 바로 이 봉우리에 깃대를 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혈투 끝에 고지를 점령하고 나면 으레 하는 일이 깃대를 세우고 깃봉 끝까지 깃발을 올려 펄럭이게 하는 것을 영화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홍도의 깃대봉을 마지막 명산으로 미뤄둔 것이 결과적으로 여기 깃대봉에다 마음의 깃대를 세워 깃발을 펄럭이게 만들었으니 저의 명산100산 탐방순서는 참으로 절묘했다 했습니다.

 

 

  먼저 오른 분들이 모두 내려가고 저 혼자 산정에 남아 명산100산 탐방을 자축한 후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갔습니다. 홍도1구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1.7Km 밖에 되지 않아 마음먹고 뛰어 내려간다면 저녁6시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있었겠지만 그리 서둘러 내려가기에는 모든 것이 아쉬워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정상 가까운 능선에 자리한 숯가마터를 하산 길에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1940년에 마지막으로 폐쇄된 숯 가마터가 이 작은 섬에 18기가 있었기에 숯으로 생필품인 소금을 바꿔 쓸 만 했을 것입니다. 오름 길에 그냥 지나친 347m봉을 들러 깃대봉의 전신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8시18분 하룻밤 숙소인 광성모텔에 도착해 깃대봉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347m봉에서 제 길로 복귀해 하산을 계속했습니다. 연인길 출발점의 전망대에서 확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데크 길을 따라 내려가 깃대봉/내연발전소 갈림길에 도착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계반대방향으로 난 데크 길을 따라 내연발전소로 향했습니다. 홍도에서 필요한 전기를 생산 공급하는 내연발전소까지 다녀오기 전에 어둠이 밀어닥칠 것 같아 중간의 가장 높은 길에서 진행을 멈추고 먼 바다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해넘이를 지켜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리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깃대봉/내연발전소 갈림길로 돌아가 광성모텔에 도착하자 명산100산 탐방산행을 무사히 마친 것이 실감됐습니다.

 

 

  홍도의 깃대봉에 올라 마음의 깃대를 세우고 이 깃대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았습니다. 그 깃발은 청마 유치환님이 노래한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 첫 산행기를 남긴 화악산을 시작으로 7년간 꾸준히 찾아올라 명산100산 탐방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제게 그 깃발은 감격의 표징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엮어가며 100산 모두 산행기를 작성한 제게는 그 깃발이 장대한 서사의 표징입니다. 그러기에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줄을 안 그는‘하고 애통해 하지도 않습니다. 맨 처음도 맨 마지막도 깃대봉에 깃발을 단 사람이 바로 저이기에 애통해 할 이유가 전혀 없어 오히려 감격하고 있습니다.

 

 

  저의 명산100산 탐방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몇 번을 더 찾아올라 산신령도 뵙고 마고할멈도 다시 만날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사시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100대 명산이 대 서사시를 잉태해 이 세상에 내놓을 때까지 저는 계속 명산을 찾아 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르는 명산마다 감격의 표징인 깃발이 펄럭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할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