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의상대와 원효석대를 찾아...

 

산행일자:2005년9월7일.

산행코스:남산동 한아름빌라-상마마을(만성암)-미륵불상)-매바위-바위암군-원효암동릉-원효암철조망삼거리-철조망문-원효암-원효석대-의상대-상마마을입구-한아름빌라.

 

원효암과 의상대 원효석대는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자락 범어사 주변에 있으면서도 일반인에게는 덜알려진 코스로서 여러번 답사를 거쳐 여러사람이 많이 찾아볼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수정하여 올렸으나 원효암에서는 일반인의 출입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반듯이 정숙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초팔일날 원효암을 다녀왔으나 의상대가 가까이 있는줄 모르고 왔기에 의상대와 원효석대를 를 찾아 다시 남산동 한아름빌라 우측건물 골목에서 상수원 출입금지 안내표 있는곳으로 진입하여 밭데기를 지나 리키다소나무 지대에 이르면 묘지위로 직진하면 403.1봉으로 오르고 우측 사면을 따라가면 밤나무지대를 지나 상마마을 만성암 정문에 이르러 만성암 우측 이정표와 산불감시 초소 있는 곳으로 진입한다.


 파란 물탱크있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직진하면 상마고개로 올라 원효봉과 용락사 지나 무명봉 의상봉으로 갈 수 있고 우측으로 진행하면 잠시후 좌측으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길도 미륵불로 연결이 될거라 생각되어 오늘은 좌측길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가면 첫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가파른 산죽지대로 미륵불로 오를수 있고 더진행하여 원효암 철조망을 따라 좌측으로 북문으로 갈수 있다.


 첫바위지대를 지나며 가파른 오름길이나 지난번 미륵불아래 토굴 삼거리에서 직진한 길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우측에 넓적한 바위가 나타나고 바로 미륵불상 아래 토굴이 있는 갈림길이 나오고 미륵불상을 만난다. 아주 정교하고 인자하게 조각된 동래교주 미륵불상이라 쓰여 있는데 내력을 몰라 아쉽다. 큰바위가 얹쳐진 석문을 통과하면 우측에 넓적한 바위 세 개가 가 맛물려 있고 모양이 닮은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정다워보인다.


 바위에서 원효봉쪽으로 올려다보면 멸리서 기이하게 보이는 매바위가 하늘을 찌를듯 힘차게 솟아 있는게 거시기와 비슷하다. 석문에서 약3m후에 좌측으로 희미한 길이 매바위로 가는 길이고 뚜렸한 길로 직진하면 뚜렸한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은 철조망따라 상마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13보거리에 산림보호 현수막이 걸려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 으로 오르면 북문으로 가고 좌측으로는 매바위로 간다.


 매바위는 상마마을에서 보는 모습은 볼수가 없고 뒷모습이 바다 사자가 앉아있는 모습이고 주위에는 수많은 기암들이 모여 있다. 북쪽으로 고당봉과 장군봉 계명봉이 가까이 손에 잡힐듯하고 바로앞에 의상대가 있는 암군이 보이고 시계가좋아 멀리 천성산(원효산)과 영축산 신불산이 가늠된다. 남쪽으로는 수영앞 바다와 광안대교가 뚜렷하고 멀리 오랜만에 대마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매바위에서 원효봉쪽으로 진행하면 매바위로오는 갈림길을 만나 좌측으로 가면 습지지대를 지나고 매바위에서 바라본 바위암군을 만난다. 이곳의 조망도 비슷하나 의상봉과 무명암과 부채바위 금정산의 비경이 더욱 가까이 보인다. 바위군에서 다시 원효봉쪽으로 이동하면 북문에서 상마고개로가는 뚜렸한 길과 만나고 좌측으로 5m정도거리에 우측으로 원효봉으로 오르는 소로가 있다.


 상마고개에서 올라온다면 여기서 100여m아래 바위에 붉은색 페인트로 상마라고 쓰여진곳에서 좌측소로로 오르면 원효봉으로 이어지고 우측 넓은 길을 따르면 이곳 삼거리에 이르며 우측으로 내려가면 바위군을 만나고 매바위로 갈수 있고 직진하면 북문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매바위 가는 길은 여러갈래가 있어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으나 미륵불상에서는 거리도 가까워 아주쉽게 찾을수 있다.


 두 번째 바위군에서 올라온 넓은 길에서 우측 북문으로 진행하면 잠시후 미륵불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만나고 원효암 철조망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철조망이 우측으로 꺽어지고 봉우리에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습지보호구역을 지나고 금정산성로를 만나 우측으로 봉우리 내려서면 북문이다. 철조망 삼거리에서 원효암을 갈려면 우측으로 철조망따라 내려가면 북문으로 가는 주등로가 보인다.


 통나무 계단 길이 보이는곳에서 원효암으로 가는 철조망 문이 있으며 열려 있다. 소로 길을 10여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며 좌측으로 가면 습지지대와 계류를 여러개 건너며 구릉지대를지나 원효암 사거리에 이르는 먼 길이고 우측으로 낮은 봉우리로 오르면 산죽지대를 지나며 능선마루를 넘어 원효암 콘크리트 물탱크를 두 개지나 원효암 뒤편에 내려서는데 층층에 수풀이 무성하여 잘살펴야 한다.


 지난번 왔을때는 철문이 잠겨 있었는데 오늘은 열려 있어서 바로 절안으로 들어갔으나 문이 잠겨있으면 철조망 우측으로 가면 구멍이 나있는 곳으로 절로 갈수 있으며 절아래로 뚜렸한 길이 있어서 넓은 밭까지 내려가보니 희미한 길이 있어서 확인차 내려가니 철조망을 만나면서 길은 없고 전에는 철조망이 뚫려 있었는데 근래 다시 막아놓았다. 다시 절로 돌아와 스님을 만나 원효석대를 물으니 바로 절뒤에 있다 한다.


 지난번에는 원효석대 앞바위까지 갔었는데 우거진 나무에 가려 있지만 보지 못한게 이상하다. 10세기경에 세워졌다는 삼층과 부도를 지나 원효암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올라가 로프웨이가 폐기되어 있는곳으로 진입하니 산죽길이 겨우 원효석대까지 이어지며 바위에 올라보니 최상단은 내려오기가 쉽잖을것 같아 올라가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수도를 할수있는 편한 장소는 못되어 보였다.


 그러나 고당봉에서 장군봉 계명봉으로 이어지는 조망은 일품이며 멀리 원효산(천성제1봉)과 영축산도 가늠되었다. 원효암 사거리로 내려와서 앞쪽 바위지대로 올라서니 바위벽에 이름들이 몇군데 새겨져 있고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바위가 있고 우측으로 돌아가니 바위벽에 여러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아래는 4-5명이 편히 앉아 의상망해를 바라볼수 있는 조망이 뛰어난곳이다.


 넑적한 바위를 지나 맨끝바위에 義湘臺 글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고 우측으로 원효봉이 가까이 보이고 건너편에 거시기 바위가 우뚝솟아 있고 멀리 무명봉이 보이고 의상봉은 그자락만 보인다. 의상봉이 보여서 의상봉이라고 하지않았을까 생각되며 무명봉을 의상봉으로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의상대를 내려와 사거리에서 범어사로 하산을 하면 5분쯤후에 철조망 문을 통과하고 범어사로 하산할수 있다.


 의상대 봉우리 숲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로프지대를 우회하여 두 번째 암봉을 넘고 암릉길이 이어져 마지막 암봉을 넘어서 희미한 길을 내려가면 좌측에 일명 통통바위를 지나고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가면 오동나무집으로 내려서고 좌측으로 3m거리 범어사로 가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범어사 철조망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 산죽지대로 나가면 보천식당 아래 승용차 두세대가 주차할수 있는 곳이다.


 원효암과 의상대를 쉽게 찾으려면 범어사 경내에서 대성암 옆 좌측에 원효암 이정표가 있는 다리를 건너 상마마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계속오르면 철조망 문이나오며 철조망안으로  오르면 원효암에 갈수 있고 의상대는 원효암 사거리에서 좌측 봉우리에 있고 원효석대는 원효암 바로뒤에 있다.


 상마마을 입구에서는 보천식당이 보이는 범어사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 대나무숲으로 진입하여 우측으로 범어사 방향으로 진행하여 등로가 우측으로 꺽이는 갈림길이 나오면 좌측으로 3m거리 삼거리서 우측으로 오르면 암릉으로 오를수 있으나 길이 험한편이고 암릉도 좀 까다로운편이라 노약자는 피하는게 좋겠다.

 

암릉으로 오르는 삼거리에서 범어사쪽으로 계속진행하면 잠시후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위로 오르면 산죽지대로 암릉을 우회하여 의상대에 오를수 있으나 이길도 험한편이다. 계속 범어사 쪽으로 가면 상마마을 표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원효암 표시따라  오르면된다. 

 

義湘臺

범어사에서 원효암을 지나 원효봉에서 흘러내린 능선을 넘어서면 이 능선의 왼편에는 거대한 암벽군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 그곳에 올라서면 어김없이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이 곳에서의 조망이 그림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래편에서 보면 거대한 바위군이 존립해 있는데, 그 위는 아주 편편하고 드넓은 바위가 안락하고도 절묘한 전망대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곳의 반듯한 바위 한편에는 용이 승천하는 듯한 글씨체로 "의상대(義湘臺)"라고 새겨 놓았다. 범어사를 창건한 저 유명한 의상대사가 왜구의 잦은 침입에 나라의 안녕을 위해 이곳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국태민안을 기도했던 성스러운 자리이다.

그래서 그의 후학 문도들은 물론, 후세 사람들은 이 곳을 "의상망해(義湘望海)"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의상망해는 금정산에 전해오는 '금정 8경'의 하나이다. 의상대서 바라보면 동해가 한 눈에 보인다. 이곳 바위의 남쪽 절벽 상부에는 스님이 편안하게 앉아서 동해를 바라보았을 듯한 자연 암석의 의자가 있는가 하면, 바둑을 두거나 글씨를 써도 좋았을 편편한 책상같은 바위도 있다. 의상대에 대한 『동래부지(1740)』 고적조에 보면, '금정산 산정의 일출을 보는 곳'으로 기록돼 있다.

의상대나 원효석대는 동해가 시원하게 틔어있어 옛부터 일출이 아름답게 조망 되었다고 한다. 실제 이곳에는 역대 동래부사들이 즐겨 올랐고, 이안눌(李安訥)·박내정(朴乃貞)부사의 한시가 전해오고 그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의상대의 음각 글씨는 '이곳의 경치가 천하장관이어서 휘호를 남기고 싶다'고 노래한 오희창 (吳喜昌)의 솜씨일 가능성이 높다. 의상대를 사람들은 왜 굳이 "의상망해"라고 부르는 것일까? 또 의상대사는 왜 이곳에서 동해를 한량없이 바라보았을까? 바로 그 점을 이해해야 이 곳의 신성함은 물론, 금정산의 내력을 알 수 있다. 금정산은 의상대사와 원효대사의 족적을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고승 의상대사가 금정산을 찾았던 때는 범어사를 창건한 신라 문무왕 18년(678년)으로 보면 된다. 범어사의 창건 연대는 이 설도 있지만, 사찰에서 문헌을 토대로 공식적으로 정리한 것이 678년이다. 의상대사가 금정산을 찾게 된 연유는 왜구를 무찔러 달라는 왕명에 따른 것이었다. 왕의 꿈속에 신인이 나타나 현몽을 한 것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였다. 범어사 창건의 연기(緣起)를 『동국여지승람(1486)』등 옛 기록들과 『범어사창건사적』이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전해오고 있다. 범어사 창건은 '금샘' 설화와 함께 시작된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왜군이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쳐들어오는 꿈을 꾸다가, 왕은 크게 놀라 깨어났고 아침이 되자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꿈 이야기를 했다. 이에 사신을 보내어 의상스님을 맞아오게 하였다. 왕은 의상스님과 함께 친히 금정산으로 가서 칠일 칠야를 일심으로 독경했다. 이에 땅이 크게 진동하면서 홀연히 여러 부처님과 천왕과 신중, 그리고 문수동자 등이 각각 현신(現神)하여 모두 병기를 가지고 동해에 가서 왜적들을 토벌하니, 혹은 활을 쏘고, 혹은 창을 휘두르며, 혹은 모래와 돌이 비오듯이 휘날렸다. 또한 바람을 주관하는 신은 부채로 흑풍을 일으키니 병화가 하늘에 넘치고 파도가 땅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왜적들의 배는 서로 공격하여 모든 병사가 빠져 죽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왕은 크게 기뻐하여 의상을 예공대사로 봉하고, 금정산 아래에 큰 절을 세웠으니 이것이 범어사를 창건한 유래이다.

(http://www.hellopusan.com/p-03/place-02-02.htm에서 인용)

 

사진이 뜨지않으면 홈페이지에서 보십시요.

 

상마마을 진입로

 

동래교주 미륵불상

 

미륵불상위 형제바위와 매바위

 

고당봉

 

가운데가 의상대이고 좌측은 장군봉. 우측은 계명봉

 

뒤에서본 매바위(바다사자같다)

 

매바위

 

의상대

 

대마도가 선명하였는데 디카성능이 따르지못하였다.

 

원효암 뒤바위가 원효석대

 

원효암 부도

 

원효석대

 

원효석대

 

원효석대

 

원효석대

 

상마입구 하산지점(큰나무 좌측 대나무숲길)